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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6개월, 후쿠시마 조선학교에는...

[이신혜 칼럼] 후쿠시마 조선학교 그 곳에서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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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혜(재일동포 라이
기사입력 2011/09/28 [19:00]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반년이 되는 9월 11일, 또다시 후쿠시마 조선초중급학교에 다녀왔다. 이 날은 후쿠시마 조선초중급학교의 네번째 방사능 오염 물질 제거 작업이 있는 날이었다.
 
당일, 지난번에도 신세를 졌던 후쿠시마 대학 김 선생님이 고리야마역까지 마중을 나와주셨다. 김 선생님은 후쿠시마 조선초중급학교의 첫번째 제염 작업 때부터 관여해왔으나, 이번을 마지막으로 학교 제염작업에 참여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 작업을 계속하는 데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새롭게 현장을 지휘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후쿠시마현 내에서는 그 밖에도 제염작업 지원을 필요로 하는 유치원 등이 있어, 그런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기 위해서다.
 
약간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약속 장소에서 만난 김 선생님 어머니의 한 없이 밝은 모습에 그런 기분이 싹 달아나버렸다. '해바라기 꽃같은 어머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기숙사 주변의 식물 심기와 교정에 가까운 장소 등 중장비가 들어가지 못하지만, 아이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 있는 장소에서의 표토제거 작업이 열리기로 이야기된 상태였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유채꽃 씨앗을 학교에 뿌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시간에 묵념을 하는 스케줄이었다. 유채꽃 씨앗을 뿌리는 것은 김 선생님의 아이디어로 유채꽃에는 세슘을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른 아침에 학교에 도착한 후, 여기에 피어있던 해바라기를 뽑았다. 해바라기는 토양에 있는 방사성 물질을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는 설이 있어, 당초 제염작업 때에 그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그 후 김 선생님의 은퇴식 기념으로 몇 명이서 유채꽃 씨앗을 뿌렸었다."내가 가장 듣고 싶은 것을 묻는다"라고 가르쳐 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후쿠시마 초중학교 출신자에게 "이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식당 옆 공간", "운동장 끝 블록 위", "놀이기구가 있는 정원", "기숙사", "체육관", "뒷산"...... 등 대답이 넘쳐흘렀다.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듯이, 추억이 있는 곳도 저마다 달랐다. 한 남자는 "식당과 그 옆의 공간"이라고 말하며,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하고 계셔 그 곳에서 어머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어머니를 기다렸다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남자가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 표정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 한편, 많은 사람들이 체육관이라고 대답했다. 어떤 아버지는 그 이유를 "그야, (체육관 짓는 데) 많은 돈을 냈기 때문이지"라며 웃었다. 이어 "아이들이 모두들 이 학교에 신세를 졌기 때문이지. 나이가 들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해, 은혜를 갚는 거야, 은혜를"이라고 땀을 닦으며 말했다.

"뒷산"이라고 대답한 사람도 2명 있었다. 한 명은 밤에 기숙사를 빠져나와 텐트를 치려고 하다가 선생님에게 걸려 혼났던 추억을 이야기해 주었다. 또 한 명은 뒷산에 으름덩굴이 자라고 있어 그것이 매우 아름다웠다는 추억을 전했다. 으름 이야기를 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나도 그것이 먹고 싶어졌다.


 

교장선생님에게는 조선학교에 있는 소나무 이야기를 들었다. 교사 오른쪽 소나무는 조선반도에서 가지고 온 묘목을 키웠다고 한다. 일본 소나무와 다른 점이 있냐고 물으니 일본 솔잎은 잎이 두 장이지만, 이것은 세 장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왜 그런지 물으니 조선 소나무는 근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왠지 그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추억의 장소로 가장 많은 대답은 '기숙사'였다.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에서 9년 간 기숙사에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 친구 형제가 선생님이 부모님 대신이었다고 그리운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들에게 후쿠시마 조선학교는 또 하나의 집이기도 했다.
 
그러나 추억이 담긴 그 장소에서, 방사선 오염제거를 위해 흙을 갈아엎는 작업을 하는 것은 모두에게 슬픈 일이라고 했다. 대답한 사람들은 애써 웃음을 보이며 이야기했지만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 지 몰랐다.
 
그렇지만, 추억이 가득한 장소에서 오염된 땅을 갈아엎는 일은 모두 슬픈 일이라고 했다. 대답한 사람들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다. 그들에게 오염 제거 작업은 추억을 되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취재만 생각하는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후쿠시마 조선학교 학생들은 니이가타 초중급학교에 이전해 있다. 보호자에 따르면, 옮겨 다니는 학생 중에 외로움에 우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후쿠시마 방사능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 이 앞은 어떻게 될 것인지도 보이지 않고, 미래를 알 수가 없다. 많은 불안이나 갈등이 있고, 많은 생각이나 선택이 있다.
 
그러나 이 날 모인 모두들은 언젠가 이 학교에 아이들이 돌아올 날을 생각하며, 그 생각으로 몸을 움직이고, 미래를 위해 씨앗을 뿌리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여러가지 생각 김 선생님은 "포기하는 것,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함께 반년 후 꿈을 보고, 유채꽃 씨를 뿌렸다. 오전중에 헤어졌던 해바라기와 같은 어머니와 "내년 봄에 다시 만나자"라고 악수를 했다.
 
지진이 일어난 2시 46분 묵도 시간, 이 학교 시계를 찍었다. 반년 후 같은 시간도 나는 여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년 봄, 유채꽃을 보기 위해 이 곳에 다시 올 것이다.
 
아이들이 웃는 옆에서 소나무가 그것을 지켜보고, 유채꽃과 해바라기가 계절이 되면 조용히 피어나는, 그런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
 
 

 
 
* 사진, 글: 재일동포 프리저널리스트 이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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