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日촛불시위, 2.8 선언에서 야스쿠니까지

우익들의 맞불시위와 부대끼며 야스쿠니까지 한일 시민단체 촛불행렬

가 -가 +

유재순
기사입력 2015/08/11 [09:15]

지난 8월 8일, 도쿄 스이도바시역 동쪽 출구로부터 7-8분 거리에 있는 '재일한국YMCA 아시아청소년센터' 앞. 저녁 7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심포지엄이 끝난 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모두 작은 종이컵에 촛불이 담겨져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까지 촛불행진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모인 사람들 손에는 촛불 혹은 '야스쿠니 신사의 어둠에 평화의 등불을!'이라고 쓰여진 대형 깃발을 들고 있었다. 서울에서 참가한 14명과 십여명의 재일동포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인들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아버지 혹은 동생이 강제징용, 강제군속으로 끌려갔다가 사망하여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한국 유족 9명과 시민단체 등도 함께 참가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를 필두로 이명구, 최낙훈, 강종호, 박진부, 강종호, 남영주, 정윤현, 박남순, 신명옥 씨, 그리고 그 옆에는 서승 리츠메이칸대학 교수, 홍성담 화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나란히 선두에 섰다. 

 

▲ 20150808 야스쿠니 반대 촛불시위     ©JPNews

 

 

하지만 시작부터 촛불시위는 만만치 않았다. 예상보다 많이 모인 시위대 때문이었는지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일본 경찰들이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서기도 전에 손 마이크를 손에 든 여경과 남경이 경찰 차량에 올라 질서를 유지하라고 거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시작부터 아수라장이었다.  

 

▲ 20150808 야스쿠니 반대 촛불시위     ©JPNews
▲ 20150808 야스쿠니 어둠의 평화의 등불을!     ©JPNews

 

일본경찰은 대낮부터 행사장인 한국YMCA 아시아청소년센터 주변은 물론이고, 스이도바시 동쪽 출구 앞 학산도로에 수십여대의 경찰차량과 수백여 명의 경찰들을 배치했다. 오가는 행인보다 경찰의 수가 훨씬 더 많을 정도로 수미터 간격으로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YMCA센터 주변 골목골목은 삼삼오오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고, 지나는 행인들을 하나하나 주시하고 감시했다. 또한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사람들은 이내 카메라로 찍어 채증을 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같은 살벌한 분위기에도 이미 익숙해진듯, 전혀 개의치 않았다.

 

드디어 시위대가 출발했다. 선도차량이 먼저 선창을 하면 뒤따라오는 시위대가 따라 외쳤다. 선도차량 앞에는 일본 경시청에서 나온 경찰차가 안내를 했다.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시위를 할 때마다 일본경찰이 시위대 양옆으로 교통정리를 해준다.

 

▲ 20150808 야스쿠니 반대 촛불시위     ©JPNews

 

 

"전쟁 반대!"

"야스쿠니 반대!

"아이들을 지키자!"

"평화를 지키자!"

"원발 필요없다!"

"차별을 금지하라!"

"해외파병(자위대) 절대 반대!"

"일미안보 절대반대!"

 

선도차량의 여성이 반복해서 위의 구호를 선창했다. 시위대는 일사분란하게 이를 따라 외쳤다.

 

시위대가 YMCA센터 골목을 벗어나와 일본대학 경제학부 건물 앞 학산도로에서 왼쪽 진보초 쪽으로 꺽어질 무렵이었다. 야스쿠니 신사로 가려면 고서점가인 진보초 쪽으로 나갔다가 다시 우회전해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시위에 나선지 7,8분이 되었을까. 큰길인 학산도로에 집입하자마자 대소란이 일어났다.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익들의 검은 차량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시위대를 향해 소리소리를 지르며 맞불을 놨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선인 돌아가라" "안보절대 사수!" 등 너무 시끄러워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도 않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대에게 마구 달려들었다.     

