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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친과 동거를 시작하다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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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 기자
기사입력 2009-08-02

(이 글은 연재물이므로 처음부터 읽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점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8부가 올라온 8월 2일은 공교롭게도 아내의 생일입니다.)

오타쿠(1부)
헌책방(2부)
걱정(3부)
이별(4부)
한국남자(5부)
바둑(6부)
동거(7부)
 
"헉! 12만엔?"
 
아내가 부동산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쉽게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아내는 자기네 회사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던 m시의 맨션정보를 휙 둘러보더니 제1순위부터 3순위까지 출력했다.
 
아내가 빼온 자료를 훑어보고 놀래 버렸다. 이유는 월 임대료가 전부 12만엔에서 14만엔 사이였기 때문이다. 아내야 돈을 버니 그렇다 치자. 반반씩 나눈다 하더라도 6, 7만엔정도가 필요하다.
 
전에 있던 기숙사 방값이 4만 5천엔이었다. 갑자기 1만 5천엔에서 2만 5천엔의 추가비용이 필요해진 셈이다. 하루 용돈을 천엔으로 설정한, 아직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던 나에게 약 2만엔의 추가지출은, 상당한 타격이었다.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하루에도 수십명의 손님을 맞이하는, 산전수전 다겪은 백전노장의 부동산 전문가가 이런 내 심정을 모를리 없다.
 
"괜찮아. 오빠는 아르바이트 구하기 전까지 4만 5천엔만 내. 나머진 내가 다 낼께."
 
능력있는 여자는 통도 크고 결단도 빠르다. 한달에 7, 8만엔에 달하는 지출을 금세 결정해 버리다니...
 
비용문제는 그렇게 넘어갔지만, 또 하나 이해되지 않았던 게 있었다. 동거는 보통 원룸에서 출발한다고 믿고 있던 나에게 아내가 내민 12만엔짜리 맨션들은 모두 방이 3개나 있는, 상당히 호사스런 집들이었다. 
 
월세는 차치하고 나는 왜 우리가 방이 3개나 있는 커다란 맨션에서 살아야 하는지 그 필연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넌지시 돌려 물었다.
 
"방세는 그렇다 치고 방이 많네. 영화감상실 같은 거 만들려고 하는거야?"
 
그러자 아내는, 그간 수많은 경험자들의 예를 통해 축적된 동거에 대한 내 근원적 사고를 송두리채 뒤엎어 버리는 충격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아니. 이건 오빠 방이고 이쪽은 내 방. 그리고 여긴 오빠말대로 영화감상실이나 작업실 그런거 만들면 되겠다. 뭘 작업할지 모르겠다만. 깔깔"
 
아내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깔깔거렸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계약동거나 그런게 아니라 사랑해서 동거를 시작한 커플이 처음부터 각방쓰는 사례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때는 그냥 '컬쳐쇼크'로 재빨리 정리하고 넘겼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에서도 아내처럼 이런 결정을 내리는 커플, 그러니까 '동거시작과 동시에 각방쓰는 커플'은 드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각방에 대한 자기철학을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잠은, 편하게 자고 싶거든"
 
생활하는 공간은 공유한다 하더라도 잠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결혼한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각방을 쓰고 있다.
 
나역시 처음에는 컬쳐쇼크에 빠져 허우적거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방의 편리함에 눈을 떠 버렸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의 첫 섹스는, 저번에 언급했듯이, 동거한 후 5일이나 지나서야 가능했다. 
 
나도 남자다. 당연히 동거가 시작되는 날 첫 섹스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동거 첫날 '런던부츠'의 심야방송을 보고난 후 "아, 졸린다. 오빠 그럼 먼저 잘께"라며 총총히 건너편 방으로 사라져 가던 아내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아! 일본여자들은 동거해도 바로 섹스는 안하는구나'라는 잘못된(?) 상식을 스스로에게 주입시켰던 기억.
 
아내는 나중에 동거 첫날의 심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도 당연히 그날 오빠와 섹스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오빠가 안 따라 오는 거야. 잡지도 않고.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조금 불안해지는거야. 처음 5일간은 섹스기피주의자가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라니까. 하하"
 
그나마 운이 좋았던 건 동거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전세계가 공인한 커플데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크리스챤이 많은 한국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만, 신자가 1%정도에 불과한 일본에 있어 크리스마스 이브는 연인들을 위한 기념일로 보는 게 정확할 성 싶다. 아무튼 크리스마스 이브가 없었다면 아내와의 첫관계는 더 미루어졌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 당시 우리들이 동거했던 실제 집구조. 양실 6조가 내방이었고, 화실 4.5조(미닫이문)가 아내 방이었다.    ©jpnews

크리스마스 이브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내와 헤어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이 잘 안온다. 아마 저녁으로 먹었던, 내가 만들었고 아내도 맛있게 먹었던 김치볶음밥이, 하지만 좀 매웠나 보다. 주방을 몇번이고 들락날락거리면서 물을 마셨다. 아마 세번째였던 것 같다. 세번째로 물 마시러 나갔을때 아내의 방, 미닫이 문이 조금 열려있는 걸 눈치챘다.
 
그런데, 그전에 주방에 나갔을 때 아내의 방문은 분명히 닫혀져 있었다. 지금은 분명히 10cm 정도 열려있다. 왜? 이때는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네번째 물마시러 나갔을 때다. 아내의 방문은 30cm정도 열려 있었다.
 
