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학대 엄마 뒤에는 두명의 아빠가 있었다

사건 발생 일주일, 오사카 아동 방치 아사 사건의 의문점 5가지

가 -가 +

김현근 기자
기사입력 2010/08/09 [14:24]

지난 7월 30일, 23살의 젊은 엄마가 폭염 속에서 두명의 아이를 방치해 굶겨죽인 사건은 여러가지 의문점을 낳았다.

아이엄마인 시모무라 사나에 용의자가 한 때나마 블로그에 썼던 아이 사랑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그녀의 친부는 지난 10년간 딸과 연락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던 것일까.
 
무책임한 시모무라 용의자가 이혼 후 혼자서 아이들을 키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3번이나 신고를 받았음에도 오사카의 아동센터 직원은 아동학대의 긴급성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수 많은 주민들이 인터폰으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었음에도 신고는 왜 한 사람만 했던 것일까.

사건이 일어난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아에라 등 일본언론은 사건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 명문고 럭비 감독인 아버지, 그러나...

시모무라 용의자는 오사카 난바로부터 긴테쓰로 2시간 거리인 미에현 요카이치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 시모무라 다이스케(49)씨는 현립 고교의 체육교사로, 시모무라 용의자가 태어나기 3년전 럭비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올해까지 26년간 재임하면서 무명의 럭비고등학교를 전국대회 출전 15회에 이르는 강팀으로 키워냈다. 시모무라의 아버지는 고교 럭비계에서는 유명한 열혈 감독으로 제자중에는 일본대표가 된 선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정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버지의 지인에 따르면 "지도에 너무 열심이었던 나머지, 가정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시모무라 용의자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이혼했다. 아버지는 나중에 재혼했지만, 계모에게 양육의 모든 것을 맡기면서 시모무라를 반항과 외로움 속에서 자라게 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탓인지 시모무라 용의자가 14세 때는 이미 그 지역에서 유명한 불량청소년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시모무라 용의자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자, 아버지는 알고 지내던 럭비감독(40) 집으로 딸을 보내버린다. 시모무라는 미에현을 떠나 도쿄 교외의 전수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시 주위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애정을 느꼈다", "고교시절에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라고 털어놔 그 동안 얼마나 사랑을 굶주렸는지를 드러냈다.  시모무라에게 도쿄의 감독 집에서 살았던 3년간은 태어나 처음으로 애정을 느낀 기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에라에 따르면 작은 세탁물은 따로 세탁망에 넣어 빠는 등 생활 상식도 배우고, 성적도 학년 10등이내에 들었다고 한다. 시모무라는 럭비팀 매니저를 맡을 정도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했다.
 
시모무라를 3년간 맡아서 길렀던 전수학교 럭비 감독은 아에라 취재에 "처음 왔을 때는 약간 불량기가 있었지만, 사춘기에 있을 법한 수준이었고, 평범한 아이었다. 친딸처럼 키웠다"고 밝혔다.
 
■ 19살, 속도 위반 결혼 
 
시모무라의 인생은 도쿄의 전수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급격하게 전환됐다. 일본요리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의 아이를 갖게 된 것이다. 그녀는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임신했을 때 그는 대학생. 그는 내게 대학을 그만두고 일하겠다, 결혼하자라고 말했다. 기뻤다. 그러나 힘들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걸로 괜찮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녀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임신과 결혼. 2006년말 혼인신고를 하고, 스무살이 된지 일주일 만에 첫째딸 사쿠라코를 출산했다. 그녀는 출산 당시의 감격을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10개월의 임신기간은 정말로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것과 함께 점점 불러오는 배,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은 생명. 내 아이와 대면했을 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뻤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 자기 아이가 이렇게 귀여울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그녀에게 어쩌면 이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그 후 사쿠라코를 데리고 결혼식을 올린 시모무라는 "친아버지에게 결혼식을 올리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블로그에 남기고 있다. 그리고 얼마 안돼 둘째인 가에데군이 태어난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 후 시부모님댁에 살면서도 육아에 신경을 쓴 흔적은 없었다. 관계자는 "남편도, 시부모도 육아를 도와주었지만, 사나에 용의자는 아이들을 시부모에게 맡겨놓고 밤에도 남자를 만나는 등 놀러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가 처음부터 제대로 된 육아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블로그에 적은 아이사랑은 육아 생활이 담겨있지 않은 허구였던 것이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블로그는 이듬해 3월경부터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나에입니다. 내 안에 벽을 만들고 벽을 허물기까지 꽤 시간이 걸립니다. 사람들에게 약한 자신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3년전의 나, 작년의 나와 비교하면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고 매일 생각하는 제가 이상한 걸까요"    
 
그리고 4월 그녀의 블로그 '해피 다이어리'는 끊긴다. 블로그는 결혼생활 2년반 중 5개월간만 쓰여졌다.
  
결국, 가에데군이 태어난지 6개월후 시모무라는 자신의 이성문제가 원인이 되어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신고는 친아버지와 시청에 가서 했다. 시모무라는 이때 친아버지에게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말하고 나고야로 떠났다.
 
