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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 (최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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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 기자
기사입력 2009/08/30 [09:00]

(이 글은 연재물인 관계로 처음부터 읽지 않으시면 이해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점 양해바랍니다.)

오타쿠(1부)
헌책방(2부)
걱정(3부)
이별(4부)
한국남자(5부)
바둑(6부)
동거(7부)
관계(8부)
옛남자(9부)
한일월드컵(10부)
이별여행(11부)
 
구사츠 온천여행에서 돌아온 그 다음날, 그러니까 2002년 8월 20일이다. 이상하게도 이날만 생각하면 항상 '온도'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그 쨍쨍했던 태양빛,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던 그날. 나는 한여름낮의 다케바시 역계단을 힘없이 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시나가와에 있는 입국관리국이 그때만 하더라도 도자이센 다케바시역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20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는 잠에 곯아 떨어진 아내를 한번 쳐다보고 밖으로 나갔다. 당시 우리는 무사시노(musashino)시에서 동거중이었지만, 가장 가까운 역은 미타카(mitaka)역이었다. 보통 소부센 종점으로 유명한 미타카 역이지만, 도자이센도 들어왔다.

나라고 바보는 아니다. 구사츠 온천여행을 떠나기까지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무엇보다 구사츠 온천거리에서, 아내의 사랑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온천여행에서 지낸 둘만의 시간은, 아내가 나를 기억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내의 모든 동작과 언어는 그런 절실함이 묻어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아내는 "지금도 날 사랑해?"라는 말을 했고, 고개를 끄덕인 나를 향해, 아니 혼잣말일런지도 모른다,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그래, 알았어"라며 눈을 감았다. 그때 내 어깨에 기대 새근새근 잠을 청하던 아내를 보면서, 나는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그제서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미타카역에서 도자이센을 타고 다케바시역에서 내린 시각이 8시 30분이다. 하지만 이미 내 앞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입국관리국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었다. 한국인, 중국인, 인도인, 베트남인, 필리핀인처럼 보이는 이들, 그 안엔 나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푸라기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상담을 받아보려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 무엇을 상담하러 오셨나요?"

1시간을 기다려서야 한국어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아마 60살은 넘었을 거라 생각되는 아주머니는 "비자연장을 알아보려 왔다"는 내 말에 몇가지를 요구했다. 여권, 비자, 외국인등록증따위를.
 
그것들을 죽 훑어보던 그녀는 "일단 한번은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시간이 없다"며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귀국을 종용했다.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그 사무적인 말투 속에는 '너따윈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라는 뜻도 있었다고, 그땐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온도'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랬다. 그날의 '온도'는 모든 상황을 나쁜 쪽으로만 몰고가는 속성을 지녔던 것 같다.

1시간을 기다려 3분 상담하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다시 다케바시 역으로 향하는 도중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어디야?"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난 듯한 목소리다. 아내는 지금, 분명히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눈을 찡그리고 있을테다. 이젠 나도 기억해야 한다. 아니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된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다. 일본을 떠나기 전까지 아내를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지 생각하니 화가 밀려왔다. 난 왜 그동안 아내를 배려하지 않았던 걸까. 둔감하고 나쁜 이기주의자.

"밖에 산책하러 나왔어. 지금 갈께"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해보니 3주밖에 남지 않았다. 3주. 고작 20일. '남겨진 시간'이 현실적으로 느껴진 순간, 모든 사회적 행위가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왜 회사나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일본어학교 친구들과 8월 마지막날 왜 파티를 해야하는 건지, 9월 1일부터 일본에 온다는 학교선배를 왜 내가 안내해야하는 건지...

어떻게 보면 다케바시의 '온도'가 나를 각성시켰다고도 할 수 있다. 다케바시역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남은 20일을, 아내를 기억하는 시간으로 쓰기로 했다. 홀가분함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미타카역으로 돌아오는 도자이센 전철안에서 주위시선따윈 상관하지 않은채 소리내어 울었다.
 
