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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담화 수정하면 일본 고립될 것"

日고노담화 수정 움직임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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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기자
기사입력 2014/02/25 [12:35]

일본 언론의 설문조사 결과,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수정에 찬성하는 의견이 약 60%를 기록했다.
 
산케이 신문사와 후지뉴스네트워크 측은 22, 23일 이틀에 걸쳐 합동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과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는 답변이 58.6%에 달했고, 수정하지 말아야한다는 답변은 23.8%에 그쳤다. 또한, 위안부 실태 조사의 방식이나 담화가 나온 경위 등에 대해 "재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66.3%에 달했다.

일본 우익세력은 위안부 강제동원에 일본군이나 일본정부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군이나 정부가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도 없이 단순히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만으로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하는 '고노담화'를 발표했다며, 고노담화의 수정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의 이 같은 논리가 통한 듯, 일본 대중들의 여론도 점점 '고노 담화' 수정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 20일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노담화 발표의 근거가 된 위안부 할머니 청취조사 내용을 재검증해야 한다는 견해에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2.9%를 기록, 1월 4,5일 이틀에 걸쳐 실시한 전회 여론조사에 비해 0.8% 증가했다. 비지지율은 31.9%(전회 32.5%)였다.
 
◆ "일본, 고노담화 수정하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
 
일본 우익들은 일본 군과 정부의 위안부 강제동원 관여를 부인하면서 "강제동원 사실을 증명할  기록이 없다"는 점을 항상 근거로 내세운다.
 
이에 20년 가까이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는 야노 히데키 '강제연행 기업책임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바보 같은 소리"라고 일축했다.
 
▲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  ©JPNews


"위안부제도는 일본군이 만든 제도다. 군이 그런 장소를 제공해 여자들을 데려다 놓고 병사들이 이용하도록 했다. 이는 사실이며 다들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만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를 부인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위안부는 강제동원이 아닌 자발적 참여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조선 여자 중에 알면서도 간 사람도 분명 있다. 있다고 본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속거나, 납치 당하듯 끌려갔다."
 
그는 일본 정부와 군이 강제동원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강제 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말하는데, 강제 연행해오라고, 납치해오라고 '법'에 적어놓겠는가. 법에 납치하라고 쓸 수 없다. 이를 두고 증거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증명하는 증언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런 건 관청의 기록에 쓰여있지 않다. 일본의 권력은 전쟁 직후 대량의 문서를 불태웠다. 증거를 인멸한 것이다. 없어진 문서가 굉장히 많다."

"법률에 위법적인 행위를 어떻게 적겠는가. 군이 위안소를 만들었다는 건 나카소네 전 총리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말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위안소의 위안부를 데려오는 건 제도를 만든 이가 하지 않는다. 이런 건 야쿠자가 하거나 사설업자가 여자를 사서 데려오는 것이다. 물론 돈을 줘서 유혹하기도 하겠지만, 강제로 데려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위안소에 들어간 이들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는가. 사실상 감금 아닌가. 나간다고 해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것이, 강간해놓고 강제로 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얼굴을 붉혔다.

"위안소에 들어간 위안부가, 자기가 관두고 싶다고 관둘 수 있었나. 자유가 있었나. 난 오늘 한 사람만 받겠다고 해서 한 사람만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나.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위안소는 군 직영 아니었나. 어디가 강제가 아니란 말인가."
 
그는 고노 담화 수정 움직임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문제이면서도 국제적인 문제다. 유엔에서 여러차례 다뤄진 것은 물론 미국 하원, 유렵 의회, 네덜란드 의회에서 결의안이 올라왔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93년에 고노담화를 내고 이 문제에 대해 사죄하고, 아시아 여성 기금을 만들어 피해자들의 보상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명했다. 이 두 가지가 유일한 해명이자 변명인데, 이를 부정하려 하는 것인가"
 
그는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고노담화 수정, 한 번 해봐라. 사태는 심각해질 것이고, 일본은 고립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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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해 !! 엄청나 !! 14/06/08 [18:55]
요즘 한국의 케이블 티브이에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방영 중입니다. [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 ]이라고 명명된 이 프로그램의 기본 규칙은 다음과 같지요.

