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日코리아타운 혐한시위, 대항마 생겼다

가 -가 +

이신혜(프리라이터)
기사입력 2013-02-14

지난 9일, 또다시 일본 신오쿠보 코리아 타운에서 신사회운동 주최,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모임) 협찬으로 반한·혐한 시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필자는 지난번 1월 12일 열린 신오쿠보 반한 시위에 대해 다른 매체에 기사를 쓴 적도 있어, 이 일이 매우 신경쓰였다.
 
그런 어느날, 트위터 상에서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レイシストしばき隊) 대원 모집 중'라는 트윗을 보았다. 
 
매주 금요일마다 총리관저 앞에서 탈원전 시위를 펼치는 단체의 스태프이자 '금요관저 앞 항의'라는 책을 쓴 노마 야스미치가 최근 결성한 단체다.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는 소란스러운 명칭과는 달리, 반한 시위 자체를 방해하지 않으며, 비폭력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시위 뒤에 마을 상인, 혹은 일본인들을 괴롭히려 할 때 재빨리 이를 막아 지역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이 단체의 목적이다.
 
재특회 등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신오쿠보에서의 반한 시위를 한 뒤, '산책'이라는 형태를 취하면서, 시위 허가 없이 상점가 등에 침입해 폭언을 쏟아내거나 한류관련 점포의 상인들이나 일본인 한류팬들을 괴롭힐 때가 있다. 이를 저지하려는 것.
 
이 단체는 명칭을 둘러싸고 오해도 있어, 얼마간 찬반양론이 쏟아졌다. 재일한국인으로부터도 부정적인 의견이 잇따랐다. 그래도, 이 트윗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해, 노마 씨 본인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필자가 노마 씨를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2월 26일,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를 반대하는 시위 때였다. 서로 안면은 있는 셈이다.
 
그에게 연락해 취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답은 NO였다. 가능하면 활동 내용을 비밀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의 활동 당일에 시간을 조금 내주기로 했다.
 
그러나, 당일날 노마 씨는 거의 시간이 없었고, 대화는 약간의 인사 정도로 끝났다. 노마 씨 측이 워낙 정보공개를 꺼려한 터라, 내가 취재 전까지 잡은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의 정보는 노마 씨가 트위터에서 언급한 "경찰청으로부터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에 대한 문의가 있어, 총인원 500명, 로킷 런처 5대, AK-47이 30정, MP5가 50정, 청룡도 부대 20명을 넘는다고 답해두었습니다", "경찰 경비과가 '어디서 집합하느냐'고 물어, '규정시각에 300명이 낙하산으로 낙하한다"뿐이었다.
 
이윽고 반한 시위 당일날, 필자는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 씨와 함께 반한 시위대의 집합장소인 오쿠보 공원에 갔다.
 
오쿠보 공원을 출발한 재특회는 한국 상점이 밀집한 쇼쿠안도리로 향했다.
 
그 사이, 나는 쇼쿠안도리와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을 남북으로 잇는 이케멘도리(통칭)를 지나갔다.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는 이 거리에 재특회들을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도중에 들었다. (역자주: 골목에 형성된 이 거리는 길이 매우 좁아 시위대가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상점가와 행인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준다,)
 
▲ 20130209 신오쿠보 이케멘도리 ©JPNews
 

시위대가 쇼쿠안도리를 거쳐 오쿠보도리로 넘어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오쿠보도리에서 시위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실황이라도 중계할까했지만, 실제 시위를 보니 유튜브 동영상의 몇만 배는 더 과격해 아무것도 못했다. 
 
시위대를 기대리고 있을 때, 등 뒤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돌아보니, 카메라를 든 두 명의 남성이 있어, 이야기를 건네보니 한국인 카메라맨 권철 씨와 1명은 가까운 한국 요리점 오작교 사장 김덕호 씨였다. 우연하게도 두 사람 모두 jpnews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오쿠보 파출소 앞에서 카메라를 쥐려던 순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하얀 조끼를 입은 나이 많은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이 남성은 갑자기 "조센진은 나가라. 바퀴벌레 같으니"라며 큰 소리로 말하면서 지나갔다.
 
그 직후, 시위대가 왔다. 가운데에서 소리 지르던 남성이 "자신은 오사카에서 왔으왔다. 오사카의 쓰루하시라는 곳에도 코리아 타운이 있다. 밤이 되면 (한국인에 의한) 강간이 다발한다"고 외쳤다.
 
▲ 20130209 신오쿠보거리는 지나는 반한·혐한 시위대 ©JPNews
 

필자는 오사카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그 마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그런 유언비어를 퍼트리기 위해 오사카에서 여기까지 온 걸까, 아니면 더 창피를 당하려 온 것일까.

