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엄청나게 축복해주거나 아니면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된다는 식의 찬반으로 나뉠 것을 예상했던 나는 장인어른의 이러한 쿨한 태도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내 역시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네. 알겠습니다"로 끝났다. 물론 "감사합니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처가 부모님들의 몸이 안 좋았던 것도 있어서 근처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아내의 오빠이자 장인어른의 큰 아들이 도쿄에 살고 있었지만 며느리보다 딸이 편할 것 같아서 그렇게 결정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니 지난주 월요일이다, 장모님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 와 떨리는 목소리로 장인어른이 쓰러지셨다고 말씀하셨다. 장모님이 나한테 직접 전화를 건 것은 처음이었다. 장모님 입장에서 본다면 큰 아들이나 며느리, 혹은 딸(아내)에게 전화하는게 나을텐데 왜 사위에게 전화를 했을까? 게다가 나는 외국인 사위다.
아무튼 너무 놀래서 출근준비를 하다 말고 처가집으로 달려갔다. 방금전에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에 간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손윗처남도 연락이 되질 않는다. 처남댁은 전화번호를 몰랐다. 그제서야 장모님이 나에게 전화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처가에 도착하니 장인어른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장모님은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일단 장모님을 진정시킨 후 구급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구급차에 옮겨 실을 때 걸리적거릴 만한 것들을 마루 한켠으로 치웠다.
5분후 구급차가 왔다. 무사시노적십자 병원에 도착해 한동안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정말 다행스럽게도 장인어른의 의식이 되돌아 왔다. 의사도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휴, 정말 다행입니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바늘은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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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의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은 뇌에 문제가 있을 경우가 많으니까 일단 입원해서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고 말하길래 입원수속을 밟았다. 입원수속의 보호자란에 어떤 관계인지 묻는 공간이 있어 '사위'(義理の息子)'라고 써 넣었다. 접수처 직원이 힐끗 내 얼굴을 본다. 하긴 아들, 딸이 아닌 사위, 그것도 외국인 사위가 보호자라 하니 어색할 수도 있겠다.
장인어른을 환자복으로 갈아 입히고 링겔을 꽂아드린 후 복도로 나오니까 그제서야 아내가 복도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다. 아이가 안 보이길래 물어보니 보육원에 맡겨 놓고 왔단다. "오빠, 고맙다"는 말은 하는데 표정은 그다지 고마운 표정이 아니다.
나와 교대한 아내는 계속 병원에 있다가 오후 5시에 처가로 갔다. 몸이 안 좋으신 장모님을 돌봐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후 다시 보육원으로 가서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야 했다. 아내에게는 강행군이겠지만 내일부턴 처남댁이 올테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면서, 나는 며칠간 회사에 붙어 있었다.
입원 3일차인 수요일, 아내로부터 "내일 어머니(장모님)를 우리 집으로 모셔야할 거 같어. 매일같이 왔다갔다 하는거 내가 힘들어서 안되겠어. 오빠 바쁜 건 알지만 오늘 저녁엔 집에 와서 소파 좀 옮기고 해주라"라는 메일이 왔다. 나는 "그래. 오늘은 퇴근할께"라고 넣은 후 넌지시 물었다.
"처남 집으로 가면 안되나? 당신 힘들잖아."
"바쁘다고 그렇게 못한대. 언니도 새로 직장나간다네..."
결국 장모님은 우리집에서 며칠을 보내셨고 아내는 병문안과 육아, 장모님 뒷바라지등으로 바쁘고 힘든 나날을 보냈다.
장인어른은 6일만에 퇴원했다. 처남은 특집방송 준비로 바빠서 못 온다는 전화를 해 왔다. 남자가 한명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오전 시간을 냈다. 나도 사실은 바쁜 몸인데 말이다.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회사로 가려고 하니 장인어른이 "고맙다"면서 "시간있으면 점심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말씀하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와 장인어른이 잡수시고 싶다는 스시를 주문했다. 물론 장인어른이 쏘셨다.
