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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상 안녕하세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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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갑
기사입력 2016-06-04

<편집자 주 : 이번 주부터 일본을 무대로 한 신내기 작가 김명갑의 단편 혹은 장편 소설을 연이어 연재합니다. '문학'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신예 작가 김명갑은, 일본생활에서의 소소한 경험을 배경으로 매주 주말에 소설을 발표합니다. 신인이기에 아무것도 칠해져 있지 않은 백도화지처럼 그렇게 한회씩 '소설'이라는 형태로 '일본사람' 이야기를 그려 나갈 예정입니다. 김작가의 시선을 통해 일본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지,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저기... 손님이 부르는데요 "

“알아. 양복입은 남자지?”

 

에이코가 주방에 들어와 전표를 도마 위 선반에 붙였다. 주방으로 들어서는 와타나베는 앞치마를 입는 에이코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언니 이런 거 하지 마세요. 오늘은 상황이 안 좋으니까 먼저 돌아가요."

“너 이거 혼자 다 못 만들잖아. 특히 지지미 같은 건 제대로 뒤집을 줄 몰라 곤란해 하면서. 도와줄게. 같이하자. 사장이 밉지. 네가 미운 게 아니야”

“다녀올께요.”

 

와타나베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반찬이 올라간 쟁반을 들고 홀로 나갔다. 죠는 생맥주와 레몬사와를 들고 뒤를 따랐다.

 

“마스크 벗어”

김신을이 말이 끝나자 와타나베는 순순히 마스크를 내렸다.

“웃어! "웃어. 웃으라니깐!" 

 

부러져 반밖에 안남은 그녀의 오른쪽 윗 송곳니가 드러났다. 무표정하던 김신일은 억지로 웃는 와타나베의 얼굴을 보고 뭐가 즐거운 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재미있지 않아? 머리가 짧아져서 헛갈렸는데 역시 와타나베가 맞네. 깨진 이를 보니까 알겠어. 난 또 안 보이길래 어디 도망 간 줄 알았지.”

호스테스는 김신일의 반응에 영 기분이 좋지 않은 분위기였다.

“오늘 재미있는 거 보여준다고 말했던게 이런거야?”

 

김신일의 품에서 낡은 카세트 테이프 하나가 나왔다. 케이스가 조금 깨져 있는 카세트 테이프였다. 와타나베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것은 와타나베에게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었다. 마츠다 세이코의 싱글 2집. 그녀가 중학교 시절 좋아하던 선배에게서 졸업선물로 받았던 것이었다.

 

“그립네. 완전 옛날 꺼잖아.”

호스테스가 테이프를 만지려고 하자 김신일이 만지지 말라며 신경질을 냈다.

"이거 돌려받고 싶으면 노래 한 곡해. 오늘 이 녀석 생일이니까. 신나는 걸로 하란 말이야."

"여기는 가게예요. 곤란해요."

"난 손님이잖아. 시키면 해야지. 게다가 너는 나한테 빌린 돈도 있어."

"그럼 먼저 테이프 주세요."

 

김신일은 와타나베에게 테이프를 가져가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남자 앞에서 기쁨도, 두려움도 내보이지 않으려 애썼지만 김신일은 그런 감정을 읽는데 타고났다. 와타나베는 테이프 케이스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졸업 축하해라고 쓰인 쪽지가 아직도 그곳에 끼워져 있었다. 선배의 이름과 성은 이미 희미해졌다. 얼굴도. 그런데 이걸 받을 때의 기분은 왜 이렇게 아직까지 생생한 것일까. 김신일이 이것도 봤을까. 얼마나 비웃었을까. 빚 때문에 이런 작은 거 하나까지 몽땅 빼앗기고 나는 왜 이 나이에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홀에는 사장이 설치한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단체 예약이 있는 연말 날이나 가끔 사용할까 싶은, 2007년 이후로는 최신곡이 뚝 끊긴 채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는 녀석이었다. 냉장고 옆에 돌출되어 나와 있는 탓에 바쁜 날에는 옆구리나 팔꿈치를 다치기 쉬워 죠의 입장에서는 좀 버렸으면 하고 바랐던 물건이었다. 그래서 전원이 들어오는 것도, 텔레비전과 연결하는 법, 노래를 찾는 것도 지금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낡은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건 분명 낯설고 신기한 일이지만 그런건 앞으로 죠가 보게 될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40403. 「青い珊瑚礁」 -松田聖子