■ 본격적으로 유흥업소에서 일 시작한 시모무라
 
시모무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고야의 번화가의 한 유흥업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고향에서는 음식점이었지만, 나고야에서 그녀가 다니기 시작한 유흥업소는 술을 따르고 지명도 등 인기에 따라 실적이 정해지는 캬바쿠라. 탁아소가 딸린 이곳은 시급 3000엔부터 6000엔에 플러스 능력제로 월급은 27만엔 이상 받을 수 있는 곳이라 공표하고 있었다.
 
그녀가 당시 가게에서 썼던 가명은 '아카네'. 한때 인기가 있어서 가게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도 소개됐다. 그러나 여종업원끼리 실적을 위해 손님의 환심을 서로 뺏고 빼앗기는 세계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본식 유흥술집 캬바쿠라에서는 여종업원이 성매매 없이 술만 따르지만, 지명(指名, 손님이 특정 종업원을 미리 고르는 것)이나 동반(同伴, 같이 가게로 출근하는 것) 등의 매출에 따라 실적이 정해지므로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가게 평판이 적힌 게시판에는 진위가 섞인 '아카네'에 대한 비방과 중상 게시글이 반복해서 올라왔다.
 
"영업 메일을 집요하게 한다."
"2차 영업도 한다."
"두 아이의 엄마, 남편과 이혼한 여자"

엄마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엄마 대신 탁아소에 맡겨졌다. 

▲ 시모무라 사나에가 일했던 유흥업소의 프로필  

■  방치 후 '엄마'를 버리고 '여자'로 
 
시모무라는 올해 1월 보다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며 오사카로 이사, 본격적인 유흥업소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업소가 계약한 맨션에서 기르기 시작했으나 이때부터 돌봐주는 사람이 없이 본격적으로 방치가 시작됐다.
 
시모무라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그녀와 2명의 아이들의 주민들 목격담에서 잘 드러난다. 겨울, 맨션 부근의 공원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던 아이엄마는, 시모무라가 공원 벤치에서 고개를 숙인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마마, 마마"하며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눈길 한번 주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 "아이 이름이 어떻게 되요  ?"라는 말을 걸어도,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사쿠라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4월부터는 수도량이 0을 기록, 집에서 아이들을 목욕시키거나, 무언가를 해먹이는 일이 없었다. 결국, 6월 중순 아이들을 버리고 외출, 시모무라는 엄마임을 포기하고 여자로서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에서 나와 오사카의 번화가에서 만난 남자들과 놀면서 주로 호텔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동안, 그녀는 남자들과 해수욕장에 놀러가거나 일본 대표팀 축구복을 입고 파라과이전을 응원했다.
 
그리고, 한 달만인 7월 30일 아이들이 부패한채 발견되면서 시모무라 사나에 용의자는 아동학대,유기 혐의로 체포됐다.
 
■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에라에 따르면 시모무라 용의자가 오사카로 이사하기 전, 단 한 번 친아버지에게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아이들이 인플루엔자일지도 모르니, 돌봐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친아버지가 상황이 여의치않아 힘들다고 대답해,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역시 인플루엔자가 아니었다"라며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 5월 다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잘 지내고 있다"라고 연락하긴 했으나, 주소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3년간 길러준 '도쿄의 아버지'에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말 (도쿄의) 아빠가 좋았어요. 그것 때문에 럭비부 매니저가 되었을 정도니까요."
 
그녀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에게 느낄 수 없었던 애정을 단 3년간 같이 살았던 도쿄의 아버지를 통해 느꼈던 셈이다.
 
■ 맨션 주민들 반성 나서
 
한편,  사건이 일어난 맨션은 많은 주민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동상담소에 신고한 사람은 결국 1명뿐이었다. 여러사람이 신고를 했다면 아동신고센터가 느끼는 아동학대 위험수위와 긴급성도 달랐을지 모른다. 왜 한 명뿐이었을까.
 
같은 맨션에 사는 아르바이트 여성(22)은 직장에서 동료에게 '아동학대일지도 모른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혹시 잘못 신고했다가 부모 기분을 나쁘게 하면 어떡하나 해서 그만뒀다"고 일본언론 취재에서 밝혔다. 일본 특유의 '어설프게 다른 사람 일에 간섭해, 기분을 거슬리게 하면 오히려 피해를 주는 게 아닐까'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또 다른 여성(27)도 밤새 아이들이 울어대는 것이 심하다고 생각했으나 신고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누구 집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적극적으로 아이의 울음소리를 찾아 나서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시모무라가 사는 맨션은 독신자용의 원룸이 중심이다 보니, 젊은 입주자가 많고 이사가 잦아 이웃간 교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신고한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었고, 아동상담센터도 신고를 받고 다섯 번이나 가정방문을 했으나 긴급성을 느끼지 못한채 돌아가버렸다.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최근 맨션에서는 주민들간 반성과 함께 교류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어린 두 생명이 목숨을 잃어버린 후였고, 맨션 앞에는 아이들이 얼마나 목이 말랐겠냐며 사람들의 놓아둔 물병만이 수북하게 쌓이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최신기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JP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