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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로봇가전 흑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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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갑
기사입력 2016/06/12 [09:00]

“이게 오늘 마지막 버스에요. K현 가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하지만 타지 않아요.”

 

버스 기사는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을 닫고 떠났다. 버스 정류 장 뒤편 숲속에서는 산 비둘기의 울음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20분이 흘러 있었다. 미나는 편의점이 어디에 있건, 이제 슬슬 그가 돌아 올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새 더위도 한풀 꺽이고 땀이 말라 있었다. 박은 버스 정류장에서 일어나 야스다가 뛰어갔던 쪽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십분 쯤 걸었을 까. 갓길 옆에 설치해 둔 가드 레일 한쪽에서 눈에 익은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5년 전 야마토 로봇가전의 주력 로봇 청소기가 왜 여기에?’

 

강화 플라스틱으로 코팅 처리된 푸른 원형의 로봇 청소기 동체가 깨지고 빗물에 부식되어 붉은 녹이 드러나 있는 채로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개발부로부터 듣기로는 'Hikari - rai'는 너무 완벽하게 만드는 바람에 오히려 신제품이 팔리지 않아 실패한 모델이라고 들었다. 그녀를 손수 가르친 안도 부장은 자신을 부장의 위치로 올려준 Hikari - rai가 이제는 거꾸로 승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자책할 정도였다. 당연히 그녀가 개발부에서 가장 많이 본 것도 Hikari - rai였고, 가장 많이 고치고 개조해 본 것도 Hikari - rai 였다.

 

그녀는 비록 망가진 녀석이었지만 Hikari - rai가 부서진 채로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내팽겨져 있는 것을 차마 보기가 힘들었다. 장갑을 꺼내 낀 그녀는 그 로봇 청소기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로봇 밑에 깔린 무언가를 발견했다. 입을 벌리고 죽은 뱀의 시체. 반쯤 부패한 몸에서 하얀 벌레들이 알알이 박혀 꿈틀대고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가장 더럽고 추악한 기억을 전혀 예상치 못한 일본의 지방 국도 가드레일 밑에서 마주한 것이다.

 

미나는 자신도 모르게 로봇 청소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재빨리 장갑을 벗어 풀숲에 던져 버리고는 야스다가 곁에 다가온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손가락이 벌겋게 부어 오를 정도로 보디 시트로 손을 닦고 또 닦았다.

 

“괜찮아?”

 

야스다가 차가운 생수를 손에 쥐어 주며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 보았다. 생수 표면의 차가운 물기가 손에 닿자 그제서야 미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Hikari - rai네. 이걸 주우려 했던 거야?”

“줍지 마요. 그쪽을 보지도 말구요.”

“뭐? 으악!”

 

야스다는 로봇 청소기 옆에 있는 뱀 시체를 보자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가슴을 쓸어 내리는 야스다를 보며 미나는 갑자기 그 섬뜩하던 것이 실은 별것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여기 버려져 있는 걸 보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거야.”

 

벤으로 돌아가는 길에 야스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좀전의 미나의 행동이 걱정되어 일부러 화제를 돌린 것이다.

 

“뭐가요?”

“적어도 한 대는 팔 수 있잖아. 우리의 최대의 적은 경쟁사인 아키모토의 ‘아이보’가 아니라 Hikari - rai니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주받은 걸작이 한 대 줄었으니 우리로서는 다행이라고.”

“그 정도에요? Hikari - rai가?”

“아무래도 회사가 도산 위기까지 몰린 걸 다시 일으켜 세울 만큼 뛰어난 모델이니까. 5년 전 히노 선배와 지방 순회 방문 판매를 했을 때는 Hikari - rai 덕에 순조로웠지만 요즘은 상황이 좋지 않아. 저번에 Hikari - rai 300대 이상 팔았던 H현에서는 신 모델을 3대 밖에 팔지 못했어. 경기도 더 안 좋고. K현 마저 상황이 비슷하다면 방문 판매는 접고 마케팅 계획을 다시 짜야 할 지도 몰라.”

 

개발부의 아침 조회 때마다 Hikari - rai 타도를 외칠 때는 그저 농담 반 진담 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장에 나와 보니 상황은 훨씬 더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더위에 몇 시간씩 차를 타고 방문 판매를 해도 석 대 이상을 팔지 못하다니.

 

“그래도 K현은 조금은 기대할 만 해.”

“왜요?”

“히노 선배와 내가 처음으로 로봇 청소기 방문을 개척한 곳이거든. 마음의 고향이랄까.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결심 같은 것도 다시 잡을 수 있어. 가끔 혼자서도 여기 온천에 쉬러 오거든. 마을 사람들과는 안면도 있으니까 두 자리 수로 파는 건 가능할 거야. ”

“그 히노 선배란 분 수완가였나 보네요.”

“전설적이었지. 아마 코지마 반 역사에 길이 남을”

 

히노는 영업 스승이나 선배로 그를 이끌어 준 게 아니라 아버지나 형처럼 그 자리에 서서 야스다가 성장하는 것을 말없이 지켜 봐주었다. 야스다에게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일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그런 히노가 전혀 야속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한때는 동기들로부터 히노 선배에게 일을 배운다고 부러움을 산적도 있었다.