그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와 현수막의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어느쪽도 죽여라", "식충 구제" 등의 문구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자, 카메라를 가진 필자를 향해 자신들이 가진 플래카드와 현수막을 들어올렸다.
 
▲ 20130209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어느쪽도 죽어라" ©JPNews

 
마스크를 낀 사람은 차치하고, 많은 시위대 참가자들이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무언가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 앞에 있던 중년 여성들은 계속 욕설과 비방을 반복하는 시위대 남성들에게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저런 식의 말투면 오히려 반감만 사지. 그렇지 않아?"라며 말하고 있었다.
 
"발언 내용은 문제시 안하는 거야?"라고 그 사람들에게 반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절망은 어느곳에서도 굴러다닌다. 
 
이후, 시위대가 통과했다. 나는 맥이 빠졌다. 어쩔 수 없는 기분으로 서있자, "괜찮냐"며 아까 언급한 김 사장이 말을 걸어왔다.
 
이에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기도 했고,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정말 무서웠다.
 
"가게에서 쉬고 가라"는 사장의 친절한 제의가 있었지만, 다음에 신오쿠보에 올 때는 가게에 웃는 모습으로 방문하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이 가라앉았고, 다시 시위대를 쫓았다. 재특회의 한 사람으로 보이는 여성이 계속 나를 찍었기 때문에 나도 그녀를 찍었다. 또한, 그녀는 이 시위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들을 집요하게 노렸다.

당연히 나는 그녀를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공개할 생각은 없다. '부레노'라는 닉네임을 가진, 재특회 등 우익활동의 단골손님 마쓰모토 슈이치는 활동을 촬영한 동영상을 종종 올려 공개했다. 이는 일종의 폭력이며, 차별에 가담하는 행위다. 그는 교토 조선학교 재판(참고기사: 목소리 큰 재특회, 정작 법원에서는)에도 불려갔다. 하지만 이 같은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 20130209  "해충구제", "반일 꺼져라", "한일국교단절" ©JPNews

 

이날 재특회 시위를 보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여러명의 일본인과 만났다.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에 참가한 여러 명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들 시위를 눈 앞에 두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기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분노하는 것보다 공포가 앞선 필자만이 어딘가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스다 씨는 시위가 끝난 뒤, "이름을 불리진 않았나, 괜찮냐"고 물었다.
 
그가 걱정하는 이유는 얼마 전 다른 매체에서 재특회에 대해 쓴 비판 기사를 보고 사쿠라이 마코토 회장이 크게 화를 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필자가 시위현장에 가려할 때 "시위 현장에 가는 건 혼란을 일으킨다", "도리어 지역에 폐를 끼치는 것 아닌가"라며 지인들이 말리기도 했다.
 
나는 야스다 씨의 걱정하는 목소리에 "이름을 따로 불리지 않아도, 모두 나에게 말하는 듯이 들렸다. 그렇지 않나"라고 퉁명스럽게 반문해버렸다. 마치 그에게 화풀이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위가 마무리되고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하자 필자도 이 무리에 참가하려 했다. 하지만,  여성의 참가는 금지(재특회 관계자는 약한 사람을 노리는 게 특기라서)인데다 외국국적인 사람이 나뿐이었고, 자칫 트러블이 발생하면 체포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냥 무리에 합류하지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의 신주쿠 교차점에서, 일본옷으로 반한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이 다른 참가자와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조센진을 죽여라"라고 외치는 시위에 일부러 일본전통옷으로 참가한 그들에게 이 시위는 무엇이었을까. "당신들이 죽이고 싶은 조센진은 눈 앞에 있다"며 말을 걸고 싶었다. 
 
오사카의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교토 재판 등에도 관여한 도쿄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신오쿠보에 갔다고 혼날 줄 알았는데, "잘 돌아왔다.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해서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는 시위 당일, 무사히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산책'을 저지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0일에도 반한 시위가 있었는데 전날의 효과도 있어 '산책'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9일에서 10일로 날짜가 바뀌는 때에 "그런데, 신오쿠보 상공에서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의 낙하산 부대가 차례차례 지상에 내려왔을 때는 정말 압권이었다"고 트윗했다.
 
물론 농담이지만, 이틀에 걸쳐 오쿠보의 마을에는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를 시작으로 야스다 씨, 신오쿠보에 관여한 사람들 등 많은 이들의 선의가 신오쿠보에 내렸다고 생각한다.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의 다음 출동은 17일이다.
 
'인종차별주의자 척살대' Forces of Oppression
http://kdxn.tumblr.com/post/41861067184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JP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