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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와타나베상 안녕하세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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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갑
기사입력 2016-06-04

<편집자 주 : 이번 주부터 일본을 무대로 한 신내기 작가 김명갑의 단편 혹은 장편 소설을 연이어 연재합니다. '문학'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신예 작가 김명갑은, 일본생활에서의 소소한 경험을 배경으로 매주 주말에 소설을 발표합니다. 신인이기에 아무것도 칠해져 있지 않은 백도화지처럼 그렇게 한회씩 '소설'이라는 형태로 '일본사람' 이야기를 그려 나갈 예정입니다. 김작가의 시선을 통해 일본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지,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와타나베상 안녕하세요?  (1)

 

중국인 단체 손님을 끝으로 가게는 다시 한산해졌다. 죠의 몸은 뜨거운 욕조속에 들어간 것처럼 피곤 때문에 노근했고, 홀의 붉은 조명은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눈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니 최근에는 다섯 시간도 자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저녁 열시. 밖은 먼지같은 눈발이 어두운 밤 하늘 아래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날에는 더 이상 손님이 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죠(像)는 속으로 생각했다.

 

설거지를 마친 와타나베가 홀로 나왔다. 짧은 머리는 비라도 맞은 것처럼 땀으로 푹 젖어 목덜미에 기분 나쁘게 붙어있었다. 손님이 있으면 단보(난방)를 끌 수 없었기 때문에 가스레인지가 있는 주방은 늘 사우나처럼 후덥지근했다. 그래도 와타나베는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사시사철 벗지 않은 하얀 마스크는 일종의 방패였다. 밥을 먹을 때도 그녀는 마스크를 완전히 벗지 않고 턱밑에 걸쳐 두었다. 죠는 그 모습마저 귀엽다고 생각했다.

 

“죠, 재떨이 줘.”

 

빈 가게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 것이 와타나베의 유일한 삶의 낙이었다. 하루 14시간을 가게에서 보내는 그녀에게 집은 그저 머릿내 나는 베게와 거친 이불, 보증기간이 예전에 지난 낡은 세탁기, 물때가 낀 작은 욕조. 겨울옷과 여름옷이 몇 벌 있는 늘 불이 꺼진 쓸쓸한 공간일 뿐이었다. 텔레비전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젊고 예쁜 아이돌의 영상이 하루 종일 흘러 나왔다. 적은 월급에도 그녀가 신오오쿠보의 작은 한식당 ‘마리네’에서 일하는 이유는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유일했다.

 

와타나베는 몇 년 전 부러져 비어버린 송곳니 자리에 담배를 끼우고 불을 붙였다. 죠는 와타나베가 그렇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죠는 그 모습이 뭐라고 부르기는 힘들지만 단순히 불량한 것과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했다. 멋있다고, 누군가 와타나베를 왜 좋아하냐고 죠에게 물어보면 마리네 홀에서 담배 피우는 와타나베를 처음 본 순간을 묘사할 것이다.

 

와타나베는 은근하면서 꾸준한 죠의 시선을 느꼈다. 아주 오래전 그녀도 그런 시선을 받았던 적이 있고, 고백, 연애, 젊음, 미래, 꿈같은 단어를 일상적으로 말하던 십대, 이십대가 분명 있었다는 것을 덕분에 기억해냈다. 죠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는 지금 누군가와 사귀거나 마음을 받아줄 여유가 전혀 없었다. 반대로, 늘 자신을 훔쳐보기 바쁜 소심한 어린 아이가 자신이 사귀자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녀는 평소 상상하던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빚이 모두 사라진다면.’ ‘빈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기억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면’ 같은 가정들은 너무 현실성이 없어 상상과 동시에 도리질 쳐졌다. 그러나 죠와 사귀는 것은 의외로 쉽게 상상되고,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참기 어려운 어떤 자극이 그녀 머릿속을 떠올랐다. 결국,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와타나베는 죠를 손짓으로 부르고 말았다. 아주 오랫동안 후회하게 되더라도 지금 그녀에게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죠. 나 좋아하지?”

