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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레이리마스'

[조은주의 東京視線] 음식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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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주 기자
기사입력 2017/03/06 [00:20]

오랜 만의 도쿄 생활. 덕분에 구루메(먹거리) 생활을 만끽 중이다. 한국에 살 때에도 일년에 서너 번은 일본을 왕복하며 길들여진 입맛이기에.

 

유학 시절 돈 좀 아껴보겠다고 간장에 밥을 비벼 먹었던 한-내지는 후유증-이 남아 있어선지 어디서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나타나면 우선 먹고 본다. 한 두시간 먹기 위해 식당 앞 행렬에 동참하는 건 부지기수다. 덕분에 날이 갈수록 동글동글해지고 있다는 진심 섞인 농담을 지인으로부터 자주 듣는다. 사실인데 어찌하랴, 그냥 웃고 넘긴다.

 

어릴 적 몰랐지만 나름 머리가 크고 나니 식당에서도 뭔가 다른 게 보인다. 일본인들이 음식을 대할 때의 ‘예의’와 ‘마음가짐’이다.

 

이케부쿠로의 조그마한 라멘집을 찾았다. 손님이 들어오면 종업원들은 일제히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외친다. 꽤 유명한 곳이지만 싸고 양이 많아서지 비싸서가 아니다. 입구 앞 자판기에서 메뉴를 직접 선택하는 가격대비 맛집이었다. 

 

몇 명인지 묻고 한명이라고 말하니 테이블 석을 내준다. 메뉴와 젓가락, 각종 양념, 티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배낭을 내려놓으려 하니 이내 박스가 내 옆에 도착해 있다. 자판기에서 뽑은 메뉴 쿠폰을 내주자 면발의 익힘 정도, 양, 기름 양 등 세세하게 묻는다.

 

돈코츠라멘으로 유명하다더니 맛이 훌륭했다. 먹는 양 좀 줄여보겠다고 면의 양을 70%로 줄인 게 후회됐을 정도다. 국물은 다 마시지 못했지만 아낌없이 그릇을 비웠다. 옆이나 뒷 테이블도 마찬가지로 후루룩 소리를 내며 그릇을 싹싹 비워낸다.  

 

그 다음 모두가 하는 행동은 거의 똑같다. 테이블 위 선반으로 내가 먹은 그릇과 젓가락, 휴지를 모두 올려놓는 것. 식당 벽 어느 곳에도 '먹은 그릇은 직접 치워주세요'란 말은 없다.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이자 예의인 셈이다.

 

종업원들도 뻣뻣하게 서 있지는 않는다. '오소레이리마스'(송구스럽습니다)라며 이내 그릇을 받아 치운다. 예의가 예의로 통하는 순간이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양껏 먹고 인사하는 ‘음식에 대한 예의’, 별 것 아니지만 큰 의미를 지닌다. 

 

▲  이케부쿠로의 한 라멘집에서 테이블 위 선반으로 먹은 그릇과 젓가락, 휴지 등이 치워진 모습.     © JPNews


지인의 한국 요리 식당을 가끔 돕고 있는데 한국 요리여도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인의 특성에 맞게 반찬이든 국이든 모두 1인분씩 정갈하게 놓는다. 또 반찬 한 가지를 내놓더라도 딱딱한 게 있으면 부드러운 것과 함께 내놓고, 매운 반찬이 있다면 그 매운 기운을 해소시키기 위한 하얀 반찬도 함께 내놓는다. 정갈하게 그리고 색깔의 조화까지 보면서 반찬을 만든다.

 

정성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손님도 이에 보답한다. 반찬은 모두 사라졌고 먹었던 주변은 대충이라도 치워져 있다.

 

2년 전 일본 최고 돈까스 장인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두 시간 반을 대기한 후 식당 안을 들어가 보니 좌석은 고작 13개. 

 

워낙 맛보기 힘든 음식이라 모두들 돈까스를 먹는 데만 집중한다. 저녁 시간이지만 생맥주를 시키는 손님도 거의 없었다. 그 모습이 경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스마트폰 사진조차 찍을 수 없었다.

 

주인장은 돼지고기를 잘라 밀가루와 빵가루를 묻힌 뒤 툭툭 털어낸 후 고기를 튀겨낸다. 별 새로울 것도 없는 작업이지만 분명 그 뒷면에는 많은 게 숨어 있을 게다.어떤 밀가루와 빵가루, 고기를 쓰는지, 양념은 얼마나 하는지 튀김옷의 두께, 식용유의 온도 등 무수한 원칙들 말이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없이 돈까스만 튀겨내는 주인장 아저씨. 하지만 손님이 선반에 다 먹은 접시를 얹으며 '고치소우사마데스'(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면 고개를 들고 꼭 눈인사를 하며 '아리가토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란 말을 잊지 않는다. 

 

손님이 왕인 나라, 일본이라지만 예의를 갖추고 인사하는 데는 왕도가 따로 없다. 손님이 왕이어서 ‘뭐 어때? 어질러도, 먹다 남겨도 내가 돈 내는데’란 의식으로는 불가능한 문화이자 참 '예쁜'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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