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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친 "한국 남자들은 다 그래?"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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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 기자
기사입력 2009-07-12

(이 글은 연재물이므로 처음부터 읽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점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타쿠(1부)
헌책방(2부)
걱정(3부)
이별(4부)
 
"지금 기숙사 앞으로 갈께요."
 
아내는 잠에서 깨자마자 전화를 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나도 잠결이었다. 얼결에 '오세요'라고 응대한 후 무심히 벽시계를 쳐다보니 오전 11시다. 일본에 와서 이렇게 늦게 일어난 건 처음이다. 아내도 그때까지 잤다고 하니까, 결국 나도 아내도 잠 못 이루는 밤이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한 시간후인 11월 10일 오전 12시부터 아내와 나는 돌아오는 전철'안', 볼란티어 교실'안'이 아닌 '밖'에서 공식적인 첫 데이트를 가졌다. 말이 쉬워 데이트지 거창할 게 없다. 아내와 함께 k시의 공원, 절, 신사를 걸어 다니면서 대화를 나누는 정도?
 
지난 회에서 날짜를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하냐는 류의 댓글이 있었는데, 여기엔 이유가 있다.
 
내가 아내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귀자'고 고백한 시간이 데이트로부터 딱 12시간이 지난 11월 11일 0시였기 때문이다. 11월 11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시간 나는 아내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당신이 좋아요. 사귀고 싶어요"라는 말을 건넸고, 아내는 웬일인지 무표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을 스르륵 감았다.
 
그러니까 11월 11일이다. 아내와 내가 사귀기 시작한 날. 2001년 11월 11일. 기억 못하는 게 오히려 힘들다. 연애에 있어 숫자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element)다. 누구에게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경험이 있을테다. 연애한 지 100일 째에 뭘하고, 또 1주년엔 거창한 기념식을 했었던, 또는 해보려 했던 기억 말이다.
 
아내와 나는 이런 숫자적 요소가 우연적으로, 몇번이고 겹쳐질 때가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어 혼인신고서를 시청에 제출한 8월 22일이 그렇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실질적인 결혼기념일인데 내 생일은 2월 22일이고 아내의 생일은 8월 2일이다. 마치 둘의 생일을 더한 후 나눈 것 같은 '숫자' 조합이다.
 
중요한 건 이게 의도한 게 아니라는 것. 다만 아내와 나는 며칠, 혹은 몇달이 지난 후 "어? 그러고 보니!"라는 뒤늦은 깨달음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깔깔거리고 웃었을 뿐이다.
 
그 날도 그랬다.
 
'사귀자'는 고백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을 감았던 아내. 내가 할 일은 오른팔로 아내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조금은 천천히, 물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내의 윗입술의, 웬지 레몬맛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 감촉을 조심스럽게 빌리거나 공유하는 것. 물리적 시간은 10초정도였겠지만, 정서적으로는 분명 멈추어 주었을, 그래서 공백이 되어버린 영원한 시간, 혹은 꿈.
 
그러나 아내는 금세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아마도 10초정도 되었을 그 시간이 끝난 후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계를 나에게 들이대며 "너무 늦었어요. 12시가 지났잖아요. 나 빨리 집에 가야 해요"라고 뭐가 그리 급한지 쏘아 대던 아내. 그런데 또 그때 나의 눈에는 아내의 눈이 아니라 '숫자'가 들어왔다. 아내가 내밀던 시계가 가리키던 숫자다.
 
11월 11일 0시 3분. 아내와 내가 사귀고 또 첫 키스를 나눈 '숫자'는 그래서 11월 11일이 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었다. 평생 잊어버리기 힘든 '숫자'를 '우연'히 부여받은 셈이다.
 
사실 연애가 잘 되려면 이런 우연적 요소가 꽤 들락날락거려야 한다. 우연은 '깔깔거림'과 같은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이 소소한 즐거움이 그, 혹은 그녀와의 공간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어느날 문득 느낄 때 그 우연은 필연을 넘어 인연이 된다.
 
하지만 아내는 우리가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지 한달쯤 지나 "첫 데이트 정말 최악이었어!"라는 진심(本音)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것도 아내의 친구에게 나를 소개시키는 자리에서다. 첫 데이트의 내용을 듣던 아내의 친구 a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나중엔 내 눈조차 쳐다보지 않고 시푸드 화이트소스 스파게티에 애꿎은 포크질만 해댔다.
 
a는 나중에 물론 나와도 친해졌고 그때 첫 소개자리에서 왜 나를 외면했는지 그 진짜 이유를 털어 놓으면서 "아마 일본 남자였다면, 아니 일본 남자들은 그럴 리도 없겠지만, 아! 정말 상상하기조차 힘든 짓을 그렇게 태연자약하게..."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도 다시금 그날 일을 떠올렸는지 에스프레소 커피를 넘기면서 "진짜 심했어, 그지?"라고 맞장구를 친다.
 