아내의 공간이 열려진 문틈 사이로 보인다. 마치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듯한 어둠의, 미지의 세계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잠자리에 든 아내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훔쳐봐선 안된다는 거, 물론 잘 안다. 그정도 이성은 지니고 있다. 하지만, 굳게 닫혀있던 문이 10cm 열렸고, 다시 30cm 열렸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내가 조금씩 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이브다. 무언가의 사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 오히려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문틈 사이로 아내의 방을 엿보았다. 어둠속에서도 아내 몸의 실루엣은 뚜렷하게 보였다. 이내 무언가에 홀린 듯 아내쪽으로 다가가, 아내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대었다. 
 
원래는, 믿던 안믿던 자유지만,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살짝 터치한 후 그만둘 생각이었다. 시간으로 따진다면 각각 1초정도로 예상했다. 윗입술 1초가 지나 아랫입술로 이동하던 찰나 아내의 팔이 내 목을 감쌌고, 아내는 프렌치키스를 요구해 왔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서로를 탐했고, 그 시간은 아마 꽤나 길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날이 이미 밝아오고 있었으니까. 또한 격정적이었다. 나는 6개월만이었고, 아내는 조금더 인터벌이 있었다. 하지만 이날의 첫 관계는, 상황만 놓고 보자면 100% 우연에서 시작됐다. 아내의 말이다.
 
"잘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오는 거야. 이브날도 그냥 넘어가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오빠가 자꾸 주방에 들락날락거렸잖아. 속으로 '어휴, 답답해'라는 생각이 든거야. 생각이 있으면 그냥 문열고 확 들어오면 되는데. 주방만 왔다갔다하면서 물먹는 시늉이나 하고 말이지. 내가 먼저 오빠한테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내 나름대로 신호를 보낸거야. 그나마 눈치를 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음 또 엄청난 시간이 걸렸을 꺼야"
 
그러니까 아내는 김치볶음밥이 매워서 물을 먹으러 주방을 왔다갔다했던 행위를 '자기와 자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게 아닌데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건/아/니/다. 한번더 말하겠다. 나는 목/이/말/랐/을/뿐/이/다.
 
이날은 특별히 '각방'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폭풍같은 시간을 보낸 후 아내는 불현듯 말을 꺼냈다.
 
"고마워"
 
뜬금없는 '고마워'였다. 뭐가 고맙다는 말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나도 고맙다라고 말을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으려니 아내가 다시 말을 자분자분 이어간다.
 
"오빠 만나기 전에, 1년전쯤에 정말로 좋아했었던 남자가 있었는데, 여자친구가 있었거든. 물론 그도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했었고, 나도 그 여자친구와 아는 사이였고. 그런데 그 남자가 너무 좋아서 모든 걸 알고도 만났어. 하지만 금세 그의 여자친구가 알아챘고, 나는 나쁜 년이 돼버린거야."
 
"그 친구는 자기를 좋아한거야?"
"응. 좋아했어."
 
"근데 왜 헤어지지 않았을까?"
"나보다 여자친구를 더 사랑했으니까..."
 
"화나지 않았어?"
"몰랐다면 화났겠지만, 다 알고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헤어지라는 말 한번, 아니 몇번정도는 해보지 그랬어?"
"미안하잖아. 괜히 나때문에..."
 
"그럼 한번도 꺼내지 않았던 거야?"
"응. 그래서 오빠가 고마운거야. 그때 나 사실 많이 울었거든. 안 울려고 했는데 그냥 눈물이 흘러 내리더라."
 
아내의 '고마워'는, 그러니까 11월 10일 0시를 지났을 때부터 데이트를 시작했던 오전 11시까지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아내는 내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예전의 남자친구에게 그랬던 것처럼 헤어지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런 분위기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또한 아내는 내가 여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계속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거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때가 오겠지만, 아내는 나를 만나기전까지 남자를 신뢰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의 감정으로 "남자는 다 그렇다"라는 인상을 줄곧 가져오고 있다가 우연찮게 만난, 처음엔 오타쿠로 보였던 외국인 남자에게 처음으로 '신뢰'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아내의 '신뢰'는 일반적인 계약에서 볼 수 있는 신뢰와는 조금 다른 영역에 속한다. 연인간의 일반적인 계약인 결혼을 예로 든다면, 평생 서로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믿음, 즉 신뢰가 필요하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쿨한 아내는 "그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나?"며 "신뢰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것"이라는 지론을 폈다. 
 
"오빠의 가장 큰 매력은 눈치채는 게 빠르다는 거야. 원래는 눈치빠르고 그러는 거 안좋다고 생각했는데, 오빠 만나면서 변했어. 눈치채고 척척 알아서 해주는 거. 발군의 순발력과 민첩성을 발휘해서 상황파악하는 능력. 이런 거 살아가는데 상당히 필요한 거 같아"
 
신뢰와 눈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내는 내가 알아서 다 하기 때문에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엔 여자문제도 들어간다. 그러니까 여자를 혹시 만나더라도 다 알아서 할 것이니까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뢰는 이렇게 축적된다. 그리고 아내의 나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출발점은 2001년 11월 10일 새벽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나고, 아내와 나의 인생에 있어선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진 2002년 새해가 열렸다.
 
2001년 12월 31일에서 2002년 1월 1일로 넘어가던 그날 맨션 건너편 신사에서 우리들은 소원을 빌었다. 아내는 그해 8월 23일, 그러니까 혼인신고서를 낸 다음날 저녁 2002년의 첫날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말해 주었다.
 
"오빠와 결혼할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빌었었거든. 지금 그게 뜻대로 이루어져서 너무 다행이고 또 행복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8월의 이야기다.
 
여자친구와 함께 독일로 떠나갔던 아내의 남자친구였던 k가 귀국해서 돌아왔던 2월, 나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외박했던 아내와 처음으로 싸웠다.
 
■ 9부 일본 여친, 헤어진 남자친구를 만나다

■ 글쓴이 주(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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