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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사토시' 日 애니메이션 별이 지다

그의 실험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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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문화 평론가)
기사입력 2010/09/05 [19:37]

일본에 휴가를 가 있던 중에, 곤 사토시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1963년생, 겨우 마흔 일곱의 나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가 개봉하면서 일부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래를 걱정하던 시점에서 들은, 곤 사토시의 타계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래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여전히 안노 히데아키가 건재하고 호소다 마모루, 신카이 마코토 등 신예들도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곤 사토시의 존재는 조금 각별했기 때문에.

2001년 초 일본 애니메이션이 절정기였을 때, 도쿄에서 곤 사토시 감독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아이돌 여배우가 현실의 자신과 조작된 이미지로서의 자신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이야기 <퍼펙트 블루>(1997)가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천년여우>를 기획하고 있을 시점이었다.

▲ 퍼펙트블루    
<퍼펙트 블루>는 당시 애니메이션에서는 드문, 사실적인 심리 스릴러였다. <퍼펙트 블루>에는 환각이나 망상 장면도 들어 있지만, 대부분은 현실 속의 몽환적인 느낌을 그려내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이런 비판들도 있었다. 이걸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실사로 찍었으면 더 좋을 이야기 아닌가, 라고.

이전까지 애니메이션은 주로 '가상의 세계'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리얼리티가 영화의 몫이었다면, 일종의 환상성, 판타지가 애니메이션의 몫이었던 셈이다. 메카닉이나 판타지처럼 실사로 어려운 소재를 주로 애니메이션이 담당했고, 애니메이션은 sf나 판타지 등의 좁은 영역만으로도 할 게 너무나 많았다.

현실과 일상을 다룬 애니메이션들도 존재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의 정점을 <아키라> <공각기동대> 등에서 찾았다. 그러다가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처럼 가상의 세계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애니메이션의 기법을 실사영화로 변주한 영화들이 등장하자 혼란스러워졌다.

과연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 라고. <케이 온> 같은 일상을 그린 애니메이션들이 인기를 얻는 요즘에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질문도 가능했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애니메이션이 과연 가능한가.

2001년 초에 만난 곤 사토시는 이렇게 말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애니메이션은 손으로 그리는 불편함이 있는 대신, 무엇이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퍼펙트 블루>를 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걸 실사로 했을 때 애니메이션만큼의 리얼리티가 나올 것인지는 의문이다."

곤 사토시는 애니메이션의 리얼리티를 믿는 감독이었다. 아무리 실사영화가 있는 그대로 찍어도, 그림으로 그려내는 리얼리티가 압도할 수 있다고 믿는 이였다. 곤 사토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허구'의 장르에서, 다시 실제와 가상을 뒤섞는다. 장르 자체의 허구성이 다시 이야기의 허구성, 형식의 허구성과 뒤섞여 묘한 느낌을 전달했던 <퍼펙트 블루> 이후 끊임없이 현실과 꿈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 곤 사토시  감독

극장용 애니메이션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파프리카> 그리고 tv 시리즈 <망상대리인> 등을 만든 곤 사토시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단어 하나를 찾는다면, 그건 분명히 '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퍼펙트 블루>는 아이돌 스타에서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려는 소녀의 정체성 혼란을 그리고 있다. <퍼펙트 블루>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은 아이돌을 둘러싼 사람들의 갖가지 환상이다. 그건 아이돌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환상이기도 하고, 자신을 아이돌로 규정해야만 했던 소녀의 강박이기도 하다. 허구에 불과했던 그들의 꿈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은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몸짓을 보인다.

<천년여우>는 영화라는 매체를, 거대한 꿈 즉 판타지로 해석한다. 전설의 여배우를 인터뷰하러 가던 주인공들은 그녀의 과거를 들으면서 현실과 영화의 세계가 겹쳐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천년여우>에서 영화는, 때로 현실을 능가하는 중요한 세계로 자리하고 있다. 꿈과 현실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서로를 감싸 안으면서 한 인간의 역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와 에피소드는 다 허구다. 허구가 흐르면서 현실이 된다. 그런 모자이크 같은 느낌. 그게 실제면 된다. 거짓으로 엮어 이은 진실이라고나 할까."


 

▲ 천년여우    

<파프리카>에서 곤 사토시는, 오시이 마모루가 <이노센스>에서 보여준 가상현실에 충분히 어깨를 겨룰 수 있는 '또 하나의 현실'을 창조해낸다. 꿈이 결코 판타지가 아니라, 자신의 실제 현실에 대응하여 만들어낸 거대한 또 하나의 현실임을 <파프리카>는 보여준다. 결코 말이 아니라, 현란하고 압도적인 영상으로. <천년여우>에 이어 <파프리카>에서도, 곤 사토시는 이미 자신이 거장의 경지에 올랐음을 증명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후 만든 <오하요>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꿈꾸는 기계>는 유작으로 남았다.

2004년, 도쿄에서 만난 한 애니메이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매드하우스에서 곤 사토시의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사장이 그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곤 사토시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시스템이나 성장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개인의 독자적인 작업, 예술품을 만들고 있다고. 그것은 20세기 말 홍콩에서 들었던, 한 영화제작자가 왕가위에 대해 했던 말과 비슷했다.
 
왕가위는 해외의 돈을 받아 예술작품을 만드는, 홍콩영화산업과는 아무 상관없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사실 곤 사토시의 애니메이션은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그리고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었지 대중의 열광을 끌어내지는 못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대중적인 작품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곤 사토시의 작품이야말로, 거대한 산업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쉼 없는 열정과 의지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위대한 작업이었다. 그가 너무 일찍 죽은 것이, 그의 상상력과 리얼리티를 다시 만날 수 없음이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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