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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한 일본인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칼럼] 공포 확산중인 도쿄. 수퍼에서 물건이 사라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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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국(오비린대학 교�
기사입력 2011/03/15 [12:00]

오늘 내가 사는 지역이 지진사태로 하루 두차례에 걸쳐 절전이 실시되었다. 아침 9시2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저녁 6시 20분부터 밤 10시까지 나뉘어져 이루어졌다. 때문에 나는 전기가 나갈거라 생각해서 아침을 일찍 해먹고 교환교수로 와 있는 오비린대학교로 출근했다. 도서관에서 찾아볼 책들을 생각하며 갔는데 도착해보니 오늘까지 임시휴관이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집앞에 있는 산와슈퍼를 보니 슈퍼 밖으로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고 있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수퍼안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계산하고 나오는 숫자만큼 들여보낸다고 한다. 어제 갔을 때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난리다.

 
나도 마침 생수가 떨어져 수퍼안을 살펴볼 겸 들러보기로 했다.
 

 


그때였다. 지나가는 여중생 둘이 하는 말이 들렸다. “야 너는 시장바구니에 하나 가득 과자만 사 가냐?” 말을 듣고 그들이 들고 있는 시장바구니를 보니 정말 여러 종류의 과자가 가득했다.

문득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났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는 이북에서 피난오신 피난민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방송에서 전쟁이 날듯한 분위기라도 풍기면 바로 저장식품을 사오셨다. 그런데 사오시는 식품이 늘 미역이었다. 다락방에 잔뜩 미역을 쟁여놓으셨는데 문제는 그 처리를 우리 가족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전쟁발발 기미가 완전히 사라지면 그 때부터 우리는 무조건 미역국을 먹어야 했다. 우린 그런 어머니가 불만이었다. 어머니의 생각에는 가장 효율 좋은 저장식품이 미역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열심히 미역을 사들였을 것이다.

일본 집에는 저장식품, 물을 보관하는 작은 수납함이 집집마다 꼭 있다. 지금 내가 사는 집에도 두 개가 있다. 저장식품으로는 통조림, 쌀, 라면 등 장기보존이 가능한 식품이 적합하다.

내가 유학했던 시절에도 큰 지진이 있었다. 1995년에 일어난 한신대지진이었는데 그때 tv 프로그램에서 인기mc 아카시야 산마가 한 말이 생각난다. 지진 후 자기 집 저장식품을 점검해 보니 통조림 중에 캐비어가 있었다고 한다. 캐비어는 고급품이고 맛있는 음식이지만 막상 지진이 나면 이런 것 보다는 참치캔이 더 낫지 않은가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번 지진을 겪고 나니 나 또한 저장식품을 사본 적이 없어 무엇을 사야할 지 몰라 당황스럽다. 그래서 우선 라면을 파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가보니 그자리가 제일 먼저 텅 비어 있었다. 각종 컵라면 종류와 인스턴트 라면이 몽땅 다 팔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신라면이 5묶음 정도 있었는데 이제는 텅 비었다.
 
다시 쌀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갔다. 쌀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하얀쌀은 다 팔리고 그 윗 선반에 보리와 현미만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유도 동이났고, 쭉 돌아보니 고기,두부, 빵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도 과일, 야채, 생선, 과자, 음료수 등은 많이 남아 있었다. 사재기하는 분위기가 지진 직후인 그제, 어제보다 오늘이 더 심한 것 같았다. 앞으로 다가올 지 모르는 또 하나의 여진(16일까지 진도 7.6 정도의 여진이 70% 온다고 한다. 그리고 진도 5 이하의 지진은 하루에도 20번 이상 tv에 게시되고 있고 실제 느끼는 여진도 서너번 있다)에 대한 공포가, 9.0이라는 대지진과 쓰나미에 휩쓸린 미야기현의 경험으로 증폭되어 어쩌면 이렇게 사재기로 표현되었을지도 모른다.

 


중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첸카이거는, “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감정보다 강한 것은 공포다”라고 갈파했다. 우리가 사랑이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공포라는 감정이 더 강하다는 말이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이렇게 하나 둘 씩 비어가는 선반을 바라보며 왠지 공포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언젠가 음식들이 모든 선반에서 다 사라지고, 이어서 벌어지는 광경들. 
텅 빈 슈퍼에서 혹시나 남은 음식이라도 있을까 눈을 번뜩이며 구석구석꺼자 찾아 헤매는 사람들...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여진은 계속된다. 아직까진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일본인들의 성격이 온순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어렸을 때부터 생활화되다시피한 지진에 대한 훈련과 또 한편으로는 설마 대지진까지야 하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일본인들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앞으로의 대지진 공포감에 서서히 비상식료품을 사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일명 사재기인 것이다. 앞으로 모두가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절대로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공포의 날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일본인들은 과연 어떻게 변할까? 제발 모두가 느끼는 그 공포가 여기에서 멈췄으면 좋겠다.

(사진 -야마모토 히로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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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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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재난방송 11/03/16 [17:13]
일본인들의 무표정한 모습에서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면...그건 단지 나만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tv 화면에 나오던 허탈한 웃음속에 서린 커다란 공포 또한 섬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차라리 울어라...차라리 너무 무섭다고 좀 드러내라고
tv 화면을 보고 윽박질렀다. 답답한 그들의 억눌림이 언제 분노로 표출될지 터지
기 일보직전의 활화산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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