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맨션은 100세대 이상이 살고 있는 고층 맨션이기 때문에 자전거 주차장도 지하 1층과 2층의 2개 층을 사용하고 있다. 관리 사무소로부터 되도록이면 지하 2층 자전거 주차장을 사용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워낙에 넓은 장소이다 보니 1층이건 2층이건 충분히 자전거를 세울만한 공간이 확보되어 있었다. 그래서 적당한 장소에 자전거를 세워두었다. 그런데 며칠 후 이사 와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사용하려고 자전거 주차장에 내려가니 내 자전거에 이상한 메모지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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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모지를 보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왜냐면 관리사무소에서도 이 맨션에는 딱히 자전거를 세워두는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곳에나 세워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텅텅 빈 장소에 자전거를 세워두었는데 말이다.
확실히 자전거가 세워진 장소가 매우 편리한 곳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기둥 옆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두었을 때 정확하게 어디에 주차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리모콘 키를 눌러서 위치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넓은 자전거 주차장 어딘가에 세워둔 자기 자전거를 찾아내기란 조금 귀찮은 것이 사실이다. 눈에 띄는 지표가 있다면 그런 수고를 덜어서 빠르게 자전거를 가져갈 수 있으니 편리한 명당 자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중하게 메모지에 자기 자리니까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이는 것은 조금 납득하기 힘든 행동이다.
필자의 경우 지금까지 자전거 주차장에서 이런 종류의 트러블을 여러 차례 경험해왔다. 아마 누구나 한두 번 정도는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번은 이전에 살던 공단 자전거주차장에 항상 자전거를 세워두던 장소에 다른 사람의 바이크가 세워져 있길래 다른 장소에 자전거를 세워둔 적이 있다. 그런데 다음 날 자전거를 타려고 보니 내 자전거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찾아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은 일본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경찰서를 가게 되었다. 자전거 분실 신고를 하기 위해서다.
결국 자전거는 3일만에 발견되었다. 맨션의 대형 쓰레기 버리는 곳에 자전거가 버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항상 세우던 곳이 아닌 곳에 세우니까 원래 그 자리를 사용하던 사람이 자기 자전거를 세우기 위해서 내 자전거를 대형 쓰레기 버리는 곳까지 들고 와서 버렸다는 이야기다. 상당히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경찰서에 다시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늘상 있는 일이니까 참고 넘어가라는 것이다. 경찰의 말투는 다른 사람이 계속 사용하던 장소를 당신이 사용했으니까 원칙적으로 당신 잘못이 크다는 투였다.
일본 야후의 지혜주머니(한국의 지식인과 같은 서비스)에서 맨션 자전거 주차장 트러블에 대해서 검색해보면 수많은 게시물이 검색된다. 쓰여진 내용도 필자가 겪었던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많은 내용이 역시 맨션에서 딱히 장소를 정해주지 않았는데도 이사 와서 자전거를 빈 자리에 세웠더니 자기 자전거가 엉뚱한 곳으로 이동되어 있었다는 사연이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정중하게 쪽지를 붙여 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일본은 자전거 왕국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적어도 도쿄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세울만한 장소는 딱히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큰 쇼핑몰이나 슈퍼, 파칭코점 앞에는 인도에 빼곡하게 세워진 자전거 때문에 보행이 곤란한 경우도 있다. 일본은 거의 인구만큼의 자전거가 존재하는데 이 자전거를 세울 만한 자전거 주차장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역 인근이나 대형 쇼핑몰 앞의 광장에 자전거를 세워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일본도 낡은 역사나 터미널 등이 재개발 되면서 용지 확보 등의 문제로 자전거 수용 대수를 크게 줄이는 추세다. 더군다나 자전거 수용 공간은 전부 유료 자전거 주차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도 문제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결국 필자는 자전거 주차장의 가장 구석 공간에 맘 편하게 자전거를 세워두게 되었다. 역시 약간 불편한 장소로 옮겨서 세우니까 아무도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글 | 김상하(프리 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