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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오자와, 아베 정권 반드시 무너트린다

오자와 이치로 생활의 당 대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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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순
기사입력 2014/01/02 [08:55]

일본정치사에서 현존하는 금권정치의 막둥이로 불리우는 오자와 이치로(72세) '생활의 당' 대표가 1일, 자택에서 가진 당 소속의원들과 당원들이 모인 신년회에서 아베 정권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강자의 논리에 입각한 정권은 반드시 파탄을 맞는다. 우리들의 주장을 국민들이 이해해줄 날이 곧 다가 온다."
 
오자와 대표는 아베 정부의 경제정책(일명 아베 노믹스) 때문에 빈부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비판하고, 국민의 생활이 제일 우선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일갈했다.   
 
이처럼 아베 정권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오자와 대표의 정치 성향은 원래 자민당에 가까웠다. 80년대 금권정치의 효시랄 수 있는 고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의 영향력이 급격히 하락한 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수상에 이어 뉴리더 3인(다케시타 노부로, 아베 신타로, 미야자와 기이치)이 급부상했을 때 막내정치인으로 얼굴을 내민이가 바로 오자와 이치로 의원이었다.
 

 

고 다나카 전 수상의 '다나카파'의 마지막 정치인으로(나중에 반기를 들어 다나카파를 탈퇴) 머리 회전과 정책 기획력이 뛰어나 자민당 내의 '책사'로 자타가 인정하던 오자와 의원은, 뉴리더 3인이 차례로 수상을 지내고 나면 언젠가는 자신이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자신만만 했다. 
 
하지만 뉴리더 3인 중 다케시타, 미야자와 두 정치인은 차례로 수상이 되었지만 아베 신타로, 즉 현 수상인 아베 신조의 아버지인 그는 외무장관을 끝으로 일찍 병사해 끝내 수상직에 오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오자와 대표가 아베 신타로 대신 그의 뒤를 이은 것도 아니었다. 자민당 내의 입지도 다지고 영향력도 높여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번번히 좌절됐다. 게다가 2천년도에 들어와서는 일명 '헨진(変人・기인)' 이라고 불리며 사진집을 내고 파벌정치 타파를 외치고, 일본열도에 '탤런트 정치 바람'을 일으키며 급 부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2001-2006년)에 의해, 장장 5년동안 수상직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그 후에는 버블경제의 영향으로 일본 정국이 '잃어버린 10년'으로 접어들자, 전후 자민당의 1당 독무정치에 신물이 난 일본국민들이 민주당을 선택, 또다시 수상의 길은 멀어졌다.    
  
헌법개조론을 주장하며 보수 우익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던 오자와는 그러나 고이즈미 정권 이후부터는 진보성향을 띠기 시작, 자민당에서 탈당해 신당을 결성하고 종국에는 민주당과도 합당을 한다.
 
현재는 정치자금 스캔들로 잠시 운둔 생활을 하다가 다시 '생활의 당'을 창당하고 그 대표가 돼 '오자와 부활'을 꿈꾸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발언이 일본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그가 가진 능력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일본정치가에서는 괄목할 만한 정책기안을 아주 잘 만들어내는 '책사'로 통한다. 책사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 그 능력을 발휘하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특히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다'라는 논리에서 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그가 아베 정권 타도를 외쳤으니 일본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한국과는 이런저런 일로 적지 않은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인연 때문에 일본내에서 우익들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당했다.
 
1999년 4월, 일본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독립운동가의 묘지를 찾아 참배한 일로 일본 우익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또한 2000년도에는 자신의 국제담당 비서에 진보적인 한국여성을 채용해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 우익들이 오자와 대표가 대중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공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서울 국민대학교에서 있었던 그의 강연내용. 한때는 일본 극우파들 사이에서 오자와 대표가 재일한국인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2009년 12월 12일, 민주당 대표로 한국을 방문, 국민대학에서 있었던 강연에서 그는, "일본은 중국 동북부의 기마민족이 조선반도에 토착화 한 후, 일본에 건너와 야마토 조정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에가미 나미오(일본국가의 형성은 4세기말에서 5세기 전반에 걸쳐 백제시대 부여의 기마민족이 일본에 건너와 국가를 형성했다고 주장한 일본의 고고학자. 도쿄대 교수역임)교수의 연구내용을 소개한 뒤, 일본황실계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조선반도 남부(백제)의 권력자가 바다를 건너와 나라(奈良)에서 정권을 수립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에가미 선생은 일본국가의 기원에 대해서 기마민족정복설을 강하게 주장하는 분입니다. 이 선생의 설에 의하면 조선반도 남부, 지금의 한국에 해당하지만, 이 지역의 권력자가 다분 바다를 건너 규슈지역에 도착해 미에현에 정착하면서, 지금의 나라현에 들어가 나라분지에서 정권을 수립했습니다. 이것은 일본신화에도 나오지만, 확실히 간무천황의 동정이라고 하는 초대천황의 말이지만, 에가미 선생은 그같은 설을 중심으로 주장한 것입니다.    
 
좀더 강하게 말해버리면 제가 일본에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정도로 하겠습니다. 다분히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때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환담하는 자리에서 "내가 수상이 되면 독도영유권을 포기하겠다. 대신 시마네현의 어민들의 어업권을 보증해달라"고 말을 한 것(2012년 8월 30일자 동아일보)으로 보도됐지만, 오자와 대표는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이외에도 오자와 대표는 재일동포의 참정권에 대해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정치인 중 한명이다.
 
"아무 쓸모없는 늙은 말이 되어 죽어갈 수는 없다. 국민에 대한 책임이 아직도 남아 있다. 힘을 합쳐 좋은 해로 만들고 싶다. 국민의 생활이 제일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치단결해야 된다."
 
하지만, 매년 모일 때마다 1백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북적댔던 신년회가, 올해에는 작년 7월 참의원선거에서 대패, 당소속 의원들이 9명으로 대폭 줄어, 이날 모인 사람은 불과 40여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렇듯 한국과도 많은 인연이 있는 오자와 대표의 신년회 일성은 아베 정권타도였지만, 앞으로 그가 얼마만큼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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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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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밉상 14/07/06 [08:35]
 부정부패 두목놈이 무슨 할말 있다고, 본인 수준 으로 잣대 로 일본인 들 호도하지마라.
도적놈아" 그꼴같잖은년" 민주당년" 과 꽅같은 수준이다.돈" 처먹고 오리발 내는 저얼굴 좀봐라
일본" 공산당 과 한패패거리 놈 아니냐"  더럽고 엉큼한놈" 저놈이 아베 수상을 씹고있네니랑ㄷ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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