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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독도 ICJ제소 다음 정권으로 넘긴다

최근 한일 관계개선 분위기에 '좋지 않다'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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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철 기자
기사입력 2012/11/26 [09:25]

일본정부가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단독제소 방침을 총선 이후로 유보해 차기 정권에 그 판단을 맡기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25일, 보도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 시점에서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일본에 득이 없다는 판단과 함께 최근 중단됐던 양국 정부간 대화가 재개되고 있는 점도 단독제소 보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깜짝 방문했다.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사상 처음이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강하게 항의하고, 같은 달 11일,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ICJ에 제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ICJ를 통한 분쟁 해결을 도모하려면, 당사국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에 일본 정부는 한국정부에 ICJ 공동제소를 제안했다. 그러나 '독도는 엄연한 한국땅이며, 분쟁지역이 아니다'라는 입장인 한국 정부는 일본의 제안을 거부했고, 일본정부는 단독제소 준비에 들어갔다. 단독 제소는 효력이 없으나, 제소하는 과정에서 독도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려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의도다.
 
그런데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25일, "제소 방침을 취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독도와 관련된 어떤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면 당분간 제소하지 않겠다"는 일본 외무성 간부의 말을 전하며, 일본정부가 단독제소를 총선 이후로 미뤘다고 보도했다.
 
준비되는 대로 제소한다던 일본정부가 당초 방침을 돌연 수정하게 된 배경에는, 최근의 한일관계 개선 움직임과 미국의 중계 역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서의 안전보장에 악영향을 우려하는 미국이 한일 양국 사이에서 중계자 역할을 맡아 적극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22일 외무 차관급 경제협의, 24일에는 재무장관이 참가하는 한일 재무대화가 서울에서 각각 개최되는 등, 최근 한일 관계 개선의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는 점도 일본의 궤도 수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 ICJ 제소를 단행하게 되면, 한국 내의 반일감정이 한층 더 높아질 위험이 있고 최근 관계회복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제소 여부를 내달 예정된 총선 이후 발족하는 새 정권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차기 정권 탈환이 유력시되는 일본 자민당은 정권 공약으로 영토문제 등에 대한 강경 노선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새로운 정권이나 미국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인 만큼 차기 정권이 바로 독도 제소를 단행할지는 불투명하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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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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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안녕~~ 잘 가~~ 12/11/26 [21:20]
자본주의고 공산주의고 간에, 이기(理氣)론적 측면에서 보면 부작용이 많은 사상들이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둘 다 껍데기부터 돌리고 뜻을 채우길 바란다는 점에서 똑같이 잘못된 것이다. 자본이라는 신용거품을 돌려놓고 거기에 맞춰 춤 추길 바라는 자본주의나, 혁명영웅이라는 신용거품을 돌려놓고 깃발에 맞춰 삽질하길 바라는 공산주의 모두 수단만 다를 뿐 기를 앞세운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래서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문제를 풀 수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치부터 싹둑 잘라놓고 문제를 풀길 바라는 멍청이가 어디 있어? 자본주의에서는 그냥 시장법칙에 따르란다. 일단 돈을 벌어야 뭘 하든, 말든 할 테니까. 그래서 인간 대신 장사꾼이 양성되는 것이다. 하다못해 교육조차도 신용 획득하는 법을 우선해 가르친다. '친구와 친구 사이에는 믿음(信)이 있어야 하니, 상호신용대출 해주는 것을 도리로 알아라.' 여기에 반대하고 일어난 게 공산주의인데, 문제는 자본주의의 병증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들고 일어났기 때문에 문명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2012년 현재 짐작되는 바이지만 자본주의는 이대로 가면 망한다. 그럼, 다음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서 공산주의 사회가 완성되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 이기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 전제군주사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로도, 공산주의로도 문제를 풀 수 없던 까닭이 기(氣)의 흐름에 맞춰 이(理)가 따라붙길 바랐던 인간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무지의 산물이라면, 무지가 빚어낸 혼돈은 반드시 이(理)를 독점할 수 있는 왕(王)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왕이 나오려 하고 있다. 병증만 다를 뿐 세계 곳곳에서 똑같은 문제가 일어나는 중이라 여겨진다. 왜 왕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가? 구축되어진 설계에 맞추어 인간이 움직여줘야 하는데 뜻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암만 쟈스민꽃을 심어놓아도 소용없다. 다들 기본적인 껍데기인 국가로 달려가 떼를 쓰고 있다.