[ 매 방송 때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주경기'를 진행한다. 승자는 자동으로 다음 회차에 진출할 권리를 획득하며, 패자는 1:1 진검승부로 맞붙는 '죽음의 경기'를 한 번 더 치러야 한다. 이 때, 죽음의 경기에서 패자와 맞붙을 상대는 주경기에서의 승자가 나머지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을 임의로 선택해야만 한다. 죽음의 경기에서도 패한 사람은 최종 탈락자가 되어 다음 회차에서 하차한다.
이런 식으로 총 12회의 방송을 거쳐 13명의 출전자 가운데 마지막 1명의 우승자가 남을 때까지 게임을 반복/진행한다. ]

1년 만에 시즌 3까지 찍었으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붕대로 칭칭 감은 미라 아저씨가 브라운관에 갇혀 사회를 보는 게 무서웠을 뿐더러 어릴 때 실수(!)로 봤던 일본의 어떤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제목은 '배틀로얄(Battle Royal)' - 네, 정말 끔찍했어요. 단순히 납량특집 공포영화인 줄만 알고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봤다가 한 10년쯤 정신분열증으로 고생했지요. 아무리 영화라지만 너무 한 것 아닙니까? 누군가 프랑스 혁명기의 공포정치를 가리켜 '사람 목이 지붕에서 기와 떨어지듯 한다'라고 했던 표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싶었어요.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막을 올린 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심각한 학급붕괴로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강력한 생존본능을 심어주기 위해 '신세기 교육개혁법'이 공표된다. 전국의 중학교 3학년 가운데 매년 한 학급씩 추첨으로 선발해 통제된 장소에 가둔 뒤 물과 식량, 무기만을 지급해 주고 마지막 1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도록 시킨다.
단, 지급받은 것 외의 무기를 사용할 경우 즉시 사형. 제한 시간인 3일 안에 2명 이상 남아 있어도 전원 사형. 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동으로 사형당한다. 그럼 게임 시작! ]

많이 닮았죠? 구조적으로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에선 자본을 이용한 탈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지요. 탈락을 예비한 13명의 지니어스 가운데 12명은, 영화 '배틀로얄'에서처럼 서로를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가넷'으로 상징되는 게임상의 화폐를 판 위에 쏟아놓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참고로 '가넷'이란 본 방송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로서, 최종 우승자는 게임이 끝났을 때 1가넷을 대한민국 화폐 100만 원과 바꾸어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토록 열을 올려 게임을 진행시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게임을 통한 의사죽음(pseudo death)이 가능하다면 배틀로얄의 세계관은 불필요한 것 아니었을까요?

안 그래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은 충분히 정글에 가깝습니다. 강하고, 보다 똑똑한 학생들이 처진 학생을 밟고 일어서지요. 그렇다면 왜 굳이 학생들의 손에 총을 쥐어 주어야 할까요? 자본이나 학벌, 권위만으로도 가능한데 말이죠. 그래서 영화가 개봉될 당시에는 불평등한 교육판이나 사회구조에 빗대어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후 10년간 한국사회는 구조개혁을 위해 자본 외의 대안을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맞아요. 적어도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필두로 하는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배틀로얄법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략 20년이라고 하죠?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 격차가. 그렇다면 일본에선 1990년대 초반부터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겠네요?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자본주의가 어떤 한계에 부딪쳤다는 경고음이 요란스럽게 울려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인간들은 자본의 규칙에 얌전히 따르지 못하고 전쟁을 통해 당면한 모순을 풀려 하는 거죠?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배틀로얄로 규칙이 바뀌면 그 때부터 인간들을 짓누를 공포는 진짜 죽음이 될 텐데요. 게임판이 아닌 진짜 세상과 작별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싫어서 법과 제도를 도입한 것 아니었습니까? 그럼 충실히 따라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의 정점에서부터 깨져나가는 중입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만일 현시점에서 우리가 체제에 내포된 어떤 모순을 찾지 못하면 게임의 법칙은 곧 배틀로얄로 바뀔 듯 합니다.