아내가 나에게 프로포즈한 2002년 8월 20일을 생각할 때마다 '프로포즈'보다 '온도'가 먼저 떠오르는 것도 아마 이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나는 20일을 남겨두고서야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할 준비가 됐던 게 아닐까, 7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미타카역에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교와 회사, 그리고 학교친구들과 한국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는 알겠다고 했고, 회사는 일단 회사로 와서 이야기하라고 했고, 친구들은 이해했고, 선배는 짜증을 냈다. 짜증섞인 선배의 화풀이를 받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이 잠겨져 있다. 벨을 눌러도 나오지 않는다. 전화를 적당한 선에서 끊고, 집안으로 들어갔지만 아내가 안 보였다.

"어디야?"
"응. 여기 잠깐 나도 뭐 할게 있어서..."

"나도 갈께. 어디야?"
"아, 아니. 오지마...아참 밥먹어. 꼭 먹어야 해"

꼭 밥먹으란 말만 남기고 아내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차려둔 밥상쪽으로 갔다. 보자기를 걷어내자 밥도 밥이지만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오빠. 집에 잠깐 갈께. 그리고 오후에 이쪽으로 넘어와. 꼭 와야해"

이때만 하더라도 길게 쉬는 휴가기간이라 집에 잠깐 갔으려니 했다. 아내의 집은 고쿠분지(kokubunji)시에 있었다. 우리 연애는 90%이상이 고쿠분지에서 이뤄졌다. 아내가 왜 부모님 집에 잠깐 들렀는지 이땐 몰랐다. 아내는 21일 우리 결혼의 보증인이 되어준 이를 만나기 직전에 눈물을 글썽이며 비로소 말했다.

"아버지한테 결혼 허락받으려고. 그래서 혼인신고서 들고 갔는데 도장을 죽어도 안 찍는거야. 찬성도 안하고 반대도 안한다면서 나는 못찍겠다고 하는거야. a도 고쿠분지 집에 있다길래 겸사겸사 부탁했는데, 자긴 미안하지만 못 찍겠다고. 이해는 갔지만 그래도 많이 힘들더라"

a는 앞에서도 등장한 바 있는 아내의 절친한 친구지만, 사실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내가, 내가 다케바시에 갔던 그 사이에 이미 무사시노 시청에 들러 혼인신고서를 받고, 다시 고쿠분지로 이동해서 결혼보증인란을 채워 넣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아내는 이미 구사츠 온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프로포즈를 하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나도 여자니까 오빠가 프로포즈해 주길 바랬지만, 그렇다고 굳이 남자가 해야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오빠가 그럴 경황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아쉬운 사람이 먼저 나서야지. 오히려 거절당하면 어쩌지 싶어서,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세심하게 생각했어. 거기서 프로포즈를 한 건 지금 생각해봐도 최고였어. 거절하기 힘들잖아. 그런 분위기라면. 하하하" 

그날 오후, 고쿠분지 역에서 만난 아내는 힘겨우면서도 긴장한 듯처럼 보였다. 아내는 말을 꺼냈다. 

"오빠, 오랜만에 온다. 고쿠분지"
"그러게. 한번 돌아볼까? 예전에 갔던 곳들"

오후 내내 아내의 손을 잡고 추억이 담긴 고쿠분지 곳곳을 돌았다. 첫 데이트를 했던 '도노가야토 정원(殿ヶ谷戸庭園)'에 들어갈 땐 일부러 '니꾸망'을 사려 했지만 여름철이라 어느 곳에서도 팔지 않아 메이지제과의 초컬릿과 우유로 때웠다. 주말에 몇번 산책을 했던 '오타카의 길(お鷹の道)'은 매미소리로 시끄러웠다. 우리를 엮어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서적이 놓여있던 '세이도(盛堂) 서점'은 휴업을 알리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얼마후 햄버거 가게로 바뀜)

처음 3개월간 머물렀던 기숙사 j-dream에도 들렀다. 그냥 잠깐, 몰래 가본 것인데 한국인 관리인 형이 "어! 너 잘 있냐?"면서 아내와 나에게 캔커피를 뽑아 주며 "한국가더라도 연락하라"고 말했다. 청소중이라며 안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면서 우리는 자판기 앞 벤치에 걸터 앉았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 기억나? 여기"
"당연하지. 그날을 기억못하면 말이 안되지"

"왜?"
"술취한 것도 있었지만, 그날 미와코가 안왔으면 아마 사귀지 못했을 것 같아서"

"...사실 작전이었어"
"무슨 작전?"