 

테이블을 닦던 죠는 와타나베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왔다. 그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거나 고백을 해본 적이 없고,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조용히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것이 전부였다. 죠를 잘 아는 친구들은 팬질을 그만두고 연애를 하라고 닦달했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오게 된 것도 대학진학에 실패해서기보다 반년 넘게 짝사랑했던 과외선생님이 늘 상 입에 달고 살았던 일본에서 겪은 개고생담, 혹은 그 뒤에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죠의 수능이 끝난 해 겨울. 선생님은 하객으로 참석한 죠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너도 일본에 꼭 가봐’라고 말했다. 웨딩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 기분이 육 개월 넘게 바로 옆에서 정석을 채점해주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덤덤하게 정리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선생님의 결혼 상대는 일본 워킹 홀리데이에서 만난 남자. 듣던 것처럼 자상하고, 유머 넘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죠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도둑질이라도 들켜버린 것처럼 부끄러웠지만 와타나베가 이 뒤에 할 말들을 좀처럼 종잡을 수 없다는 점 . 와타나베는 생각보다 더 당황하는 죠의 모습에 미안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꼈다. 죠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는 죠가 고개를 끄덕거린 순간 장난을 그만둘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내기할까? 지금 열시 반이니까. 열두시까지 손님이 오면 우리는 사귀는 거고. 열두시가 넘을 때까지 손님이 한명도 오지 않으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지금처럼 아르바이트 동료로 남는 거야. 괜찮지?”

 

너무 빠른 시간에 많은 단어들이, 많은 표현들이 지나가서 죠는 와타나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그녀가 한국말로 말했더라도 그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죠는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이번엔 와타나베도 웃지 않고 천천히 나눠서 말해줬다. 역시 이것은 현실이었다.

 

‘다이죠부(大丈夫). 대장부(大丈夫)면 승부에 순응하라는 말일까? 나는 대장부도 뭣도 아니야. 그럼 사귀지 않아도 괜찮겠냐는 말인가? 애초에 왜 나한테 와타나베는 사귀자는 말을 했지? 아, 이건 사귀자는 말이 아니구나. 오늘은 아무래도 손님이 오지 않을 것 같으니까. 좋아하지 말라는 말 일꺼야. 아니 역시... 12시까지는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잖아.’

 

죠는 자신에게 약간이라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죠가 싫다면 와타나베는 이런 조건을 내걸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죠의 시선을 쭈욱 무시하거나, 세심한 배려들을 못 본 척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고, 언젠가 잘생긴 남자친구를 가게에 데려와 죠의 기분을 순식간에 망쳐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했지만 결국 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녀 나름대로 답을 해준 셈이 아닐까.

 

"大丈夫。"

 

비장한 죠의 얼굴을 보며 와타나베는 웃었다. 이제 시계는 10시 40분을 넘기고 있었다. 죠는 이틀 전 부모님이 보내주신 두꺼운 파카를 입고 가게 앞을 빗자루로 쓸기 시작했다. 도로는 이미 한산해졌고, 도로와 인도의 구분은 쌓이는 눈으로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도쿄에 이런 폭설이 내리는 것은 사실 십년만의 일이었지만 그런 건 죠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생맥주 한잔을 시키더라도 손님이 필요했다.

 

죠가 가게 앞을 쓸고 돌아와 테이블 위를 다시 닦는 동안 와타나베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쓰끼다시에 쓸 고기감자를 만들기 위해 감자를 삶고, 고기를 해동시켰다. 일반적으로 한식집에 니쿠쟈가를 내는 일은 없지만, 심야 주방일을 사장이 와타나베에게 전적으로 일임한 이상 무엇을 만들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무엇보다 와타나베의 요리솜씨는 아침에 일하는 주방 이모님보다 오히려 나은 편이어서, 주방 이모님이 만드는 김치나 나물류보다 와타나베가 심야에 만들어둔 반찬들의 리필 횟수가 더 많았다. 그것 때문에 주방 이모님과 와타나베 사이에는 늘 긴장감이 흘렀다. 주방에 설거지거리를 들고 가는 죠도 그 짧은 시간 숨막히는 분위기를 늘 느끼곤 했다. 더욱이 한국말로 살갑지 못하다며 와타나베 흉을 보고 죠에게 동의를 구하는 탓에 그는 도망치듯 주방을 빠져나오곤 했다. 그는 이럴 때마다 와타나베가 한국말을 못 알아 듣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열한시가 되자 죠는 조급해졌다. 눈발은 더 거세어졌고,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건너편 아자카야는 평소보다 삼십분 일찍 문을 닫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이자카야 직원들을 불러 볼까 고민하는 사이, 그들은 각자 자전거를 타고 불러도 닿지 않을 만큼 멀리 떠나 있었다. 그리고 삼십분 뒤 죠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자책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졌던 마지막 기회였었다고, 흩날리는 굵은 눈발로 시시각각 변하는 신오오쿠보의 거리 풍경을 보며 알아버린 것이다. 망설이다가 날려버린 기회들이 그에겐 얼마나 많았던가. 이자까야 직원들을 그냥 보내는 것을 보고 와타나베는 얼마나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죠는 와타나베를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와타나베는 미동도 없이 유리 창 너머로 가게 밖을 내다보는 죠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죠가 파카를 입고 가게 앞을 쓸고 메뉴판을 정리하고, 냉장고에 병맥주를 각을 잡아 정리하는 것을 보며 행복하고 쓸쓸해졌다.

