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jpnews' 창간부터 반년간 에세이를 써왔다.
처음은 '보도(報道)색깔이 강한 사이트'라고 생각해, 어느쪽이냐고 하면 '한일'간의 의식 차이 등에 초점을 맞출 생각으로 썼다. 25년간 한일관계 일을 해온 입장에서 내 나름의 '문제제기'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편집부에서 '게재불가'의 낙인을 받은 적도 몇번.
편집부로부터는 '보다 보통의 여성,여배우 감각으로 화제를' 꺼내주길 요청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여배우의 입장'이라고 해도, 독자 여러분과 공유가능한 화제를 찾는 것은 어려웠다. 게다가 'tv 프로그램 제작의 뒷이야기' 같은 이야기로는 이 사이트를 보시는 여러분을 만족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편집부의 의향이므로 앞으로 테마를 바꾸자'라고 생각해, 어느 시점부터 일상적인 화제를 풀어내보았다.
흔한 수단이긴 해도 우선 '계절별 화제'를 기조로 잡아봤다. 이렇게 일본의 생활감각이나 문화를 소개하면서, 한일간 문화적인 차이를 다뤄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내 체험이나 주변에서 일어난 일도 테마를 잡아서 써보았다.
전부 잘 써졌다고 할 수 없으나, 그중에는 '한국영화는 엔딩크레딧 때 객석에 불이 들어온다'라든가 '참외가 왜 일본에서 사라졌는가' 같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별로 깊게는 생각하지 않았거나, 몰랐던 문제를 추적해봄으로써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던 적도 있었다.
번역을 담당해주신 분들은 고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오, 이렇게 번역하는 구나'라고 관심을 갖기도 하고, 솔직히 불안한 적도 있었다. 그 이유는 내 문체가 (한국어로 이런 표현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행간을 소중히 한다'라는 글쓰기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직접적인 표현과 다르게, 일본인처럼 '에둘러서 하는 말'. 거기에 '말 외의 말'을 담는 것이 내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글에 대한 댓글도 전부는 아니지만, 일단 살펴보고 있다.
극단적으로 긴 것이나, 그 자리를 빌어 지론을 펼쳐보고 싶은 느낌이 드는 사람의 댓글은 죄송하지만 실례하게 됐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대로의 반응 (비록 칭찬이 아니라고 하더라도)을 써준 댓글을 만나게 되면 매우 기뻤다. 닉네임을 기억하고 그분의 댓글 경향 등을 기억한 경우도 있다.
그러게 댓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몇명의 사람들이 '일본인의 집단성'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가?'라고 생각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아직도 한국인은 군국주의시대 일본군 같은 일본인상'을 어딘가 가지고 있고, 내가 한일문화의 차이에 대해 다룬 것도 '일본인의 집단성'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해버리거나 또는 그렇게 '무리하게라도 귀결시키려고 한다'라고 느껴서 솔직히 별로 좋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었는데・・・''이 사람들은 어디까지 진짜 일본인의 모습을 파악하고 '집단성'이라는 말을 쓰는 걸까'라고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상중결례엽서' 칼럼에서 '여기까지 하는구나, 일본인!'이라는 댓글을 달렸을 때는 '일본인의 집단성'에 대해서 보다 깊게 납득한 점도 있어, 이 댓글을 기분 좋게 느끼기도 했다. "그렇구나. 일본인은 여기까지 하는 민족인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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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원고는 이미 마감을 훨씬 넘겨 12월 31일에 쓰고 있습니다만, 이 '일본인의 집단성'에 대해서 아직 더 쓰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한해 마지막날 밤인 만큼, 아직 대청소도 끝내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게으름피우지 않고 평소 할 수 없는 곳 청소를 했음에도 아직도 냉장고 청소를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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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한해 마지막날에는 '내년도 얇고 길게 무사히'를 기원하며 '도시코시 소바(해를 넘기기 위해 먹는 국수)'를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얇고 길게'가 아니라 화려하게 '굵게'라는 의미로 '도시고시 우동'이 유행이라고 합니다만・・・)
이렇게 정신 없는 가운데 이번 칼럼은 2부로 나눠서 쓰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혼자서 몇 사람 역할을 해내는 것은 여러가지로 힘드네요. 차라리 저도 신년을 음력 설으로 쇠고 싶습니다만,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다음 칼럼을 기대해주세요. (번역 김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