 

그러자 수십여명의 경찰들이 우익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진압하는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같은 소란은 100미터도 채 가지 않아 되풀이 됐다. 특히 진보초 로터리에서 야스쿠니 신사쪽으로 우회전을 할 때는 절정을 이루었다. 

 

▲ 20150808 시위 방해하는 우익 차량     ©JPNews
▲ 20150808 시위 방해하는 우익들   ©JPNews

 

 

우익차량 5-6대가 도로 한가운데에 정차한 가운데 시위대의 구호에 정면으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구호 내용조차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오로지 시위대를 방해하는데에 우선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엠프 소리를 어찌나 크게 틀어 놓았는지 귀청이 떨어져나갈 지경이었다. 거기에다 경찰의 안내차량까지도 가세했다. 때문에 시위대 구호와 우익들의 방해소리, 그리고 경찰들의 자제하라는 엠프 소리가 뒤엉켜, 그야말로 학산도로는 아비규환처럼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 20150808  교통안내를 하는 일본 경찰 ©JPNews

 

 

그러는 와중에도 일본경찰은 본업(?)에 충실하고 있었다. 수십여 명의 경찰들이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셧터를 누르고 있었다. 시위 참가자 채증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거기에다 거리를 오가던 행인들까지 덩달아 참견을 했다. 시끄럽다고 짜증을 내는 시민과 '간바레!'하고 응원하는 시민들까지 합세를 한 것이다. 나중에 우익 몇 명은 작정하고 나온 듯 경찰의 제지를 뚫고 몇번이고 시위대에 뛰어들었다. 그럴 때마다 일본경찰들이 용케 제지를 했지만 일촉즉발의 순간이 수십여 차례나 있었다. 어찌나 행동이 빠른지, 만약 일본경찰들이 재빨리 제지를 하지 못했다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났을지 그것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시위현장 분위기는 대단히 험악했다.

 

▲ 20150808 야스쿠니 반대 촛불시위     ©JPNews

 

 

일본 경찰은 이같은 상황을 미리 예견한 듯 했다. 작년과는 달리 올래 배치된 경찰들의 나이가 상당히 젊었다. 작년만 해도 중년 경찰이 많았는데 올해에는 언뜻 봐도 20-30대 연령의 경찰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과격하게 나올 우익을 제지하기 위해 작전상 젊은 경찰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한 것 같았다. 주최측인 '촛불행동실행위원회'도 그런 것 같다고 동조했다.

 

신기한 것은 이런 아수라장 가운데에서도 시위대는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야스쿠니 신사 쪽을 향해 일관되게 구호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같은 이유를 시위가 끝난 뒤 나중에 주최 관계자 측과의 미니 인터뷰에서 알았다. 

 

"2006년부터 이 촛불시위를 시작했어요. 올해로 꼭 10년째가 됩니다. 우익들의 방해는 늘 있었던 것이고 경찰은 경찰대로 우리와 반대입장이니까 거칠게 나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평화를 지키자는 것이기 때문에 우익들의 행동에 개의치 않아요. 때문에 내년에도 촛불시위를 계속 할 것입니다."

 

'촛불행동실행위원회'의 실무담당 다나카 요시히데 씨의 얘기다.

 

촛불 시위는 약 1시간에 걸쳐 무사히 끝났다. 중간중간에 우익들의 과격한 언행과 고령의 일부 시위대 참가자들 때문에 초긴장 상태가 계속되긴 했지만, 수백여 명의 일본경찰들이 때맞춰 제지를 잘 해줘 별 사고없이 무사히 끝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해산식 겸 뒷풀이. YMCA로 돌아와 2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함께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내년을 기약했다. 이 자리에서도 유독 빛났던 두 명의 민중가수 손병휘 씨와 이정열 씨. 낮에 있었던 심포지엄 뒤 콘서트에도 함께 했던 그들이다.

