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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머리 사이클' 매력은?

라이트 노벨의 최전선에 선 작가, 니시오 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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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문화평론가)
기사입력 2009/11/09 [21:17]

일본 대중소설이 대거 번역되기 시작한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오쿠다 히데오,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히가시노 게이고, 이사카 고타로 등 인기 작가들은 각각 십 여 권이 훨씬 넘는 작품이 번역되었고 그 중엔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도 꽤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은 국내에서 손예진 주연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작가마다, 작품마다, 현실의 모순을 예리하게 고발하거나 기묘한 트릭을 통해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등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그 중에서 아직 3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니시오 이신이란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절해고도에서 밀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한정된 공간에서, 특정한 인원 내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구성은 본격 추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니시오 이신의 <잘린 머리 사이클>은 좀 묘하다.

▲ 목잘린 사이클     ©고단샤 문고
재벌가에서 추방된 젊은 여성이 섬으로 초대한 사람들은 그림, 요리, 점술, 공학 등의 분야에서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다.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과거와 미래, 속마음까지 알아맞히는 점술가 히메나 마키, 모든 스타일을 초월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이부키 카나미에 이어 10대 초반에 세계의 네트워크를 뒤흔들었던 '팀'의 리더였던 엔지니어 쿠나기사 토모 등 현실 세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기상천외한 천재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일본인임에도 머리 색깔은 청색, 금발 등 제멋대로다. <잘린 머리 사이클>을 보면서, 이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할 독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 본격추리물의 애호가가 <잘린 머리 사이클>을 읽으면 꽤나 당혹스러울 것이다. 벌어지는 사건의 형식은 분명 본격 추리이지만,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보다도 황당한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이 들 테니까.

<잘린 머리 사이클>의 장르를 우선 말한다면, 라이트 노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라이트 노벨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시각적 이미지가 선명한 엔터테인먼트 소설 정도가 된다. 애니메이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sf, 판타지, 학원물, 액션물 등 다양한 하위 장르를 포함하여 일본 등에서 젊은 독자를 중심으로 점점 인기를 얻고 있는 소설이다. 국내에서도 라이트 노벨의 히트작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시리즈는 20만권이 훨씬 넘게 팔렸다.

1981년생인 니시오 이신은 아직 대학생이던 2002년 <잘린 머리 사이클>이 23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했다. 이후 '헛소리' 시리즈가 300만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하며 젊은 층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다.

니시오 이신의 소설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라이트 노벨적인 요소와 신본격 미스터리의 요소를 결합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적 구성을 취하면서도 캐릭터나 인간관계 등은 만화의 청춘물이나 러브코미디적인 설정으로 밀고 나간다.
계속 강한 적이 등장하면서 대결을 벌이는, 소년만화적인 '배틀'의 요소도 들어 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일본의 젊은 세대가 기꺼이 열광할만한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니시오 이신의 소설은 엔터테인먼트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순문학에서도 나름의 평가를 얻고 있다. 니시오 이신은 일본 소설의 새로운 경향이라고 할 라이트 노벨의 최전선에 선 작가라 할 수 있다.

<잘린 머리 사이클>은 라이트 노벨과 본격 미스터리의 요소를 결합한 소설이다. 5명의 천재가 외딴 섬에 초대되고, 한 명씩 머리가 잘린 채 죽어 나간다. 각 인물들의 면면은 실제 인물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특이하다. 섬의 주인인 이리아는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가문에서 추방되어 섬에 갇혔다는 소문이 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어도 경찰을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 각 분야의 천재들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이 분명하지만, 어딘가 묘한 결함들이 있다. 천재들 사이에서 쿠나기사 토모의 보호자로서 따라온 주인공이자 화자인 이짱은 보통 사람(그렇게 보이진 앉지만)으로서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가 된다. <잘린 머리 사이클>은 이짱을 주인공으로 계속 사건이 일어나는 '헛소리 시리즈'의 첫 권이다.