 

노래방 기기의 기계음 반주가 눈 내리는 신오오쿠보의 작은 한식당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금 큰 듯한, 그러나 왜인지 볼륨을 줄이고 싶지 않은 그리운 흥겨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누가 보아도 하기 싫은 노래를 억지로 한 것처럼 보였으나 보컬이 반주 위에 올라가기 얼마 전부터 와타나베는 자연스럽게 어깨와 손을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김신일도 그 박자에 맞춰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의외로 제대로 박자를 타는 김신일의 모습을 보고 죠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잘 봐. 와타나베는 진짜 아이돌이야.”

 

첫 마디는 평소의 와타나베의 조금 낮고 조용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톤이 조금 더 높고 블루지한 떨림으로 시작되었다. 죠가 알던 와타나베는 이 후로 영원히 사라졌다.

 

あ-私の恋は南の風に乗って走るわ  (아- 내 사랑은 남쪽 바람을 타고 달려요)

あ-青い風切って走れあの島へ・・・  (아- 푸른 바람 가르고 달려요 저 섬으로...)

あなたと逢うたびに  (그대와 만날 때)

すべてを忘れてしまうの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

はしゃいだ私は Little girl  (들뜬 나는 Little girl)

熱い胸 聞こえるでしょう  (뜨거운 가슴이 들리고있죠?)

素肌にキラキラ珊瑚礁  (맨 살에 반짝반짝 산호초)

二人っきりで流されてもいゝの (둘이서 흘러가도 좋아요)

あなたが好き (당신이 좋아요!)

あ- 私の恋は南の風に乗って走るわ (아- 내 사랑은 남쪽 바람을 타고 달려요)

あ- 青い風切って走れあの島へ・・・ (아- 푸른 바람 가르고 달려요 저 섬으로...)

涙がこぼれるの  (눈물이 흘러요)

やさしい目をして見ないで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요)

うつ向き加減の Little Rose  (부끄러워 고개 숙인 Little Rose)

花びら 触れて欲しいの  (꽃잎을 만져주길 바래요)

渚は恋のモスグリーン  (물가는 사랑의 모스그린)

二人の頬が近づいてゆくのよ  (우리 둘의 볼이 가까워져가는걸요)

あなたが好き  (그대가 좋아요!)

あ- 私の恋は南の風に乗って走るわ  (아- 내 사랑은 남쪽 바람을 타고 달려요)

あ- 青い風切って走れあの島へ・・・  (아- 푸른 바람 가르고 달려요 저 섬으로...)

 

박수소리가 조용히 터져 나왔다. 푸른 산호초가 세상에 나온 건 마츠다 세이코의 나이 17살인 1980년이었다. 열도는 후쿠오카 출신의 파마머리 작은 소녀가 무대 위에서 뿜는 에너지에 매료된 되었고, 그중에는 스키 리조트 청소부였던 한 여자도 있었다. 현실을 잊게 만들어주는 상쾌한 매력. 그것이 ‘아이돌’이었다. 피 묻은 침대 커버를 갈고, 무릎을 꿇은 채 변기를 닦아 모은 돈 100만엔을 가지고 여자는 무작정 도쿄에 상경했다. 도쿄에 가면 무언가 자신이 확 바뀔 것이라고, 거품처럼 반짝 빛나며 터져나가던 일본의 호황과 마츠다 세이코의 노래 때문에 여자는 희망에 가득 찼다. 여자는 충분히 젊었고 또래에 비해 긴 다리는 짧은 치마 하나로도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들만큼 매력적이었다.