"해답을 내놔! 자본주의야? 공산주의야?"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미국사회를 주름잡는 최고의 인재들은 대부분 월 스트리트에 몰려있다. 그럼, 자본주의가 목표로 하는 인간상이 장사꾼이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주식시장의 차트를 둘러보고, 점심의 미팅을 효용성으로 평가하며, 저녁 때 내일의 비지니스를 위해 약속을 잡는다. 그러고 나서 집에 들어가면 무슨 생각이 들까? 배우자는 아무런 효용도 없는 인간인데. 공산주의 또한 마찬가지이다. 늙으신 부모님은 호령에 맞춰 삽질조차 할 수 없는 무능한 당원에 불과하다. 괴로움의 근원이 자본주의에 있고,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것만이 고통을 끝낼 유일한 해법이라면, 봉건적 권위에 빠져있는 늙으신 부모님의 정신부터 개조시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동참시키는 것만이 인민의 선결과제 아니겠는가? 그래서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동지'가 되어버렸다.
중국도 이와 기의 구분만을 알았지 어떻게 운용하는지는 몰랐던 게 분명하다. 안 그랬으면 이런 바보짓을 할 리 없으니까. 서양의 남아도는 힘에 뜻을 맞추다 보니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 춤을 추게 한 쪽이나 춤을 춘 쪽, 어느 한쪽이 답을 내놔야 하지 않겠는가? 장사꾼으로 살게 해달라! 아니면 동지로 살게 해달라! 어느 쪽이 됐건 살게만 해달라! 책임지는 자를 왕으로 모셔주겠다. 그래서 다들 미친 척 하며 서로를 위협하는 중이다. 왕이 돼달라고.

자고로 이와 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어느 한쪽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뜻은 소리를 타고 전달되고, 소리는 뜻을 담아 전달된다. 지폐를 건네는 순간 자신은 액면가를 전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불빛에 비춰보기 전까지는 한낱 종이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이 때 사물의 한 면을 보고 다른 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이다. 마르코폴로가 중국에서는 종이돈이 황금과 맞교환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유럽 사람들이 믿지 못했던 까닭은, 껍질만 보고 그 속에 담긴 이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껍질을 보여준 뒤 이치를 가르치면 될 일 아닌가?
그래서 백과사전이 나오고, 근대교육제도가 탄생하고, 유럽도 곧 종이돈을 만들어 썼다. 남에게 신용 부여하는 법을 배우고, 사회를 운용하는데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로 인한 폐해도 유대인을 통해 확인했다. 그것을 중국에 들고 갔더니 거부당한 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노했다.

"우리의 이치가 거부당했다!"

하지만 사실 거부당한 것은 껍질이지, 씨앗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럽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목격하지 못한 건, 황금과 맞교환되었던 중국의 그 신용은 원나라가 망한 뒤 명나라가 들어서는 순간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마르코폴로가 목격한 것은 황제가 제국의 멸망을 담보하고 부여한 신용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럼, 유럽의 통화가 중국에 유입되어 사회모순을 일으켰을 때 언젠가는 같은 방법으로 해소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프랑스 대혁명의 원조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나? 아마 없을 것이다. 신용을 부여한 이치를 들고 온 것이 아니라, 신용을 포장한 껍데기만 들고 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껍데기에 맞추어 땅의 이치마저 바꾸려 들었다. 덕분에 전세계가 함께 혁명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 아닌가? 용어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 만일 이번에 무력시위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혁명이지,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이 하나가 되었는데 어떻게 전쟁이 일어나나? 전쟁이란 서로 다른 이치에 따라 구축된 두 개의 그릇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미 하나의 이치에 따라 하나의 그릇에 담겨있다. 그 안에서 폭발하는 건 아무리 규모가 커도 혁명이지, 전쟁이 아닌 것이다. 서구가 한 일이라곤 소규모의 분쟁으로 해결될 문제를 대규모의 혁명을 통해 풀리도록 복잡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인도의 과부순장 풍습은 사라졌지만 대신 전쟁을 생중계하고 있지 않은가? 어느 쪽이 야만적이지?

그래서 이방인은 항상 경계받는다. 아무리 인류애를 주장해도 경계받아야 한다. 들고 온 것이 씨앗인지, 껍데기인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이쪽에서 껍데기를 찢어버려도, 씨앗이 그쪽에 남아있는 이상 같은 껍데기를 만들어 언제 다시 방문할지 모른다. 그래서 중국이 개혁개방의 속도를 늦출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이 즈음에서 서구 사람들은 기괴함을 느낄 것이다. 중국정부가 돌리려는 신용은, 2차 세계대전 직전 히틀러가 유대인을 통해 목격한 신용과 같은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신용장을 자신이 찢는 대신 서로에게 돌려 열심히 찢으라고 권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찢으면 화를 내는 것이다. 애시당초 신용거품을 안겨주는 것이 체제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주먹을 묶어놓는 것이 바람이었다. 당장 일본이 원자력발전소를 가동 못해도 나라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는 점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뭘 뜻하겠는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건설해둔 원전이었단 말이지? 일본은 원전의 무지막지한 위험성을 한여름의 쿨비즈와 맞바꿀 정도로 한가했다! 물론 서양과 동양 사이에 낀 갈등조정자로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체제의 모순마저 못본 척 할 수는 없다.