니시오 이신은 화자인 이짱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이 어쩌면 헛소리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헛소리이면서도 헛소리가 아닌 것이다. 너무 황당한 설정과 캐릭터이지만, 묘하게도 <잘린 머리 사이클>을 읽다 보면 공감이 되는 '리얼리티'가 있다.

▲ 목잘린 사이클     ©jpnews
<잘린 머리 사이클>은 살인사건의 해결보다는 오히려, 천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변-헛소리에 더욱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천재란 어째서 존재하며, 또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가. 그것은 곧 이런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디부터가 진짜고, 어디부터가 거짓인가. 천재와 보통 사람,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
젊은 세대의 소설인 라이트 노벨은 기이하게도 지극히 사변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자신들이 가진 세상에 대한 고민을, 일면 황당한 설정과 캐릭터에게 부여하면서 극한까지 밀어 붙인다. 요괴와 뱀파이어, 초능력자와 천재가 자웅을 겨루는 상황에서 '나'와 '세계'에 대한 고민을 하는 소설인 것이다.

니시오 이신이 던져주는 '헛소리'는 경청할만한 이유가 있다. <잘린 머리 사이클>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가상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이미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무너졌다.

현실을 모사하는 근대 소설의 기능은, 이미 가상의 세계를 통해 현실을 흡수하는 라이트 노벨의 영역으로 나아간 것이다. 영화에서 <매트릭스> 이후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무너진 것처럼, 라이트 노벨은 현실의 반영이 아닌 가상세계를 통한 새로운 현실의 구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리얼리티를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소설을 헛소리라고 인정해버리는 <잘린 머리 사이클>은 헛소리인 동시에 진실인 이 세계를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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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sursur 09/11/10 [18:07]
라이트 노벨은 아마츄어적 글쓰기의 적나라한 현상이거나
만화가 서투른 글로 번안된 류인 셈이지요.
만화로 치면 그림 솜씨나 연출 솜씨가 꽤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서투름으로 가득한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사변적인 깊이를 드러내고자 애를 쓰지만
주름살이 가득 패여진 이마를 한 어린애가 생각나게 한달까요?
그러고보니 럭키 스타에서 주인공 오타쿠가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대개는 만화책을 읽는 거지 라고 하자
그럼 라이트 노벨은 책에 속하는 거야? 라고 묻는 대목이 나오죠.
미야베 미유키나 애거서가 라이트 노벨을 자신과 같은 레벨에 놓고 평하는 듯한 본 기사를 접한다면
불쾌감을 느끼기보다는 어이없어서 실소를 터뜨릴 것만 같군요.
miraix 09/11/10 [19:51]
sursursur 님은 너무 비하하는 느낌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설사 말씀하신 것이 옳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대세가 된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싶은데요. 어찌보면 새로운 장르죠. 물론 기존의 장르와 같은 부분이 있는 일종의 '또다른 형식'의 글로 보기 때문에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거겠지만요. 레벨이 다른 느낌인 건 사실이지만 비하할만한 종류는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저도 라이트노벨은 만화와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라고 봤지만 않은 종류도 있으니 말이죠. 요는 일반 소설보다 조금 더 가벼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으면 라이트노벨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흠... 09/11/10 [23:11]
그래도 라이트노벨딱지라는게 붙어도 가끔씩 깊이가 있는 작품들도 있죠. 전투요정 유키카제같은 SF에서부터 공의 경계등등... 하지만 대부분은
즐기는 작품이죠.
글쎄요. 10/01/19 [14:08]
럭키 스타에서 코나타의 그 대사(츠카사가 말한건 아닙니다)를 그렇게 해석하신 것은 너무 확대해석이 아닐까 싶네요.
赤月夜 10/05/10 [23:08]
별로인 것도 있지만 부기팝이라거나 공경이라거나 니시오 이신작이라거나
다른 문학보다 마음을 파고드는게 있는것도 있는데... 평소에 어렴풋이 상상하던 만약에 라는 느낌이라거나 가벼운 비일상 그런 느낌이니까 목적이 다르고 그래서 읽지도 않고 별로라고 하는건 아니라고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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