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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꿈꾸는 일본, 2013 현주소

제2의 일본 부활, 아직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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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순
기사입력 2013/04/20 [11:38]

80년대 일본에는 남성차별적인 용어가 대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사회적 현상으로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할 만큼 일본인들에게 회자되었던 ‘누레오치바(濡れ落ち葉. 젖은 낙엽)’라는 이 말은, 몇 년 후 1989년 그 해의 유행어 상을 타기도 했다.
 
누레오치바 란 말 그대로 ‘젖은 낙엽’을 뜻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해석하는 누레오치바라는 말은 대단히 복잡하고도 미묘하다. 단순히 비에 젖은 낙엽에 빗댄 것이 아닌, 일본 샐러리맨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깔아뭉갠’, 너무나 비하적이고 남성차별적인 일본여성들이 즐겨 쓰던, 그러나 일본남성들에게는 자조적으로 읊조리던, 시대적 상황이 만든 조어다.
 
80년대는 일본에게 있어 가장 찬란한 ‘황금기’ 시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일본인들은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사실은 이 ‘잃어버린’의 시간이 바로 이 80년대의 전성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80년대의 일본은 한 마디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그 자체였다. 경제대국으로서 세계 제2위를 위상을 떨치고 있었고, ‘made in japan’은 세계 어디를 가도 넘버원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실제로 80년대의 한국에서도 니콘 카메라나 소니 워크맨, 코끼리 밥통은 일본여행자의 필수 관광상품이 됐다. 오죽했으면 일본여행을 다녀오는 고관부인들이 떼지어 코끼리 밥통을 사 들고 입국하다가 공항에서 단체사진처럼 찍혔을까. 그만큼 일본상품은 그 자체가 브랜드였다.

일본경제의 자산규모도 최고점에 달했다. 특히 토지를 비롯한 부동산과 주식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고, 일본의 대기업들은 앞다퉈가며 해외의 대형빌딩들을 사들였다. 매년 성장률도 5%(예86-89년)를 유지했다.

문화산업도 정점을 달렸다. 허리우드 영화의 자본가가 됐고, 그래서 히트하는 허리우드 영화 배경 화면에는 늘 일본식당이나 신사, 혹은 일본음악이 백뮤직으로 깔렸다. 또한 완성도 높은 빼어난 영상의 애니메이션은 유럽인들조차 마니아 군단이 되게 했고, 한국에서는 청소년들이 일본만화를 보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는 촌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수십여 년에 걸쳐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는 대작 시리즈가 줄을 이었다. 북한의 고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좋아했다는 영화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 1969-1995년까지 총 48편)’와 ‘낚시바보(釣りバカ: 1988-2009년까지 총 22편)’가 해마다 제작돼 극장에 걸렸고, 드라마에서도 역시 광활한 홋카이도 대자연을 배경으로 십 수년에 걸쳐 북의 나라에서(北の国から: 1981-2002)가 제작돼 방영됐다.

이 같은 대장정의 역작들은 모두 자본력에서 오는 자신감과 여유로움의 소산물이었다. 말하자면 일본경제의 전성기 80년대는 곧 일본문화계에서도 황금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잃어버린 10년은 고사하고 이제 잃어버린 30년을 읊어야 할 시점에, 일본경제는 ‘대국’이란 말을 감히 붙이지 못할 만큼 마이너스에 가까운 제로성장(0.7~8%)을 거듭했고, 과거 세계 어디를 가도 통용되던 일본문화는 어느새 한국음악, 한국드라마, 한국음식으로 소위 ‘한류’로 그 트랜드가 바뀌었다.    

사회회전도 빨랐다. 일본은 시스템 사회다. 톱니바퀴처럼 사회구조가 이루어져 체계적으로 구성된 조직이 와해되지 않는 한, 일본사회는 자동적으로 잘 돌아간다. 단 정교하게 맞춰진 그 톱니바퀴는 늘 주기적으로 부품(구성원)을 바꿔 주어야 하며, 적당한 시점에서 기름칠을 해줘야 한다. 그 부품은 다름아닌 일본인이며 기름은 돈이다.

