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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재일사람, 시인 정장을 만나다

[이신혜 재일의 길] 조선국적 사람은 북한 사람이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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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혜(프리라이터)
기사입력 2011/05/06 [09:57]

내가 살고있는 오사카 히가시오사카시는 오사카 이쿠노구에 버금가는 재일한국인 밀집지역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역사가 아주 오래된 오코노미야키집이 있었다. 가게이름은 이코나(伊奈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자주 갔던 곳이었다.
 
오래된 초등학교 같은 멋스러움이 있는 공간에, 민속공예조각이 새겨진 가구, 작가 시바료타로 씨의 '가로를 걷다(街道を行く)' 작품의 삽화를 그린 수다 코쿠타(須田剋太) 화백 그림들이 늘어서있는 신비한 느낌으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오코노미야키집은 가게 안의 종업원들이 구워주지만 여기는 셀프서비스로, 각자 자신이 굽고 싶은데로 굽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는 이 가게를 '히가시오사카의 귀빈관'이라고 맘대로 정하고 먼 곳에서 오는 손님들을 이 곳으로 초대했다. 
 
내가 프리랜서 기자로 갓 독립했을 무렵, 어떤 남성주간지에서 맛집기사 연재를 맡게 되었다. 그 중 어떤 날, 야키소바를 테마로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코나 메뉴에 있는 스지(소힘줄) 조림 야키소바를 소개하게 되었다. 스지 조림이란 소의 힘줄 부분을 고추장으로 맵고 달게 조린 음식으로 재일한국인들에게는 소울 푸드 같은 것이다.
 
그 때 만난 사람이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시인 정장(丁章) 씨다. 정장 씨는 재일한국인 3세로 당시 이코나 2대째 주인이자 시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분이다.
 
스지 조림 야키소바 취재를 하러 찾아갔던 어느 날, 동행했던 사진기자는 "중요한 기재를 놓고 왔다"며 기재를 가지러 가는 작은 사건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사진기자를 기다리게 되었고, 정장 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정장 씨와는 어릴 때부터 가게를 오가며 알고 있는 사이였지만,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많은 재일코리안을 만나고 사귀어 왔지만 일본 학교를 다니는 도중에 일본이름에서 우리 민족 이름으로 바꾸고, 자신의 정체성인 재일이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가 바로 정장 씨였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이야기가 잘 통했던 이유는 환경적으로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같은 재일이었고, 둘 다 배우자는 일본인이었다. 또한 정장 씨의 장녀, 우리집의 장남은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기막힌 우연이었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중학교에는 무궁화회라고 하여 한국과 인연이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민족 모임이 있다. 정장 씨는 그 모임의 초대회장이었고, 나는 그 곳에서 한국어, 무용, 노래등을 배웠다.

정장 씨의 부인과도 친해지게 되었는데 어느 날 "배우자를 뭐라고 부르세요"라고 물어보니 "아이들과 같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한 가정 안이지만 아이들과 부인은 정장 씨를 '아버지'라고 우리말로 부르고, 어머니는 '오카상(일본어로 어머니)'이라고 부르도록 교육했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집은 평소에 마마라고 부르고, 아들이 어리광부릴 때만 엄마라고 한다)
 
나는 지난해 조선 국적을 가진 정장 씨(사적으로는 '오빠'라고 부르고 있다)에게 '무국적 네트워크' 활동을 배웠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국적이라고 하면 북한을 가리키거나 북한 체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오해이다. 
 
조선국적은 일본에 있어 외국인 등록법 상의 문제일 뿐, 국적은 아니다. 오히려 기호나 지역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일본에 살고있는 많은 재일코리안들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지만, 1965년 한일조약이 성립하기까지 재일 코리안 모두는 일본에 무국적 상태였다. 그리고 나도 결혼을 계기로 여권을 만들 때 일본에 출생신고는 했지만 한국에 호적이 없는 것을 처음 알았다. 모르고 있었을 뿐, 오래동안 무국적 상태였던 것이다. 
 
자신을 항상 "무국적 재일사람"이라고 부르는 정장 씨는 조선 국적을 유지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조국(남북한)이 통일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가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나는 언젠가 정장 씨에게 "조국이 통일하면 무국적을 포기하는 건가요? 통일 국가 국적을 선택하는 건가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정장 씨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 국적을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되는 나라가 만들어진다면."

같은 재일코리안이라고 해도 현재는 2세, 3세들이 중심으로, 조국으로부터 떨어져 세대도 가치관도 다양화되고 있는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서 민족과 핏줄에 대한 고민도 옅어지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코리안 중에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 안에 있는 핏줄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언젠가 내가 본 한국 드라마에서 '사람은 두 번 죽는다'라는 말이 나온 적 있다. 하나는 생물적인 죽음, 그리고 또 하나는 기억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많은 재일코리안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에 대해 정장 씨는 "재일이라는 존재를 전하는 것은 재일로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이코나는 안타깝게도 문을 닫고 말았다. 
 
