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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在日)가 일본에서 살아가는 법

고 김봉웅, 쓰카 고우헤이를 생각하며...일본과 한국, 재일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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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일 (코리아리포트
기사입력 2010/07/13 [14:24]

<가마타 행진곡>, <아타미 살인사건> 등 일본 내 반권력이나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한 작품을 다수 발표, 전후 연극계를 대표한 극작가, 연출가인 쓰카 고우헤이(본명 김봉웅) 씨가 10일 오전 10시 55분, 폐암으로 지바현 가모가와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62세. 후쿠오카현 출신. 

제이피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변진일 코리아리포트 편집장이 같은 재일동포로서 느낀 생각을 칼럼으로 써서 보내왔다.
 
작곡가, 쓰카 고우헤이(つかこうへい)씨가 세상을 떠났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고 김봉웅(金峰雄)이라는 이름에 같은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를 일본에서는 이렇게 부른다:편집자 주)로서 또한 같은 나이였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부음소식을 알게된 것은 어제(12일)였는데, 묘하게 같은 날 밤 소프트뱅크 사장 손정의 씨가 tv 도쿄의 '캄브리아궁전'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이니치'였기 때문에 받았던 일본 내 '국적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쓰카 씨는 후쿠오카 출신, 손 씨는 사가출신으로 같은 규슈사람이다.

쓰카 씨가 '자이니치'라는 것은 명작 가마타 행진곡(蒲田行進曲)이 1982년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물론, 이 영화에서 가자마 모리오(風間杜夫)씨와 같이 출연한 마쓰자카 게이코(松坂慶子)씨도 그랬다. '자이니치' 사회에서는 특유의 네트워크라고 해야할까, 자이니치만이 가지고 있는 수면하의 인맥이 있다.

일본 연예계 및 스포츠계, 때로는 고시엔(甲子園 : 일본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의 출장선수까지 홋카이도 출신이건, 규슈출신이건 어디의 누구든지 정보가 회람판처럼 전해져오기 때문에 신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스로 출신을 결코 숨기는 일이 없었던 쓰카 씨는 1990년 에세이 '딸에게 말하는 조국'을 펴냈는데, 그 5년전에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 에세이를 쓰게 된 동기가 된 듯 하다.

당시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자이니치출신임으로 밝혔다는 것만으로도 '그 쓰카 씨가...'라며 당시 커다란 화제를 불러왔는데, 에세이에는 손정의 씨처럼 '자이니치 2세'로서 겪어야 했던 괴로운 체험도 담겨 있었다.  
 
▲ 쓰카 고우헤이 부음을 알리는 기사     ©福井新聞

야자와 에이키치(矢沢永吉) 등과 함께 캐롤이라는 밴드를 결성, 일약 스타덤에 오른 죠니 오쿠라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지만,  스타가 된지 4년째에 죠니 오쿠라 씨는 1975년 '자이니치'인 박운환임을 커밍아웃하자마자 인기가 급락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후회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갔고, 지금도 밴드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국 부산에서도 콘서트를 열고 있다고 하니, 정신적으로도 실로 강인하다고 밖에. 

필자는 지금부터 10년전 출판사가 도산하고 말았기 때문에 거의 서점에 놓일 기회가 없었던 '강자로서의 자이니치'라는 타이틀의 책을 펴낸 적이 있지만, 서문에 "자이니치는 핸디캡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상승욕구가 강렬했다. 고무공에 압력을 가하면 가할 수록 반발도 강해지는데, 마찬가지로 사람도 밑바닥에 놓이면 놓일수록 반발심이 강해진다"라고 적었다. 그 때 모델로 삼은 사람이 쓰카 씨, 손정의 씨, 죠니 오쿠라 씨 등이었다. 

'자이니치' 중에서 통명(일본이름)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90% 이상의 사람이 가지고 있다. 민단청년회가 십여년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본명을 쓰지 않고 통명만을 사용하는 사람이 78.2%라고 밝혀졌다. 이 숫자를 보면 일본 사회에서는 본명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손정의 씨와는 몇 번인가 만났고, 또 소학관 일로 대담을 한 적도 있지만, 그는 일본에 귀화할 때도 부모의 성을 버리는 것을 거부했다. 통명인 '야스모토(安本)라고 하지 않고 일본인 부인의 성을 쓰는 것도 거부, '손(孫)'이라는 성을 고집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그는 "자신의 본명을 버리면서까지, 또 자신의 과거의 역사적 정체성을 버리면서까지, 일본국적을 따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 후 한국을 방문해, 어느 강연 자리에서 "나는 혼합된 문화에서 성장했다. 지금, 일본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소프트뱅크를 설립하기 전에는 미국에서 작은 사업을 했었다. 지금도 미국에 많은 친구가 있다. 그리고 가족과 선조도 한국인이다. 나는 100% 코리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jpnews/山本宏樹

그러고 보니, 역시 쓰카씨와 같은 규슈(오이타) 출신의 가수 니시키노 아키라(錦野亘)가 저서 '마지막 프로포즈'에 썼던 내용이 떠올랐다.

"내 몸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한국인 피이지만, 나 자신은 태어났을 때부터 일본인으로서 자랐고, 한국인을 자신을 의식한 적이 없었다. 가끔 느낀 것은 할머니 집에 갔을 때 늘 김치를 담갔던 것이나 친척 어른들이 일본어가 아닌 말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국적과 별개로, 때때로 내 안에 한국인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내 생김새가 한국인이고, 내 피를  이어받은 딸들의 스타일을 봐도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사람을 접하는 방식에 관해서도 일본인과는 다른 감각이 있어 그것이 어느새부터인가 내 안에 자연스럽게 생겨나, 자라났다. 예를 들면 윗사람에 대해 경의를 가지고 대한다거나, 조금이라도 상대가 나이가 많으면 그 사람 앞에서 담배피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해 망설이고 만다. 친구에 대해서도 '차라도 한 잔'이라는 일본인식 접대 보다는 '밥 먹고 가라'라는 제안을 좋아한다." 

"나는 일본인이면서도 흐르는 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것이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고, 그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라고.

쓰카 고우헤이 씨, 아니 김봉웅 씨는 딸에게 자기가 죽으면 자신의 뿌리인 한국과 자신이 자란 일본 간에 있는 대한해협(쓰시마해협)에 뼈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자이니치 2세다운 비애가 느껴진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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