‘누레오치바 인간’, 바로 이 시스템 사회로부터 ‘정년퇴직’이란 명분아래 아웃사이더가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남성들이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됐다는 것이다.

80년대만 해도 일본남성들은 ‘회사인간’이라고 해서, 한 직장에서 평생을 몸바쳐 일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알았다. 지금은 일본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져서 과거처럼 유・불리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회사를 위해 충성을 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직장인으로서 회사 일에 올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올인의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직장에서 밀려난 아웃사이더들은 가정에서는 부인으로부터 ‘껌딱지’ 취급을 받았다. 수십여 년 간 회사 일만 하다 보니 친구는 물론 대인관계가 서툴렀고, 또한 혼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취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부인이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녔다.

사실 ‘젖은 낙엽’은 땅바닥에 착 달라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한편에서는 직장도 떨어지고 힘도 떨어져서 어깨가 축 늘어진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순화시켜 표현을 했지만, 좀 더 적나라한 의미는 남편을 자신으로부터 떼어내고 싶은 ‘껌딱지’와도 같다고 해서 일본 부인들이 만들어 낸 조어였다. ‘껌딱지’라는 말이 워낙 경박스러운 느낌이어서 ‘젖은 낙엽’으로 대체시켰을 뿐이다.

이 같은 부부관계는 나중에 ‘정년이혼’ ‘황혼이혼’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한때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80년대의 ‘젖은 낙엽’ 세대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제 2의 경제대국 일본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 그것도 아베 정권을 앞세워서 말이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수상관저 홈페이지

 

아베 정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번이 두 번째 집권이다. 첫 번째는 2006년 제 90대 총리로 취임했고 1년 후, 10대 때부터 앓아온 만년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으로 사임했다.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 제창을 하며 최연소 국무총리로 의기양양하게 출범했던 아베 정권은,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많은 트러블만 야기시킨 채 쫓겨나다시피 권좌에서 물러났다.

아베 내각 대신들의 잇따른 추문(애인 관사출입, 공금횡령 등)과 자살 등으로 고이즈미 정권이래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는가 하면,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는 이 같은 민심이 73석의 투표의석 (비례대표제외) 중 37석 밖에 못 건지는 결과로 이어져, 제1당을 야당인 민주당에게 내주는, 일본언론의 표현대로 ‘역사적인 대 참패를 기록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국내외적으로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 헌법개정, 일본군위안부 부정발언 등은 일본의 백그라운드였던 미국마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결국, 아베 수상은 2007년 9월 10일 임시국회에서 “정책실행내각으로서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만들기 위해 모든 힘을 쏟겠다”는 강력한 소신표명을 한 지 이틀 만에 전격적인 사임선언을 해 일본국민들을 경악시켰다. 그리고 다음날 병원에 입원해버렸다.

이를 두고 일본언론에서는 ‘전형적인 찌질이 내각’ ‘전형적인 부잣집아들의 무책임한 언동’ 등 신랄한 비판이 이어지고, 이때의 아베 정권 실각이 야당인 민주당에게 정권을 내주는 빌미가 됐다

하지만 당시 아베 수상이 스스로 정권을 내준 것은 실정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그 보다는 그의 건강 문제가 결정타가 됐다.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의 악화로 10분 이상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설사가 계속됐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아베 수상의 측근만이 아는 극비사항이었다. 업무로 외빈을 만날 때도 설사가 멈추지 않아 식은 땀을 흘리며 대담을 해야 할 만큼 당시 아베 수상은 생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냈다(수상관저 출입기자 증언).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아베 수상 자신이 국내외적인 실정과 병마를 극복하려는 의지 한 번 나타내지 않고 스스로 도태해버렸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언론에서는 그의 난병에 동정을 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전형적인 부잣집 아들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꼰 것이다. 

그런데 수상재임 1년 동안 아베 정권이 한 것이라고는 국내외적으로 끊이지 않는 설화와 실정 같은 무능력뿐이었는데,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보무도 당당하게 금의환향 한 것처럼 또다시 수상이 되어서.