나는 첫 데이트에서 잘못한 게 없다, 고 생각했었기에 아내와 a의 이런 말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내가 잘못했었다면 부모님과 같이 사는 정숙한 아내가 밤 12시가 지나서까지 나와 같이 있을리가 없다. 물론 사회인인지라 간혹 12시를 넘길 수도 있지만, 토요일도 12시를 넘겨 버리면 이틀 연속 오밤중 귀가가 되어 버린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면서 a가 말을 꺼낸다.
 
a) 그날 미와코가 빨간색 부츠를 신고 갔다고 하던데 기억나?
나) 아! 기억나. 뭐였더라? 유..유나이팃...음...
 
아내) 유나이텟도 아로우즈 (ユナイテッドアローズ).
나) 아. 그렇지.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united arrows).
아내) ...아니, 유나이텟도 아로우즈(ユナイテッドアローズ) 라니까.
나) 아, 일본식...유나이텟도 아로우즈.
 
일본을 한번이라도 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일본식 영어발음을 접했을 때 가슴이 휑해지는 절망감과 좌절을. 그렇지만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법한 이런 영어발음이 본격적으로 대화의 테마로 등장할 때는 이미 뭔가 불만이 있다는 말이 된다. a가 가볍게 물어온다.
 
a) 그거 어땠어?
 
너무 가벼웠기에 나도 가볍게 답했다.
 
나) 음 뭐랄까..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지.
 
a는 순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답답함을 느낀듯 이마를 치며 괴로워 했고, 아내는 옆에서 길디긴 한숨을 내쉬었다.
 
a) 아휴 인간아. 설사 어울리지 않았다고 해. 그래도 그렇지, 그걸 첫 데이트에 대놓고 '그거 안 어울려요'라고 말하는 남자가 어딨어? 정말 비상식적이야.
아내) 그래, 그래. 그때 나 정말 쇼크 먹었었어.
 
a의 공격에 아내는 즉시 동조했다. 아마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테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외국인을 사귈 때 피해 갈 수 없는, 너무나 전형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a) 한국 남자들은 다 그래?
 

▲ 고기육질로 채워진 니꾸망(肉まん). 지금은 정말 좋아하는 데 그땐 왜 그렇게 충격이었던지...(사진은 이미지) 
하나 더 있다. 아내는 첫 데이트를 했을때 내가 점심을 먹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니꾸망(肉まん)과 앙망(アンマン)을 편의점에서 사가지고 왔다.
 
니꾸망은 문자 그대로 쇠고기가 들어간 호빵이고, 후자는 한국에서 흔히 보는 앙코가 들어간 호빵이다.
 
니꾸망이 앙망보다 10엔정도 비싸다. 아내는 날 생각해서 니꾸망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한번도 니꾸망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호빵에 대한 내 인식은 고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검정색 앙코가 튀어 나올꺼라 생각했는데, 고기 기름과 육질이 주루룩 입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얼결에 외치고 말았다. 하필이면 일본어로 말이다.
 
"아! 이게 뭐야? 뭔 맛이 이렇대?"
 
그땐 왜 아내가 '털썩' 공원의 벤치에 주저앉았는지, 그리곤 말없이 내가 한 입 베어문 '니꾸망'과 아직 새끈새끈한 '앙망'을 교환한 건지 몰랐다.
 
a는 이 이야기도 이미 알고 있었다. '유나이텟도 아로우즈' 부츠 사건 후 나온 '상처받은 니꾸망'은 a의 분노 게이지를 극한까지 올렸다. a는 아사히 드라이 캔맥주를 마저 비우고, 바닥에 '퍽' 소리가 나도록 내려 놓으며 이렇게 쏘아 붙였다.  
 
a) 이해할 수 없어. 매너 꽝이야. 미와코는 정말 생각해서 사가지고 온 건데 정말 너무 심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대? 이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남자 모습이야. 아!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주저리주저리.
 
아내) 그래 너무 심해. 정말 심했어. 난 정말 그때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했어. 내가 어쩌자고 이런 사람과 데이트라는 걸 하고 있는지라는 절망감과 아득함이 정말 난 이런 사람이... 어쩌고저쩌고.
 
나) ......................(먼산)
 
아무튼 a는 이날 저녁 약 1시간에 걸쳐 나를 공격했고, 그 이후에도 아사히 드라이 맥주만 들어가면 이 얘기를 꺼낸다. 무려 만 7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변한 게 없다. a에게 있어 나는 오징어 땅콩보다 더 감칠맛나는 안주거리가 된 셈이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는 안주씹기의 마지막은, 대부분 이렇게 끝난다.
 
