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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IT황제, 손정의의 삶과 일(12)

"저는 야스모토가 아닌, 손정의라는 본명을 쓰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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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피뉴스 기획팀
기사입력 2011/12/07 [23:24]

일본 근대사에서 1800년대의 풍운아가 사카모토 료마라면, 190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본 IT산업의 쓰나미를 몰고 다니는 이는 역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다. 일본에서 손 회장이 움직이면 늘 그곳에는 크고 작은 바람이 인다. 왜냐하면, 그는 일본의 현대판 풍운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4개 현에 100억 엔이라는 재해연금을 내 일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런가 하면, 원전폭발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이제는 태양에너지 활용 친환경운동가로 변신해 일본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바로 그에 대한 일대기를 매일 제이피뉴스에서 연재하기로 한다.


손정의는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고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유학을 선택한 것은 재일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사실은 그대로 미국 고교에 편입하고 싶었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어학연수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고교 1학년 신분으로 미국 어학연수를 떠난 손정의는 미국, 즉 사고(思考)의 자유분방함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또한, 다민족국가로서 일본처럼 재일한국인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 존재하지 않아 너무도 마음이 편했다.

그는 어학연수를 하면서 더욱더 미국유학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 차별이 없는 미국에서라면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동안 손정의가 아닌 '야스모토 마사요시'로 살아온 가면의 빗장을 벗어던져야 했다. 그래서 그는 어학연수에서 돌아오자마자, 친한 친구에게 자신이 일본인이 아닌 재일한국인 3세라는 것을 고백했다.

"사실은 나 한국국적이야. 지금까지 말하지 않아서 미안. 사실을 말해버리면 모두가 떠나버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말하지 못했어."

다행히 이 말을 들은 그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놀라는 듯했지만, 나중에는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느냐며 오히려 그를 위로해줬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무척 좋아하고 존경했던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에게도 편지를 띄웠다.

"선생님의 수업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저도 선생님이 되고 싶지만, 국적 문제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종의 국적에 대한 커밍아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할머니에게 아버지의 고향에 가고 싶다고 졸랐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런 손자가 매우 대견한 듯 대단히 기뻐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고1밖에 안 된 손자가 자신의 뿌리를 찾겠다고 처음으로 고향을 가자고 졸랐으니 진심으로 놀랄 수밖에.

그렇게 해서 1973년 가을, 마침내 손정의는 할머니와 함께 대구 안동에 있는 고향마을에 갔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안동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등잔불로 어둠을 밝히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서 밤만 되면 밖은 어두컴컴했다. 그래도 손정의는 훗날 일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가본 고향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고향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로 사는 산촌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그런 시골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친척이 살고 있었는데, 비록 가난하지만,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줬고 식사도 정성이 가득 찬 밥상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우리말을 할 줄 몰라 할머니가 일일이 통역해줬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가 스스로 조국을 찾은 것이 너무도 기쁜 나머지, 연신 싱글벙글하며 그의 말을 한마디도 빠짐없이 친척들에게 통역해줬다고 한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꿈대로 미국 유학을 가는 것.

하지만 그의 미국유학을 찬성하는 가족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울면서 가지말라고 호소했다. 담임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그토록 유학을 가고 싶다면 고등학교만이라도 졸업하고 가라고 만류했다.

또한, 이대로 가면 도쿄대학에도 거뜬히 합격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때 그의 성적은 200명 중 30위 이내였고, 실제로 2년 후 대학시험에서 그의 동급생 37명이 도쿄대학에 진학했다.

"도쿄대에 가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도쿄대의 어디가 좋습니까? 도쿄대를 나와도 국적문제로 관리(공무원)도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평가해줍니다. 미국에 가서 제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열여섯 살의 나이에 국적으로 인한 정체성, 미래에 대한 불안, 인간답게 살고 싶은 인간적인 본능을 그는, 그의 내면에서 아주 훌륭하게 필터링하고 있었다. 미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1년 동안, 그는 인생 지표를 확실하게 세웠고, 그는 그 지표대로 미국 유학을 꿈꾸었다. 그 꿈은 아주 강렬했고 또 단호했다.

그의 아버지 삼헌 씨는, 그가 한번 결심하면 되돌이키지 않는 성격임을 잘 아는지라, 할 수 없이 미국유학을 허락하며 그에게 조건을 붙였다.

"1년에 한 번씩 꼭 집에 돌아올 것이며, 서양여자와의 결혼은 절대로 안 된다. 만약 결혼하게 되면, 동양여성이어야 한다. 이 약속을 지키면 매달 30만 엔의 학비를 보내주마."

아버지로서 최대한의 양보이자 후원이었다. 그의 어머니도 눈물로 마지 못해 허락했다.

그는 즉시 고등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주위에서는 휴학하고 가도 되지 않느냐 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자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돌아갈 곳이 있으면 혹여 미국유학 생활이 힘들 때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그 스스로 자신에게 차단막을 친 것이었다.

마침내 열여섯 살의 나이에 고교를 중퇴하고 드디어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진작부터 생각해 왔던, 학급 친구들 앞으로 계획했던 편지를 썼다.

"지금부터 저는 야스모토 마사요시가 아닌, 재일한국인 손정의라는 본명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미국 어학연수 후, 개인적으로 아주 친한 친구에게는 자신이 재일한국인임을 밝혔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불러왔던 일본식 이름을 던져버리고, 한국식 이름으로 살아가겠다는 그의 선언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 공개편지를 받은 고등학교 친구들을 놀라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대단히 감동하게 한, 실로 역사적인 편지였다.

이렇게 일본에서의 고교 시절을, 역시 그답게, 손정의식으로 산뜻하게 마무리 지었다.
 
                                                                                                                         (계속)


▲ 아이폰4S를 홍보하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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