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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 필요한건 돈이 아닌 정(情)"

[인터뷰] 45년 엔카가수 다카기 이치로, 일본인에게 엔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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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정 기자
기사입력 2010/12/30 [12:42]

 
"부모가 자녀를 죽이고, 자녀가 부모를 버리고, 잔인한 사건이 끊이질 않는 일본. 지금 일본에 필요한 건 정치, 경제가 아닙니다. 정(情)이죠"
 
45년 베테랑 엔카가수 다카기 이치로(69)씨는 목소리를 높인다. 10대부터 민요를 시작해 엔카 가수 한길을 고집해 온 그는 현재 일본의 사회문제에 대해 맹렬히 비판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음악, 엔카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지금 동남아시아에 가면 일본 가라오케가 인기입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요즘 유행하는 제이팝이 아니라 전부 엔카죠. 지구 한바퀴를 돌아서 아프리카에서도 엔카를 부릅니다. 국경, 인종을 떠나서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 그것이 엔카입니다"
 
1963년 데뷔하여 약 300곡 이상의 곡을 발표했고, 아내 쓰야마 요코와 듀엣한 '신주쿠소다치'는 160만 장이 팔리며 엔카의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스타로서의 화려한 삶 대신 엔카를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자선활동, 그리고 일본 엔카를 지키기 위해 1997년 일본엔카가요협회를 만들고 활동하고 있다.
 
일본엔카가요협회는 꾸준한 엔카 공연을 통해 엔카를 알리고 지키는 것은 물론, 후배양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 집단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선, 위문공연을 펼치며 '마음의 노래' 엔카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 엔카가수이자 일본엔카가요협회 이사장 다카기 이치로 씨     ©제이피뉴스/이승열

다카기 이치로 씨가 엔카를 부르며 자선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1965년. 도쿄 오오시마에 섬 1/3이 잿더미가 되어버린 큰 화재사건이 일어났을 때였다.
 
망연자실, 절망에 빠져있는 섬 주민들을 위해 위문공연이 열렸고, 그들 앞에서 노래한 다카기 씨는 안타까운 마음에 공연 후 출연료를 섬 복구에 기부했다. 칭찬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당신의 노래와 따뜻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었다, 고맙다"는 수많은 편지를 받았고 다카기 씨는 이 때 처음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1년에 30회가 넘는 자선공연을 하며 전국을 돌았다. 공연 스케줄이 잡히면 중간에 빈 시간을 찾아 근처의 지역시설을 돌면서 엔카를 불렀다. 화려한 무대, 조명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노래를 사랑하는 관객, 자신과 마이크만 있으면 충분했다. 
 
"일부러 찾아가서 하는 것도 아니고, 공연 스케줄이 잡히면 그 김에 시설을 돌며 노래하는 건데 뭐가 힘들겠어요. 그리고 특별한 일도 아니고,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노래만으로도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데, 불러야죠"
 
일본에서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록인 자선공연 약 1200회, 그렇게 평생을 노래하며 살아온 그에게 남은 것은 돈이 아닌 수많은 감사장이었다. 지난 세월을 나타내듯 수백장의 빛바랜 감사장, 공로장은 그가 가진 최대의 재산이라고 한다.
 
"엔카의 매력은요, 말을 소중히 하고, 사람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가 그렇지만, 관객들은 제 노래를 듣고 '혼이 있는 외침'이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 시처럼 흐르는 가사, 엔카는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는 진짜 엔카가 사라져갑니다. 이건 비단 가요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세계대전 후 상처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던 엔카는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진짜 엔카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는 것에 다카기 씨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노래를 즐기거나 부른 경험이 없었다고 합니다. 노래로 표출할 수 있는 감정을 내뱉지 못하고 범죄로 이어져 버린 것이죠. 노래란, 특히 엔카란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고 정화시켜주는 특별한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평생을 노래하고, 엔카를 계승할 후배를 양성한다. 

▲ 다카기 이치로, 쓰야마 요코 부부 공연모습     ©제이피뉴스/이승열

◆ 엔카가수가 밝히는 원조논란, 그리고 한일관계

일본 엔카를 대표하는 그가 의외의 말을 입에 담았다. "일본 엔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피가 섞여있고, 엔카 멜로디 원조는 한국입니다". 한국에서도 종종 트로트가 원조냐 엔카가 원조냐 시비가 붙곤 하는데, 일본엔카가요협회 이사장이 이런 말을 쉽게 꺼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엔카는 메이지시대부터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그 날의 뉴스, 사건을 전달하는 형태로 시작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 때 엔카는 연가(演歌)가 아닌 염가(艶歌)였죠. 염(艶)자는 일본어로 섹시하고, 빛나고, 성숙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깊이있는 음악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연출'이라는 의미의 연가가 되었습니다.
 
일본 엔카의 원점이 되고있는 천재 작곡가 고가마사오(古賀政男) 씨는 일본 후쿠오카 출신이지만 한국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에 건너와 그가 탄생시킨 엔카의 멜로디는 한국의 것이었죠. 그러니까 엔카의 원조는 한국입니다"
 
단순명료한 그의 말에 트로트 원조 시비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는 그는 한국 아티스트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서로의 엔카, 트로트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12월 3일에는 요코하마에서 작곡가 고가마사오 탄생 101주년 기념 한일문화교류콘서트를 개최했다.
 
콘서트에는 김연자, 김연숙 등 인기 트로트 가수를 비롯해 일본에서는 다카기 이치로, 쓰야마 요코 부부가 엔카를 선보였고, 한국민요, 일본민요, 한국아이돌까지 출연해 다채로운 한일문화교류콘서트를 성공시켰다. 콘서트는 2011년에 한국에서도 약 2000명 규모로 열릴 예정이다.
 
한국의 역량있는 트로트 가수를 일본에서 데뷔시킬 준비도 하고 있다는 다카기 씨. "요즘은 노래방이 보급되어 왠만한 사람들 다 가수 뺨치게 노래를 합니다. 그러니까 더욱 가수들의 실력이 중요해진 때죠. 한국은 특히 예전부터 노래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정말 특출난 실력있는 가수를 데려다 일본에 소개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한다.
 
"일본에는 강제로 끌려온 한국인도 있고, 피난온 사람도 있습니다. 일본 왕족 중에는 직접 한국 피를 가지고 있다고 밝힌 사람도 있습니다. 한 때 일본은 한국에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혔습니다. 한일 양국은 잊을 수 없는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죠. 우선 일본은 한국에 사죄하고 갚아야하지만, 그걸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면 너무나 힘든 일이고 어려워집니다.
 
한일 양국은 가장 많이 닮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역사는 잊혀지지 않겠지만 앞으로 후손들이 협력하고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는 우리 민간차원에서 활발한 교류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악을 통해 양국을 잇는 것이지요. 음악은 제 생명이고, 음악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제 평생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바램은 일년에 한 번씩이라도 한일양국을 오가며 콘서트를 열고,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다. 가깝게는 2011년 5월 혹은 10월에 다카기 씨가 출연하는 한일교류콘서트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니 관심있는 독자라면 일본엔카가요협회 홈페이지를 체크해주기 바란다. 
  
▲ 일본엔카가요협회 이사장 다카기 이치로 씨     ©제이피뉴스/이승열
▲ 빛바랜 수백장의 감사장은 그의 재산 1호     ©jpnews/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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