 

▲ 20150808 야스쿠니 반대 촛불시위 뒤풀이   ©JPNews

 

 

 

그들은 일본 참가자들을 위해 기타를 매고 '백두산' '남누리 북누리' '나란히 가지 않아도'를 열창했다. 참가자들도 함께 두손을 위로 흔들며 따라 불렀다. 마지막 뒷풀이 자리라면 으레 그럴 듯한 포장된 인삿말이라도 오갈텐데, 이들에게는 그런 형식적인 겉치레마저 일체 없었다. 그저 마음과 마음으로 교감하는 평화의 염원만이 있을 뿐이었다. 

 

▲ 20150808 가수 이정열(왼쪽), 손병휘씨   ©JPNews

 

 

"2007년부터 매년 참가했어요. 98년부터는 일본의 진보단체인 '우타고에(노래소리)'와 연대를 하면서 교류해왔고요. 그런데 처음 참가할 때보다 지금의 마음이 더 간절해요. 한국은 이기기 위한 싸움을 하는데 비해 일본은 지키는 싸움을 하지요. 그런데 이기는 것보단 지키는 것이 요즘엔 더 절실해요. 그래서 일본 시민단체와 연대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한 운동을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전 일본 우익과 우리나라의 일베가 같다고 생각해요. 그 한편으론 우리 안의 일베와 우리안의, 소위 진보세력내에 있는 '빠'를 경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손병휘 씨는 일본의 시민단체와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다. 특히 의식있는 재일동포들에게는 민중가수로서 존경과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가끔 공연을 위해 일본에 오긴 하지만 이번 촛불행사 콘서트에는 처음으로 참가했어요. 그런데 일본의 어르신(연장자)들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평화를 위해 행동으로 나서신 것을 보고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젊은이들의 참가가 적었다는 것인데, 그래서 내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할 예정입니다."

 

가수 이정열 씨의 얘기다. 이 두 가수는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심포지엄 행사가 끝난 뒤 같은 장소에서 듀엣 콘서트를 가졌었다.

 

그러자 학생들을 대거 이끌고 이 행사에 참가한 이영채 게이센대학 교수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는 일본에서 역사문제 해결과 평화를 위한 시민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한일 관계에 있어서 동아시아의 큰 모순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입니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집단자위권, 남북문제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동아시의 모순인 이 야스쿠니 신사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올해로 10년을 맞는 촛불 시위지만, 자신의 아버지나 형제가 합사돼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이 10년이 100년처럼 너무도 길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지난 온 10년 만큼 앞으로도 더 10년 동안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 운동을 전개해 나갈 생각입니다. "

 

이번에는 게이센대학 학생들에게 촛불시위 참가에 대한 소감과 우익들의 과격한 방해공작에 대해 물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장면이 바로 우리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 놀라우면서도 신기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막무가내로 우기는 것이지만 우리들에게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어요. 그래서 걱정 안해요."

 

게이센대학 3학년 여학생 서너명이 우르르 몰려와 이구동성으로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면서 이같이 말했다. 더불어 이날 촛불시위 운동의 취지에 동감해 참석한 것이라는 단서를 굳이 붙이면서, 우익들의 과격한 행동에 대해서 반박했다. 낮의 심포지엄에도 참석한 학생들이다.

   

한편, 오후 1시부터 진행된 YMCA 아시아청소년 센터 지하 1층 심포지엄 행사장에는, '한다 시게루' 도쿄신문 논설겸편집위원이 참석, 현재 일본의 최대 현안인 안보관련법안에 대한 아베 수상의 목적과 그 파장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참가자들의 이해를 도모했다. 

 

YMCA 아시아청소년센터는 일제 강점기 시절 3.1운동의 견인차가 된 2.8독립선언이 있던 곳이다. YMCA 정문 오른쪽에는 2.8독립선언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그래서 매년 2월 8일이면 한국에서 YMCA 본부 관계자, 광복회 인사들이 대거 일본에 건너와 기념행사를 갖는다. 

 

이어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등장, "'군사력보유금지'와 '분쟁해결 수단으로써 교전권 불인정'을 두 축으로 하는 일본의 평화헌법(제 9조)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한반도의 남북문제를 포함한 동아시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한 키도 에이이치 오사카 대학 교수는, 침략전쟁에 대해 일본과 독일이 전후 70년동안 어떻게 전후처리를 해왔는지, 그 책임과 인도적 지원 등에 대해서 데이터를 곁들여가며 자세히 설명했다.  