흥미로운 것은, 현재의 아베 수상이 제 1차 집권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우익성향이 재무장됐고, 육체적으로는 꾸준한 치료덕분인지 우선 겉으로 보기엔 강단 있는 몸이 됐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의욕만 앞섰던 1차 때와는 달리 정제된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과거의 부잣집 아들의 찌질이 이미지는 간 곳이 없고 오로지 ‘화려한 컴백’만이 눈에 띄게 부각됐다.

이런 아베 수상의 변모에 대해 한 시사주간지 편집장은 이렇게 평했다.

“실제로 아베 수상이 단단해졌어요. 그 동안 물밑에서 사람도 많이 만났고 세상 공부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를 떠받치고 있는 우군들이 원로 급 정치인들이고 실제로 막강한 백그라운드가 되고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친다고 합니다. 첫 번째 정권 때는 주위에 온통 수상이 되려는 라이벌 정치인들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정적도 없고요. 게다가 일본의 부활을 꿈꾸는 고령세대들이 아베 정권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어, 현재의 아베 내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정부가 돼서 돌아왔습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베 정부는 현재, 3제로 현상 타파(제로금리・제로물가・제로성장) 와 오랜 기간 난관에 봉착해 있는 고령자연금, 영토(독도. 센가쿠열도) 문제 해결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아베 수상은 취임하자마자 엔고현상으로 수출업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제조업을 위해 엔화를 대폭 떨어트리는 금융정책을 실행했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눈에 보일 정도로 엄청난 돈을 시중에 풀고 있다. 그래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돈을 마구 풀고 있으니 사업계획서를 잘 만들어 해당 부서를 찾아가라는 말이 교과서처럼 나돌고 있다. 이를 언론에서는 ‘아베노믹스’라고 칭한다.

그럼 아베노믹스의 최종 목표는 과연 무엇일까? 이는 다름아닌 ‘제 2의 일본부활’이다. 80년대의 황금기 시대로 다시 한번 돌아가보자 라는 모토인 것이다.

“80년대의 단맛을 본 세대들은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을 다시 돌리자는 거죠. 이 중심에 나카소네 야스히로, 모리 전 수상 같은 원로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그 아래에 실행군단 정치인들이 있고요. 그 동안 많은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일본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그대로 침몰한다. 무엇인가 대안을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일본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이는 결국 정치다. 강력한 리더를 앞세워 정국을 헤쳐나가고 장기간의 불황을 타개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80년대와 같은 제2의 일본 부활을 꿈꿀 수 있다’고 결론이 내려져 아베 수상이 재등극을 한 것입니다. ”

20년 넘는 정치부 기자의 귀띔이다. 이미 오래 전에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와의 협력에대한 조율도 끝났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2월의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자그마치 76.1%를 기록했다. 현재 지지율은 60%(4월 아사히신문조사)다. 2007년도 1차 집권 때의 30%이하 지지율을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절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렇듯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아베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전 후 50년이 넘는 자민당의 일당정치를 깨고 민주당에게 정권을 맡겨봤지만, 기대가 큰 만큼 적잖은 실망만 안겨주고 다시 자민당 지지로 리턴했던 일본국민들.

이들은 아베노믹스=일본 부활을 꿈꾸고 기대한다. 일단 아베노믹스의 항해는 순조롭다. 우선 국민 지지율이 이를 말해준다. 일본경제계 또한 상당히 협조적이고, 무엇보다 1차 내각 때 아베수상을 조롱하고 비웃었던 일본국민들이 이제는 그를 전폭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거기에다 일본의 제조업과 기간산업, 그리고 첨단기술은 아직도 세계 제 1위를 고수할 만큼 그 기초가 탄탄하다.

그렇다고 아베노믹스가 성공한다는 보장 또한 없다. 왜냐하면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바블경제 이후 지난 23년간 일본인들이 잃은 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중산층들이 없어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경제적 빈곤 때문에 중고교 시절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또한 대학을 졸업한다 하더라도 취직이 안돼 만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는 비정규직이 급증했고, 당장 시급한 것이 고령화 사회(80년대)- 고령사회(90년대)- 초고령사회(2007년부터)로 이어진 오늘날 현실에 대한 대안이다.