"한국 남자들은 다 그래?"
 
나는 a를 친구로서 정말 좋아하지만 a가 아직 연애를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간혹 생각한다. 아내는 한국남자인 나를 만났다기 보단 그냥 나를 만난 거다. 나역시 일본여자인 아내를 만난게 아니라 그냥 아내를 만났을 뿐이다. 즉, 어떤 국적을 가졌는 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전부 좋은 사람이 아닌 것과 같은 원리다.
 
즉 내 실수는 한국남자가 그런게 아니라 내가 그런 것이고, 물론 '상처받은 니꾸망'에 대해선 나도 충분하게, 또 진지하게 반성했다. '조금만 참고 끝까지 먹자'는 이성적 행동을 왜 하지 못했을까 라는 자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이다. 앙코가 나올거라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깃점이 씹힌다고 생각해 보자. 당사자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했을까를.
 
그래서일까? 아내는 지금도 첫 데이트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첫키스만 선연히 기억난다. 그 멈춘듯한 무중력의 시간속에서 레몬맛이 나던 아내의 윗입술(첫 키스에서 나는 아내의 윗입술만 터치했다)과 아내가 보여줬던 '숫자'의 이미지를, 말이다.
 
그렇다고 아내는 첫 데이트를 격하하진 않는다. 아내는 첫 데이트에서 내가 보여준, 이건 어떻게 보면 한국남자들의 보편적인 행동일 수 있지만, 적극적인 취사선택에 너무나 편했다고 말했다.
 
아내와 나는 그날 2시 k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고급 스파게티 가게를 갔는데, k시에서 26년을 살아온 아내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왜 그런 심리 있지 않은가? 깡촌에서 자란 심약한 녀석이 자기네 동네에 후터스가 들어왔다고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것. 강북에서 놀던 이가 강남의 줄리아나를 한남대교 건너편에서 쳐다보기만 하는 그런 심리.
 
아내는 한번 가보고 싶은데 한번도 못 가봤다고, '상처입은 니꾸망'을 먹어가며 말한다. 아내의 말을 들은 나는 아주 당연하게 응수했다.
 
"그럼 오늘 거기 가지.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런 말들이 아내를 편안하게 해줬다. 지금도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오빠를 만나면서 정말 편한 거는 오빠가 다 알아서 결정해 주는 것. 보통 남자들, 일본남자라고 해야하나? 내가 경험한 사람들이 일본남자들이 많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겠는데, 항상 뭘 할려고 하면 상담을 해야 했거든. 그런데 이거 너무 에너지 낭비잖아. '우리 뭐할까?'라고 일일이 상담해야 하는 거 말야. 근데 오빠는 다 알아서 휙휙 쉽게 정해 주니까 너무 편한 거 있지?"
 
그리곤 마지막에 덧붙인다.
 
"한국 남자들은 다 그래?"
 
현상적으로는 a가 내뱉은 것과 똑같은 문장이지만, 맥락(context)이 다르다. 아내와 내가 연애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현상(text)에만 치중하면 안된다. 현상은 드문드문 구체성을 띤 형태로 추억을 불러일으킬 때만 작용할 뿐이다. 연애는 추억이 아닌 현실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 말고 길게 그 맥락을 음미해야 오래 간다.
 
나는 a의 물음에는 '먼산'을 쳐다봤지만, 아내의 물음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닌데, 리더쉽은 있다고 봐. 군대 같은 것도 거의 경험하고 그러니까. 난 그 안에서도 좀 더 그런 스타일인 것 같아."
 
그러면 아내는 군대에 대해서 물어온다. 결국 적절한 과장이 섞인 내 군대얘기를 듣고, 내 손을 부여잡으며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힌 채 이렇게 말한다.
 
"오빠. 살아서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이 순간 '유나이텟도 아로우즈'와 '상처받은 니꾸망'은 저멀리 기억너머로 사라진다. 군대 역시 그 자체로는 이들과 같은 레벨의 텍스트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맥락에서 나오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맥락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순간, 연애는 시작된다.
 
그렇게 몇 차례 데이트를 했다. 아내의 안심감을 충족시켜주는 든든한 오빠라는 인식(혹은 맥락)은 데이트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강고해져 갔다. 그렇게 데이트를 거듭해 가던 12월 어느날. 또다시 '숫자'의 신(神)이 강림해 주신 12월 12일. 아내는 작정을 한 듯 말을 꺼내었다.
 
"나 집에서 나오고 싶어. 오빠와 같이 살고 싶어"
 
그리고 나는 어렸을 때 소일거리로 배워두었던 '바둑'이 며칠 후 갑자기 '절대마공'을 발휘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말이다.
 
(6부로 이어짐)
 
■ 6부 일본인 여친의 아버님을 만나다!


■ 글쓴이 주(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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