 

유족들의 증언 또한 있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는 "아버지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경위를 5개의 일본 기록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아버지의 위패를 돌려 달라고 호소했다. 

 

일본 유족 대표 요시다 테쓰시로(73세) 옹은 "일본정부가 말하는 반성은 무엇인가? 침략전쟁에 대한 가해의 반성이 아닌, 일본이 전쟁에 패해 천황주권의 국체를 유지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자신의 아버지는 1942년 미얀마 해상에서 영국군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지만, 1957년에 일본정부가 가족과 의논도 없이 일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시켰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작년, 그 역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아버지에 대해서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요청서를 야스쿠니 신사에 보냈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이를 거부했다고 비난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유족들뿐만 아니라 명망있는 한일 시민운동가, 예술가들도 대거 참가해 자리를 빛냈다. 가수 손병휘, 이정열씨 뿐만 아니라 시대성과 사회성 짙은 그림으로 유명한 홍성담 화백의 "동아시의 야스쿠니즘-광주로부터 야스쿠니"의 특별영상이 상영됐다. 홍화백은 현재 도쿄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테마로 한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기도 하다. 

 

또한 80년대초에 일본언론들이 본명으로 표기해주기를 주장해 일본사회에 커다란 울림을 전해 준 재일동포 3세 피아니스트 최선애 씨가 아름다운 선율로 분위기를 달구었고, 이어서 손병휘, 이정열 씨가 무대에 올라 회장에 모인 참가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완벽하게 묶어 놓았다.

 

마무리 멘트로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정치탄압을 온몸으로 보여준 재일동포 2세 서승 교수가 "안보관련법안 통과 우려와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이날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심포지엄의 행사가 모두 끝났다.  

 

▲ 20150808 이희자 대표(왼쪽)와 서승교수    ©JPNews

 

그리고 저녁 7시. 그들은 다시 모였고 촛불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촛불행진이 끝난 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가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날 시위가 모두 함축된 마지막 일갈을 했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제기하고 이렇게 10년 째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어요. 전쟁 당시 일본정부는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어다 전장터에 밀어놓고 죽으니까 역시 자기들 마음대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를 했습니다. 우리 유족들이 돌려달라고 그리 반대를 하는데도요. 저는 우리 아버지가 일본 국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아요. 이는 유족뿐만 아니라 죽은자에 대한 폭력에 다름아닙니다. 올해에는 한일관계자들과 함께 독일에서 야스쿠니 신사 반대 촛불시위도 했어요. 호응이 대단했습니다. 다음은 유엔 인권회 차례입니다."

 

▲ 20150808 야스쿠니 반대 촛불시위 뒤풀이   ©JPNews

 

▲ 20150808 야스쿠니 반대 촛불시위 일부 참가단 기념촬영   ©JPNews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여기는 일본" 오바 15/08/11 [20:45]
 조선땅에" 으로 착각 하는 건 아닌지 
거지.건성, 개새끼들 15/08/11 [20:50]
나믜나라에 와서 죽을만큼 고생하고 살게되었으면 조용히 쳐밖혀 살지  같은 한반도 인 으로서
일본" 정부" 에 창피하고. 부끄럽다, 저러니까 해이드 스피치 쳐 당하지.
문세광 15/08/11 [20:57]
 데모집단들  북송선 태워서   지상낙원으로 보내버려라 ... 요즘경기 도 안좋은데.북한으로 
그들의조국 북한, 으로 보내주세요 ...  제발" ㅠㅠ
111 15/08/13 [10:05]
-
마리앙투와네트 15/10/25 [19:30]
  반대 좋아하시네" 저들 이야말로" 정부를 상대로 폭동 을 일으킬  행동이 꿈틀 거리고 있다.
도쿄 에서 현대판 관동 대지진이 한번도 일어나야 한다,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JP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