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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IT황제, 손정의의 삶과 일(11)

재일동포 손정의의 비애, 그리고 특출났던 학창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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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피뉴스 기획팀
기사입력 2011/12/07 [15:12]

일본 근대사에서 1800년대의 풍운아가 사카모토 료마라면, 190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본 IT산업의 쓰나미를 몰고 다니는 이는 역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다. 일본에서 손 회장이 움직이면 늘 그곳에는 크고 작은 바람이 인다. 왜냐하면, 그는 일본의 현대판 풍운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4개 현에 100억 엔이라는 재해연금을 내 일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런가 하면, 원전폭발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이제는 태양에너지 활용 친환경운동가로 변신해 일본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바로 그에 대한 일대기를 매일 제이피뉴스에서 연재하기로 한다.

학교 선생들이 손정의의 능력을 인정한 것은, 비단 성적뿐만 아니라 그의 인성(人性) 때문이었다고 한다. 손정의는 한번 약속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성격에다 정의감이 상당히 투철했다는 것이다.

그 실례로 미키(三木)라는 동급생은 손정의에 대해서 일본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미키 씨의 표현에 의하면, 중학생 시절 손정의는 '유언실행(有言實行)’의 표본이었다고 한다. 성적은 미키 씨가 늘 1위였지만, 상위권의 성적과 성실함, 그리고 정의감에 서 손정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키 씨는 대단한 비만이어서 체육 시간에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뚱뚱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마라톤 완주를 한 적이 없었다고. 반 친구들은 늘 함께 뛰자고 권해 왔지만 실제로 자신과 끝까지 남아 뛰어준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학 온 낯선 손정의가 자신의 속도에 맞춰주면서 완주할 때까지 끝까지 뛰어 주었다는 것이다.

친구에 대한 일화는 또 있다. 하굣길에 반 친구가 불량배에게 폭행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나가 힘을 보탠 일화는 지금도 동창생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의리 있고 친구에 대한 배려심이 많던 손정의도 단 한마디의 농담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고노 안폰가(このアンポンが)"

우리말로 직역하면 '이 바보' 정도의 의미로, 진짜 바보라는 뜻이 아니라 친숙함을 나타낼 때 즐겨 쓰는 하카다(博多) 지방의 사투리다. 헌데 손정의는 이런 뜻을 잘 알면서도 어쩌다 선생이 이 말을 사용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왜 그런 말을 하느냐며 목소리까지 떨면서 항의를 했다고 한다.
 
손정의가 이 말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나타낸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이름 때문이었다.
 
손정의의 일본 성은 야스모토(安本)다. 야스모토라고 읽히는 한자 '安本'은 '안폰'으로도 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안폰'은 바로 하카타 사투리로 바보라는 뜻을 강조한 말과 다름없는 것이어서, 손정의가 그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야스모토'라는 성을 사용하는 일본인들은 대부분 귀화한 재일동포들이어서, 이름에 관한 한 비단 손정의 뿐만 아니라 재일동포 2,3세들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아이덴티티에 대한 손정의의 아픔을 알 리 없는 반 친구들은, 그답지 않게 불같이 화를 내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 어렸을 적부터 탁월한 기업가 소질 지녀
 

재미있는 것은 손 정의가 이미 이때부터 탁월한 기업가 소질을 보였다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늘 1등만 하는 미키 집에 손정의가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다고 한다. 찾아온 목적은, 후쿠오카 시내에서 일류 고교 진학률이 가장 높은 '모리타주쿠(森田塾, '주쿠'는 우리나라의 사설학원에 해당함)'에 다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미키의 어머니가 이 모리타주쿠의 학부모회 위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 사립중학교의 일류 고교진학 경쟁은 대단히 치열하다. 그래서 일류 고교를 지망하는 중학생은, 방과 후 역시 일류 주쿠에 들어가 공부한다. 주쿠에는 성적 수준에 따라 ABCD반으로 나뉘어 스파르파식 공부를 시키는데, 일류 주쿠는 성적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아예 학생을 받지 않는다.

특히 모리타 주쿠는 일류 고교진학률이 대단히 높은 곳으로, 미키처럼 늘 최상위권에 있는 학생만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상위권 성적이긴 하지만 최상위권에 들지 못하는 손정의는 거절 당한 것이다.

결국, 미키 어머니를 앞세우고 모리타 주쿠를 찾아간 손정의는 마침내 모리타 주쿠의 설립자이자 원장이기도 한 모리타 씨를 설득, 원하던 대로 모리타 주쿠에 들어갔다.

손정의의 기업가 기질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그 능력을 발휘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손정의는 중학교 3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담임선생님을 상대로 일장 연설을 했다.

"저의 아버지는 파친코와 소비자금융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같은 장사를 한다면,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아버지처럼 야쿠자와 관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 그래도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잖습니까? 저는 모리타 주쿠를 다녔습니다. 모리타 주쿠는 구루메대학 부속 고교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보다는 조금 아래 수준인 현립 고교를 목적으로 주쿠를 설립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주쿠의 책임자가 되어 주십시오."

그러면서 손정의는 다섯 과목의 커리큘럼까지 이미 만들어 놓았다고 말하며 가지고 온 자료를 펼쳐 보여줬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키의 어머니까지 움직여 주쿠를 열 건물을 보러 다녔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교사인 중학교 동창생을 찾아가 그의 아버지에게 주쿠 경영까지 부탁했다. 

이때 손정의의 나이 15세였다.

결국, 그의 계획대로 주쿠를 열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손정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적확한 바로미터의 첫번째 일화였다.

그런데 불과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는 고교 1년생이 현실적으로 무모하다고 할 만큼 자신만의 일을 만들려고 한 그 배경에는, 재일동포가 지닐 수밖에 없는 슬픈 비애가 감춰져 있었다.  

손정의는 당시, 왜 어린 자신이 그런 일을 도모하려고 했는지 그 진실을 담임이었던 아베선생에게 솔직히 고백했다.

"진짜 되고 싶은 것은 교사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국적이기 때문에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주쿠라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한숨을 쉬며 왜 주쿠를 하고 싶어하는지, 진실을 토해내는 열다섯 살 난 손정의의 모습을 보며, 아베 선생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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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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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샤곰탱 11/12/07 [23:12]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단행본으로 나와도 손색이 없겠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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