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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신사 참배에서 느낀 것들

하쓰모데(初詣), "올해는 운 좀 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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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 기자
기사입력 2010/01/02 [03:10]

2010년 새해 첫날이 밝았다.
 
일본인들은 새해 첫날이 되면 반드시 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가장 첫 손에 꼽히는 것이 신사 참배다. 이른바 하쓰모데(初詣, 신년 첫 참배)다.
 
하쓰마이리(初参り)라고도 불리는 '하쓰모데'는 새해 첫날에 신사, 절, 혹은 교회를 찾아 참배를 올리고 1년간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국사람들은 신사 참배라고 하면 십중팔구 야스쿠니 신사를 먼저 떠올린다. 그 때문에 신사 참배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것도 일리는 있다.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제국주의자들이, 원래대로라면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중 하나였던 신도(神道)를 '국가신도'로 재해석해 그 중심에 '호국신사'를 놓았다. 이런 '호국신사'의 대표격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일본의 모든 신사가 호국신사인 것은 아니다. 보통 호국신사들은 나라를 의미하는 '구니'(国), 혹은 나라를 위해 희생됐다는 의미의 '다마'(魂)가 들어가 있다. 개중에는 신사 자체가 신궁(神宮)으로 격상된 경우도 있다.
 
신궁은 덴노(天皇)가의 선조들을 모시는 신사들로 원래 이세(伊勢)신궁, 이소노카미(石上)신궁이 그 시초다. 하지만 지금은 도쿄 하라주쿠의 메이지신궁(明治神宮, 메이지 덴노를 기리는 곳)이 하쓰모데의 명소이자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신사로 알려져 있다.
 
▲ 메이지신궁의 하쓰모데 (2010년)   ©jpnews
 
메이지신궁은 경찰청이 발표한 하쓰모데 참배랭킹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쓰모데는 보통 1월 1일부터 3일까지의 첫 참배를 의미하는데 메이지신궁의 경우 매년 300만명이상으로 집계된다고 하니 일본인구의 3~4%가 메이지신궁과 함께 한 해를 시작하는 셈이다.
 
하지만 하쓰모데는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굳이 신사가 아니어도 된다. 메이지신궁에 이어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하쓰모데 명소 2위는 지바현에 위치한 나리타산신쇼지(成田山新勝寺)다.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이곳은 신사가 아니라 절로써 매년 270만명이상이 찾는다.랭킹 10위안에는 도쿄 아사쿠사의 센소지(浅草寺)도 들어가 있다.
 
이런 사례를 본다면 하쓰모데는 보통 신사에서 이루어지긴 하지만 전부 신사에서 행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참고로 야스쿠니 신사는 랭킹 10위 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
 
내 경우 일본에 온 후 3년간 신사참배를 하지 않다가 사이타마 현에 있는 고마신사(高麗神社) 참배를 계기로 이후 '선택적 참배'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야스쿠니신궁, 오쿠니타마(大国魂)신사, 메이지신궁, 이세신궁 등 국가신도에 해당하는 신사는 절대 참배를 하지 않지만, 이나리신(稲荷神, 농・상업의 신)을 모시는 이나리 신사나 운을 틔여준다는 개운(開運)신사, 학업의 신으로 숭상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 유시마텐진(湯島天神) 등은 참배를 한다.
 
신사에 가면 기원판(絵馬, 에마)이라는 것이 있다. 최하 300엔에서 비쌀 땐 1000엔까지 하는 이 기원판에 자신이 원하는 글을 적어 걸어놓으면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신사의 성격상 기원판의 관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특히 8월 15일이 낀 주는 더욱 심해진다. 일본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한글, 영어, 중국한자로 씌여진 기원판이 내 걸리기 때문이다.
 
내가 메이지신궁에서 확인한 기원판 중에는 한글로 "독도는 우리땅이다. 이 ●● 놈들아!"라고 적힌 것도 있었다. 참배 여부는 물론 적고 안 적고도 개인의 자유겠지만, 신도 문화가 정착된 일본이다. 타국의 문화 자체를 '익명'으로 비방하는 이런 행위는 결국 부메랑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은 백호띠라고 한다. 호랑이 중에서도 가장 영험하기로 소문한 백호다. 한국에서는 올해 산부인과가 가장 바빠질 것이라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일본도 비슷한 것 같다. 운세나 사주풀이에 열광하는 나라니까 당연할지도 모른다.
 