 

1984년. 도쿄 긴자의 술집 바텐더였던 타로를 만났고, 이듬해 여름 딸 노리코를 낳았다. 노리코는 마츠다 세이코의 본명이었다. 그해 마츠다 세이코는 천사의 윙크(天使のウィンク)를 발표했는데 그건 태교 음악임과 동시에 노리코의 자장가였다. 노리코가 커가면서 마츠다 세이코를 좋아하게 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버블이 끝나고 사업을 시작하던 타로가 빚더미에 앉아 노리코를 두고 여자가 집을 떠난 순간에도 마츠다 세이코는 거의 한해도 빠짐없이 앨범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노리코는 장래 희망에 늘 ‘아이돌’, 정확히는 ‘마츠다 세이코같은 아이돌’이라 적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그것 때문에 반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래도 노리코는 학교 강당, 옥상에서 마츠다 세이코나 야마구치 모모에같은 조금은 오래된 아이돌 노래에 맞춰 밤늦게까지 춤을 추고 노래를 연습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방법을 몰라 계속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아이돌이 되어주고 싶었다. 땀과 눈물 범벅인 채로 집에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남몰래 쪽지를 주는 남학생도 있었고, 졸업식 날 마츠다 세이코 2집 테이프를 선물로 준 친구도 있었다. 힘들고 외로워 죽고 싶던 순간이지만, 돌이켜보면 이상하게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고 와타나베 노리코는 생각했다.

 

역시 음식은 많이 남았다. 김신일은 순대국을 반그릇 정도 먹다가 남겼고, 호스테스는 테이블 위의 음식을 조금씩 맛만 보았다. 족발은 둘 다 손도 안 댄 채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너 미친놈 같았어." 

"춤 잘추더라."

 

에이코가 그릇을 정리해 주러 나왔다가 와타나베의 말을 거들었다. 죠는 부끄러워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푸른 산호초가 끝나자 호스테스는 기분이 좋은지 앵콜을 외쳤고 와타나베는 몇 곡을 연달아 더 불렀다. 김신일은 가게에서 제일 비싼 술이었던 만슈(万酒)를 시켜 죠에게도 나눠 주었다. 강압적인 분위기였지만 기껏 와타나베가 만들어 놓은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 죠는 못 마시는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와타나베의 노래에 맞춰 말도 안되는 춤을 춘 모양이다.

 

벌써 새벽 다섯 시 였다. 와타나베는 춤을 추며 일곱 곡을 불렀고, 에이코는 돈을 받으러 왔다가 한 시간 반 동안 주방에 서서 아홉 종류의 요리를 만들었다. 죠는 난생처음 술을 마시고 화장실 바닥에 두 번이나 속을 비워내었다. 배가 고팠다.

 

“음식도 많이 남았는데 덥혀서 먹자.”

“그냥도 먹을 만 한데요.”

 

에이코는 주방으로 가 금방 음식들을 다시 덥혀 왔다. 셋은 김신일이 앉았던 의자에 앉아 남긴 음식들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죠는 왜 죠야? 뭔가 코끼리랑 관련된 것이라도 있어?”

에이코가 계란을 묻혀 지진 김밥을 입에 넣으며 음흉하게 물었다. 죠는 일본어로 코끼리라는 뜻이다.

 

“원래 이름이 조만호거든요. 와타나베상이 장난삼아 붙인 별명이에요. 처음에는 조랑 죠 발음 차이를 몰라서 놀리는 지도 몰랐어요. 그런 거 아니예요. 진짜.”

 

당황한 죠를 보고 에이코와 와타나베는 목젖을 젖히며 웃었다. 오늘따라 유독 와타나베가 많이 웃는다고 죠는 생각했다. 사귀지 못하더라도 붉게 상기된 채 무릎을 치며 웃는, 이 모습을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있잖아요. 나는 와타나베가 멋있다고 생각해요.”

“너 아직 술 취했니?”

에이코가 죠를 타박했다. 그러나 죠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남자를 때려 죽이고만 싶었거든요. 식당일 한다고, 채무자라고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할 권리는 없는 거잖아요. 나 같으면 죽어도 노래 안 불렀을 꺼에요.”

“나도 전주 끝날 때까지 끝까지 부를 수 있을지 몰랐어. 그냥 해본거야. 오랜만에.”

 

와타나베는 겸연쩍게 웃었다. 가게 창 너머로 아침 해가 들어오고 있었다. 부러진 이가 드러나는 와타나베의 웃는 모습이 반짝반짝하다고 죠는 생각했다.

 

“아. 기분 좋다. 죠. 아까 네가 내려 줬던 생맥주. 그거 다시 가져다 줘. 나 오늘 한잔 마셔야겠다.”

 

에이코도 와타나베와 죠를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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