 

회사가 거의 망하기 직전에 입사한 히노는 입사 몇 년만에 엄청난 실적을 쌓아 사내에서도 주목을 받는 인재였다. 그의 일하는 방식을 배우기 위해 다른 팀의 레지들이 번갈아 가며 파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레지들이 각자 팀에 올린 보고서에는 '노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 '쾌남. 업무적으로는 특별할 것 없음'과 같은 단어들만 가득할 뿐이었다.

 

야스다는 언젠가 주말에 히노를 따라 볼링장에 간 적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술에 잔뜩 취해 있었고, 2차로 노래방이 아닌 볼링장에 간다는 히노의 말에 야스다는 허리를 잡고 웃었다. 지금은 그만 두었지만 야스다는 도에서 열린 쥬니어 볼링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 단련된 달리기, 유도, 궁도도 모두 수준급이었다.

 

드디어 히노에게 칭찬이란 것을 들어 볼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야스다는 심지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얼굴이 벌건 야스다가 먼저 공을 굴렸다. 아주 오랜만이었지만 치는 공마다 스트라이크였다. 술에 취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실력보다 운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어쨌건 기분은 좋았다. 손가락 마디마다 짜릿한 감각이 되살아나는 바람에 문득 지금이라도 선수로 돌아갈까 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히노가 엄지를 치켜 올리며 레일 앞에 섰다. 심호흡과 동시에 그가 공을 낮게 던졌다. 큰 소리와 함께 핀이 넘어갔다. 아직 7,8 번이 남았지만 술에 취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히노는 웃으며 말했다. 정작 놀란 것은 야스다였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히노는 볼링 실력은 그저 그런 편이었다. 핀 근처에서는 공의 속력이 많이 줄어 스트라이크가 맞을 것이 꼭 몇 개가 남게 되었다. 차라리 지금보다 0.5kg 정도 더 무거운 공을 고르는 좋을 것이다. 그러면 공에 힘이 붙어 끝까지 속도도 줄지 않을 것이고, 스코어가 조금 더 괜찮게 나올 것이다.

 

그러나 점수와는 무관하게 히노가 볼을 레일 위에 굴리는 마지막 포워드 스윙 동작은 놀라울 정도로 이상적이어서 허공에 놓인 왼팔과 뒤로 뻗은 오른쪽 다리는 발레의 동작처럼 아름다웠다. 자신에게 맞지 않은 공으로 그나마 절반 이상 넘기는 건 순전히 이상적인 자세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볼의 궤적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수많은 선수들의 동작을 분석해 최적의 자세를 익혔지만, 히노처럼 아름답게 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야스다는 자신의 공을 레일 위로 굴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히노의 포워드 스윙을 떠올렸다.

 

그 순간 야스다는 어렴 풋이 히노가 어떻게 영업왕이 되었는지 그 이유가 떠올랐다. 그건 기술이나 노하우가 아니라 히노라는 개인이 뿜어내는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었다. 볼링 하나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한 동작을 만들어 내듯, 히노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느 장소에 가더라도 상대방의 호감을 사고 깊은 인상을 남게 했다. 그것은 아무나 쉽게 흉내를 낼 수 없는 것이며 배우고 싶다고 해서 그리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아니었다. 내면으로부터 인성을 갈고 닦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넉넉한 품성이었다.

 

야스다 자신도 그 동안의 행적을 되돌아보니 머리 모양, 영업 판촉 때의 표정, 옷 입는 스타일, 연휴 때의 온천 여행이나 주말에 홀로 볼링장을 찾는 취미까지 히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직까지도 나는 히노 선배의 품 안에 있었구나. 부끄럽다.’

 

미나는 갑자기 야스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면서 그의 앞에서는 히노 선배에 대한 이야기를 가급적 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였다. 세워 둔 벤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벤 옆에 있던 남자가 야스다를 발견하고는 잔뜩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왜 이제 와요? 조금 있으면 디너 타임이라 빨리 들어가 봐야 하는데.”

 

벤 옆에는 하누마 소바집의 봉고가 서 있었다. 가게 앞치마를 입고 수건을 머리에 두른 하누마 누에무라가 점프 케이블을 정리해 넣으면서 야스다를 쏘아 보며 말했다. 그러다 야스다 옆에 있는 미나를 발견하고는 놀랐는지 급히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야스다 형. 누구예요? 애인?”

“아니야 그런 거. 동료야, 코지마 반.”

“뭐에요. 코지마 반? 그거 그냥 히노상이랑 하던 장난 같은 거 아니었어요?”

 

하누마 누에무라의 몸에서 기름 냄새와 메밀 냄새가 동시에 났다. 순해 보이는 야스다와는 달리 날카롭고 금방이라도 도발할 것 같은 눈빛 때문에 미나는 그가 조금은 부담스럽다고 느껴졌다.

 

K현으로 향하는 벤 안에서 미나는 왠지 외지인을 경계하는 것 같은 하누마 누에무라의 느낌 때문에 왠지 모를 걱정이 앞섰다.   

                                                  (계속 - 다음주 토요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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