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아빠! 학원 보내줘"

[박철현 칼럼] 딸 미우가 갑자기 학원을 보내달라고 한다

가 -가 +

박철현
기사입력 2019/03/17 [13:16]

 

"그럼 수학만이라도 하라고 해 볼까? 그렇게까지 학원을 가고 싶어 한다면"

 

미우의 중학교 1학년 기말고사가 끝나고 며칠 후 아이의 1년 생활을 총평하는 통지서가 날라왔다. 학급위원(반장)을 1년 내내 했고, 콩쿨 대회에서는 총지휘를 맡았다. 소프트볼 클럽활동도 부지런히 참가해, 매일같이 땀을 흘렸다. 생활평가는 좋을 수 밖에 없다. 리더쉽이 있고, 주위를 배려하며 뭘 맡겨도 잘 해낸다는 믿음을 준다는 담임선생의 칭찬이 평가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 교과 성적은 생활평가에 비해 그리 좋지 않다. 기말고사 점수는 대부분 평균 이상이다. 평균 이하로 떨어진 건 수학 58점과 미술 62점 밖에 없다. 수학은 61점, 미술은 63점이 평균점수였다. 그외 국어, 이과, 사회, 영어, 보건체육, 음악, 실과 과목은 모두 평균 이상이다. 90점 이상을 받은 건 보건체육(96점)과 실과(94점) 두 과목이다. 나는 무난하다고 생각했는데, 생활평가보단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또 아내가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그 불만을 풀어주기 위해 “이 정도면 엄청나게 우수하다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평균이상은 아닌가?”라고 혼잣말도 아니고 질문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그러자 아내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점수 문제가 아니고 공부 하지도 않으면서 맨날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말만 하잖아. 정작 자기가 공부 안해서 성적이 안 나오면 세상 무너진 듯 억울해 하니까. 그걸 매번 지켜보는 게 짜증나는 거야. 억울해지기 싫으면 공부하면 되는데, 그건 또 안 하면서 모순덩어리야.”

 

 

▲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도교육청에서 학비지원프로그램을 설명하는 팜플렛이 수시로 날라온다. 세대별 수입에 따라 도쿄 사립고교에 진학할 경우(국공립은 수업료 면제) 학비부담경감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 박철현

 

매사에 합리적인 아내 눈에는 성적 운운 하기 전에 미우의 저런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엔 학원 탓을 했다고 한다. 즉 자기도 학원을 가면 성적이 오를 것인데 학원을 안 보내 줘서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학기 내내 학원을 보내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아내는 그 조름에 넘어가지 않았고 보내주지 않은 이유를 조목조목 댔다.

 

“학원에 간다고 공부에 관련된 너의 평소 생활습관이 바뀌지도 않을 건데 괜히 돈을 왜 버리니? 그리고 괜히 학업량이 더 늘어나면 너도 짜증날 거 아냐. 미우 니가 소프트볼, 연극활동 하듯이 열심히 했다면 왜 학원을 안 보내주겠냐?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미우도 지지않고 반론한다.

 

“난 일단 뭔가를 시작하면 열심히 하는 성격이잖아. 엄마 내 성격 아직도 몰라? 소프트볼, 연극활동도 하고 싶어서 일단 하기 시작한 이후 한번도 안빠지고 다 나가고 있잖아. 학원도 그럴 거야. 학원만 보내주면 열심히 할 가능성이 크잖아.”

 

나름 일리가 있는 항변으로 들렸다. 하지만 아내는 냉정하다.

 

“그거랑 이거랑은 분야가 다르지. 그리고 학교에서 이미 수업을 듣고 있으니까 일단 공부를 하는 거잖아. 하기 시작한지 몇년이나 지났는데 너 안하잖아. 학교 수업 열심히 듣고 숙제하고 예습만 잘해도 지금보단 훨씬 올라갈 걸? 근데 그것도 안하면서 무작정 학원 보내달라 그러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안할 꺼 뻔히 눈에 보이는데.”

 

미우는 언성을 높였다.

 

“한다고! 학원만 보내주면 열심히 한다고!!”

“안돼. 먼저 학교수업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 그럼 보내줄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거실을 감돈다. 나머지 아이들은 이쪽 식탁에서 논쟁중인 엄마와 누나(혹은 언니)의 대화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텔레비젼 속 애니메이션에 몰입하고 있다. 어중간하게 식탁 끝쪽에 자리잡은 나는 텔레비젼을 보는 척하면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도 동시에. 

 

“아빠!”

“오빠!”

 

고개를 돌리자 둘의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햐, 이거 애매하네. 편들고 말고를 떠나 이 논쟁 자체가 낯설었다. 보통은 부모가 학원에 억지로 보내고 아이가 안 가고 싶어서 반항해야 하는데 이놈의 집구석은 정반대다. 아이가 학원을 보내달라 하고 엄마는 죽어도 못 보낸다 하니 상황 자체가 낯설다. 어쩌면 일본이라 가능한 설정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딱히 할 말이 없어 눈만 껌벅껌벅거리는데 미우가 먼저 입을 연다. 

 

“아빠도 옛날에 공부안했잖아. 그러다가 공부하게 된 계기가 뭐였어? 학원 아냐? 학원!?”