사실 '더 지니어스'와 '배틀로얄'은 동양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이기론(理氣論)의 측면에서 짝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며,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쉽게 설명하기란 어렵지만 간단히 예를 들면 다음과 같지요.
우선, 한 인간은 유한 개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어디에서부터 자르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방 안에 충분히 들어가니까요. 제 아무리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인간일지라도 유한을 통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소리입니다. 일찍이 이시히 시로 씨가 학문에 바탕을 둔 이것을 기(氣)라 하지요. 문제는, 이것의 역(逆)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한 인간을 원자 단위로 분해한 뒤 거꾸로 쌓아올리는 일이 가능하다면, 분해되기 직전의 인간과 똑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은 한 판의 바둑을 감상해 보면 압니다. 바둑이 막바지에 이르면 마주앉은 두 고수가 끝내기에 들어가지요. 패(覇)를 비롯한 자잘한 수순들이 예비된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서 수순표를 되짚어 보면 무슨 경로를 밟아 이곳까지 왔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직 마지막 수가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 바둑은 정확히 어떤 경로를 거쳐 끝이 날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두고 있는 고수들도 모릅니다. 확언할 수 있는 건 바둑이 곧 끝나리라는 기대와,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상대방이 일으킬 수 있는 변동의 폭이 작아진다는 사실 뿐입니다. 아니, 이조차 틀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패가 남아 있다면 최후의 한 수가 떨어지기 전까지 결코 안심할 수 없으니까요!

패는 정말 오묘합니다. 남은 수순 가운데 패가 끼어 있다면 이론상 같은 자리에 돌을 수 백, 수 천 번이라도 다시 놓는 일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양장기와 달리 바둑을 컴퓨터로 구현하는 작업은 어렵습니다. 초보자용 9줄 바둑이라면 인공지능으로 구현하는 일도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패의 발생 확률은 바둑판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급격히 증가합니다. 19줄 정식 바둑에서 하나의 패가 일으킬 변동의 폭은 상상을 초월하지요. 뽕나무 밭이 변해 바다가 됐다는 식의 해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까닭입니다.
더불어 '패의 법칙'은 이미 놓여진 바둑돌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아직 두어지지 않은 텅 빈 공간을 통해서도 구현이 가능합니다. 수순의 오묘함 때문입니다. 똑같은 정석이라도 어떤 수순을 통해 정점까지 도달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인식에 미칠 파장이 달라지거든요. 초기에 결정된 단 하나의 수순 착오가 판 전체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경우가 종종 발견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판의 바둑은 반드시 끝이 나지요. 이를 달리 말하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한 판의 바둑을 수순으로 분석하는 일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성과를 거두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왜 거기에 돌이 놓였을까요? 계산식으로는 답이 안 나옵니다. 오직 그것을 둔 인간만이 알고 있으니까요.

"내 맘이여!"

최후의 한 수가 놓이기 직전 승패가 심심치 않게 바뀌는 까닭입니다. 재미있는 예가 많지만 각설하고, 이(理)란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발현할 지 모르니까요. 반면 기(氣)는 쉽게 파악할 수 있지요. 그것을 완성케 한 세상의 이치를 모르더라도 관찰을 통해 인식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배틀로얄의 세계관이 그토록 이질적으로 다가왔던 까닭이 여기에 있는 듯 합니다. 메이지유신이 시작되고 2차 세계대전의 패망으로 종결되기까지 약 70년. 관찰된 형상이 기존의 상식과 부합하지 않을 때 마치 요괴의 형상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 후 다시 70년이 흘렀습니다. 설마 아베 아저씨가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패를 걸어 왔으려고요?

이처럼 이와 기가 같지는 않지만, 기를 통해 이에 접근하는 일도 어느 수준까지는 가능합니다. 비록 현장의 위기감을 못 느낄지라도 하수들은 종종 고수들의 수순을 따라 놓아보며 선학의 깨달음을 배워 익히니까요. 최근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됐지요. 유전자를 조작해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일은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의 고리에 내포된 생명의 의지를 분석하려는 연구가 한창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아시아-태평양 전쟁사를 공부한 지금에 와서야 배틀로얄이 그토록 끔찍한 각본으로 씌어진 까닭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살아남은 학생의 고통을 알게 되었지요. 그것은 인간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정말 싫었다고요! 미웠습니다.

