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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로봇가전 흑역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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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갑
기사입력 2016-06-18

<편집자 주 : 제이피뉴스에서는 매주 주말에 일본을 무대로 한 신내기 작가 김명갑의 단편 혹은 장편 소설을 연이어 연재합니다. '문학'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신예 작가 김명갑은, 일본생활에서의 소소한 경험을 배경으로 매주 주말에 소설을 발표합니다. 신인이기에 아무것도 칠해져 있지 않은 백도화지처럼 그렇게 한회씩 '소설'이라는 형태로 '일본사람' 이야기를 그려 나갈 예정입니다. 김작가의 시선을 통해 일본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지,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K현에 위치한 코무라마치(古村町)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작은 산을 하나 넘자 분지 아래 깔려 있는 작은 농촌 마을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어디를 보아도 논 천지였다.

 

미나는 분지를 가득 메운 푸른 논이 바람에 일렁이는 것을 보고 잘 빚은 찻잔 안에 들어 있는 진한 말차(茶)를 떠올렸다.

“지금도 좋지만 가을 무렵에는 더 장관이야.”

야스다가 눈 앞의 광경에 감탄하며 말했다.

 

그림 같던 풍경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해가 기울자 산 그림자에 마을은 귀퉁이부터 서서히 어둠에 잠겼다. 미나는 마을에 들고 나는 길이 하나 뿐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산사태라도 나면 이곳은 쉽게 고립될 것이 분명했다.

‘오래 있고 싶은 곳이 아니야.’

 

차는 산 등성에 놓인 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 왔다. 누에무라의 하얀 봉고는 마을 중심가에 있는 상점가를 향해 벌써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누에무라 녀석. 우리 때문에 늦은 모양이네. 내일 가서 사과해야겠어.”

야스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며 헤드라이트를 켰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서 묵는 건가요? 오늘은 너무 늦어서 업무는 힘들 것 같은데요.”

“응.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신세를 지는 곳이 있어. 「시코료칸(偲江旅館)」이라는 곳인데, 온천도 온천이지만 주인마님 카이세키(온천음식)가 끝내줘. 거기서 하루 푹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상점가를 돌아 보자”

“그래도 온천장이면 꽤 비쌀 텐데... 출장비로는 빠듯하지 않을까요?”

“괜찮아. 모자라는 돈은 내 사비로 낼 테니까. 일종의 환영회라고 생각해. 나도 히노 선배한테는 얻어 먹기만 해서 후배가 들어오면 꼭 사주고 싶었어.”

 

히노의 이야기를 꺼내고 야스다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의 미간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미나는 그런 야스다의 옆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피곤해서 잠시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도착했어.”

보조석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야스다는 숨이 멎을 뻔 했다. 미나가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나를 보고 있었지?’

야스다는 미나를 곧바로 깨우려다가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리고 창틀에 올린 팔로 턱을 괸 채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사카이 이즈미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같았다. 특히 입술이나 인중 부분.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런 부분은 다들 비슷하게 생겨서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코는 미나 쪽이 더 날렵했고 눈은 사카이 이즈미보다 조금 작았지만 홍채 색이 조금 옅은 편이라 오히려 신비로워 보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무신경한 눈동자. 눈동자?

 

“우왓. 언제 일어났어? 자고 있길래 깨우기 그래서...”

당황하는 야스다를 내버려 두고 미나는 짐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힘 있는 필체로 써 내려간「시코료칸(偲江旅館)」의 현판 아래 누런 불빛이 창가로 은은히 비치고 있었고, 온천장 주변을 둘러싼 대나무 울타리 위로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져 올라오고 있었다.

 

온천장이 처음이었던 미나는 오래된 목조 건물의 정취가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면 일본에 유학을 온 이 후 아르바이트, 취직까지 그녀는 쉴 틈 없이 살아왔다. ‘놀거나 쉬는 건 나중에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남들 다 가는 디즈니랜드, 하코네 온천, 오사카 무박 여행도 가본 적이 없었다.

 

미나는 뒷짐을 지고 정원에 깔린 평평한 돌들을 골라 밟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야스다도 곧바로 따라 붙었다.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죠?”

“맹세코.”

순간 얼굴이 벌개져서 당황하는 야스다를 보고 미나는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순진한 사람이라는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해.”

“뭐가요?”

“여기 정원을 봐.”

여관 주변에는 작은 석등이 세워져 있어 어두운데도 정원의 모습이 잘 들어 왔다.