태평천국운동을 거리낌없이 짓밟았다. 중요한 건 이치가 아니라 껍데기였기 때문이다. 3.1 만세운동을 거리낌없이 짓밟았다. 대체 어떤 이치를 들고 온 거지? 똑같이 껍질을 두 배, 세 배 부풀려 본전 뽑게 만들어줄 수단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치를 심어줄 껍데기를 찾는 일에만 열중했다. 쥐고 있는 이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엇이었는지 다 잊어버리고. 그래서 얻은 게 무엇인가? 진심은 아닐지라도, 일본이 원자폭탄에 그토록 열중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세계의 모순이 그 껍데기가 빚어낸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북한은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뭐. 같이 놀려고?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릇의 크기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문제는 해법이다. 모순을 알았으니 해법을 구하면 된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이치가 이미 변질돼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뿌린 씨앗이 교황과 루터, 칼뱅과 마르크스를 거치며 꼬일대로 꼬여 있다. 과연 정약용의 형제들이 유럽의 역사책을 읽어보고도 천주교로 개종할 생각을 했을까? 의문이다. 구교를 믿으면 신교를 버려야 하고, 마르크스는 칼뱅의 법에 반대를 한 인물인데, 천주교가 공산주의에 찬성하겠는가? 하나님 앞에서는 다 형제라며. 그럼 아버지와 아들이 '동지'가 되어도 좋겠네. 하지만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팔았던 주체가 천주교였다. 그럼 천주교야말로 자본주의의 창시자 아닌가?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사람들은 지금 소중한 외로움의 씨앗을 지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라, 껍데기에 몸을 맞추기 위해 다들 뛰고 있다. 원한 게 이런 세상이었어? 보고 싶은 게 이런 것이었냔 말이야. 한국의 문화랍시고 K-Pop 공연이나 보면서 손뼉치고 '아리랑'을 박제해 그대로 시공간의 구멍에 처박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문화'를 지키고자 한 멍청이들이 없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간의 정신이 짜부라져 짓눌릴 위기에라도 처해있단 말인가?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한(恨)의 노래, 슬픔의 노래, 사랑의 노래, 돈만 주면 누구라도 만들어 불러줄 수 있다. 그럼 존재의 가치가 어디에 있지? 똑같은 그릇에 갇힌 박제에 불과한데. 그릇의 크기가 백 배, 천 배가 된다 한들 같은 종류의 박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신용거품에 갇혀서 한 걸음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체제가 급팽창하는 중이다.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보다 복잡해지고, 기가 엉망으로 치솟고, 호흡이 가빠져야만 이치를 쥐고 있는 왕이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덕분에 찾았다. 무제한의 신용팽창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몇 남지 않았다. 그리고 최후까지 이 위기를 지탱할 나라가 어디인지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일본이 동맹국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위기를 함께 지탱해주겠다고 선언한다면, 다시 말해 원자폭탄 몇 개 나눠갖는 희생을 자처한다면, 인류의 무한책임으로 지탱되는 이 체제를 위해서도 다행한 일 아니겠는가? 왜, 보다 많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보다 큰 책임을 안겨주자며. 세계를 구하고 싶다면 가장 큰 권력부터 손에 넣어야겠네.