정말로 '배틀로얄'을 찍고 싶다면 실세계에서 예를 찾아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물과 식량, 그리고 무기 - 그런데 이 때 무기란 통제된 사회로부터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역사를 되짚어 토해낸 이지의 산물이어야 합니다. 인간 밖에 인간이 없으니까요. 어디, 핵무기 정도면 근사한 비유가 되겠지요? 자~ 그러면 물과 식량, 그리고 핵무기. 지금 한반도 주변에서 이것을 갖고 있지 않은 나라가 몇이나 됩니까?

[ 배틀로얄법 제 2조 - 지급받은 것 외의 무기를 사용할 경우 즉시 사형 ]

각성하시지요. 저흰 아직 무기를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이래서야 후속편 '배틀로얄 - 레퀴엠'에서처럼 통제된 담장을 뚫고 탈출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도리어 짐만 되겠죠. 그러니 빨랑 결정하십시오. 저희에게 무기를 나눠준 뒤 함께 담을 뚫을 작전을 세우시던가, 아니면 이 자리에 남아 게임의 규칙이 바뀌는 것을 구경이나 하시란 말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 때 현실을 가르고 있는 규칙이 게임 속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은 프로그램 속 가상의 현실에서 뛰쳐나와 현실이 되고, 핵전쟁의 공포로 상징되는 '배틀로얄'은 말 그대로 가상의 시나리오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유감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핵전쟁의 공포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지요. 북한이 저러는 것도 다 뻥인 줄만 알거든요.

"설마 핵전쟁이 정말로 벌어지려고. 도대체 왜?"

그러게요. 도대체 왜 우리는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라고 하는 천재적인 게임의 규칙만 잘 따르면 인간은 충분히 의사죽음을 맛볼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라면 그 결론에 순응해야지요!
그런데 최첨단의 기술과 사회과학기법이 발달한 오늘날, 인간들은 기(氣)를 통제해 이(理)의 발현을 억누르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해졌지만 이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통제당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발현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패(覇)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한 수가 아직 놓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방증합니다. 따라서 원하는 시간과 장소와 하나의 의지를 발현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근혜 언니가 운다고 될까요? 안 됩니다. 북한이 위협한다고 될까요? 안 된다고요. 아베 아저씨가 약 올린다고 될까요? 정말로 안 된단 말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미국의 품 속에서 하나 되는 세상을 꿈 꾸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아이언맨 아저씨의 심장이 썩어 들어가는 중이겠지요. 오우~ 불쌍한 토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좌우로 움직이지 않고는 세상을 움직일 방법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네 자신이 이미 어떤 의미에서 진격의 거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다들 자기 자신을 잡아먹고 여기까지 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래도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텅 빈 바둑판을 앞에 두고 인생을 구가할 자유를 얻는 반면, 어떤 사람은 마지막 패의 자리에 쑤셔박혀 끊임없이 되따이는 바둑돌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좀 불공평하지 않나요? 텅 빈 바둑판을 앞에 둔 사람들은 보통, 이후에 찾아올 수순을 한 치 앞도 예상 못하는 바보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반면에 한 판의 바둑을 거의 둔 사람들은 짐작으로나마 나머지 수순을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메이지유신기의 일본이 광활한 시베리아의 신천지나 신대륙을 차지한 사람들을 어리석다 여겼겠지요. 당시 조선인의 눈으로 관찰했을 땐 그런 일본이 더 어리석게 보였는데 말이죠. 진리의 문을 어디로 가서 두드리는 겁니까?

게임의 규칙에서 통용되는 의사죽음을 따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듯 합니다. 당장 인류가 배틀로얄을 시작한다면 - 사용될 무기는 둘째 치고라도 - 통제된 영역의 크기를 어디까지로 잡으면 좋을까요? 북한과 남한? 한반도와 일본? 한일동맹과 중국?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아시아와 시베리아? 혹은 유럽? 러시아와 미국? 이 바둑판의 범위를 가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휴~ 일단은 다행이네요. 그 경계의 끝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배틀로얄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 남극 대륙까지 개발의 손이 뻗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경계의 정점이 찍힌 셈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다툽니다. 판이 차있는 동안엔 그 자리에 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패의 되따임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둑판을 비워두어야 할까요? 하지만 비워놓은 그 자리를 다른 돌이 차지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입니다. 자연계의 최강자인 호모 사피엔스 린네는 동족끼리 죽이곤 하지요. 가득 채워놓은 경우에도 역시, 남은 수순이 비교적 명확하게 보인다는 장점은 있지만 마찬가지로 이 모든 고통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입니다. 한 판의 바둑이 다 두어지고 나면 돌들은 판 위에서 쓸어 내려지고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야만 하니까요. 원숭이들을 다 죽이고 나면 호모 사피엔스 린네는 필연코 서로를 죽여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은, 인류 최후의 무기가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판은 '배틀로얄'보다는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에 가깝다고 봐야겠지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체제 안에 내포된 모순을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강조하지만, 우리가 현시점에서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게임의 규칙은 도로 배틀로얄로 바뀔 것입니다. 그 서막이 올랐다는 징조가 여러 곳에서 관찰되고 있으니까요!

