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중2학년인 딸애와 냉전중이다. 사사건건 대립한다.
남들은 사춘기니까 가만히 두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언제부터인가 딸에게서 일본인 분위기, 혹은 일본인 냄새가 나는것 같았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일본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 일본 분위기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 엄마가 그런 미묘한 변화를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대단히 복잡하고 또한 착잡하다.
나는 일본교육을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이에게 좋은 내용이면 좋은 것이고, 반대로 악영향을 미치면 당연히 싫어하고 배척한다.
그렇지만 내딸 아이가 일본아이로 변해 가는 것은 정말이지 싫다. 일본, 일본인이 싫어서가 아니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좋은 것은 잘 안 닮고 나쁜 것은 쉽게 받아들이고 빨리 닮아 간다.
물론 내 딸이 일본인의 좋은 점을 따라하고 닮아가면 그것은 대 환영을 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 내 딸은 일본의 좋은 점이 아니라 나쁜 점(본인은 뭐가 나쁘냐고 반론을 한다)을 더 많이 따라 한다.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중요한 의견을 개진할 때는 꼭 일본어로 말한다. 본인은 한국어보다는 일본어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편하기 때문이라고 변명아닌 변명을 하지만 듣는 내 입장에서는 영 반갑지가 않다.
나는 이것이 가장 못마땅하고 한편으로는 쇼크로, 또한 상처로 다가 온다.
주위에서는 사춘기를 겪는 아이에게 별걸 아닌 것을 가지고 심각하게 생 각한다고 핀잔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언어라는 것은 그 나라의 정체성이다. 내 딸이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상, 그 아이는 싫어도 좋아도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되고, 또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다음에 생각이 있어 훗날 아이가 귀화를 한다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로 받아들일 것이다.
일본인들은 철저하게 개인주의다. 자신도 타인에게 절대로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반대로 타인도 자신에게 폐끼치는 것을 싫어한다. 한국인처럼 ‘우리’ 라는 개념이 별로 없다. 철저하게 나(私)만이 있을뿐이다.
바로 이 같은 사고가 어느덧 내 딸 아이한테도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꼭 꼬집어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아닌 ‘나’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거기에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할 때는 일본어로 말하고…
때문에 나는 한국인 딸을 일본인 딸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다. 일부러 우리말로 말하라고 평소보다 더 다그치는 것이다.
"일본어는 네가 필요해서 하는 것이지만 우리말은 네가 먹는 밥 세끼처럼 평생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하는, 편해서 하고 불편해서 안하는 그런 소모품 언어가 아니다."
그러면 딸 아이는 그럴거면 처음부터 한국학교에 보내지 왜 일본학교에 보냈느냐고 반론을 제기한다.
내가 딸 아이를 일본학교에 보낸 것은, 한국학교처럼 오로지 ‘공부공부’ 하지 않는 학교 분위기와, 엄격한 학교규율 때문이었다.
국립, 혹은 구립, 공립초등학교에서는 수수하고 단정한 복장외에는 엄격하게 금지를 한다. 시계를 차고 등교를 해서도 안된다. 불필요하게 학부모가 학교를 자주 드나들지도 못하게 한다. 그러니 치맛바람이 있을 턱이 없다.
현재 중2학년인 딸아이는 학교 등교시 휴대폰 소지금지는 물론 현금소지도 안된다. 학부모 동반없이 일반 상점에 들어가는 것도 규칙위반이다. 만약 학교 당국에 적발이라도 당하면 바로 학부모 호출이다.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학교에서 햄버거를 단체로 시키고 피자를 배달시켜먹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취미활동인 부활동에는 학교당국이 학교시설을 적극적으로 오픈하고 밀어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일본 구립, 공립학교는 그렇다. 그래서 내 딸 아이를 아무 주저없이 일본학교에 보낸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보이지 않은 갭이 생겨난 것이다.
큰애는 고교 3년동안 한국학교를 다녔다. 그 3년 동안 나는 정말이지 도를 닦는 심정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첫째도 입시, 둘째도 입시, 마지막도 입시, 오로지 입시 입시 입시만을 위해 학교를 다니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을 만나도, 학부형을 만나도, 그저 화제에 오르는 것은 오직 대학입시와 그와 관련된 돈 이야기뿐이었다.
