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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김정은 체제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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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일 (코리아리포트
기사입력 2012-01-03

 
▶ 김정일에서 김정은 시대로


건국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뒤를 이어 1994년부터 17년간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군림해 왔던 김정일 총서기가 12월 17일 사망했다.

사망하기 1년 전, 그는 삼남 김정은을 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앉혀 후계자로 정했다. 국장(28일)과 추도 행사(29일)가 끝나고 북한은 새로운 ‘김정은 시대’로 이행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권력자인 '장군님'의 예기치 못한 사망으로 이 나라가 받은 충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그것은 사망 발표까지 이틀간의 공백이 필요했던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분명히 그 사이 김정은 등 김정일 패밀리 및 당·군 간부 등은 건국 이래 두 번째 '대사변'에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어찌 됐든 신년 2012년,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시대가 바뀌었다. 국장까지의 추도 기간 중 후계자 김정은은 "우리 당과 군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 "우리당과 국가와 군대의 영명한 영도자"로서 선전됐고, 김정은을 정점으로 김씨 일가와 당, 그리고 군대가 일치 결속해 이번 위기를 넘기려는 모양새다.

그러나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후계체제가 정돈됐다고 해도,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로서 아버지 김정일을 대신해  단결의 구심력, 상징이 될 수 있을까는 아직 미지수다.

무엇보다도, 그는 조만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당 중앙군사위원장이라는 최고 자리를 계승해 명실상부 톱의 자리에 오르겠지만, 절대적인 권한을 쌓아 온 아버지의 권위까지는 그렇게 바로 계승할 수 없을 것이다.
 
▲ 시찰에 나서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  ©JPNews

 
 
아버지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 생전에, 게다가 왕성한 나이인 49세에서 50세 사이에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에 취임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는 이미 52세였고, 지도자로서 원숙미를 풍기고 있었다. 이에 비해 김정은 씨는 아직 28세로 젊고 제왕학도 완전히 배우지 못해 후계자로서의 경험도 실적도 빈약하다.

당과 군은 김정은을 "우리 혁명무력의 최고영도자"라며, "김정은 동지의 유일 지도체계"를 확립해 절대복종할 것을 추도 대회에서 맹세했다. 그러나 후계자로서의 지도력과 통솔력, 또는, 자질과 정치 수완이 문제시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김정은 체제로 연착륙할 수 있다고 해도 장기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 경제재건이 급선무


김정은 체재에 무엇보다 중대한 위협은 경제불안이다.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들에 남긴 유산이 일인 지도자 체계, 군을 중심으로 한 권력기반이라고 한다면, 최악의 경제 상태는 물려받은 부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인민에게 지지와 충성심을 얻기 위해서는 경제 재건과 국민 생활을 빠르게 향상시키는 것 외에는 없다. 2대에 걸쳐서도 실현하지 못했던 '흰밥에 고깃국, 기와집'을 얼마만큼 담보할 수 있을까가 문제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만성적으로 피폐한 경제를 단기간에 회생시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체제가 변했다고 해도 기사회생의 묘수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늘의 경제상황을 누구보다도 숙지했을 터다. 만년에 경제 분야의 시찰을 급속히 늘린 점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1984년, 인민 생활의 향상을 "조선 노동당 활동의 최고 원칙"이라 정한 것은 다름 아닌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신이었다.

김정일은 당시, 연방제에 의한 통일 실현을 위해서도 경제적으로 한국을 압도해야 한다고 간부들에게 지시했었다. 그러나 27년이 지난 지금, 남북의 경제 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확대될 뿐이다. 지금은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은 지난 2010년 약 2만 591달러를 기록한 데 반해 북한은 661달러로 큰 차가 벌어져 버렸다.
 
▲ [현지 포토] 폐선에서 살아가는 북한 주민  ©JPNews

 
 
특히, 식량난이 심각하다. 1995년~96년에 발생한 전례 없던 대홍수에서 시작된 식량위기는 15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고 지금의 참상에 이르고 있다.

