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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방중 후를 주목해야 한다

방중, 방러 후엔 언제나 큰일들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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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일 (코리아리포트
기사입력 2011/05/27 [15:53]

지난 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규슈에 다녀왔다. 지난 번에는 구루메(久留米)시, 이번에는 유쿠바(行橋)시에서의 강연이었다. 강연제목은 '일본을 둘러싼 국제정세'.

늘 그랬던 것처럼, 동일본대지진 얘기부터 시작했다. 직면한 국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역대국', '관광대국'으로서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대외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내 지론을 말했다.
 
강연이 끝난 후, 귀경하기 위해 북규슈공항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방중하고 있던 김 정일 총서기가 후진타오주석, 원자바오총리 등 중국지도자들과 회담을 끝내고 귀국길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방중기간은 샹하이에 들르지 않고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갔기 때문에, 2006년 1월 때와 같이 7박8일이 되어 최장기록경신은 되지 않았다.   

(김위원장이) 베이징을 출발함과 동시에, 한중 양국의 보도기관에서 이번 방중이 공식 발표됐다. 주목되는 것은 김총서기의 발언이지만, 중국 수뇌들과의 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성의를 가지고 있다', '6개국회담의 조기재개를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만으로는, 지난번에 방북한 미 카터 전 대통령을 통해 발신한 메시지의 내용과 거의 같아서, 새로운 맛은 없다.  
 
그렇지만, '경제건설에 힘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그렇기 위해서는) 안정된 주변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 또한, '장해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전반적인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이것은 유엔제재 해제나 6개국회담 재개를 위한 대미(對美), 대한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발언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귀국후에 어떤 생각지 못한 조치를 취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상정해볼 수 있다.
 
사실 과거의 경우를 보면, 아래와 같이 외유로부터 1개월 후에 큰일들이 일어났다.  
 
1. 2000년 5월 방중 후 6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2. 2001년 1월 방중 후 2월에는, '신사고(新思考)'라고 하는 슬로건이 등장해 한정적인 경제개혁이 단행되었다.
3. 2002년 8월 방러 후  9월에는, 고이즈미총리의 방북에 의한 역사적인 북일정상회담이 있었다.
4. 2004년 4월 방중 후 5월에는, 고이즈미총리의 재방북이 있었다.
5. 작년 2010년 8월 방중 후 9월에는, 당대표자 회의가 열려 김 정은씨가 후계자로서 등장했다.
 
딱 한번 예외가 있었다. 2006년 1월 방중했을 때인데, 1개월 후가 아닌 반년 후에, 대포동미사일 발사실험(7월)과 핵실험(10월)이 있었다.
 
이번 방중에는, 제복차림의 군인은 한 사람도 동행시키지 않았다. 김총서기의 특사로서 한국을 방문해,이 명박 대통령을 방문했던 적도 있는 김 기남 서기, 요전에 영국을 방문했던 외교담당의 최 태복 서기, 대미당당 강 석주 부수상, 외자도입담당 장 성택 국방위원회부위원장, 6개국회담 담당 김 계관 제1외무차관, 그리고 김 영일 당국제부장 등 대미(美), 대한(韓) 경제담당자들이 동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것은, 미사일과 핵개발담당인 주 규창 당기계공업부부장(전 군수공업부부부장)도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착된 상황타개를 위해 유연하게 나올 것인가, 아니면 강경하게 나올 것인가, 앞으로 전개될 일이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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