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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같은 교토대 입학 그리고 자유

교토대생의 교토이야기(3) 자유의 상징 오리타 선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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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범(교토대학 2학년
기사입력 2010/10/30 [12:51]

교토대생의 교토이야기(1) 교토대 뒤 카페에서 한국을 만나다
교토대생의 교토이야기(2) 교토대 앞 오래된 찻집 70년대 그 시절
 
4년 전, 창 밖으로 바라본 여름방학의 운동장은 청춘을 반납한 고등학생들의 심정과도 같이 푸석푸석하게 흙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에서 지냈던 나는, 방학과 학기의 경계가 없는 곳에 살고 있었다. 월화수목금금금이나 밥-공부-밥과 같은 단순한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 그 세계에서는 다만 방학 동안 저녁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늘어나서 축구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나 기숙사에서는 이따금씩 찾아오는 졸업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귀중한 시간도 있었다. 자습시간을 합법적으로 땡땡이 칠 수 있으며 덤으로 선생님들 흉을 보며 선후배가 하나되는 시간이기에 귀중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본에서 학교 다닌다는 선배들이 나타났다.

‘일본공대’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선배들이 일본에 있는 이유는 이러하였다.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민간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일본 국립대학의 이공계열에 매년 한국 학생 100명이 입학해 4년 내내 학비는 물론 생활비도 받으며 다닐 수 있고, 심지어 장학금 반환도 필요 없다는, 귀가 의심되는 이야기였다. 

우리 집 형편은 그다지 넉넉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4년간 사립대를 다니며 자취라도 한다면 집안 기둥이 뽑힐 것이라는 밑그림이 내게는 줄곧 있었고, 게다가 외국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맞물려 선배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마음을 정했다. 일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나 유학의 거창한 목표 따윈 없었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다음해, 친구들의 수능시험이 백여일 남았을 무렵 장마비가 오는 서울에서 시험을 쳤다. 결과는 다행히 100명의 커트라인 통과였다. 하지만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우선 커트라인을 통과하면 원서에 각자 원하는 학교 5곳과 학과 3개를 합해 15개까지 지원할 수 있었는데, 나는 우선 일본에 어떤 대학이 있는지도 몰랐다. 선배들에게 수소문 끝에 나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성적은 예년의 나고야 대학이나 홋카이도 대학 정도에 갈 수 있는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서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고 1지망에 교토대를 써놓았고, 그 때부터 홋카이도에 갈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홋카이도에 대한 환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겨울엔 허리까지 눈이 쌓이는 날이 일상다반사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일본어 학원보다 스키 학원에 다니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망상 등에 빠지며 면접 시험을 기다렸다.

면접 시험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온화한 인상의 일본인 면접관 한 분과 통역 한 분이 계셨다. 인사를 나누고 내가 들은 질문은 면접을 대비해서 생각해 둔 예상 질문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이번 시험 결과에 만족해요?”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열심히 했고 후회는 없다는 식의 대답을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더욱 강도높인 질문.

“어느 대학 갈 것 같아요?”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시다니’ 하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홋카이도 대학이요.”

그러자 일본인 면접관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그 미소의 의미를 파악해보려 무던 애를 썼지만 11월의 최종 발표까지 수수께끼로 남은 채 시간이 흘렀다. 그 미소의 의미는 합격자 발표날, ‘겁나게 운 좋게’ 제1지망에 턱걸이로 들어간 나를 향한 축하였음을 알았다.

당연히 못 갈 거라고 믿었던 교토대에 입학하기까지 나는 교토대를 '교토시 사쿄구에 위치한 국립종합대학이다. 설립 당시부터 ‘자유로운 학풍’을 건학 이념으로 삼아왔으며 국립 대학 법인이 된 이후에도 교토대학의 기본이념으로 고수되었다. 자학자습(自學自習)의 정신을 기초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은 일본인 최초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를 비롯한 6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2명의 필즈메달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예습했다.

그리고 지금, 입학한지 1년 반을 조금 넘긴 시점에서 공학부 3호관 건축학과 2학년 제도실에서 이 글을 쓰며 나는 깨닫는다. “저는 교토대를 글로 배웠습니다” 하고.

적어도 나 같은 보통 사람에게는, 그러니까 노벨상 같은 업적이 대단하다고는 생각되지만 손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서 실감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유로운 학풍’이다 뭐다 해도 내가 있는 곳과는 다른 저 세상의 이야기로 들린다. 박지성 동영상을 줄기차게 본다 한들 내가 뛰던 고등학교 운동장이 맨체스터의 꿈의 구장으로 변하지 않듯이. 하지만 내겐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던 시간이 더 소중하고 더 가깝게 느껴지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교토대를 마음껏 뛰어다니고 다시 느끼는 교토대는 '글로 배운 교토대' 처럼 대단한 모습은 아니지만 나름의 매력으로 충만한 캠퍼스다. 교토대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교토대학은 1명의 천재와 99명의 폐인을 낳는다.' 그 1명은 연구에 정진할 테고, 나머지 99명은 교토대에 매력을 불어넣는 존재일 것이다.