현재 일본은 초고령사회다. 전체 인구 1억 2,780만 명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2,975만 명(23.3%)이고, 75세 이상도 1,471만 명으로 전체인구 11.5%를 차지한다. 장수국답게 100세가 넘는 초고령자만 해도 51,376(2012년도 통계 : 남6534명. 여44,832명) 명이나 된다.

문제는 이 같은 초고령자 사회가 된 작금의 현실에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것이다. 심심찮게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고독사 자 대부분이 초고령자들로, 극한의 빈곤에서 굶어 죽은 이들이 많다. 물론 여기에는 남에게 절대로 손을 내밀지 않는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 같은 빈곤층 초고령자들이 기하학적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경제대국에서 바블경제로 추락하면서 빈부차이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적당한 여유로움을 즐기던 중산층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80년대에 직장을 다녔던 화이트칼라 계층들은 나름대로 노후대책이 가능했다. 회사 퇴직금이라는 몫돈이 있었고, 장기간 직장생활의 노하우와 함께 연금도 있었다.

그래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화이트 칼라들은 정년퇴직 후 중소기업에 재취직을 하거나 혹은 생활비가 적게 드는 동남아시아로 이주, 노후를 안락하게 보내고 있다.

실제로 필자 주변의 일본인 몇 명은 현재 말레시아 페낭과 태국 방콕에서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그들은 정년 퇴직 후 도쿄의 집을 월세로 내놓고, 1년에 2-3차례 세금정산 및 일본식품을 사기 위해 일본에 온다.

말레시아 페낭에 살고 있는 가와시마(67세)씨의 경우, 3LDK 집을 15만 엔 월세로 싸게   세를 놓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에게 오는 우편물이라든가 기타 긴급 연락 등 집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페낭에서의 생활비는 대략 10-15만엔 정도로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는 일본인을 위한 실버타운이라고 한다.

그의 생활은 현지에서 보란티어로 일본어를 가르치며 골프를 치는 것이 낙이라는 것. 때로는 주변의 같은 일본인들과 그룹을 지어 인근의 태국이나 싱카폴로 여행 겸 골프를 치러 간다고 한다. 엔화가 말레시아 화폐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에 이 같은 우아한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그에게는 매월 25만 엔의 연금이 나오는데 생활비 외에 남는 10여 만 엔은 모아두었다가 1년에 한번씩 부부가 세계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도쿄의 집세는 그대로 저금통장에 넣어 둔 채.

이들 외에도 화이트 칼라 정년퇴직자 중에는 캄보디아나 아프리카에서 보란티어 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일본 국내에 있는 이들도 대부분 정규직은 아니지만 구청이나 고용센터에서 소개하는 파견사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문제는 나름대로 자신의 노후를 설계해 잘 살고 있는 화이트 칼라가 아니라 블루 칼라 계층이다. 이들은 젊었을 때부터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왔다. 그래도 80년대 같은 호황 때는 조직에 얽매인 정규직보다 오히려 수입도 좋았고, 그리고 자신의 생활리듬에 맞게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가 있어 좋았다.
 
하지만 일본경제가 바닥을 치고 이 같은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이들의 생활은 극빈자로 주저앉았다. 우선 대도시의 건설현장이 사라졌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가 급감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일자리마저도 젊은 아이들로 채워졌다. 당장 먹고 살 일자리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은 정부기관의 구직계나 구청 취업전담부서. 극빈자 순서대로 일자리를 소개해 주기 때문에 파견사원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마저도 재계약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구직자는 많고 일터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한번 소개한 사람에게는 자동적으로 순번이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자유로운 것이 좋아 회사가 아닌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하던 소노다(68세)씨는, 얼마 전 도쿄도에서 운영하는 지하철에서 3년 동안 파견사원으로 일했다. 그가 한 일은 지하철 종점에서 잠이 들거나 술에 취해 내리지 않는 승객을 깨워 지상 밖으로 안내하는 것. 임금은 박했지만 그래도 3년간 정기적인 수입이 있어 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3년간의 계약이 끝난 뒤 재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수 백 여명의 구직자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수십 여장의 이력서를 써서 면접을 보러 다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상대방에서 거절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한국인 지인의 소개로 신주쿠 한인타운에 있는 한국 수퍼에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으나 이곳 역시 나이가 많다고 거절당했다.

