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식당 그 동네, 골든가를 아시나요? - 1부
http://www.jpnews.kr/sub_read.html?uid=11308§ion=sc1§ion2
◆ 골든가에서 만난 '심야식당'의 추종자
사실 기자가 '아베 야로'의 단골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건 ‘골든가’ 에도 ‘심야식당’의 골수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심야식당의 탄생지인 아베 야로의 단골집보다도 더 ‘심야식당’스러운 가게, ‘밥집 아시아토’를 찾아갔다.
|
'아시아토'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한 눈에 보기에도 넉넉해 보이는 주인아주머니 ‘히로미’ 씨와 "있는 재료로 가능한 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써진 메뉴판이었다.
"아, 정말 있는 걸로 가능한 건 만들어 주시나요?"
"네. 뭐가 잡수고 싶은데요? 우리는 그날그날 식재료가 달라서, 매일 메뉴도 달라요.
오늘은 다랑어가 좋아요. 야채는 이쪽에 있고…"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쪽을 보자, 가지와 피망, 마 등이 담긴 소쿠리가 보였다.
평소 가지를 좋아하는 기자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가지가 들어간 요리'를 주문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오케이 사인과 함께 바로 소쿠리 안의 가지를 꺼내 드셨다. 껍질을 벗겨낸 가지를 구우려고 가스레인지를 켜는데 불이 한 번에 붙지 않자, 몇 번이고 반복해 켜는 주인 아주머니의 모습이 정겨웠다. 구워낸 가지 위에 가쓰오부시를 얹은 요리는 '계란말이', '버터라이스'에 비해 호화로웠지만, 그 맛은 참 담백했다.
'있는 재료로 가능한 건 만들어 준다'는 영업방침은 너무 손쉽게 확인했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까지 영업을 할까.
"영업시간이요? 저녁 장사부터 시작하긴 하는데 제일 손님이 많은 건 새벽이에요.
새벽 한 시 반쯤 되면 배고프다는 손님들이 몰려 와요. 그렇게 한 차례 몰아치고 가면
3시쯤 손님이 끊기는데, 손님이 있을 때까지 하는 게 영업방침이라 아침 9시까지 한 적도 있다니까요."
이어, 가장 황당한 요리를 부탁했던 손님을 물었다.
"술 취해 와서 오늘이 자기 생일이니까 무조건 하트 모양 오니기리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던 손님이 있었어요."
"그래서 만들어 주셨어요?"
"뭐, 생일이라는데 그까짓 것 하나 못 만들어주나?"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뭉쳐 하트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명란젓을 올려 주었다고 하시는 아주머니. 기자도 냉큼 명란젓을 올린 하트 오니기리를 주문했다.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운 핑크빛 하트 오니기리가 나왔다.
심야식당에 나오는 것처럼 소박하고 담백한 음식을 찾는 사람이라면 밥집 아시아토를 추천한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한해서는 다양한 볶음밥까지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언제든 배고프다고 떼를 쓰면 뭐든 만들어 줄 것 같은 친근한 분위기의 밥집이다.
|
취재가 끝난 후 다시 한 번 아시아토를 찾았을 때, 기자는 심야식당의 '오차즈케 시스터즈' 편에서 노처녀 삼인방이 자주 먹었던 ‘오차즈케’를 주문했다. 오차즈케는 우리나라로 치면 밥에 물을 말아 먹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녹차 우린 물에 밥을 말아 그 위에 매실장아찌(우메보시), 연어, 명란젓 등을 취향대로 올려 먹는 것이다.
따뜻한 밥 위에 녹차 우린 물을 붓던 주인 아주머니가 기자에게 물었다.
"뭐를 올려줄까? 아, 명란젓으로 할까? 너 명란젓 좋아하잖아."
기자가 명란젓을 좋아한다는 걸 기억해주신 게 고마워 냉큼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 사이 편해진 말투도 푸근하다.
어쩐지 ‘심야식당’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심야식당에는 참으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야쿠자, 게이바 사장, 엔카 가수 지망생, 에로배우, 스트립퍼, 유랑악단, 한 편 작곡가나 유명 사진가 등등 예술가들의 모습도 보인다.
동양최대 환락가 가부키쵸에 위치한 골든가를 야쿠자, 게이바의 사장, 엔카 가수 지망생, 스트립퍼들이 찾는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골든가에서 만나는 그들은 그저 평범한 손님일 뿐이다. 골든가에는 특정 직업에 대해 '색안경'을 낀 사람도 없고, 때문에 그들에 대한 '차별'도 없다.
하마 유스케(41)씨는 신주쿠 골든가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가요 가수다. 골든가에서 사람들은 그를 '하마사마'라 부른다. 그곳에서 그의 인기는 '욘사마' 저리 가라다.
한 손님이 말했다.
"여느 때처럼 집에 가는 길에 들렀는데, 가게 문을 열었을 때 '하마사마'가 있으면 꺅 소리를 지른다. 오늘은 그를 만나 유쾌한 밤이다."
|
“아무래도 외로워서 오는 거겠지. 마음 붙일 곳이 없으니깐."
골든가에서 만난 후쿠시마 출신여성 엔도 유키코(33) 씨는 최근 주 3회 이상 '골든가'에 온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후쿠시마 집에 있다가 도쿄로 돌아왔다던 엔도 씨는 얼마전 만난 동창 친구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발생 당시, 현지에 있었던 엔도 씨 동창 친구는 "나는 원전 폭발했을 때 후쿠시마에 있었어. 옮을지도 모르니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마!"라고 선언하며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다. 친구는 계속 집에만 틀어박혀있어 혹시 병이라도 날까, 너무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얼마전엔, 후쿠시마현이 일본 적십자사와 중앙 공동모금회로부터 송금된 의연금 중 약 90억 엔을, 현의 피해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적게 나왔다며 환불한 데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는 창문도 못열고 살아요. TV에서 '지금 방사능 수치가 낮으니 창문을 열어도 된다'는 자막이 흘러야 겨우 한번 창문을 열었다 닫는데...... 이렇게 처참하게 사는데 우리한테 뭘 해줬다고 의연금을 돌려보냈다는거야?"
골든가에서 우연히 그녀와 만난 것이 이번으로 4번째다. 매번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자는 참 마음이 아파 어쩔 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며 웃음을 보인다.
"아무래도 외로워서 오는 거겠지. 마음을 붙일 곳이 없으니깐.
가족은 모두 후쿠시마에 있고. 생각 같아선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지만, 그곳엔 일 할 곳이 없으니까…그래도 골든가에 오면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가 이렇게 웃기도 하네."
그나마 그녀가 ‘그녀만의 심야식당’을 찾았다는 것에 조금 마음이 놓인다. (2부 끝)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