집 근처, 라고 해도 20분은 걸어야 하지만, 안산(安産)과 개운(開運)을 기원하는 신사가 있어 1일 오후에 가족들과 함께 찾았다. 아내는 1월에 남자아이를 낳는다. 벌써 셋째다.
 
하쓰모데를 위해 자주 찾는 신사인데, 올해는 참배를 기다리는 줄이 예년과 달리 무척 길었다. 무려 20분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작년 한해 일본경기가 무척 어려웠던 탓일까? 아니면 올해 백호띠의 아이들을 잘 낳게 해달라는 기원을 하러 온 것일까?

▲ 집 근처의 동네신사. 하지만 예년과 달리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박철현/jpnews

▲ 길게 늘어선 줄. 우리 가족은 20분이나 기다렸다.   ©박철현/jpnews
 
신사 근처에는 지난 한해 동안 집에 보관했던 부적들을 태우는 장소도 마련돼 있다. 예년에 비해 양이 많다. 불길을 관리하는 자치회의 이토 씨는 불길을 가리키며 "작년은 다들 힘들었잖아. 올해는 운 좀 펴야지. 작년 액땜은 이걸로 이제 다 사라질 거야"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절그렁, 절그렁'
 
본전 앞에 놓인 투전함에 5엔짜리를 4개 던져 넣었다. 5엔짜리를 준비한 이유가 있다. 5엔은 일본어로 '고엔'(5円)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고엔'은 '인연'을 나타내는 '고엔(ご縁)'과 발음이 같다. 좋은 인연만 오라는 의미다.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물었다. 무엇을 기원했냐고.
 
"비밀. 말하면 안 이뤄지니까"
 
아이들에게 물었다. 뭘 기원했어 라고. 큰 애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한다.
 
"아빠, 살 좀 빠지라고. 좀 더 멋져지라고 빌었어!"
 
기분은 좋다만, 참배시에 기원한 내용을 발설해 버리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올해'도' 다이어트는 물 건너 갔다는 건가. 
 
내 소원은 아이 때문에 힘들어졌지만, 올 한해 <제이피뉴스> 독자님들에게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 작년 한 해동안의 나쁜 일들은 다 사라지라는 의미에서 부적을 태운다.   ©박철현/jpnews
 
▲ 안 좋았던 기억들은 훨훨 타서 사라지길...    ©박철현/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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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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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10/01/02 [07:18]
재생용지로 만들면 좋겠군요
바로 불태워 없애는걸 왜 나무로 만드나
자원 아깝게
Nicholas 10/01/02 [14:15]
큰 아이 생각을 미리 사버렸군요.
프린스턴s 10/01/03 [03:31]
호랑이해에 태어나는 아기들은 정말 호랑이처럼 힘이 세지는 겁니까? ^*^ 갑자기 문득 어느 시리얼의 호랑이캐릭터보고 생각이 나네요 ^*^  이번 해에 태어나는 아기들은 호랑이처럼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할게여 ~~
넥서방 10/01/05 [00:14]
저는 늘 궁금한것이 양력 1월 1일 부터 띠가 바뀌는 건지,
음력 1월 1일 (설날)부터 띠가 바뀌는 건지 헷갈리네요.
일본에서는 설을 양력 1월 1일로 치니까 엇그제 부터 호랑이 띠가 된건가요?
일본에서는 운세나 토정비결 같은것을 볼 때, 음력 생일을 기준으로 하는지도 궁금해 지네요.
나고야통신 10/01/08 [20:36]
4일까지쉬고     5일날  회사에서  단체로갔는데   아무  감흥이없던데
참배랄  것도없지만   하여간  들렸다    점심은   거하게먹고   마시는것까지      햇도가돌만큼   마시고    다음날부터는    뺑이  치는거지
반스 10/01/16 [11:30]
연말 연시를 일본인친구집에 보내는 바람에 갔다왔는데 정말 줄도 길고...2분을 위해 30분 기다리고 왔는데..한국에선...새해 해뜨는 것도 안보는 터라..새로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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