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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여배우가 보는 한국 여배우 자살

과도기의 고뇌, 한국 연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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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후쿠미
기사입력 2009/07/12 [01:12]

제이피뉴스 편집부로부터 "한일 연예계의 다른점에 대해서 써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다.

솔직히 내가 몸담고 있는 곳 이야기라 별로 내키지 않지만, 붓을 들어보기로 한다.

'왜 한국 여배우의 자살이 계속되는가'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일본 언론도 크게 다뤘다.
 
나도 같은 여배우 입장인 사람으로서 그녀들의 고뇌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연예인'은 누구나가 '되고싶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누구도  진심으로 '되겠다'고는 하지 않는 직업이 아닐까. 

스포츠라면 흑백이 확실히 구분되지만, 배우의 실력은 누가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말 애매하다. 또 노력하면 반드시 보답이 온다고 할 수도 없다.

게다가 배우는 항상 '선택받는 쪽'일 수 밖에 없는 '사는 자 시장'의 세상이라는 것이다.일을 주는 pd나 감독, 호의적인 기사를 써주는 기자들에게 꼬리라도 치고 싶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 중에는 '자신의 기분을 맞춰주지 않으면 못견디는' 오만한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요청을 계속 받아들임으로써 일을 받는 삶의 방식을 고른 사람도 있을 지도 모른다.

권력 있는 사람은 그것을 휘둘러, 눈독 들이고 있는 여배우를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흔한 이야기다. 또 반대로 그들의 강압적인 업무지시나 성희롱을 역으로 이용해, 만만찮게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의 문제이므로, 주위가 어쨌느니 저쨌느니 할 것도 없다. 

연예계가 위태로운 세계라는 것은 일본도 한국도 기본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일찍이 '프러덕션'이라고 하는 제도가 생겨서, 배우들은 특정 방송국이나 영화사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가지 일을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했다.

내가 한국에 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배우'라고 하니까 'nhk 소속이냐? 니혼 tv 소속이냐'라고 자주 질문을 받았다.

당시, 한국 배우들은 대체적으로 방송국 전속이었기 때문에 나온 발상일 것이다.
배우가 방송국에 속해있으면, 방송국 pd 마음 여부에 따라 일이 결정되는 것이므로 그들의 권력은 배우에게 강대하기 때문이다. 필경 배우는 pd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러나 일본에는 '프로덕션'이라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사는자 시장'이고 '선택받는 입장'이면서도, 직장이 넓어지는 것에 대해 배우 쪽에서도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가 가능해졌다. 팔리는 것 뿐 아니라  서로 '팔고 사고' 하는 것이라는 대등한 권리 의식도 생겼다고 본다.

또 '프로덕션'의 스탭, 매니저는 자기 소속인 배우나 탤런트의 생명이 길게 유지 가능하도록 사이에 껴서 양쪽 관계를 양호하게 유지하는 노력을 했다.

틀림없이 신뢰하도록 일하거나 적정수준의 개런티, 제작측과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프로덕션의 매니저와도 정보를 공유해서 원활한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등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본 업계 사람들은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배우와 매니저의 이해관계는 대체적으로 일치해있고, 신뢰관계로 묶여 있다. 이런 업계의 룰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가 노력해서 지혜를 짜내 배양되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예계뿐 아니라 어느 업계라도 '어두운 부분'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부정한 수단은 길게 계속되지 않고, 언젠가 도태되는 법이다.

내 주변을 보더라도 마지막에 남은 것은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나 겸허하고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연예계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모럴(도덕)이 확립된 연예계는, 괴롭지만 누군가가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것은 부정이나 유착을 단호하게  물리치는 연예인 개개인의 의식이나 태도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번역 김현근)
 
 
 

過渡期の苦悩

  〜韓国女優の自殺に思うこと〜 


 

JP編集部から「日韓芸能界の違いについて書いて欲しい」というたっての要望があった。正直、内輪の話はあまり気が進まないのだが、筆を執ってみることにする。 

「何故韓国の女優の自殺が相次ぐのか?」と、こんな事件がある度に日本のマスコミも大きく取り上げる。

私は同じ女優という立場の者として、彼女達の苦悩は想像するに難くない。 

「芸能人」は誰もが「なりたい」と思うかもしれないが、誰もが本気で「なろう」とはしない職業ではないだろうか。

芸能界は実力と同時に「運」も必要で、非常に不確実な世界だ。

スポーツなら白黒がはっきりつくが、俳優の実力は誰がどう評価するのか、実に曖昧だ。努力すれば必ず報われるとも限らない。

しかも俳優は常に「選ばれる側」でしかないという、「買い手市場」の世の中だ。

仕事をくれるPDや監督、好意的な記事を書いてくれる記者たちに、つい媚びを売りたくもなろう。

なかには「自分の機嫌をとってくれなければ我慢がならない」という傲慢な人もいるかもしれない。そしてそういう人達の要望を限りなく受け入れることで、仕事を得るという生き方を選んでしまう人もあるのかもしれない。 