김정일은 1977년, 전 국민에게 곡물 850만 톤 생산하는 투쟁 운동을 전개하도록 촉구했다. 그러나 아직도 500만 톤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기관의 식량지원 없이는 안 되는 지경까지 몰렸다.

이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람은 누구라도 굶주림에는 타협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앞으로 1~2년 내에 국민이 열망하는 식량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후계자로서의 수완이 문제시되고 인민들로부터 무시당할지도 모른다.


▶ 절대로 필요한 군의 지지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와 더불어 군의 지지도 꼭 필요하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권 발족 초창기부터 당과 군의 인사를 거의 장악해 왔다. 후계자로 선출된 1972년부터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는 1994년까지 22년에 걸쳐 이인자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당과 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절대복종했고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스르는 이는 없었다. 있다고 해도 거의 표면화되는 일은 없었다. 유일한 예외는 김일성 사망 3년 후 측근인 황장엽 전 서기가 한국으로 망명한 사건 정도일 것이다.

김정일이 이같이 확고부동한 권력을 유지한 것은, 사망한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승계하기 전부터 ‘혁명무력의 최고권력’인 국방위원장과 최고사령관으로서 군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김정은은 작년(2010년)에 대장으로 승격하고, 당 군사부위원장의 자리에 이제 막 취임했다. 4년 전인 2007년 시점에서는 인민군 상위(중위와 대위 사이의 계급)에 지나지 않았다. 30살도 되지 않은 젊은이가 60대 이상으로 구성된 9명의 국방위원, 17명의 당 군사위원회 등을 통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 조선인민군은 지금도, 예전도 최대의 무장세력인 동시에 최대의 기득권 세력이며 특권계급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일반시민보다 배급 등의 생활 환경과 친족들의 지위 보전 면에서도 우대받고 있다. 이러한 기득권과 특권이 보장되는 한, 군은 대를 이어 김정은 체제를 보좌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 중시를 이유로 군사비 삭감 등 군 우선의 '선군정치'에 수정을 꾀하려 한다면, 군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도식에서 추도문을 낭독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위원장은 앞으로도 강성대국, 즉 정치, 사상, 군사 강국에 이어 경제면에서도 강국을 지향한다고 선언했지만, 중국과 달리 북한에 있어 경제 재건과 군사 우선 노선의 양립은 대단히 어렵다.
 
바꾸어 말하면, 경제 재건에는 현재 가해진 UN 경제제재 철회와 한국,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협력이 불가결하지만, 제재 철회에는 군이 쥐고 있는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새 지도부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유훈 정치를 계승하려면, 6자회담 공동성명에 기초한 핵 문제 해결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미국과의 역사적인 화해를 신중히 지향하기 위해서는 핵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1980년 이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개발해온 핵을 도중에 단념하고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핵과 미사일은 군의 전매특권이기 때문이다.

핵 문제에서는 그래도 김정일이었기 때문에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핵 포기라는 어음을 발행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김정은이 군부를 설득해 핵 포기 어음을 끊을 수 있는가에는 대단히 의구심이 든다. 반대로 무서운 존재였던 김정일의 그림자가 사라진 지금, 군의 발언력이 한층 더 강해져 가령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의 예를 들을 필요도 없이, 정권을 계승한 자는 전임자를 부정할 것인가, 차별화를 도모할 것인가, 아니면 일정 거리를 두는 것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을 것인가가 보통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그러했듯이 김정은 또한 이 수법을 선택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김정일이 그러했듯이 김정은 또한 선대가 쌓아 온 노선을 답습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북한은 지금, 뒤로도 물러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전진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젊은 세대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놓여 있는 힘든 상황을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김정은이라면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 난관과 외교적 고립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핵을 포기하고 중국, 베트남과 같이 개혁·개방을 지향하는 것 외에는 없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멸망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는 군부가 그것을 용납할 것인가는 단정하기 어렵다.

김정은을 정점으로 하는, 후견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 등 북한의 새 지도부가 과연 '루비콘 강'을 건널 것인가가 앞으로 주목되는 점이다.

▲ 연평도 포격 당시의 김정은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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