한 인간은 의사죽음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남는 게 가능합니다. 자신이 쫓겨난 게임 속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봉쇄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위치한 판의 규칙을 배틀로얄로 바꾸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함정을 메우기 위해 각국은 지식 기반의 통제체제를 강화하고 법과 질서로 엄하게 다스리고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아직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곧 도달하고 말 것입니다. 체제의 발전에 발 맞추어 인간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 들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낸 규칙으로부터 쫓겨난 자들을 천시하지요. 정녕 이 구습이 정치와 교육을 일신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일까요? 헛일입니다. 지난 5천 년 동안의 한반도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그런데 시즌 1에서 시작된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은 다음과 같은 주경기로 1회전을 시작했습니다. 규칙은 아래와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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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 1회전 - 핸더랜드의 숫자 카드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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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3명의 플레이어는 숫자 1이 적힌 카드 세 장, 2가 적힌 카드 세 장, 3이 적힌 카드 세 장. 이렇게 총 9장을 받는다.
b. 서로 카드 한 장씩 숫자가 보이지 않도록 내놓은 뒤, 뒤집어 보았을 때 보다 높은 숫자의 카드를 제시한 쪽이 승리!
c. 서로 같은 숫자의 카드를 냈을 경우에는 무승부이며, 이 때 양쪽의 카드는 승패와 관계 없이 폐기처분 한다.
d. 대결 상대를 임의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며, 대결 횟수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e. 단, 제한 시간 안에 카드를 모두 소진해야 하며, 플레이 시간이 종료된 뒤에도 남은 카드를 갖고 있다면 자동으로 죽음의 경기로 직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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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3명이 9장의 카드를 나누어 받았기 때문에 전체 카드의 매수는 13 x 9 = 117장. 2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둘씩 짝을 지어 판 전체를 무승부로 조작하려 해도 한 장의 카드가 누군가의 손에 반드시 남게 되지요. 그래서 이 13명의 지니어스들은 정글의 문을 열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으로 돌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바로 이 게임을 시작하게 만든 그 동기에 따라 주경기에서 한 명의 탈락자만 나오게 될 경우, 그와 죽음의 경기를 펼치게 될 상대는 누가 점 찍었을까요?

[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 - 죽음의 경기에서 패자와 맞붙을 상대는, 주경기에서의 승자가 나머지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 지목해야만 한다. ]

탈락을 예비한 한 명의 후보자가 결정되어 있다면 나머지 12명은 전부 무승부를 맞을 가능성을 안습니다. 12 x 9 = 108장. 이번에는 2로 나누어 떨어지지요. 대결 상대와 횟수에 제한이 없으므로 하나의 풀에 갇힌 12명이 무승부를 조작하기란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게임의 법칙에 따라 주경기에서의 승자가 나머지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을 지목해 죽음의 경기로 보내야만 합니다. 죽음의 경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꼴찌와 맞붙을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나머지 제자 12명 가운데에는 유다와 대적할 상대를 지목할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었던 것입니다.

... 저는 게임의 룰 브레이커로서 처음부터 이 판이 잘못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고노담화를 수정한다고 해서 자국 정부를 비난하는 일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란 거지요. 이래서야 어디 같이 일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 아이언맨 슈트를 하나 갖고 있어요. 그래도 음악은 터미네이터가 좋더라고요.

(^___^)乃 ... 뚜둥.둥.두둥. 뚜둥.둥.두둥. 빠바밤~~ 빠바~바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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