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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로봇가전 흑역사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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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갑
기사입력 2016/06/26 [07:21]

미나는 억지로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나이를 먹을 수록 웃는 것이 더 힘들었다. 힘들고 슬픈 일에 단련되어 무디어 질수록, 기쁘고 행복한 일에도 무덤덤해지는 탓인가. 누군가 “웃어봐”라는 식의 주문을 하면 미나는 자신의 웃는 표정을 떠올리기 위해 한참을 과거로 유영해야 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웃은 것은 아마 23살의 대학 졸업식, 대기업에 내정되었던 남자친구와 함께 했던 저녁식사 자리였을 것이다. “너 취직하면 다음에는 프라자 호텔에서 밥 먹자. 거기 호텔 밥이 맛있데.” 그는 웃으며 미나의 손을 테이블 위로 잡아 끌었고, 그녀는 뻔한 속셈에 몸을 뒤로 빼며 피식 웃었다. 별거 아닌 기억도 가끔은 도움을 줄 때가 있는 법이다.

 

“야마토 가전에서 신제품 홍보 차 찾아왔습니다. 티슈랑 판플렛 받아주시겠습니까?”

 

하누마 앞에는 삼십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서 있었지만 외지인의 물건을 덥석 받는 사람은 없었다. 노인들의 괜찮다는 눈인사가 강경한 거절의 표현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상점가 골목의 좁은 길 위에서 그녀는 꽤 오랫동안 부끄러움과 홀로 싸웠다. 해가 많이 기울었으니 아마 몇 시간은 그대로 서 있었을 것이다. 날은 어제보다 더 더웠다. 그녀는 한숨을 쉬려다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내뱉지 못하고 가슴 속으로 집어 삼켰다.

 

「明治3年から はぬま」

 

메이지 3년에 만들어졌다는 하누마의 낡은 처마를 보니 로봇 청소기란 것이 아직 세상에 나오긴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반대로 촌구석 노인들에게 로봇 청소기 300대를 판 히노 사노스케라는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아마 수완가라기보다는 사기꾼에 가깝지 않았을까.

 

‘차라리 캔 커피 공장에서 박스를 나르는 게 더 보람 있을 지도 몰라.’

 

신주쿠 역 앞에서 어눌한 억양으로 안경점 전화번호가 적힌 티슈를 나눠주던 유학생, 가부키쵸 사쿠라 도리에서 관광객을 잡아끌던 검은 양복의 이자까야 점원,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하루 종일 층 번호를 대신 눌러주던 키노쿠니야 서점의 젊은 여직원이 갑자기 미나의 눈 앞에 아른거렸다. 생각해보니 세상에는 고독한 직업이 너무 많았다.

 

“티슈정도는 그냥 받아줘도 되는 거 아니야?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누에무라가 미나의 손에 든 티슈를 빼앗아 들고 있었다. 어제보다 한결 더 강한 메밀향에 미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누마 앞의 줄은 텅 비어 있었고, 가게는 저녁 준비를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야스다는 여전히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바쁘지 않았으면 같이 나누어 주거나 자세히 일을 알려줘도 좋으련만 야스다는 그저 그녀가 하는 것을 가끔씩 훔쳐보는 게 전부였다. 물론 그건 미나가 의도한 바였다. 둘 사이가 이성 관계로 발전하지 않고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려면 야스다가 그녀를 조금 어려워하거나 미워하는 편이 오히려 나았다. 지금처럼.

 

“둘이 싸웠어? 부부 싸움?”

누에무라가 야스다 옆에 앉아 팜플렛으로 부채질하며 말했다. ‘할 일도 없어 보이는데 땡볕에 미녀를 세워두고 바쁜 척이나 하고 있다니.’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누에무라는 야스다가 여자 다루는 데는 영 잼병이라고 마음 속으로 한탄했다.

 

“너도 이리와 앉아.”

척 보기에도 두 세 살은 어려보이는 누에무라가 미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녀는 티슈가 그대로 남은 종이백을 들고 터덜터덜 파라솔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몇 개 건네 줬어?”

“열 일곱개요. 그 중 하나는 이분이 가져가신 거고요.”

“쉽지 않지?”

 

파라솔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야스다는 웃고 있었다. 그냥 웃는 게 아니라 '내 그럴 줄 알았지'하는 표정으로 아주 얄밉게.

 

“형 소용없다니까 그러네. 지난 주에 아키모토에서도 왔었는데 그쪽도 허탕치고 갔어. 일본 전체가 불황인데 로봇 청소기같은 걸 누가 사. 형도 이 기회에 일 때려 치우고 우리 가게 들어와서 메밀 치는 기술이나 배워.”

 

하지만 누에무라의 도발적인 말에 야스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

 

“너 아키모토 쪽한테도 형이라고 하냐?”

“아니 뭐... 스즈키 형이 원래 우리 가게 냉장고며 전자레인지 같은 것도 전부 봐주고 있으니까. 우리 가게는 야마토 제품 안 써. 비싸.”

 

야스다와 누에무라는 친형제처럼 스스럼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미나의 눈치를 보느라 그저 한층 톤이 올라가 있을 뿐, 히노라는 접점을 제외하면 둘 사이는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이런 식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원래 야스다와 히노, 히노와 누에무라 사이에서나 가능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대화에서 문득 한 사람을 떠 올리고는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거리 판촉은 큰 기대를 안 했어. 늦기 전에 자리를 정리하고 방문 판매에 돌입하자구.”

 

파라솔을 접어 트렁크로 옮기는 야스다의 등 뒤를 미나가 잡아 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 때였다. 60 중반으로 보이는 양산을 받쳐 든 미부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야마토 전기 분들이시죠?"

 

                                               (계속- 다음주 토요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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