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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2개월, 재해지 미야기현 다녀오다

[이신혜 재일의 길] 재일청년의 마음을 치료하는 어깨주무르기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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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혜(프리랜서 저널
기사입력 2011/05/27 [12:28]

5월 21일 토요일, 미야기현 다가조시에 다녀왔다. 나의 지인이자 재일한국인 청년인 최단열 씨가 자신의 고향인 다가조시에 돌아가 피난소에서 어깨 주물러주기 자원봉사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센다이역까지 신칸센으로 2시간 반. 그러나 도중에 마을 풍경을 보고 싶기도하고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 버스를 이용했더니 5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센다이역에서부터 jr 센세키선으로 갈아타 약 20분 정도 후에 다가조시에 도착했다.

단열 씨와 다가조역에서 만나, 피난소로 가기 전에 차로 시내의 여러 곳을 돌았다. 지진 40분 후쯤 쓰나미가 밀려왔고, 시치가하마에는 7미터 높이 쓰나미가 덮쳤다고 한다.

시치가하마 해변에는 센다이항에서 쓸려온 컨테이너 박스가 보였고, 파손한 차량이 여러 대 있었다. 도로 블록도 곳곳 깨져있었다. 단열 씨는 '옛날에 자주 들렀던 추억의 장소였는데, 작년엔 이 주변에서 조깅을 하곤 했는데......'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해변 가까운 곳에 있었던 집은 토대만 남아있었다. 산 중턱에 지어진 집은 그대로 남아있어 예쁘게 일렬로 서 있는 집들과 토대만 남은 폐허집은 묘하게도 대비되고 있었다.  

이 지역 가장 큰 마트인 다가조 쟈스코는 쓰나미가 왔을 때 2층까지 수몰되었다고 한다. 이미 폐쇄된 편의점 벽에는 쓰나미가 할퀸 파도 흔적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내가 방문한 21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도쿄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지인 미야기현 나토리시 유리아게지구와 다가조시 문화센터에 있는 피난소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가조시 문화센터 입구에 이 대통령이 보낸 lg 세탁기 5대가 놓여져 있었다.

단열 씨는 이제까지 재해지 청소자원봉사에 참여하여 대부분 저녁에 끝났다. 그리고 4월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시작되기 때문에 학생자원봉사자들이 대부분 일상생활로 돌아가면서 사람도 부족해졌다. 그런 와중에 뉴스를 보다가 후쿠시마현 피난소에서 개최된 어깨 주물러주기 자원봉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진발생으로부터 한달 후 교통이 복구되고 도시기능이 살아나면서 재난민들은 '(갈 곳없는) 우리만 남겨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을 알고있던 단열 씨는 "피난소 생활에 지친 피로와 스트레스를 마사지로 해소하고 마사지 중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인간과 인간의 정을 느끼게 하자. 이것이 피난민들을 정신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단열 씨는 지역피난소에서 어깨 주물러주기 자원봉사를 기획하여 많은 사람들의 협력을 얻어 시작했다. 얼핏 어깨 주물러주기는 간단해보이지만, 피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원봉사전 반드시 필요한 강습을 받아야한다. 그리고 위생면이나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하여 마사지를 시작했다.

단열 씨는 "최근 여기 사람들이 말수가 좀 늘었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쁜 일은 자원봉사를 하면서 같은 자원봉사자로 어릴적 친구와 재회를 한 것이다. 그 중에는 아이들을 위해 학습지원을 하기도 하고 지도자 격으로 자원봉사자를 관리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자원봉사에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 것을 배웠고, 그 곳에 지원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단열 씨는 많은 지원자, 자원봉사자들을 소개해주며 "그 사람들을 매우 존경하고 있고, 내 이야기보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기사에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센터에서 촬영을 끝내고, 피난소 부지 광장에 있는 많은 해외 자원봉사자들이 식사준비하는 곳으로 갔다.  그 중에는 재일한국인도 있었고 그 밖의 나라 사람들도 있었다. 피난소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국적도 출신지도 무엇도 관계없는 서로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었다.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중 재난민인 어떤 부인이 말을 걸어왔다. 그 부인은 지역 출판사에서 발행된 지진직후 이 마을의 사진집을 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순간에 폐허가 된 마을, 나는 사진집을 받아들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부인은 내게 "일부러 먼 곳에서 와 주어서 고마워요. 고생했네요"라고 말했다. 피해를 입고 더 고생하고 있는 건 부인이었는데 내가 오히려 격려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재해에서 복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원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리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물건이나 추억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피해지 부흥을 위해 작은 노력이 계속되는 한,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고 싶다. 
 

취재/사진/글: 이신혜(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 글은 일본어를 원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본은 일본어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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