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 일본정부 측 보호를 받아온 탈북자 9명이 한국에 송환됐다. 이로써 일본에서의 '탈북자 소동'은 일단락됐다.
4년전 아오모리 건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이번 탈북 사건에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표류, 납치도 아닌 탈북이 명백한 점에서, 반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묵살한 것으로 보인다.
어제(4일) 일본 언론으로부터 탈북자들의 한국 내 대우와 생활에 관한 코멘트 요청이 있었다. 사실, 그들이 동경해온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해서 극락천국에 왔다고 할 수는 없는게 현실이다.
필자는 한국의 '보트피플(해상난민) 제 1호를 취재한 '북한망명 730일 다큐멘터리'를 출판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서울에서 수많은 탈북자들을 취재했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탈북자가 한국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데에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단, 탈북자는 가장 먼저 경기도 시흥에 있는 중앙합동심문센터에 수용된다. 여기서 장기간에 걸쳐 심문을 받는다. 가족구성, 망명동기, 탈출 경로는 물론, 살아온 생애부터 탈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밝혀야 한다. 최근 위장 망명이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당국은 형사가 용의자를 심문하듯이 철저하게 조사한다.
개인 정보에 관한 조사가 끝나면, 이번에는 북한에 관한 조사가 진행된다. 북한의 군사, 정치, 경제, 사회, 지역, 직장 등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번 탈북자 가운데는 군인이 포함돼 있다. 그것도 전 최고인민회의의장이었던 할아버지와 한국인 납치를 담당해온 대남공작원을 아버지로 둔 군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조사는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탈북자 중에는, 심문에 협력하지 않거나 불평, 불만을 말하고, 불복하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예전에는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고문 등 거친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합동심문센터에서의 조사가 끝나면, 한국에서의 생활에 순응, 적응하기 위해 같은 기도에 있는 '하나원'이라는 시설에서 최소 3개월간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살기 위한 노하우를 이곳에서 배운다.
남북이 분단된 지도 거의 66년이 지났다. 같은 민족이라 하더라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뉜 상태에서 66년을 지낸만큼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도 다르며, 사고방식도 다르다.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등 모든 것이 처음일 탈북자에게 한국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틈날때마다 사회견학에도 나선다. 산업시설 시찰부터 백화점 쇼핑까지, 한국사회에 녹아들기 위한 현지훈련이 진행된다. 특히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도 실시된다.
탈북자의 수준에 따라서는, 시설에 수용돼 있는 동안 각종 단체에 불려가 강연 등을 할 때도 있다. 탈북자는 한국정부에게 있어서 반공교육의 '살아있는 교재'이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교육이 종료되면, 이들은 사회로 나간다. 교육을 받은 탈북자들은 '희망의 나라'인 한국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사회에 나왔다고 해서 당국에 의한 보호 관찰로부터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적응할 때까지, '신변 보호'를 이유로 지역 경찰의 보호를 받는다.
보호 기간은 2년간이다. 보안국 형사들이 시내 안내부터 생활지도, 직업 알선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을 도와준다. 물론, 탈북자들 중에서는 '감시받는다'며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적지않다.
사회에 나온 탈북자가 일단 부딪히는 벽은,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 내 편견과 차별이다. 특히 "친형제를 버린 정없는 놈", "배신자", "분명 나쁜짓을 해서 도망온 거 아니냐"는 등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이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듯했다.
다음으로는, 높은 취직의 벽이다. 미국 민간단체 '북한 인권 위원회'가 예전에 북중국경지대에 도피, 잠복해 있는 탈북자 1,3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대졸'은 1%에 불과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초졸'(44%), 혹은 '중졸'(52%)이었다.
더구나 중졸, 고졸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에서 취득한 기능과 자격이 한국사회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원하는 일에 정착하지 못한채 결과적으로 3D(Dirty, Dangerous, Difficult /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직종에 종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성공하는 탈북자는 10명 중 1명 있을까 말까한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은 '좁은 문'이다.
한국 여당 의원이 4,5년 전, 1990년 이후 망명한 탈북자 308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탈북자의 평균수입은 한국 일반 샐러리맨의 절반이었다고 한다. 또한, 생활고로 인해 14%가 절도, 강도 등 범죄를 일으켰던 것으로 판명됐다.
이번 탈북자는 일본 당국자의 조사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지방으로 추방됐고, 생활면에서는 "일반 서민보다 풍족한 수입이 있어, 먹고 사는데에 지장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받게하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며, 망명동기를 밝혔다.
실제로 달러와 중국 위엔화 등 외화를 수백만 원어치를 소지하고 있어,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란 점은 명백했다. 한국원화로 수백만 원가량의 외화를 소지하고 있다면, 북한에서는 부유한 층에 속한다.
그의 탈북 동기를 한국 국민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대로라면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으므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더욱 자유로운 국가에 가고 싶다, 더욱 풍요로운 나라에 가고 싶었다"는 것이 탈북 동기라면, 같은 경우, 같은 심경을 가진 사람은 아마 한국에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탈북자가 한국에 도착했을 즈음인 어제, 똑같이 동해를 통해 목선을 타고 두사람이 한국에 표착했다. 북한은 이번에는 빠르게 대응해 이들이 표류했다며, 적십자 위원회를 통해 두사람의 신병을 인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과연 이들은 9명에 이어 한국 망명에 성공할 것인가?
(※역자주: 10월 5일에 작성된 칼럼입니다. 4일 한국으로 넘어온 탈북자 2명은 한국으로의 귀순을 원하고 있어, 한국 당국은 이들을 북한에 송환하지 않을 방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