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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사와지리 에리카, 활동재개 선언

자신의 주연 영화 '헬터 스켈터' 무대 인사 참가 여부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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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연예팀
기사입력 2012/07/14 [09:07]

대마 흡연 의혹과 관련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악녀' 사와지리 에리카(26)가 13일, 자신의 소속사를 통해 14일부터 연예계 활동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사와지리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건강 이상으로 쉬었습니다. 사와지리는 7월 14일부터 연예 활동을 재개하겠습니다. 관계자 여러분과 팬 여러분께 많은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만, 앞으로도 지도 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녀는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 '헬터 스켈터'의 개봉(14일)을 앞두고, 건강 이상을 이유로 영화 홍보 활동을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의 유명 사진주간지 '플래시'에 밤늦게까지 놀다가 귀가하는 사와지리의 모습이 포착됐고, 이 때문에 꾀병이 아니냐며 크게 비판 받고 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시하는 일본인들로서는 이 같은 그녀의 행보가 황당하기 그지 없다. 함께 출연한 동료배우와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에게 최악의 민폐를 끼치고 있어, 일각에서는 "이제 사와지리가 일본 연예계에서 설 자리는 없다"며 그녀가 연예계에서 추방될 것이라는 지적마저 들려오고 있다.
 
대마초 의혹에 이어 설상가상으로 꾀병 논란까지 일자, 이를 무마하려는 듯 다시 복귀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녀를 보는 시선은 이미 차갑다.

그녀가 활동을 재개하는 날로 밝힌 14일에는,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영화 '헬터 스켈터'의 무대 인사가 예정돼 있다. 이에 사와지리가 이날 무대에 등장할지 여부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영화 '헬터 스켈터'     ©JPNews/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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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쥐해 주시겠습니까? 12/07/15 [07:42]
왜 일본인들은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그토록 터부시할까? 폐라는 것은 사회적인 관계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사회적인 관계와, 조선인들이 생각하는 사회적인 관계가 조금 다른 듯 하다. 인간을 단순히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이와 같은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 까닭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자라는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가정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문자는 한자를 본체로 삼고 있다. 그런데 한자는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것이다. 일본이 손에 쥐고 있는 도구는 소리값을 표기하기 위한 히라가나에 불과하다. 이것은 다시 말해 스스로 만들어낸 뜻문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적다는 소리와도 같다. 이 같은 모델은 문명의 팽창과정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이 부족한 문명이, 이웃한 문명의 인식체계를 소리값만 바꿔 그대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시문명의 확장 과정에서 빈번히 보여지는 현상이며, 어린아이가 어른의 행동을 모방하는 패턴과도 유사하다.
그런데 모든 문명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통해 정점에 들어서는 순간을 반드시 겪는다. 정점을 지난 문명은 내부를 향해 붕괴하는데, 이 때 변두리문명이 중심부문명에 과도하게 의지하고 있을 경우 중심부문명을 따라 급격히 붕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앞의 예에서 보였듯 변두리문명은 중심부문명의 인식체계를 소리값만 바꿔 그대로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심부문명이 붕괴함에 따라 소리값은 있되 인식할 사물이 없다는 모순이 발생하고, 이는 중심부로의 침공을 유발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옛부터 중국에서 오랑캐라 불려왔던 민족들이 중원으로의 침공을 끊임없이 강행했던 데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만일 이와 같은 가정이 옳다면, 1839년 아편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중국은 성장하고 있던 게 아니라 붕괴하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왜냐하면 주변부문명에 의한 침공으로 인해 중심부문명의 모순이 자연스럽게 해체/재결합하는 과정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꾸준히 확장된 문명의 경계선이 극한에 달했던 시점이 청나라요, 여진족은 중국의 마지막 주변부문명이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럼 여기까지의 논리에 비추어봤을 때 일본의 만주침공 및 여기에 대처하는 중국정부의 자세에 대해 남한은 어떠한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하겠는가?

먼저 만주침공은 앞선 '오랑캐'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였다는 점에서, 일본 자신을 위해서도 비판받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에 발을 들여놓는 민족은 모두 한자에 동화되어 정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묻노니, 일본이 스스로를 아끼는 까닭은 무엇인가? [ 번체자 + 히라가나 ]로 구성된 문자체계에서, 정체성은 히라가나에 실려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정체성을 없애버리려고 - 물론 자신이 초래할 결과는 몰랐겠지만 - 중국을 침공한 것 아니었는가? 최근에 보았던 섬뜩한 기사의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자결 예행연습'이라 불려도 좋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마찬가지로 중국 또한 북양함대가 황해해전에서 대패한 뒤 신해혁명을 일으켜 구체제의 모순을 뒤엎고자 한 것 아니었는가? 그런데 중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가 자본주의 붕괴에 따른 국가 내부의 분열이라고 가정한다면, 자본주의에 의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을 설명할 수가 없다. 건국이념과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중국 특유의 [ 자본주의 + 사회주의 ] 실험이라고 볼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떻게 보면 주변부 오랑캐를 끌어들여 내부 모순을 해결해왔던 지난 반 만년의 역사와 하등 다르지 않은 셈이다. 단지 그 오랑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라는 괴물로 바뀌었을 뿐. 이 시점에서 중국의 미래를 점치려면 괴물의 현재 모습을 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보라.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순간부터 이란과의 핵전쟁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2008년을 기점으로 미국은 확실하게 정점에 들어섰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다.