현재 그의 통장에는 잔고가 전혀 없다. 구청에서 매달 지급하는 약 6만 엔의 기초생활보조수당이 전부다. 그래서 자신보다 형편이 나은 친구가 면접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몇 천 엔씩 교통비를 준다. 부인은 10여 년 전 암으로 죽어 혼자 산지 오래 됐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고독사 하는 것. 그 이유를 직접 들어 보았다.

“난 아직 죽을 준비가 안돼 있어요. 만약 내가 죽으면 장례를 치러야 할 비용이며 내 짐을 정리해야 할 인건비 등이 필요한데 지금 내 통장에는 돈이 안 푼도 없어요. 이런 상태에서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면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거잖습니까. 그래서 죽을 땐 죽더라도 장례비용쯤은 모아놓고 죽을 수 있게 되는 것이 나의 유일한 꿈입니다.”

역시 일본인다운 말이다. 혼자 외롭게 죽어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이 주위에 폐가 되는 것이 신경 쓰이고 무섭단다. 소노다 씨와 함께 파견사원으로 함께 일했던 선배가 갑자기 혼자 고독사 했는데, 장례비용을 마련해 놓지 않아 구청에서 애를 먹었다고 한다. 고향이 지방이어서 20여명의 친척이 조문을 왔지만, 부조금이 얼마 되지 않아 장례비용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 주변의 몇 사람 지인들의 그런 고독사를 지켜보면서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장례비용만큼은 마련해 놓고 죽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 장례비용마저도 모을 수 없게 경기가 안 좋다고 한탄을 했다. 
   
이렇듯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다. 일단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려면 우선 마이너스에 가까운 제로성장부터 끌어올려야 한다. 아베 수상도 취임 일성으로 올해 성장률을 적어도 2-3%로 끌어 올리겠다고 장담한 만큼, 그에게 거는 일본국민들의 기대감도 크다. 그리고 다음에는 초고령자 사회의 현안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초고령자 문제는 어마어마한 재원이 들어간다. 단기간 내에 형성될 수 있는 그런재원이 아니다. 때문에 무엇보다 경제부터 살려야 하고 그래서 세금을 거둬 들여 국정운영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간단치 않다. 하루 아침에 일본경제가 나아질 리 없기 때문이다. 극약처방으로 2014년부터 현재 5%인 소비세를 10%로 올린다고 선언했지만, 소비세 인상이 만병통치약이 되진 못한다.     

이렇듯 초고령사회가 된 일본은 빈부차이가 극심하다. 한쪽에서는 유유자적 안락한 노후를 즐기고 있는 반면, 같은 세대로 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계층은 당장 하루 세끼 끼니와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고독사의 장례비용을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아베노믹스에 젊은이들 문제가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계층도 바로 이 고령자들이다. 특히 제2의 일본의 부활을 꿈꾸는 계층은 다름아닌 화이트 칼라출신의 고령자들이다. 

이들은 아베의 우경화 성향이나 그에 대한 정책도 슬쩍 모른 척 해준다. 식자 층인 만큼 역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만, 일본의 부활을 위해서는 과거 역사 문제쯤은 잠깐 모른척해도 괜찮다는 이기적인 의식이 내면에 깔려있다. 그래서 더더욱 아베 정권이 성공해야 하고 자신들 또한 기꺼이 이 정권의 우군이 되는 것을 자처하고 있다.  

이들은 80년대의 단맛을 흠뻑 맛본 사람들이다. 지구 곳곳에서 ‘made in japan’의 위력을몸소 체험해 봤고,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위상을 직접 지켜봤다. 때문에 ‘제2의 닛본 부활’을 외치지만 결과는 ‘글쎄’로 집약된다. 왜냐하면 한꺼번에 끌어안아야 될 초고령자 사회가 극명한 빈부차로 목표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2의 일본의 부활, 그래서 아직은 요원하다. 
                                                   
                                                   (이글은 주간주선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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