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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불청객 ‘화분병'

유재순의 도쿄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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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순 기자
기사입력 2017/03/27 [18:42]

일본인이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무서워하는 것이 하나 있다. 천재지변인 지진이다. 일본에서는 몸으로 느낄 수 없는 아주 미세한 여진까지 포함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진이 일어난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늘 지진을 염두에 둔 비상사태를 예상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해간다.


그런데 천재지변이 아닌 인간에 의한 재난, 인재 때문에 또 다른 공포에 휩싸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일본인들에게 있다. 요즘 내 주변에는 한국인, 일본인 상관없이 코를 훌쩍이며 눈이 시뻘게져서는 고통스러워 못 견디겠다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 일색이다.

 

이렇게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은 모두 휴지를 잔뜩 들고 눈물, 콧물을 닦느라 여념이 없다. 그냥 보기만 해도 괴로워 보인다. 바라보는 나도 안타까워 도와주고 싶지만 도저히 도와줄 방도가 없다. 일본에서 오래 산 사람이라면 봄마다 일상적으로 부닥치는 일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운이 나쁘면 본인이 이와 똑같은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다.

 

‘가훈쇼’. 우리말로는 ‘화분병’이다. ‘꽃가루 알레르기’라고도 한다. 꽃가루가 점막을 자극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화분병은 눈물이나 콧물, 가려움증을 동반하며 잦은 재채기와 심한 경우는 기침, 구토를 일으킨다. 때문에 비염·천식 환자는 그야말로 천형과도 같은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덕분에 일본에는 화분병을 연구하는 대학 의료기관이나 연구소들이 많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면 이비인후과나 내과 병원은 화분병 환자들로 북적인다. 화분병은 곧 일본인들의 국민병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봄은 이 화분병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코를 훌쩍이며 휴지를 뭉치로 들고 있으면 이는 곧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그러다 벚꽃이 필 즈음이면 눈을 하도 비벼 눈언저리가 불긋불긋 짓무르는가 하면, 코는 쉴 새 없이 풀어 콧속이 다 헐고, 재채기와 기침을 많이 해 목이 잠겨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한인들끼리는 화분병에 걸려 있는 사람을 만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일본에 오래 살았구먼.” 혹은 “일본사람 다 됐네” 하고 인사말을 건넨다. 이처럼 화분병은 일본인들에게 일본인을 상징하는 하나의 현상, 즉 고질병이 되어버렸다.

 

20년 넘게 일본에 살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화분병이었다. 화분병의 원인인 꽃가루는 대개 70~80%가 삼나무에서 흩날리는 꽃가루 탓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다른 나무도 화분병을 일으키는 요소가 있다고 하지만 일본의 화분병은 대개 삼나무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제는 이 삼나무가 일본 전역에 걸쳐 가장 많다는 것이다. 가끔 지방도로를 지나다 보면 한번 바람이 불 때마다 꽃가루가 뿌옇게 흩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일본인들은 어디서나 이 꽃가루에 노출돼 있다.

 

일본 국민의 30%가 화분병에 걸려 있다는 환경청의 통계도 있다. 그러나 이 삼나무를 베어내자고 하는 일본인들은 별로 없다. 그 연유를 들어보니 삼나무를 육성하게 된 피치 못할 역사적인 사유가 있었다.

 

1945년 종전 후 일본은 폐허 복구를 위해 나무를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일본 주택은 목조 주택이어서 나무의 쓰임새는 절대적이었다. 그러면서 벌거숭이 산에 쉽게 자라는 삼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다.

 

하지만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고도성장이 이뤄지면서 대부분의 목재를 수입하면서 화분병이 시작됐다. 1960년대 이후 세계에서 나무젓가락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이면서도 그 재료인 나무를 100% 수입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덩달아 얻은 것이 이 화분병. 남의 나라 산은 벌거숭이로 만들면서, 자국의 나무는 단 한 그루도 베어내지 않은 대가로 얻은 것이 다름 아닌 화분병이다. 그래서 양식 있는 일본인들은 이 화분병을 가리켜 ‘천형’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화사한 날씨로 산뜻한 기분이 들어야 할 춘삼월에 일본인 3분의 1은 이 화분병으로 날마다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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