교토대 학생들에게 부여된 자유는 공부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학생의 자주성에 맡기는 순간, 캠퍼스는 즐거운 카오스의 시작으로 돌변한다.

교토대의 카오스를 처음 대면한 것은 작년 2월경 입학 전의 일이다. 당시엔 유학생 예비교육으로 다국적의 외국인들과 한 교실에서 일본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4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일본에서는 2월 하순경에 각 대학별 입시시험이 치러지는데, 수험시즌이 되면 고등학생들로 바글거리는 색다른 캠퍼스의 모습이 펼쳐진다. 

그리고 고등학생들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정체불명의 물체. 바로 교토대의 명물 오리타선생상(折田先生像)이 그것이다. 오리타선생상은 교토대학 전신의 하나인 제3고등학교의 초대교장을 역임한 오리타 히코이치(折田彦市, 1849 – 1920)의 업적을 기려 만들어진 동상인데, 유서깊은 낙서와 장난으로 유명하다. 

낙서가 시작된 것이 언제인지는 불명확하지만, 1986년에 얼굴 전체가 빨갛게 칠해져 기단부분에 '화난 사람'이라고 쓰여져 방치되었다가 후에 누군가가 얼굴을 다시 파랗게 칠하고 기단부분엔 “화내지 말아요”라고 덧붙여 쓴 일이 발단이 되었다. 그 후 연이어 새로운 낙서가 지속적으로 출현하게 된다. 그 중엔 치마를 얼굴에 뒤집어 씌우고 기단부에 '호오오오' 라고 낙서된 변태가면 버전, 전체를 골판지로 만든 모아이 상을 씌워 놓은 모아이 버전 등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측에서는 1994년에 한차례 동상의 대대적인 청소를 했지만 낙서의 전통이 면면히 계승되자 1997년에 이르러서 동상을 남부 캠퍼스의 종합인간학부도서관 지하에 보관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것을 계기로 오리타선생상은 한 발자국 더 진화하게 된다.

철거 이후에 동상과 기단이 없어지는 바람에 오리타선생상 낙서는 매년 수험시즌, 동상은 물론 기단과 안내 문구까지 제작해 설치하는 형태의 패러디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2009년에 출현한 동상은 가면라이더의 등장인물인 '라이더 맨' 버전이었다.

▲ 라이더 맨의 당당한 자태.     ©折田先生を讃える会

늠름한 자태로 라이더의 위상을 떨치고 계신 오리타 선생. 그리고 그 옆에 쓰여진 안내 문구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오리타 히코이치 선생님은 교토대학을 졸업하신 라이더로서 데스트론에게 복수를 위해 노력하시고, 교토대학 졸업식에 코스프레의 학풍을 세우는 데에 다대한 공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부디 그를 주인공으로 써 주세요.”

여기서 또 하나의 볼거리가 등장한다. 교토대학 졸업식의 코스프레 학풍이 바로 그것. 일본 내에서는 이미 많은 매체의 전파를 탔을 정도로 유명해진 졸업식 광경은 엄숙함과 기발함의 사이를 위험하게 가로지른다. 

매년 양복을 입은 학생들 사이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비롯해 다양한 분장을 한 학생들이 졸업식장을 뜨겁게 달군다. 졸업식 후엔 단상에서 벌어지는 카오스 기념촬영 역시 놓칠 수 없다. 백문불여일견이기에, 지금 바로 유튜브에서 교토대학 졸업식을 찾아보시는 것이 좋겠다.

해마다 이어지는 이런 카오스의 틈바구니에서 학교가 취하는 입장은 더욱 놀랍다. 2008년에 등장한 동상 패러디에 대해 교토대학은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매년 등장하는 오리타선생상은 그 완성도가 뛰어난 점을 칭찬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학 남부 캠퍼스의 중요한 풍경의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밝히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매년 누군가에 의해 동상 패러디가 훼손되는 점에 대해, “창작물을 부수는 행위는 가장 악질이고 비열하며 야만스러운 행위”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학교측에서는 동상에 낙서를 저지른 범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기는커녕, 그 나름대로 학생들의 편에 서서 오리타선생상을 지키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 오리타 선생이 바로 교토대학의 기둥이 되는 자유로운 학풍의 뿌리였기 때문이다. 교토대학 전신인 제3고등학교의 교장으로 30년이 넘는 시간을 역임하며 학교와 학생의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선생을 기리기 위해 교토대학 에서는 1940년에 이미 동상을 설치했다.