 

미나는 정원에서 딱히 이상한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단지 풀이 조금 많다는 것 말고는 평범한 정원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주인마님이 부지런하기로 유명하거든. 정원 돌보는 걸 좋아해서 매일 같이 잡초를 뽑고 자갈을 갈퀴로 정리한단 말이야. 근데 지금은 잡초도 많고 빗물에 자갈들이 흩어져 맨흙이 벌겋게 올라온 곳도 있어. 아무래도 요즘에는 관리를 잘 안하는 모양이야.”

 

야스다는 표정이 굳은 채 서둘러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는 비어 있었다.

“사장님. 산몬(山門) 사장님! 야스다입니다. 계세요?”

여관 안에서는 그 어떤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야스다는 더 큰 목소리로 산몬 헤이죠(山門平常)를 찾았다. 어쩐 일인지 항상 카운터를 지키던 여급인 사마모토 치에(坂本知恵)도 보이지 않았다.

 

아흔이 가까운 노인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어 야스다는 걱정이 되었다. 그 때 남탕의 발이 걷히며 바지를 걷어 올린 건장한 노인이 빗자루를 어깨에 걸친 채 나왔다. 산몬 헤이죠였다.

 

“오랜만이네 마모루. 올해는 여자 친구랑 온 건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당황한 야스다는 아니라고 손사례를 쳤다.

 

산몬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카운터에 섰다. 등에 푸른 잉어가 그려진 검은 기모노 차림의 산몬은 등이 꼿꼿하고 자세가 단정한 사람이었다. 약간 붉다싶을 정도의 피부는 그의 나이에 비해 탱탱한 편이었고, 깔끔하게 빗어 넘긴 백발과 정돈된 콧수염은 다이쇼 시대의 문호들을 떠올리게 할 만큼 지적이었다. 다만 조금 지쳐 보이는 표정과 우울한 낯빛이 그간 그가 지내온 시간이 만만치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당치 않지. 아까워.”

산몬은 의미 모를 혼잣말을 하며 등 뒤의 선반에서 푸른 남성용 유카타와 붉은 여성용 유카타 한 벌씩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바짝 마른 옷에서 희미하게 소나무 향기가 났다.

 

“그래서 저녁은? 먹었는가?”

“아직요.”

“저런. 나도 아직인데. 잠시 뒤에 같이 들겠나?”

 

산몬은 이층으로 둘을 안내했다. 원래 방을 안내하고 유카타를 챙겨주는 건 여급인 치에가 하는 일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지금은 사장인 산몬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방은 원래 일인실이지만 미닫이를 닫으면 두 개로 나뉜다네. 이불은 벽장에 있으니 잘 때 꺼내 쓰면 되고. 온다고 연락을 했으면 더 좋은 방으로 준비를 했을 텐데...”

 

“이 방도 좋은 데요.”

미나가 방을 둘러 보며 말했다. 올라 올 때 보았지만 다른 방들 역시 모두 비어 있었다. 한동안 손님이 없었는지 계단 손잡이와 나무로 된 마루는 묵은 때가 쌓여 옻칠이라도 한양 검붉게 변해 있었고, 복도에 켜져 있는 램프는 먼지가 끼어 이층 전체가 어둡게 보였다.

 

그런데 이 방만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야스다는 작년 봄에 이곳을 다녀간 이 후 무엇인가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느껴졌다. 정리된 것은 정리된 대로, 내버려 둔 것은 그 나름대로 조용하고 쓸쓸해 보였다. 늘 이맘때면 객실이 꽉 차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먼저 내려가서 저녁 준비를 할 테니.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내려 오게나.”

산몬이 계단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방안에서도 들렸다.

 

“사장님이 혼자서 운영하나 봐요?”

“아니야. 주인마님이랑 젊은 여급이랑 셋이서 운영했거든. 아무래도 그 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미닫이를 닫아 놓고 두 사람은 옷을 갈아 입기 시작했다. 얇은 창호지 문 건너 옷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맨 살결에 유카타가 쓸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야스다는 부끄러운 생각보다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 주인마님과 치에의 부재가 마음에 걸렸다.

 

유카타를 입고 머리를 틀어 올린 미나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야스다는 첫 사랑이 없었다. 운동을 할 때는 운동이 좋았고, 일을 할 때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 “너같이 동시에 두 개를 못하는 놈은 결혼하려면 일부터 일을 그만두어야 할 거야” 히노가 분명 그런 말도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눈에 들어온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에 인두로 각인시켜 놓은 자욱처럼 선명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언젠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떠올리게 될 지라도 지금 모습 그대로, 하야디 하얀 목 뒤의 솜털 한 올 한 올 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될 것만 같았다.

 

“배고프네요. 내려가죠, 선배.”

“어어. 그래.”

 

                                                    (계속 - 내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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