대신 바로 근처에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카페 미술관(喫茶美術館)이라는 곳이 있다. 카페 미술관에서는 한국가요 콘서트,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등 한국과 관련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이 곳에 가면 정장 씨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 곳을 새로운 히가시오사카의 귀빈관으로 삼고 중요한 손님들을 초대하고 있다.
 
혹시 여러분이 오사카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부디 이 곳, 카페 미술관에 들러주었으면 한다. 많은 미술품이 있고 테이블에는 사계절에 맞는 꽃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음악과 함께 정숙을 즐기는 독특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재일사람'을 찾아주기 바란다. 카페미술관은 카페와 미술관을 겸한 공간, 커피와 오리지널 케이크, 미술, 민예,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카페미술관 간판의 글씨는 시바료타로 씨가 쓴 것이라고 한다.
 

홈페이지: http://www.waneibunkasha.com/index.html
주소: 577-0805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 호우지 1-2-18  와네이분카샤
연락처: 06-6725-0430
영업시간: 평일 오후 2시부터 9시 30분까지/ 주말, 휴일 오후 12시부터 9시 30분까지
정기휴일: 수요일

* 이 기사는 일본어를 원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읽고 싶은 분은 일본어판을 참고해주세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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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i2sal 11/05/06 [13:53]
일본에서 그들과 직접 교류를 하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의 한국 본토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것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선학교를 나오면 무조건 북한 쪽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조선국적=북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모두들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그 때문에 우리 동포들이 조국에서 또 한 번의 차별을 겪고 절망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뭘까 위 댓글은 11/05/06 [21:20]
글쎄 먼가 어조가 안좋아 보이는데...
조선 국적 = 북한 국적
이걸 오해라고 해야 되나?
아니 
오해라고 하기 보다는
불신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1. 조선국적을 보유하는 사람들은 현재 무국적 일본영주권자이다.
2. 일본 국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국국적을 취득하려는 행동이 없다.

현 상황에서의 핵심은 이 2가지가 아닐까?

즉,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한국국적을 보유한 상황에서 일본 영주권이 있다면
그래도 일본에서 사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거라는 부분이
한국 국민들이 바라보는 부분의 핵심이 아닐까?

" 조선국적 = 북한국적 " 같은 부분의 생각을 할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들이 적어도 한국국적을 취득할려는 생각이 없다면
내가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그들이 한국국적 역시 일본국적과 함께
회피하는 회피대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위의 기사 내용도 결국 아직까지 한국국적 취득에 대해서 회피한다는
의미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한국국적을 회피하면서 한국정부에 무언가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
이것이 타당한 것인가?

미국은 대표적인 다인종 다민족 국가이고
한국은 얼마 전까지는 한민족 국가라 하였지만
역시 다인종 다민족으로 변화하고 있는 과도기 같다

생각해보자 
한민족...
분명 역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같은 한민족일지라도 
국가라는 테두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한민족이라는 울타리는 사실상 허울에 가깝다.
그들이 한국 국적 취득에 대해서 회피하면서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정부에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것은 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간다르바 11/05/06 [21:49]
과거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서 해방이 된후 고국으로 돌아오기 어려워서 일본에 기거했는데 외국인이라고 일자리는 커녕 문전박대에 온갖 차별과 멸시를 주고.. 그나마 살만한 사람들은 일체의 지원이 없는 민단에 소속되고 정말 힘겹게 살던 분들은 북한에서 많은 지원을 해줬던 조총련에 소속되서 그나마 도움을 받고 살던 분들이고 그들은 북한과 남한, 그리고 일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채 그들만의 사회와 문화를 만들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들을 만들어간 안타까운 분들이지요. 지금은 4,5세대까지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에 융화되거나 한국과 관련된 분들이 많아져서 차별도 많이 없어졌고 덜하다고 하는데 힘내시길 바랍니다. 멀리서나마 조금씩 관심갖고 응원하겠습니다.
이성진 11/05/07 [14:57]
자발적인 중국인으로의 귀속이 조선족이다. 재일은 본인의 신념에따라 무국적자도 있고 북한 국적자. 한국국적자도 존재한다.다만 본국 사람들이 오해하는것은 무국적자나 조선북한국적자중에 사회주의자나 친북세력이 있다는거다. 속까지 빨갱이들이 소수가 존재한다. 이들을 배척하고자 하는것이 클거다. 어차피 재일은 일본에서 사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이 편한데로 하면 된다. 무국적자로 남아서 불편을 감수하고서 신념을 지키던가 편한데로 일본으로 귀화 하던 문제 될게 없다고 본다. 다만, 본인 신념에 따라 무국적이나 조선적을 택했으면 그에 따르는 불이익도 감수할줄 알아야 겠다. 무조건 적인 비판이나 마이 웨이를 외치면서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에델바이스 11/10/05 [16:14]
본문기사중 <이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혹시 <윤동주> 아닌가요?
편집부 11/10/05 [17:46]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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