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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로봇가전 흑역사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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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갑
기사입력 2016-06-19

주방 옆에 자리 잡은 작은 식당에서 산몬은 쟁반 위에 그릇을 담고 있었다. 작은 유리병에 담긴 레이슈(冷酒), 참게를 넣은 된장국과 오이와 연근을 저린 장아찌인 오싱코, 구운 꽁치가 전부인 소박한 식탁이었다.

 

야스다는 1년전 시코에서 자신이 먹었던 식사 메뉴를 떠올렸다. 곱게 간 풋콩이 올라간 조개 관자 구이, 광어와 꽁치를 두 개의 국화 꽃처럼 장식했던 사시미, 홋카이도 산 대게가 들어간 된장국과 가고시마 흑초 소스에 찍어 먹는 그 고소했던 민물 메기 튀김. 미나가 젓가락을 들고 꽁치 뼈를 바르고 있는데도 야스다는 아직 1년 전 식탁에서 헤어 나오고 못하고 있었다.

 

“미안하네. 마모루. 요즘 시장에 통 못나갔더니 반찬이 이것 뿐이라.”

산몬은 식탁 앞에 앉아 망설이고 있는 야스다를 보며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야스다는 재빨리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이는 간이 진했지만 밥 반찬으로 먹을 만 했고, 꽁치는 그런대로 신선한 것 같았다. 된장국은 감칠맛이 부족한 대신 맛이 깔끔해서 간이 쌘 오싱코랑 나름 궁합이 잘 맞았다.

 

“오싱코가 좀 그렇지?”

산몬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연습중이야. 마누라를 따라하는데 잘 안 돼. 아직은.”

 

후에 안 사실이지만 산몬은 지난 10월 아내를 잃었다. 아내가 시집을 온 이후 시코의 살림은 전적으로 그녀의 담당이었다. 한때는 열 명이 넘는 사환과 여급을 부린 적도 있었지만 점점 줄어 치에 한명만 남았을 때는 그녀 혼자서 음식, 객실 청소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해야 했다. 산몬이 하는 일은 그저 이층 구석에 마련된 그의 서재에 앉아 밤 늦도록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전부였다.

 

그의 아내는 그가 여관 일을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손에 물을 묻혀 본적이 없는 그런 그가, 불과 몇 개월 만에 지금 눈 앞에 있는 요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그의 죽은 아내가 안다면 아마도 놀라 자빠졌을 일이었다.

 

야스다는 약간 공허하게 들리는 산몬의 말과 조용한 객실, 먼지 쌓인 계단,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정원, 약간 짜게 절여진 오싱코에서 안주인의 빈자리를 절실하게 느꼈다. 산몬은 끝내 말을 아꼈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돌아가신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 그녀에게 팔았던 로봇 청소기도 보이지 않았다. 야스다는 산몬 혼자 이 넓은 여관을 운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가. 그런 만큼 오히려 신제품을 팔 절호의 기회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그는 끝내 마지막 밥알을 전부 넘길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히노 선배라면 어떻게 했을까. 산몬 사장님에게 신제품을 팔았을까? 아니면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넸을까?’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는 유카타를 입은 히노가 그의 앞에 앉아 있었다. 마주 앉은 히노는 밝게 웃으며 반찬을 입에 집어 넣고 산몬에게 신랄하게 맛을 품평했다. 산몬은 그 과정에서 조금 화를 내며 궁색한 변명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모두 인정하고 말았다. 그리고... 밥을 더 달라고 빈 그릇을 내미는 히노를 향해 산몬이 웃고 있었다. 그래. 히노 선배라면 분명 그렇게 했겠지.

 

“맛있어요. 사장님. 특히 꽁치. 어떻게 구운 거에요?”

이제껏 말이 없던 미나가 갑자기 산몬에게 말을 건 것도 공교롭게 이 무렵이었다. 산몬은 대수롭지 않은 척 했지만 그가 직접 가마에서 구운 숯이며, 업자에게 엄선해서 받는 꽁치의 종류에 대해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미나 앞에 놓여진 꽁치는 살 한 점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발려 있었고, 반찬도 전부 비워져 있었다. 좀 짜다 싶은 오싱코를 남길까 생각했던 야스다는 눈을 질끈 감고 된장 국물에 오싱코를 전부 말아 후루룩 마셔 버렸다.