그 안에는 아이에 대한 인성과 적성, 그리고 미래의 인생구상 같은 것은 아예 처음부터 들어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난 작정하고 큰애를 고교 2학년 1학기때까지 학원도,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아이들이 하는 과외공부를 전혀 시키지 않았다. 대신 마음대로 친구들과 만나고 평소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게 했다. 아들놈과 토론도 자주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엄마가 아이교육에 대한 관심이 없다’
‘인성 좋아하다가 아들 인생 망친다’
‘친아들이 아니라서 공부를 안시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방식대로 아이를 교육한 덕분에 별의 별 소리를 다 들었다.
결국 나도 한국엄마였다. 백기를 들고 만 것이다.
“엄마 나 학원 보내주면 안돼? 우리반에서 학원 안 다니는 애는 나하고 우츠노미야에서 다니는 애뿐인데.”
일본에서 살면서 구태여 아이에게 자신의 사고(思考)를 억눌러가면서까지 혹독한 한국식 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았던 나.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아들놈의 그 한 마디에 그 때부터 학원을 다니게 했다. 그리고 두 모자가 대학입시 준비에 들어갔다.
아마도 이 때가 내가 아이들 교육에 가장 많은 고민을 했지 않았나 싶다.
아이를 일본대학에 보낼 것인가, 아니면 한국에 있는 대학에 보낼 것인가?
아들놈은 어느쪽이라도 좋다고 했다. 나는 막대한(?) 입시비용을 감수하고 한국의 대학교에 보냈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뉴커머들의 경우, 한국의 대학에 아이들을 보내려면 학비외에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의외로 만만치 않다.
가령 9월초부터 11월 말까지 이어지는 수시 입학시험과 해외거주 특별전형 시험을 보려면, 몇 개 월동안 서울에서 거주할 방을 얻어야 한다. 거기에다 때에 따라서는 지방 대학에도 원서를 넣으러 왔다갔다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거주지가 일본인 관계로, 반대로 한국은 외지가 되어버려 식사도 일일이 사먹어야 한다.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면 살림도구 일체를 사야 하고 또 일본에 돌아올 때 처분하기도 곤란해, 오히려 사먹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하다.
때문에 한국에서 한번 입시를 치룬 부모들은, 일본에 돌아오면 한국체류비가 2천만원이 들었느니 3천만원이 들었느니 하면서 비명을 지른다.
이처럼 거액의 비용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아들놈을 한국에 있는 대학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내 주위에 있는 뉴커머(7-80년대에 일본에 유학와 정착한 신한국인)들의 2세에 대한 정체성 때문이었다.
도대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분간이 안될 때가 많았다. 분명 재일동포가 아닌 부모가 모두 한국에서 온, 그것도 10년 혹은 20년 남짓한 일본거주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한국어로, 아이는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한 것이다.
그런 가정에서는 대부분 아이를 일본대학에 보냈다.
‘의식구조는 일본인에 가까우면서도 무늬만 한국인 아이!’
내 주위에는 이 같은 한국아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래서 고민하는 부모들을 많이 봤다. 나는 내 아들놈이 그런 상황에 이를까봐 솔직히 겁이 났다.
그래서 딸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본학교에 보내고, 집에 들어 오는 그 순간부터 무조건 한국말만 사용하게 했다. 인터넷에 싸이를 개설해 한국에 있는 친척들과 의사소통을 하게 했고, 매주 토요일이면 한국학교 앞에 있는 한국어전문 논술학원에 보내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글을 쓰게 했다.
이같은 생활은 지금도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가끔은 문학적 수사를 섞어서 대화를 할 만큼 한국어를 구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아들놈도 아버지의 일본유학으로 네살 때부터 일본보육원에 다녔던지라, 이중 언어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아들놈은 평생 맞아도 그 정도는 안될 정도로 즈이 아버지에게 많은 매를 맞았다.
왜냐하면 일본어에 익숙한 아이가 집에 와서도 계속 일본어를 사용하자, 그때마다 아버지가 매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집안에서는 무조건 한국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집의 불문율이었다.
덕분에 아들놈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똑부러지게 한다.
일본에 살다보니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중을 인지시키는 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어른들이야 때와 장소에 따라서 적절하게 양국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아이들은 우선 자기가 편한 언어부터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자연 정체성의 자각심이 엷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모와 자식간의 세대차이까지 겹쳐, 이중언어 이중교육의 갭을 더욱 느끼게 한다.
그래서 생각다못해 나는 한가지 처방전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여름방학동안 아이를 서울에 보내는 것. 한국에 안간지도 벌써 3년이 지났으니 한국에 가서 같은 또래 친척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다시 예전의 한국스런(?) 아이로 되돌아 오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서.
과연 이 심오한 엄마의 깊은 뜻을 딸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