“아니…그, 그게 아빠는 학원 한번도 다닌 적 없는거 같은데…”

 

내 말을 듣자 아내가 ‘거 봐라!’라는 느낌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띤다. 미우가 다시 다그친다. 

“그럼 어떻게, 아니 왜 공부했는데?”

 

순간 벙쪘다. 물리적으로다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면 근 30년전인데 그게 기억날 리가 없다. 그러다가 문득 당시 같이 살았었던 막내삼촌의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막내삼촌이 등수 순위 올라가면 하나당 100원씩 준다고 해서, 그거 받을려고 공부했던 것 같아. 마지막엔 꽤 높은 성적까지 올라갔는데 더이상 안 올라갔는데 그때부턴 하나 올라갈 때마다 천원씩 준다고 해서…….”

 

그러자 둘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니 공부를 무슨 그런 식으로 해?”

 

뒤이어 미우가 입을 열었다.

 

“아니 점수가 아니라 등수를 알려준다고?”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이라 말했을 뿐인데 반응이 영 시원찮다. 말해놓고 보니 웃기긴 웃기다. 지극히 자본주의적 발상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 작전이 미우 마음에 들었나 보다.

 

“지금은 등수를 공개하지 않으니까 순위 대신에 점수가 1점 올라가면 백엔씩 줘.”

 

아내가 피식 웃는다.

 

“야, 그건 아빠가 삼촌이랑 한국에서 그것도 30년전에 했던 거고, 2019년에 도쿄에 살고 있는 엄마는 너랑 그럴 생각이 없단다.”

 

▲ 교복이 예쁘다는 이유로 미우가 가고 싶어하는 고가네이기타 고등학교. 하지만 여기 들어가고 싶으면 수험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데...     © 박철현



나도 덧붙였다.

 

"미우야, 말을 끝까지 들어. 그거 등수 하나 올라갈 땐 그러지만 하나 내려갈 땐 뺨 한대씩 맞는 룰이었어. 그러니까 저번보다 삼등이 내려가면 뺨 세대 맞는 거. 게다가 넌 점수제로 하면 장난 아닐 거 같은데."

 

그러자 미우는 "에이, 그럼 안해. 뺨 맞는 벌칙을 먼저 말해야지"라고 한다. 당근과 채찍 전략은 물건너 갔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과목 하나만 듣자. 단, 여름방학 때. 유예기간을 두는 이유는 2학년 올라가서 첫 학기 동안 너가 공부에 대한 지금의 태도를 과연 변화시키는지 본 다음에 판단하기 위해서야. 말로만 맨날 공부해야지, 성적 올려야지 하지 말고 실제로 공부를 하던가, 그게 아니면 아예 공부 공부 하지 말던가. 아무튼 너의 태도를 그 기간동안 지켜보고 진짜 공부하고 싶다는 그 열의가 느껴지면 니가 원하는 학원 보내줄게. 일단 한 과목 수강해서 성적이 나아지면 다른 과목도 경제적 사정이 허락한다는 전제하에  수강할지 말지 결정하는 거야. 어때?”

 

미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오케이. 알았어. 엄마, 그 약속 꼭 지켜야 한다.”라고 말하고 부리나케 책가방을 들고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간다. 미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 아내에게 말했다. 

 

“가능성은?”

“조건을 걸었으니 진짜 학원가고 싶다면 바뀌겠지.”

“과목은?”

“몰라. 그러니까 뭘 배우고 싶은지도 지금 모르는데 그냥 학원이 가고 싶은거야. 미우는.”

“그럼 수학하라고 할까? 수학 점수가 낮던데.”

“어휴, 오빠도 참 성급해. 아까 조건 못 들었어? 지켜보고 결정한다니까.”

“그래도 공부하고 싶다는데…”

“공부하고 싶다는 말에 속으면 안돼. 평소의 언동이 공부를 하고자 하는 열의가 전혀 없는데 말로만 공부하고 싶다, 공부해야지 그거 어떻게 믿냐? 연극연습 반의 반만 해도 내가 내일 당장 학원 보내준다.”

 

하긴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연극공연 준비하느라 매일같이 대본 읽고 연습에 참가한 후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대본 펴는 아이다. 때로는 둘째 유나, 셋째 준, 아니 막내 시온을 않혀 놓고 대사연습 파트너로 삼을 정도로 열정을 보인다. 무엇보다 매일 24시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아내가 애들 성격과 행동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선 고마움의 감정이 피어오른다. 공부를 강조하지 않는 가풍이긴 하지만 중학생 쯤 되는 아이가 학교공부에 전혀 신경을 안쓰면 걱정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아내는 학원을 안보내기 위해 사투를 벌일 정도인데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견하다. 미우의 맥락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여전히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여름방학 때 학원에서 2차연립방정식 등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미우가 어느날 갑자기 수포자 경력 약 30년인 아빠에게 엑스와이제트 어쩌고저쩌고하는 문제를 던지면서 풀어보라고 하는 상황이 올까 두렵지만 말이다.

관련기사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ins_news3/ins_mobile/data/ins_skin/m/news_view.php on line 79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JP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