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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니의 소설과 다른 점을 찾는다면 <연공>이 실화라는 점이다. 작가의 이름도 미카이고, 소설의 주인공 이름도 미카다. <연공>의 독자들은 동세대의 작가가 직접 겪었다는 연애와 갖가지 사건들에 공감을 느끼고, 마치 자신이 극적인 연애를 하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연공>은 십대의 소녀들이 갖는 극단적인 판타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귀여니의 소설 역시 한국의 10대 소녀 판타지의 극적인 표현이었다. <늑대의 유혹>과 <그 놈은 멋있었다>에서도 불량학생과 평범한 여학생의 로맨스가 펼쳐지는 것에는 국적 불문의 이유가 있다. 평범한 여학생이 갑자기 킹카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그 남자는 잘 생겼고, 싸움도 잘한다. 그녀를 위해서는 목숨도 불사한다. 그리고 요절하면서,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다.
<연공:>에서도 소녀들이 원하는 달콤하면서도 유치한 에피소드들이 만재해 있다. 휴대전화의 모든 연락처를 지워버린 히로는, 달콤하게 말한다. 너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연락이 올 것이라고. 괴롭힘을 당하는 미카를 보고 분노한 히로는 다른 학생들에게 외친다. 내 여자를 괴롭히면 그게 여자라도 죽여 버리겠다고. 이렇듯 다정하면서도 터프한 남자가 '하늘이 되어 언제나 너를 지켜보겠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극상의 판타지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연공>과 같은 모바일 소설의 가치에 대해서는 일단 인정한다. 인터넷에 올리면 동세대의 수많은 여성들이 접속하여 읽고, 의견을 단다. 어떤 에피소드를 좀 늘려달라거나, 전개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등의 구체적인 의견들도 많다. 그러면 작가는 의견을 수용하여 에피소드를 추가하거나 전개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즉 모바일 소설은 한 작가의 작품을 넘어서는, 동세대의 욕망과 무의식을 담은 집단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내면이 아니라, 집단의 욕망을 한 사람이 대필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바일 소설을 보면, 10대와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다만 집단적으로 작품이 완성된다거나, 구성이나 문체 등이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일본에서도 역시 모바일 소설을 선뜻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한다.
그런 점에서 <연공>은 뛰어난 소설도 영화도 아니지만, 동세대의 욕망을 그대로 반영하는 작품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붉은 실> <천사의 사랑> 등 모바일 소설을 각색한 영화와 드라마 등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