"남잔 술취한 여자한테 약하다길래"
"이런..."

"근데..같네"
"뭐가"

"커피. 그때 오빠가 마셨던 것도 죠지아 캔커피였거든"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어?"

"응. 난 전부 기억하고 있어. 오빠하곤 다르거든. 깔깔"

빈 깡통을 휴지통에 던져 넣으며 아내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랬다. 아내는 나를 만났던 2001년 11월 10일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나와 지냈던 모든 시간을 꼼꼼히 기록해오고 있었다. 아내는 나중에, 아니 이번주 목요일(2009년 8월 27일)에 이렇게 말했다.

"오빠를 처음 봤을 때 오빠하고 사귀면 재미는 있겠는데, 아마 헤어지겠지라는 생각을 했었어. 그래서 헤어지더라도 그냥 나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어서 별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다 기억하려고 했지. 모든 것을 기억한 건 오빠가 처음이야. 영광으로 알라구"

그렇게 몇시간이나 고쿠분지를 섭렵하고, 아내와 나는 고쿠분지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타카 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jr 전철티켓을 사려고 둘이서 줄을 섰다. 우리 차례가 와 표를 끊기 위해 동전을 넣으려던 순간 아내가 내 손을 잡았다.

"오빠, 고이가쿠보(恋ヶ窪) 역에 안 갈래?"

아내는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내 손을 잡고, jr이 아닌 세이부 고쿠분지선의 티켓판매소로 갔다. 동전을 넣고 두장을 산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건넸다.

"고이가쿠보 역엔 왜?"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은 앙다문 채다. 전철을 기다리는 벤치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불과 몇분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즐겁게 몇시간을 돌아다녔는데 말이다. 아내가 말을 하지 않아서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물리적 시간은 짧았다. 고쿠분지 다음 역이 고이가쿠보 역이니까.

하지만 또한 매우 긴 '시간'이었다.

아내와 내가 처음 만났던 곳, 아내가 외국인들에게 일본어 회화를 가르쳐 주었던 곳, 오타쿠라는 의심을 받았던 곳. 아내가 결석했던 주의 다음주, 무작정 화를 냈던 곳, 무리하게 전화번호를 받아냈던 곳, 그리고...

우두커니 선채 서로 같은 방향을 봤다. 아내도 분명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테다.

오빠를 처음으로 만났던 곳, 뜬금없이 사쿠라대전을 꺼내던 오타쿠,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억지로 갔더니만 갑자기 다가와 화를 낸 사람. 전화번호를 무작정 적어달라던 사람, 그리고...

마주보고 있었다면 서로의 눈이 젖어있었다는 게 들켰을 텐데, 다행히도 나란히 서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어 들키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떠오르니 눈물이 나온다.

"고이가쿠보 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문이 완전히 열리면..." 

차장의 안내방송이 나옴과 동시에 아내가 먼저 내렸다. 아내는 빨개진 눈을 보여주기 싫었던지 먼저 앞서서 걸었고, 나는 아내의 뒤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아내는 정말 아무런 말없이 우리가 처음으로 만났던 고쿠분지 시청 지하 1층 식당 앞까지 갔다.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어 교실로 바뀌어졌던 식당이다. 그 앞에서 아내는 한동안 식당쪽을 내려다 봤다. 

잠시후 아내가 몸을 돌려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계속 걸었다. 내 앞에서 멈추지 않을까 했는데, 그냥 내 옆을 스쳐 내 뒤쪽으로 성큼성큼, 아니 도중부터는 뛰어갔다. 눈물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찰나였지만 느꼈다. 아내는 이미 모든 걸 정했구나 라는 것을.