1933년 타키가와 유키토키(滝川幸辰)교수의 형법이론이 문부성에 의해 ‘붉은 사상’이라고 비판받아 타키가와 교수를 포함한 교직원 7명이 대학을 떠난 이른바 ‘타키가와 사건’은 일본 대학 전체에게 학문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묻게 하는 사건이었다. 후에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에 의해 ‘우리 청춘 후회 없다(1946)’라는 작품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이 사건은 ‘자유’가 당연한 가치가 된 이 시대의 눈으로 보면 먼 과거의 유물처럼 남아있다.

언제나 곁에 있기에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학교와 학생의 자유’를 매년 학생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이 오리타선생상이 갖는 진짜 의미가 아닐까? 물론 그 방식은 즐겁고 자유로운 카오스, 다분히 교토대다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글로 배운 교토대'가 아닌 피부로 느낀 ‘자유로운 학풍’의 전말이다.

▲ 2010년의 오리타 선생은 포켓몬스터의 웅(타케시).     ©折田先生を讃える会

▲ 2010년의 수험시즌 교토대의 풍경. 수험생들 사이로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의 모습과 저 멀리 보이는 오리타 선생의 모습.    ©折田先生を讃える会

▲ 2009년에 출현한 가면라이더의 라이더 맨 버전. 수험생들 사이로 당당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折田先生を讃える会



▲ 정교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折田先生を讃える会

▲ 2005년의 만화 닥터 슬럼프에 나오는 슈퍼맨 버전.     ©折田先生を讃える会

▲ 2003년에 출현한 고르고13버전. 고르고13이라는 만화에 출현하는 저격수라고 한다.     ©折田先生を讃える会

▲ 2002년에 출현한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의 나우시카 버전     ©折田先生を讃える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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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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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범님 10/10/31 [11:36]
한국 이공계열 학생 100명을 무료로 유학시켜는 시험이란게

혹시 EJU시험인가요? 

제가 잘 몰라서
우호 10/10/31 [12:37]
저는 이 글을 쓰신 김태범님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유학생으로써 위님께 답변드립니다
한국 이공계열 학생 100명을 무료로 유학시켜주는 시험은 EJU시험과는 다른 시험입니다
EJU시험은 사비유학생들을 위한 시험으로
김태범님이 보신 시험은 사비유학생을 위한 EJU시험이 아닌 국비유학생들이 보는 시험으로 판단되네요~
몰라 10/11/01 [01:04]
일본에서는 탑투학교인데... 졸업식 완전 엌인데요... 코스프레 졸업식... 한번 가보고 싶네요... 그나저나 국비시험을 통과하시다니 대단 하시네요... 
랜디블루 10/11/01 [09:45]
교토대정도면 관심있는 한국학생들도 많을거 같은데 수업은 어떤지 그런것도 좀 알고 싶네요. 기대한 것만큼 일본 유학에 만족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시험은 10/11/01 [11:00]
일선 고등학교로 공문이 와요. 일본정부에서 보내주는 국비유학시험이구요. 대상은 오로지 공대 학부유학만 가능한데 원래 개도국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서 한국외에 동남아 여러나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년 학부에 석사3년까지 연장가능합니다. 달달이 생활비 대주고 학비도 다 내어줍니다. 일본유학 때 이 프로그램 학생들을 종종 만났는데 합격하면 한국에서 6개월간 일본어공부를 하고 6개월후에 도일해서 다시 일어공부를 한 다음에 학부 1학년이 되더군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학교생활하는 걸 보니 역시 외국어라서 교양과목같은 건 수업수강에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았어요.
10/11/01 [20:21]
글쓴이가 쓸수있는 다양한 주제로 확장되고 있네요.
이런 얘기도 재밌고 좋아요.
yankstone 10/11/02 [17:51]
저도 교토 사쿄쿠에 위치한 대학을 다니는 학생입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도 자유로운 학풍이라면 둘
감사합니다 10/11/03 [01:03]
연간 100명밖에 안 뽑는거 보니까 경쟁률이 치열하겠군요..

보통 서울대 갈 실력이 되는 사람만 지원하겠군요.

공부를 못해도 합격한 사례가 있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ㅎㅎ 


가능하면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 
 
김태범 10/11/03 [01:44]
질문 감사합니다. 제가 본 시험은 한일공동이공계학부유학생 프로그램으로, 매년 100명의 학생이 일본 국립대학의 이공계열으로 진학할 수 있으며 한일공동으로 장학금을 제공해주는 제도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국립국제교육원 http://www.niied.go.kr을 참고해주세요. ^^
김다은 10/11/19 [22:57]
싸이에 글 못 쓰게 해놨네
이번주 주말에 집으로 전화좀 해~
친구분 10/12/05 [00:59]
집에 전화 좀 하고 그래요~ 
오사카대학생 11/01/18 [16:58]
고등학교 졸업 1년 내 학생만 신청가능합니다. 스물 두살부터는 빠이빠이에요.
혹시나 궁금하신 분 있나 해서요.. 

그나저나 교토대에 밀려 깔려있는 우리 오사카대는 우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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