 

‘어차피 손님은 오지 않아.’

라고 와타나베는 생각했다.

“만약 손님이 12시 1분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 거에요?”

“아웃.”

“손님이 11시 59분에 들어와서 음식을 12시 1분에 시키면요.”

“세이프. 12시 전에 들어온 손님이 돈 내고 식사만 하고 가면 돼.”

 

자꾸 이런 조건을 물어보는 죠는 스스로가 구차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자꾸 확인하고 작은 가능성에라도 매달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점점 다가 오고 있었다. 십분 단위로 시간을 확인하던 죠도 다가오는 시간에 질식할 것 같아 더 이상 시계를 보지 못했다. 이제 겨우 이십분 정도가 남았을 뿐. 그때 직원용 출입구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오랜만이야. 와타나베. 잘 지냈어?”

“아. 에이코 언니. 오랜만이에요”

 

에이코는 외투 위에 두껍게 쌓인 눈을 털고 자리에 앉았다. 죠는 시계가 아직 자정이 지나지 않은 것을 보고 와타나베 쪽을 기쁜 눈으로 바라보았다. 죠가 메뉴판과 오시보리(물수건)를 앞에 내놓자 에이코는 와타나베를 보고 당황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제서야 죠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와타나베에게 눈빛을 보냈다. 와타나베는 고개를 저었다.

 

“손님이 아니야. 여기서 전에 와타나베랑 일했어. 지금은 마사지 샵에서 일하고. 잘생긴 오빠도 시간되면 한번 놀러와.”

 

그녀는 황금색 명함케이스에서 작은 명함하나를 꺼냈다. 영자(英子). 이제는 에이코라고 불리는 것이 더 편한 40대 후반의 여자는 멍하니 서있는 죠에게 명함을 쥐어 주고는 이내 와타나베에게 매너가 좋지 못한 손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안되었지만, 죠. 이게 너에겐 차라리 더 나을지 몰라.’

 

와타나베는 죠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에이코의 대화에 더 관심 있는 척했다. 죠가 차가운 생맥주를 다급하게 에이코 앞에 내민 것은 열두시가 십분 남짓 남았을 무렵이었다.

 

"제가 사는 거예요. 그럼 되는 거죠?"

"뭐야.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거야? 와타나베, 저 꼬맹이랑 사귀어?"

 "아직 그런 거 아니에요."

 

まだ(아직)이라는 단어에서 죠는 거리감과 함께 여지를 동시에 느꼈다. 저녁 11시 43분이 자정이나 다름없지만, 아직 완벽히 자정은 아닌 것처럼. 와타나베가 죠에게 아직 남아 있는 십분 남짓의 시간에 뭔가를 해보라고, 뭔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죠는 순간 자신이 너무 서툴고 와타나베는 너무 능숙해서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와타나베로부터 내기 내용을 전해 들은 에이코는 박수를 치며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웃은 나머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젊은 애들 생각은 진짜 알 수 없다니까. 와타나베가 이상한 녀석인지는 원래 알고 있었지만, 내기에 응하는 너도 대단하네."

"무효야. 죠. 에이코 언니는 가게 손님이 아니야. 내 손님이지."

