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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로봇가전 흑역사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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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갑
기사입력 2016-06-25

하누마 소바는 근방에서도 이름난 노포였다. 가게가 위치한 「하누마 쇼텐가이(商店街、상점가)」의 지명도 이곳에 제일 먼저 가게를 연 하누마 이치죠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하누마 이치죠는 늘그막에 하카타(博多)에서 조닌(町人)생활로 벌어들인 돈을 고향에 제분소와 제면소를 세우며 고스란히 풀어 놓았다. 메밀과 쌀농사로 자급자족하던 화전 마을이 지금처럼 관광지로 발전하게 된 계기도 알고 보면 그가 만든 제분소가 후쿠오카에서 손에 꼽히는 메밀가루를 생산하고 나서부터다. 

 

메이지 3년에 문을 연 이래로 하누마의 메뉴는 참마 냉 메밀(山かけ)하나였다. 그것도 하루 70인분 밖에 만들지 않아 언제 가더라도 두 시간씩 기다리는 것이 예사였다. 다른 부분도 고집이 대단했다. 제분 방식, 즉 메밀반죽을 치대고 면을 뽑는 수타 방식, 면수와 쯔유를 쟁반 위에 세팅하는 위치, 심지어 와사비를 강판에 가는 방향까지 2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노인들은 어릴 적 먹던 맛을 기억해 다시 이 가게를 찾았다. 하누마 소바는 아주 소소한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조악한 우키요에(일본 전통 풍속 목판화가도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조차 감격해 했다.

 

그런 명소로 소문난 하누마는 코무라의 사랑방이나 다름없었다. 

 

야스다는 벤에서 간이 테이블과 파라솔을 꺼내 하누마 소바집 앞에 폈다. 그러자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야스다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로봇 청소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자 언제 그런 관심을 줬는가 싶게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야스다의 시선이 그들과 허공에서 얽혔다. 순간, 야스다는 울컥하고 가슴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가 완성되자마자 미나를 불렀다.

 

“여기가 지금 시간에 사람이 제일 많이 다니는 상점가야. 하누마는 더군다나 입구 쪽이라 병목 현상 때문에 늘 붐벼.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어. 영업을 다닐 때는 항상 이렇게 유동인구가 많은 곳부터 체크해야 돼.”

 

미나는 파라솔 아래 앉아 땡볕 아래 개미떼처럼 길게 늘어선 노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록달록 나이롱 양산을 쓰거나 썬 캡을 쓰고, 팔 토시를 찬 채 나무로 된 번호표를 손에 꼭 쥔 그들의 표정은 이상할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뙤약볕의 시멘트 땅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짜증이 섞여 나올 만도 하건만, 그들은 너무나도 태연해 보였다.

 

미나는 메밀 국수 하나를 먹기 위해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시간이 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면 나 역시 저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수 많은 인파 속에 휩쓸리게 될 것을. 지금 고민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희미해지고 입에 익숙한 국수 한 그릇을 기다리며 남은 삶의 대부분을 보내게 될 것이란 것을. 

 

“내 말 듣고 있어?”

“네. 들려요.”

메마른 목소리로 미나가 대답했다.

 

야스다는 아까부터 멍하니 앉아 있는 미나에게 뭐라고 한 마디를 하려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침을 꾸욱 삼켰다. 그가 히노를 따라 다닐 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편이어서, 미나처럼 배우는 쪽이 삐딱하게 나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게다가 어제 새벽, 그녀를 잠시 몰아 붙인 것이 거꾸로 그의 심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어쩌면 미나에게 화를 내고 그녀의 시큰둥한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 맞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야스다는 반대로 일어나자마자 자존심이고 뭐고 어제 일을 사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 괴이한 기분이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것은 역시 야스다 자신이 미나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그 무엇보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여기 팜플렛이랑 티슈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하나씩 나눠 줘. 받지 않겠다고 하면 강권하지 말고. 표정은 항상 니코 니코(にこにこ,생긋 생긋). 알지?”

 

지금도 그는 매일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한다. 웃는 건 영업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 누구도 무표정하거나 화가 난 것 같은 사람에게 물건을 사고 싶지 않을 것이다. 히노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데 타고 나서 자기가 웃기보다는 상대를 웃게 만들었다. 만약 어린 아이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럴 때 아이가 웃으면 자연스럽게 부모의 경계심이 풀어진다.

 

히노는 아이의 나이같은, 대답하기 쉬운 것부터 먼저 물어보고 신경 써서 입힌 옷이나 귀여운 용모에 대해 칭찬을 곧잘 하곤 했다. 그러면 대게 부모는 조금 우쭐해지고 이내 히노에게 관심을 보였다. 히노의 기본 영업 전략은 대략 이런 것들이고, 고객에게 일일이 대응하는 태도의 리듬감과 바란스의 세련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히노는 그에게 직접 기술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대신 기회는 많이 주었다. 

 

“저기 가는 사람 보이지? 마모루. 차림새를 보니 아마 오사카 사람이겠지. 가서 말을 걸어봐. 그냥 저 사람을 기분 좋게 웃기기만 하면 돼.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어. 만약 성공하면 오늘 저녁 스키야끼로 한턱 내지. 그렇다고 개그맨(笑い芸人) 시험이 아니니까 긴장 풀라고.”

 

레지 시절, 히노의 지시로 도대체 왜 해야 하는 지 이유도 알 지도 못한 채 야스다는 생면 부지의 사람들과 수 없는 대화를 터야 했다. 나중에 스키야끼를 몇 번 얻어 먹은 후에야 그는 자기가 했던 일이 단순히 신입사원을 골탕 먹이려는 선배의 장난질이나, 코지마 반의 신고식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히노는 입버릇처럼 무엇을 팔기 전에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늘 말하곤 했다. 

 

“기분이 들뜨면 누구나 틈이 보여. 그 틈을 공략하는 건 물론 영업사원 각자의 능력이지. 물론 그런 거 다 필요없이 아부를 떨지 않아도 사람 마음을 얻을 수야 있다면... 그야 말로 그런 경우는 천상 영업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 봐, 미나. 사람들한테 티슈를 나눠주고 와.”

 

야스다는 미나의 가슴에 티슈가 든 종이백을 안겨주고 파라솔 아래 의자로 돌아왔다.

                                                (계속 - 내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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