자본주의 천국인 남한 주제에 중국을 비판할 자격 충분치 않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덩샤오핑 이래 중국의 존재이유가 '흑묘백묘론'에도 걸려 있다고 본다면, 앞으로의 위기는 어떻게 해결해나갈 셈인가? 더 이상 중국을 침공하려는 나라는 없다. 침공할 수도 없다. 침공하기도 싫다. 유동성 위기가 시작된 이래 돈 갖다 준대도 다들 싫다고 그런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은 북한, 남한, 일본,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 티벳을 차례로 잡아먹고 당분간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일본이 플로토늄을 핵병기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와 똑같은 모순을 겪을 것이다. 일본이 무엇 때문에 날뛰는 것인가? 비록 한 때 남경에서 대학살극을 벌이긴 했어도, 그들도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남한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 두려움의 눈빛은 북한을 통해 들여다보는 우리 자신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문제를 풀기 위한 어떤 올바른 수순이 필요하다. 그게 뭘까?

아무튼 그 시작은 서로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를 인식하기 전에, 반드시 자국의 과오부터 냉철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이 생각하는 사회관계가 일본의 그것과 다른 것은, 사물에 대한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일본보다 덜 대외의존적인 환경에 기반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조선에서 한자는 동음이의어를 구분하기 위한 참고용 인덱스 정도로만 사용될 뿐이며, 일본과 같이 일상에서 사용되는 일은 없다. 뿐만 아니라 알파벳 또한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한국어 문자체계로 흡수하는 데 아무런 무리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리가 안 생긴다는 사실 또한 모순이다. 일본과 같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면, 내일의 승자는 일본이 되지 않겠는가?
조선 또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자를 빌려 쓰다가 자립한 지 고작 500년 밖에 안 지났다. 500년이 긴 시간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1945년 독립한 이래 남한의 경제성장을 이끈 주역이 영어라는 사실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영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표음문자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500년 전 한자가 그랬듯 뜻문자를 대신하는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이다. 인식체계를 모방하는 과오가 반복되었다. 그 위에 민주주의라는 부실공사를 강행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성장의 한계를 맞아 영어가 기독교로 모습을 바꿔 득세하는 중이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그나마 일본에선 이와 같은 과오를 끊어버리려는 시도조차 눈에 띄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자신들만의 뜻문자가 없어 고생하는 중이라면,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모방할 수 있는 표음문자(로 위장한 뜻문자)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큰 고민인 것이다. 쉽게 말해, 더 이상 누구도 '컴퓨터'나 '아메리카'라는 단어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건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럼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은 대체 어디에 사용하면 좋지? 그런 점에서 남한과 일본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며, 일본과 손을 잡을 근거는 충분하다. 그렇다고 북한과의 통일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동맹 맺을 생각을 해선 안 되겠지만. 인식의 힘을 다른 곳으로부터 빌려오고자 했던 것이 여지껏 문명을 붕괴로 몰고 갔던 가장 큰 원인 아니겠는가? 따라서 그 힘을 되찾고자 하는 본 과업이 실패한다면, 혹은 군사력으로 풀려 하거나 헛된 이익에 눈이 멀어 올바른 수순을 밟지 아니하려 한다면, 자국의 문명이 붕괴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상대의 문명 또한 붕괴로 몰고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각국의 시민들은 마땅히 자신의 국가를 향해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국가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여기에 답을 할 수 있어야 정체성을 손에 쥐고 상대국의 시민들에게 말문을 틀 것 아닌가? 그러려면 먼저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마음껏 짓까불고 떠들 수 있는 자유. 그런 면에서 동북아의 나라들은 꽝이다. 세계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간 서구제국주의 너네도 꽝이고. 그리고 미국, 너 좋아하지 마라. 너네가 제일 마지막에 엉덩이를 맞아야 한다고. 돌아가면서 한 짝씩 맞아도 총합이 200대네?
아무튼 텍사스의 카우보이를 둘러싼 축제는 이미 시작된 셈이며, 남한의 입장에서 봤을 땐 북한, 그리고 북한의 입장에서 봤을 땐 일본이 해결의 우선순위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꼼수를 부리려 한다면, 예컨대 일부러 자국의 역사를 엉망으로 기술해두었다가 나중에 빅딜을 하는 식으로 이웃나라와의 갈등을 풀려 한다면, 그렇게 해서 얻은 이득은 반드시 자신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인식에 대한 고민까지 남에게 맡기랴? 왜 일본에서 할복문화가 발달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이와 같은 논리에 따라 난, 악녀 에리카의 뛰놀 수 있는 자유를 적극 지지하는 바이다. 쥐쥐~ 쥐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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