権力のある者がそれを振り回して、目をかけている女優さんを屈服させようというのはありがちな話だ

また逆に彼等のパワハラやセクハラを逆手に取って、したたかにチャンスを掴もうとする人がいても、それはその人の生き方の問題なのだから、まわりがとやかく言うことでもない。

芸能界が危うい世界だということは日本も韓国も基本的には同じなのだと思う。 

しかし、日本では早い時期から「プロダクション」という制度ができあがり、俳優達は特定の放送局や映画会社の枠にとらわれず、様々な仕事を自由に得ることが出来るシステムになっていた。 

私が韓国に行き始めたときに、「私は俳優だ」というと、「NHKの所属か?日本テレビの所属か?」と度々質問された。

当時、韓国の俳優さんはたいてい、放送局の専属だったことからの発想なのだろう。

俳優が放送局に属していれば、局のPDの胸先三寸で仕事が決まるのだから彼等の権力は俳優にとっては強大だ。畢竟俳優はPDの顔色を窺うことになる。 

しかし日本では「プロダクション」というシステムが確立していたために、同じように「買い手市場」であり「選ばれる立場」であっても、職場が広域になったことで俳優の側にも自由な選択の余地が出来てきた。買われるばかりでなく、互いに「売り買い」するのだという対等な権利意識も芽生えたと思う。 

また「プロダクション」のスタッフ、マネージャーは自分が抱える俳優やタレントの生命が長く保たれるよう、間に入って両者の関係を良好に保つ努力をした。

間違いのない信頼される仕事ぶりや、適正なギャランティ、制作側とはもちろんのこと、他のプロダクションのマネージャーとも情報を共有してゆく、円滑な人間関係の構築など、長きにわたって日本の業界人達は真摯に努力してきた。

俳優の利害はマネージャーと概ね一致しているし、信頼関係で結ばれている。

このような業界のルールは長い間に、それぞれが努力し知恵を絞って培ってきたものだとおもう。 

芸能界に限らずどこの業界にも「暗部」はあるものだとおもうが、結局、不正な手段は長くは続かず、いずれ淘汰されるものだ。 

私の周辺を見ていても、最後に残るのは真面目に努力する人や、謙虚でまっとうな考えをもっている人達だ。また、そうでなければ嘘だと思う。 

現在の韓国芸能界は「過渡期」なのだと思う。

モラルの確立した芸能界は、苦しみつつも誰かが作り上げるよりない。

そしてそれを作るのは、不正や癒着を毅然として退ける、芸能人個々人の意識や態度意外にはない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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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무사 09/07/12 [11:38]
한국의 프로덕션, 혹은 기획사들이 아직 과도기 상태에 있는 것, 맞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처럼 가능성 있는 연예인을 키우기 위해 프로그램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 육성하는 단계는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장 자연같은 자살사건이 있던 것이고. 우리나라도 조만간 일본처럼 생활 안정을 위해 월급받는 시스템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 09/07/12 [14:00]
일부분 생략되었군요.
오대오 09/07/12 [14:15]
일련의 자살 사태를 겪으면서, 연예계가 정말 위태로운 세계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런 사태의 이면에는 '모럴 해저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의 경우 제대로 된 연예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층 더 두드러진 극한 상황이 터져나오곤 하는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모럴'이 작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연예인 뿐만 아니라 관련 종사자들과 일반 팬들의 합치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추악한 이면의 비리 때문에 어이없이 자살을 선택하는 연예인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Nicholas 09/07/12 [14:29]
과거에 아쿠다카와 류노스케, 아리시마 다케오, 가와바다 야스나리,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등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의 연예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이래 1995년까지 인구 10만명당 자살율이 한국은 10명, 일본은 17명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일은 25명을 오르내리며 OECD 1~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요? 자살은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 욕망의 표현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미화해버리는 순간 죽음은 하찮은 것으로 전락합니다. 결국, 제도권 교육에서 명령에 따른 복종만 가르치듯, 삶에만 경도된 고착화된 생활 습관이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삶의 한 부분인 죽음에 대해서 직면하기를 거절합니다. 한일이 추구하는 서양의 이성세계는 물질 문명은 발달시켰지만 그 물질에 대한 집착은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파국을 맞은 서양 문명은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대안으로 동양의 정신세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삶과 죽음에 대한 키워드는 이미 한국과 일본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지리적으로 고립감이 지대했던 것이 과거 평균적으로 대륙보다 자살율이 높았지 않았나 합니다. 1980년대 이전의 자살율 통계치는 확보하지 못해 더 이상 긴 이야기는 못하겠군요. 여하튼,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자신의 그림이 완성되기 전까지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듯이, 사실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쟎아요. 살아보기 전에는. 서양 문명의 이원론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시각으로 삶과 죽음(죽어가는 과정, 죽음, 그 이후)에 대한 균형을 가져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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