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성은 지난 1월 24일, 이 천막이 국유지를 불법 점거했다며 철거 명령을 내렸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수장인 에다노 유키오 경산상까지 나서 자진 철거를 바란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천막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국이었다면 벌써 공권력을 사용해 철거했을 터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공권력을 쉽사리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하고 싶어도, 이 경우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 텐트를 지지하는 수많은 일본인이 뒤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천막은 바로 탈원전 시민운동가들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외치는 탈원전 구호에 수많은 일본인이 동조하며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 천막 안에서 발신하는 정보와 의견은 오가는 사람들의 입과 인터넷을 통해 일본 전역, 더 나아가 세계에 전달되고 있다. 프랑스, 브라질, 독일, 미국 등의 주요 외신도 이들의 활동에 주목하고 앞다투어 자국에 전하고 있다.
그들의 외침은 시대의 위기를 정면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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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의 입구에는 '(천막이 세워진 지) 181일째'라고 적혀 있고, 원전의 폐해를 알리는 각종 현수막과 사진들이 걸려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천막 주변에는 출입통제를 알리고 이곳이 경제산업성의 경지라는 점을 강조한 노란 경고 문구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경제산업성 앞의 텐트히로바'. 여기서 히로바란 광장을 의미한다. 우리말 식으로 고치면 텐트광장쯤 되겠다.
텐트히로바에서 적극적으로 탈원전 운동을 펼치는 다니 소노코 씨의 말에 따르면, '텐트히로바'에는 "원전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광장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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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히로바는 3개의 천막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천막에는 아이들이 직접 만든, 방사능으로 오염된 일본의 현재를 표현한 사진과 그림, 편지 등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두번째 천막에서는 '원전이 필요하지 않은 후쿠시마 여성 모임'에 속한 후쿠시마 피난민 여성들이 원전 사고의 실상과 주민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천막은 원전이 진정으로 필요한지에 대해 누구라도 참여하여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열어 놓았다.
원전의 위험에 대해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이 '텐트 광장'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의 주체는 특정 단체나 개인이 아니다. 원전에 의존하는 일본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곳인 만큼 이곳 출입에는 제한이 없다. 기자가 찾아갔을 당시에도 평범한 인상의 아저씨 네 분과 다니 소노코 씨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니 씨를 제외한, 이 4명의 남성 중 처음부터 텐트히로바에 참여한 사람은 없었다. 이들 모두 원전은 철폐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여유가 생기면 텐트를 찾아 텐트히로바 지키기에 동참하고 있다.
다니 씨: "작년,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가 일어난 뒤, 원전을 반대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이곳 가스미가세키에 모여 자주 항의 활동을 펼쳤다. 더욱 심각해지는 원전 사태를 보고,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실상을 알리는 방법을 고민했다. 결국, 경제산업성 앞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원전 반대의 발신 거점으로서 많은 사람과 함께 생각하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텐트히로바의 설치부터 운영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한 다니 씨는 이곳의 출발점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고 밝혔다. 천막 농성 장소로 경제산업성을 택한 이유 역시, 일본 내 모든 원자로의 관리, 감독을 책임지는 관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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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 씨는 "처음 설립됐을 때는 텐트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부족했다. 그러나 점점 원전 사태가 악화하면서 많은 사람의 생각이 변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방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계신다.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왔고 최근에는 젊은 청년들도 가세했다. 지금은 텐트를 지켜 주는 도움의 손길이 많아 한결 운영이 수월해졌다"며 원전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가진 다양한 세대가 참여한 것이 24시간 동안 텐트히로바를 지키고 181일간 지속시켜온 힘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산업성이 철거 명령을 내린 1월 24일에도 강제철거를 우려한 몇백 명의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이곳에 와 천막 주위를 손에 손을 잡고 막아서 끝까지 지켜냈다고 한다.
"경제산업성의 주장은 우리가 국유지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지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더구나 사용 허가 신청도 내봤지만 거절당했다. 지금은 철거 명령 철회서도 제출한 상태다. 자진 철거할 생각은 없다"
텐트히로바의 주장은 인간이 원전을 완벽하게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에다노 경제산업상은 텐트히로바에 철거를 요구하는 논평을 낼 당시 "내 생각 역시 그들의 주장에 가깝다. 심정적으로 이해한다"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원전의 관리, 감독을 책임지는 경제산업상이 심정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은 원전 사고가 초래하는 막대한 피해가 인간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음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일본 정부는 현재 탈원전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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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재해가 아니다. 분명한 인재다. 사고의 근본적 원인은 쓰나미에 의한 피해가 아니라 거대 쓰나미를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안일함이 대참사를 초래했다.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정부는 국책사업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립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참사로 이 땅의 인간은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편안함과 목숨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이번 사태로 확실해졌다."
또한, 정부의 사고 수습과 피해 주민 대책에 강한 의구심을 표현했다.
"작년 12월 노다 총리가 냉온 정지를 선언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원자로가 안정됐고 방사능 제거 작업으로 오염 수치도 많이 떨어졌다며, 마치 원전사태가 수습이라도 된 듯한 투로 말했다. 백 보 양보해서 피난지역에 있는 마을 내의 방사선 제거 작업이 좋은 결과를 냈다고 치자. 과연 피난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현재 방사능 제거 작업은 사람들이 사는 장소에 국한되어 있다. 올봄부터는 본격적인 작업이 이뤄질 예정이다. 그러나 마을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 자체는 방사능 제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루어진다고 해도 완벽한 제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농사와 고기잡이가 주요 산업이었던 곳인데 누가 그 땅의 먹거리를 사서 먹겠는가. 피난 주민은 돌아가고 싶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부모들의 심정이다. 텐트히로바에 방문한 후쿠시마 주민은 자신이 자라온 고향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내 자식이 안전하게 놀 수 없는 곳에서 살 수 없다는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피난 생활을 하는 주민 중 57%가 귀향을 희망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일수록 귀향 희망자가 적었다고 한다.
원전 사고는 이처럼 인근 지역 주민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한 번의 사고로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 돼버린 후쿠시마. 시대는 원전의 필요성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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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은 필요 없다.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인간의 목숨보다 산업과 경제를 우선시한 결과가 후쿠시마 원전 대사고다. 우리 텐트히로바는 많은 사람에게 탈원전의 필요성을 전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다니 씨는 다시 한 번 원전 철폐를 주장했다. 그러나 원전을 대신할 에너지원이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상당히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작년 여름, 일본은 원자로에서 생산하는 전력 없이도 전기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다. 혹자는 강제 절전 구역을 설정해 전력부족에 대비한 결과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도쿄 전력을 제외한 다른 전력 기업에서는 전력이 남아돌았다. 원전 찬성파가 강조하는 전력부족은 거짓임이 밝혀졌다"라며 원전 찬성론자들을 비판했다.
자연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 발전에, 원전 건립에 들어가는 자금을 투입한다면, 자연에너지원은 인간이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청정에너지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은 세계 최초로 원전 사업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우리 원전이 일본과 달라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때마침 터진 9.15 대규모 정전사태는 한국 정부와 원전 건설을 찬성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큰 힘을 보탰다.
이 같은 한국에 대해, 다니 씨는 "안전하다는 믿음에 의지하기엔 원전 사고의 후유증은 터무니없이 무섭다. 한 번이라도 일어나게 된다면 인간이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다. 한국은 일본처럼 생명과 전력 발전을 저울질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활동을 계속할 예정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일본 내 모든 원자로(54개)의 가동이 중지되고 탈원전을 약속받을 때까지 우리는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에서도 원전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