독립적으로 뛰어노는 이와 기에만 촛점을 맞추다 보니 지금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튼 다들 원자폭탄에 맞아 죽기는 싫을 테니까. 그것은 굉장히 위험은 무기이다. 그리고 핵전쟁, 아니 핵혁명은 인류를 반드시 전멸로 이끌 것이다. 그럼, 내일 전멸로 치닫는 것보다 차라리 오늘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다가 죽는 편이 훨 낫겠네?
... 라고 설득하는 것이 주기(主氣)론의 역할이다. 누군가 보다 위험한 무기를 가질수록 사람들이 보다 이치에 맞도록 행동한다는 것이 예언하는 바이다. 그것이 설령 자본주의 시장이 됐건, 공산주의식 냉엄한 독재자가 됐건, 봉건시대의 왕이 됐건 간에 상관없이. 냉전시대에 문제를 풀어온 방식과도 유사하다. 그럼, 주리(主理)론이란 무엇이냐? 모든 사람들이 이치에 맞도록 행동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최후의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예언하는 바이다. 결국 주기론과 앞뒤가 바뀌었을 뿐 똑같은 소리다. 다만 위협의 정도로 따져봤을 때 주기론이 약간 폭력적이고, 주리론이 가식적이기는 하다. 일본은 그 가식과 폭력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고. 모를 줄 아는가?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일본은 예전부터 그랬어. 중국의 천자를 모방해 천황제도를 만들었지. 그럼 왜 중국의 혁명을 모방해 자신을 심판하지는 못했는가? 첨단을 달리는 자본주의가 일본에 잘 들어맞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일본이야말로 예로부터 극도의 주리/주기 체계에 들어맞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나라의 껍데기인 백성에 촛점을 맞추었다고 봐도 좋고, 씨앗인 천황에 맞추었다고 봐도 좋겠지만, 어느 쪽으로든 자신을 절대적이라고 믿으니 주기론과 주리론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위험에 촛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은 이미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교리를 가르칠 때 지옥과 최후의 심판,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치를 완전히 이해했을 때 보이는 결론이지, 수단이나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본성을 잃은 채 시작한다. 천국과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부터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이다. 똑같은 오류로부터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그래서 천주교를 정점으로 하는 서양문명이 비비 꼬인 채 껍데기만 남은 골치덩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서양문명은 그곳으로부터 갈라짐이 없어야 옳았다. 중간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뭔가 오류가 있어 뜻은 사라지고 소리만 남았다고 봐야 한다. 서구제국주의에 책임을 물으면서도 가장 열심히 받아들이는 데 집착했던 일본도 혹 같은 고민에 빠져있던 것은 아니었는가?

목적은 천황도, 백성도 아니다. 씨앗도 껍데기도 아니다. 주기론과 주리론, 이것들은 목적이 아니다. 그저 한순간 지나가는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럼 목적은 무엇인가?
애시당초 스스로 깨닫지 못한 진리는 진리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진리란, 혼자 힘으로 껍데기를 벗는 순간에나 찾아오는 법이다. 그래서 서양이 엉망으로 빠져버렸다. 주도하는 문명이 진창으로 빠져버렸다. 과거에 돈을 줘서 문제를 못풀자 이제는 빚을 안겨줘서 같은 문제를 풀려 하고 있다. 제정신인가? 둘 다 똑같은 얘기라고! 이치를 자른 뒤 껍데기에 촛점을 맞추기는 마찬가지란 말이다. 서양도, 일본도, 중국도, 결국엔 종류만 다를 뿐 극도의 주기/주리 체제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도달하고 난 뒤 보여야 할 결과에 불과하다. 왜 거기에 집착하는가? 당연히 기계가 하늘을 날아다닐 수밖에.

주입하는 데에만 바빠 지켜야 할 금기를 철저히 무시했던 자들은 승리했고, 곧 패배할 것이다. 이것이 철리이다. 성공하는 모든 체제는 반드시 무너진다. 이명박이 한국령(韓國領)을 쓰다듬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법이란 오직 하나가 있으니, 세상을 자신의 관점에 맞춰 통일하려는 노력은 파도에 부서지는 물거품처럼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저 호미로 막을 일은 호미로 막고, 가래로 막을 일은 가래로 막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기가 발하는 순간 이가 올라탄다는 이치 하나면 충분하다. 이것을 확신했기에 문명의 대철수작전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아무튼 인류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거대공룡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빙하를 타고 내려온 이치는 말단에 가서 문명 자신을 죽일 것이다. 지금까지 문제를 풀 엄두조차 내지 못한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서로의 주장이 워낙에 뒤얽혀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호미와 가래를 준비하기 위해 독재시절 그토록 억눌렀겠지. 짐작컨대 한국의 다음 대통령은 필경 역사문제로 꽤나 골치를 앓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세력이 충돌할 때 최적의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특화된 체질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 더구나 남한과 북한이 분리되어 누구 맘대로 통일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이것이야말로 천운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더냐?

... 법이 아닌 것을 법문으로 삼는다. 한민족이 지난 5천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비결이다. 쓸모없는 이 땅에 덤비는 모든 것이 껍데기이니, 이것 하나 지키고 있으면 다가오는 파도도 쉽게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무슨 생각을 하건 가장 쓸모없는 자리에 한국을 놓아두겠다. 이런 우리를 이길 수 있어? 걀걀걀걀~~~ (^ㅇ^)~~~ 난, 일본 아줌마들의 위안부 사과를 실(實)이라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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