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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첫 물꼬는 겨울연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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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순(일본 전문 번역
기사입력 2009-06-23

처음 유미코 씨 집에 가던 날, 뭔가 인상 깊은 첫 만남을 만들고 싶어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미리 재료 준비와 배추 절이는 법을 전화로 얘기해 두었다.

유미코 씨 부부와 만난 역에서 10분 정도 걷는 동안, 처음 만난 사람 같지 않게 무척 편안했다. 좁은 골목을 걸으면서도 가게 간판과 지형물을 시시콜콜 일러주고 확인시켜준다.

“崔상! 다음에는 혼자 찾아와야 해요.”
 
‘또 오라’는 말 대신 ‘길 익히기’를 도와주려는 배려에서였다.

집에 도착하니 두 딸과, 한국여성을 보기 위해 왔다는 3명의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생전 처음 갖는 ‘한국김치강좌’가 시작 됐다.

미리 절여놓으라고 일러둔 배추 두 포기는 소금을 위에만 슬쩍 뿌려놓아 전혀 숨죽을 생각을 않는다. 내가 배춧잎 켜켜이 소금을 뿌리는 걸 보더니 벌써부터 김치가 다 된 양, ‘맛있을 거야’라며 곁에서 호들갑들이다. 무를 채 썰어 고춧가루를 넣고 파, 마늘, 생강 등 양념을 다지고...이런 것들을 모두 직접 해보도록 했다. 너무나 즐거워한다.

“지지미(부침개)에는 뭐가 들어가느냐?”
“여러 사람이 냄비음식을 함께 먹던데, 왜 각자 덜어서 먹지 않느냐?”
“한국 사람들 피부 좋은 건 매운 김치 때문인 거 같은데, 당신도 매운 거 잘 먹느냐?”
 
등등, 김치를 담그는 동안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 김치담그기  ©최경순

▲ 최경순 김치     ©최경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의외로 많은 듯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유학생이자 주부인 나와의 대화를 위해 나름대로 공부(!)를 했던 모양이다. 일본인들의 준비성이 대단하다고 느낀 반면 빈틈없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그 느낌은 일본에 있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한국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계기는 故이수현 씨의 죽음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준비해간 액체젓갈과 한국산 고춧가루를 넣은 포기김치가 완성됐다. 실은 출국을 앞두고 생각한 점이 있어 김치 담글 때 필요한 액체젓갈과 고춧가루를 가져갔다.
 
이 두 가지는 일본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지만 우리 김치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기에. 유미코씨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崔상을 생각하며 먹으라’는 말로 나를 기쁘게 해준다.

그날 밤 12시가 다 되어 그 집을 나왔다.
 
“한국에선 남의 집에 너무 오래 있으면 실례에요.”
 
라고 하자,

“여긴 가톤찌(加藤ん家、性인 ‘가토(加藤)’에 ‘~네 집’을 붙여 표현한 말)에요. 崔상과 우리 가족이 빨리 친해지려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필요가 있어요.”
 
라는 말에서도 정이 느껴졌다.

▲ 함께 찍은 사진/김치 담그기에 참가한 유미코 씨 친구들과 가족. 유미코 씨(앞줄 오른쪽 두 번째)와 남편(뒷줄 맨 오른쪽).    ©최경순

늘 오픈 마인드로 살아가는 유미코 씨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그녀는 내게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줬고 새로운 경험과 잊지 못할 추억들을 안겨 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큰 선물을 받았다. 자신이 참여하는 아마추어 합창단이 있는데 1박2일 시골여행이 계획되어 있으니 동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시 간다고 결정했다.
 
유미코 씨는 화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남편과 20대의 두 딸은 언제나 유미코 씨의 유쾌발랄한 지휘 하에 행복한 생활을 보낸단다.

그 때(2001년)는 지금처럼 한류가 높지 않았다. 그런데 한 명의 한국인 유학생으로 인하여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고 생각한다.
 
故이수현씨.

신주쿠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 뛰어들었다가 결국 목숨을 잃은 사고(2001. 1. 26.)로 인해 한일 양국은 ‘의인 이수현’ 얘기로 들끓었다. 당시 이수현 씨와 함께 목숨을 잃은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 씨도 있었지만 매스컴은 온통 ‘한국인 이수현’ 씨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수현 신드롬은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의로 바뀌기 시작했고 평소 정치가들이 해내지 못한 ‘한일 두 나라에 봄(春)’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한류열풍을 이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한일관계의 단단한 빗장을 푼 것은 그보다 앞선 ‘이수현’ 사고였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을 영화로 만든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시사회에 일본 천황부부가 참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류스타들이 일본에 가면 신오쿠보 역에 있는 이수현 추모비(벽에 새겨져 있음) 앞에 꽃다발이라도 바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관심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문화로 자연스럽게 옮겨진 것 같다.
김치와 불고기, 갈비 정도는 웬만큼 알고 있었던 과거에 비해, 이씨 사건이후 ‘한국음식사랑’은 봇물 터지듯 확산되었다.
 
내가 그곳에 있는 동안 tv를 틀면 여기저기에서 음식 프로그램이 소개되었고 그것도 한국음식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닭갈비, 떡볶이, 잡채, 지지미 등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의 종류도 다양해 그야말로 한국음식 전성기로 여겨질 정도였다.
 
▲ 상차림/ 일본의 가정에서 처음으로 식사대접을 받은 상차림-가족 모두가 분담해 요리하는 모습이 마치 서양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가운데 고기는 남편이 요리한 것. 돼지고기를 덩어리째 실로 꽁꽁 묶어 오븐에 익히는데 중간에 여러 번 꺼내어 소스를 발라가며 정성껏 구웠다.  ©최경순


나는 얼마 안 있어 그 지역 단체에서 ‘한국의 가정요리’를 소개하는 이벤트에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김치가 나를 주인공으로 발탁시켜 준 셈이다.
 
 

다음은 나가노(長野)의 시골마을 고쇼쿠(更埴)를 찾아갑니다. 한국인 최초 방문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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