나도 빠른 걸음으로 아내를 뒤쫒았다. 아내는 내가 표를 끊었을 때 이미 고가통로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큰 소리로 불렀다.

"미와코!"

저쪽 계단에서 내 목소리를 들은 아내가 우뚝 섰다. 고가통로를 지나 내리막 계단길로 접어들었다. 아내는 여전히 계단 중간에 서 있었다. 한번더 말했다.

"미와코, 같이 가"

그러자 아내가 고개를 돌리면서 이렇게 말해 왔다. 

"어? 내 이름 기억했어요?"

그때까지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는데, 아내의 이 한마디에 웃음이 삐져 나왔다.

"그럼요. 아름다울 '미'에, 평화할 때 '화'에 아이(子). 그러니까 아름다운 평화의 아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아내와 처음으로 만난 곳은 어쩌면 여기였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여기였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곳. 선생님이나 오타쿠가 아니라 '미와코'와 '테츠'로 만난 곳. 아내는 내 대답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천천히 아내쪽으로 걸어가서 손을 내밀었다.

아내는 천천히 내 손을 잡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계단을 마저 내려왔을 때 아내가 멈춰섰다. 그리고 조용하게 말해왔다. 마치 꿈결같은 목소리였다.

"오빠, 나하고 결혼해 줘"

왜 였을까? 난 아내에게 프로포즈를 받았던 그 순간 아내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부끄러움과 두근거림, 그리고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꽤 오래 쳐다봤던 것 같던데, 아내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대답대신 내 눈을 피하지 않던 아내의 눈에 키스했다. 입술을 떼면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었다. 

"우리 앞으로 행복하게 살자. 그리고 미안해"
"사랑해. 정말로. 그리고 고마워"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아내와 나는 포옹했고, 주위의 사람들은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토록 무더웠던 그날의 '온도'는 어느샌가 선선한 '가을바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끝)

 


■ 글쓴이 후기

그간 애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프로포즈" 시리즈는 원래 일본 생활의 일환으로 쓰려고 했던 건데 어떡하다 보니 늘어져 버렸습니다. 에피소드야 늘리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만, 너무 늘리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지난 3달간 단 하루의 결방(?)도 없이 방영하는 바람에 아이들 아빠노릇을 제대로 못했거든요. 토요일 밤새 이거 쓰고 나면 일요일이 사라져 저도 제대로 쉰 날이 없어서요. (3달간 휴일없이 일하는 거 이거 보통일이 아니네요). 또 최근에 아내가 셋째를 임신(예정일 2010년 1월 18일)했기 때문에 심리적 케어를 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즌1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는 여기서 끝내구요. 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에 "시즌 2 - 일본 아내가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를 써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 시리즈는 거의 "네버엔딩 스토리"에 가까운지라 앞으로는 뉴스기사가 아니라 '일본속으로' 기사로 넣을 생각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냥 제가 경험한 것을 쓴 것에 불과한데, 많은 독자님들께서 호응해주신 덕분에 시리즈 누적 페이지뷰도 100만을 돌파했고, <제이피뉴스>도 많이 알려진 것 같아 뿌듯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또 이글을 연재하면서 아내와의 예전 일들이 떠올라 자판 두드리면서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물론 슬퍼서 운 건 아닙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눈물이 나오더군요. 

여러분들도 좋은 연애하시길 바랍니다. 아참, 그래도 마지막으로 아내의 말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 방금전에 잠에서 깨어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아! 지금 사무실이거든요...-_-) 프로포즈 시리즈가 끝난 소감을 물었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말하네요.

"정말 이제부턴 일요일 쉬는거야? 그런데 또 뭔가 다른 핑계로 쉬지 않을 것 같아. 그건 그렇고 다음 시리즈에선 좀 더 멋진 아내로 묘사해 주길. 암튼 오빠, 수고했어. 나도 재미나게 읽었어. 호호호"

 


☞ 제2부 "일본 아내, 한국 며느리로 인정받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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