  

“선배 자요?”

미닫이 문 너머로 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간의 피곤함이 레이슈 한 병에 무너졌던 야스다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아니. 왜?”

“로봇 청소기라는 거 말이에요. 정말 팔리는 거 맞죠?”

“불안해?”

 

확실히 오늘 하루 야마다는 그 스스로도 못미더울 만큼 엉망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오는 내내 그녀에게 묻지도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고, 말실수도 몇 번 있었다. 중간에 차도 한 번 퍼졌고, 생각보다 멀리 있는 편의점을 찾느라 그녀와 누에무라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했다. 자신 같아도 그런 의문을 가질 만 했다.

 

“사실 저, 개발부가 적성에 맞을지도 몰라요.”

야스다는 상체를 번득 일으켰다. 얇은 장지문 너머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었다.

“장애물을 인식하는 코드를 짜는 거, 움직여줄 회로를 구상하는 거. 동체 디자인하는 거 전부 재미있었어요. 총무부 때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그렇다는 건... 들어올 때부터 내정되어 있던 거지?”

“프로그래밍 전공자니까. 우선은요.”

 

야스다는 낮에 개발부, 총무부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한참 혼자서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로봇청소기는 흡입력이 일반 가전 쪽 진공청소기보다 훨씬 떨어지니까 개선이 필요한데, 또 크기는 제한되니까 딜레마가 있어요. 그밖에도 소음이라던가, 성능이라던가, 전력 문제, 무게, 내구성 모든 부분을 일반 청소기보다 훨씬 더 많이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돼요.”

 

개발부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야스다는 자신이 모르는 세계의 디테일이 자신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 Hikari-rai은 확실히 그런 밸런스가 잘 맞아요. 명확하게 좋은 성능은 없지만 반대로 치명적인 단점도 눈에 띄지 않아 불편한 점이 없죠. 개발부는 Hikari-rai보다 스펙이 좋으면서 그 처럼 밸런스가 잘 맞는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곤란했어요.”

“밸런스라...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그런 쪽으론 생각해본 적이 없어. 열심히 팔기만 했지.”

“집에서 혼자 롤러로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들을 치우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로봇 청소기가 어떻게 움직이던, 얼마나 조용하고 청소를 잘하던 사람들은 별로 관심도 없을지도 모른다... 오 분이면 전부 밀수 있는 십조 다다미방에 과연 로봇 청소기가 어울릴까...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야스다는 미나의 말에 반박을 하고 싶어 머리를 굴렸지만 복잡하게 뒤엉키기만 할뿐 아무말도 입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생각해봐요. 로봇 청소기가 없는 삶을 상상 하는 편이 훨씬 쉽지 않아요?”

 

그는 지난 몇 년간 로봇 청소기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지방을 돌던 것이 생각났다. 로봇 청소기가 아니라 소형 라디오나 토끼 사료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도 야스다는 최선을 다해 잘 팔리지 않는 물건을 차에 가득 싣고 전국을 돌며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로봇 청소기가 아닌 다른 것을 파는 히노를 떠올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로봇 청소기와 히노를 삶에서 제외하는 순간 야스다는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나는 아니야.”

“그런가요? 오늘 했던 말들은 그냥 잊어주세요. 역시 저 좀 취했나 봐요.”

“왜 영업부에 온 거야? 회의가 들었다면 인사과나 다른 팀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너무 심하게 쏘아붙인 것이 아닌지, 야스다는 말하고 나서도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녀에게 왠지 상처를 주고 싶었다.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그 말을 끝으로 미나가 돌아 눕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과연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그녀가 만든 로봇 청소기가 실제로 팔리는 물건인지, 정말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저 얇은 미닫이 문을 열고 그녀를 깨워 물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야스다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히노라면 속 좁게 그런 말투로 그녀에게 쏘아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신입과 방문을 사이에 두고 긴장감 넘치는 말들을 더더욱 주고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히노였다면 아마도 그 쪽문을 열고 다가가 그녀를 위로하며 안아 줬을지도 모른다.

 

야스다는 상상에 불과했지만 처음으로 히노에 대한 적개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왜 그럴까.그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야스다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계속 - 다음주 토요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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