'그것도 손님이 잖아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죠는 냉정한 와타나베의 말투에 그대로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속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둘 사이의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에이코는 가방에서 무슨 종이를 꺼내 죠에게 보여주었다. 온통 일본어로 적혀 있는 탓에 죠는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단지, 일을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리네의 사장과 에이코 사이에 금전 거래 내역이 적힌 차용증 비슷한 것일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일을 그만 두기 전에 두 달 치 월급 50만엔을 아직 못 받았거든. 사장은 뭐가 내가 못마땅한지 절대 못주겠다는 눈치고. 그래서 가끔 사장 얼굴 보러 나와. 나 빚쟁이야. 손님 아니고. 실망시켜서 미안. 밥이랑 술도 손님에게 많이 얻어먹고 왔어.”

 

와타나베는 에이코에게 고맙다는 눈치를 보냈다. 그녀는 다 안다는 듯이 와타나베의 인사를 받았다. 죠는 둘 사이에 오간 눈 인사 속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이건 사기야. 애초에 손님이 오면 사귀자는 말 같은 건 왜 한 것일까. 잠깐이나마 와타나베와 사귈 수 있다는 상상을 한 건 역시 사치였을까.

 

죠가 시간을 확인한 것은 열두시 십 이분, 사십 삼초였다. 와타나베에게 처음 사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시계의 어법은 더 단호하고 확실해지만, 납득하는데는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다이죠부. 나는 괜찮아. 그렇게 속으로 수없이 말하고 나서야 죠는 평소처럼 와타나베를 볼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쓸 따름이었다. 그리고 열두시 십오분. 험상 굳은 인상의 남자와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호스테스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짧게 자른 머리에 마른 몸. 병을 앓는 것처럼 검은 피부, 기껏해야 만 엔이 조금 넘는 아오키의 여름 양복을 눈 내리는 겨울까지 입고 다니는 남자, 재일동포 김신을이었다. 신오오쿠보에서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대부업자였다. 그가 태어나 가장 많이 들어 본 말 중에 하나가 ‘어떻게 같은 한국 사람끼리 이럴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물론 그는 스스로를 한국인, 조선인, 일본인도 아닌 별개의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한테나 캥기는 것 없이 잔인하게 돈을 뜯어 낼 수 있고, 그것이 자신의 돈을 버는 비결이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신오오쿠보 초짜인 죠가 김신일에 대해 비록 아는 것은 없었지만,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을 먹잇감처럼 보는 눈빛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김신일의 눈빛에 압도된 죠는 방금 전까지의 우울했던 기분은 싹 사라지고 긴장감 속에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평소에 쓰던 일본어마저 머릿속과 입 안에서 엉망으로 엉켰다. 다행히 김신일은 그다지 죠에게 흥미가 없는 듯 했다.

 

메뉴는 대부분 여자 쪽에서 골랐다. 잡채, 지지미, 감자탕, 순대국, 족발, 김밥, 떡볶이 등 네 명이 와도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김신을은 연신 다 못 먹는다고 타박을 주었지만, 이제 대학이나 졸업했을까 싶은 여자는 죽기 직전 마지막 음식을 먹겠다는 심정인지 그 많은 양을 주문했다.

 

죠는 주방 이모님도 없이 이 많은 메뉴를 와타나베가 다 만들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메뉴판을 뒤적이는 김신을은 마실 것만 간단하게 주문할 모양이었다. 메뉴판을 뒤적이는 김신을은 새끼손가락 두 마디가 없었다.

 

"나마(생맥주) 하나랑, 레몬사와, 그리고 와타나베 잠깐 나오라고 해!"

 

김신일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와타나베는 에이코의 테이블에도 주방에도 없었다. 죠는 혹시나 싶어 주방 옆에 있는 재료 창고에 들어가 보았다. 와타나베는 그곳에 있었다. 술을 먹으면 유독 와타나베를 불러 옆에 앉히려는 손님들이 있었다. 가끔은 몸을 만지려고 하거나, 그녀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와타나베는 주방 옆에 있는 작은 창고에 들어가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와타나베가 그렇게 서 있으면 죠는 아무 말 없이 밀려드는 홀 주문을 혼자 받고 혼자 와타나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애를 썼다. 음식이 늦는다고, 주문 안 받느냐고 화를 내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참을만했다. 와타나베가 취객들에게 당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나으니까. 아마도 지금 홀에 있는 남자는 와타나베가 매우 싫어하는 남자임이 분명했다. 그녀가 지금처럼 떨고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인지 자꾸 김신을의 새끼 손가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계속 (내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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