그런데 분위기가 웬지 서늘하다. 아까 퇴원수속할 때부터 아내 표정이 안 좋았다. 장인어른도 아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다.
내가 아내에게 얼굴 좀 펴라고 하니 아내가 "글쎄 면회갈 때마다 '나 환자 아니니까 빨리 퇴원시키라'라고 화를 내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막 그렇잖아"면서 투덜거린다. 그러자 장인어른도 "그럼 당연하지. 사진(mri)도 문제없다고 나왔는데 계속 있으라고 하니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깝잖아"라고 응수한다.
무슨 그런 것 가지고 그러나 싶어서 "어쨌든 문제없이 퇴원하셨으니 다행이죠" 라며 수습에 나섰다. 장모님도 아내를 거들어 주려고 한 말씀 던지셨다.
"카즈야네(처남댁)는 한번밖에 안왔는데 매일같이 와주었으니 고마운 거지."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지방에 산다면 또 모르겠다만 같은 도쿄에 사는, 하나밖에 없는 큰아들 내외가 친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누워 계신 일주일간 딱 한번 얼굴을 내밀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더욱 황당한 건 이 말을 지난 일주일간 장인어른, 장모님, 아내 그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매일같이 오고 그랬던 줄로만 알았다.
"형님이 한번밖에 안 왔어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았다. 장인어른이 "아, 바쁘다고 못 온대. 전화통화는 여러번 했어"라고 하고 아내도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다. 속으로는 화를 내고 있겠지 싶어서 나중에 다시 아내에게 물었지만, 아내는 "원래 그런 사람인지라 화내고 말 것도 없어"라는 무덤덤한 말투다.
일본에 산지 8년이나 돠어서 이젠 웬만한 컬쳐쇼크에 당황하거나 그럴 짬밥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실로 오랜만에 당황했다. 이번에 내가 받은 쇼크는 처남댁이 한번만 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같은 도쿄에 사는 장남이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상태인데 한번밖에 안 온 것에 대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아내의 언동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적어도 몇마디, 예를 들어 "도대체 형님네는 뭐냐"는 식으로 충분히 화를 낼 만한 상황인데 그냥 넘어간다. 일부러 내가 "어, 형님네 너무한 거 아닌가?"라는 혼잣말을 해봤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일본은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아들딸이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산다"는 의미의 "히토리구라시(一人暮らし)"라는 고유명사도 있다. 실제 내 주위에도 몇년동안 부모님 집에 가본 적이 없거나 1년에 한두번 전화연락한다는 일본인들이 꽤 많다.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부모와 자식이 몇년동안 연락이 없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해 왔지만, 실제 주위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조금은 황당하고 또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다. 한번 더 말하지만, 나도 상/당/히 바쁜 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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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일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도 그랬다. 내 주위의 일본인 지인들은 나에게 "정치인의 죽음에 몇백만이나 모인다는 게 너무 신기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처음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민적인 매력, 인기, 소탈한 모습등을 설명했지만 오히려 "서민들의 지지율이 낮았고 인기도 없었지 않냐"는 객관적 반론을 들었을 뿐이다. 이래가지곤 5백만이 모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궁리끝에 '나사케(정, 情)'라는 단어를 썼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아. 슬플때도 기쁠때도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해. 밥도 같이 먹어.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밥 먹을 때도 일본인들처럼 혼자 먹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지.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일테면 우리 어머니는 노무현 대통령을 상당히 싫어하시지만 전화통화 중에 우셨어.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그냥 눈물이 나오고, 그냥 같이 만나서 추도하고 싶고 그런거지"
그들은 아까같은 반론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해한 것 같지도 않았다.
장인어른의 입원도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정서의 차이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위' 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너무나 놀랬고, 병원에서도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장인어른의 장남은 이틀이나 지나서 병문안을 왔고 그 이후로는 한번도 오지 않았다. 이것을 처갓집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내는 병원에서 소리지르는 장인어른이 부끄럽다고만 하지, 오빠 욕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이걸 굳이 비판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다른 대부분의 가정이 이렇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떠한 문화적 차이를,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전부 "다름"으로 재단하려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