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단독입수] 구 일본군 위안소 출입증

구 일본군 군속이 털어놓는 남태평양 종군위안소 실태

가 -가 +

박철현 기자
기사입력 2010/04/22 [10:05]

'남국료출입증(南国寮出入証)'
 
<제이피뉴스>는 4월 21일 1942년부터 44년까지 남태평양 트럭섬(truck island)에서 제국해군 제4함대 시설부대 군무원으로 근무한 마쓰바라 마사루(松原勝) 씨로부터 당시 트럭제도 나쓰시마(夏島)에 존재했던 일본군 위안소 출입증(원본)을 입수했다.
 
이 출입증은 가로 5.8, 세로 10.8센티미터 크기로 앞면 오른쪽에 '남국료출입증'이라고 적혀져 있다.
 
'남국료'는 당시 나쓰시마에 있었던 일본군 위안소 중 한 곳으로 60여명의 군 위안부가 성접대를 강요받았던 곳이다. 

▲ 남태평양 트럭제도 나쓰시마 섬에 있었던 남국료출입증 원본    ©jpnews/야마모토히로키
 
이 위안소를 관리하는 시설부대 군무원으로 재직했던 마쓰바라 씨의 증언에 따르면 나쓰시마에는 남국료외에도 남성료(南星寮)라는 위안소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나쓰시마 위안소에는 두 군데를 합해 120명의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고 그녀들의 국적은 90% 이상이 한국이었다"고 말했다.
 
'남국료출입증'의 오른쪽 옆에는 증서 발급일이 기재돼 있다. 마쓰바라 씨의 출입증은 쇼와 18년(1943년) 11월 11월에 발급받은 것으로 돼 있다. 앞면 한 가운데에는 이름이, 그 바로 옆에는 나이가 기입돼 있다. 그 바로 왼쪽 편에는 발급부대 이름이 적혀 있다.
 
마쓰바라 씨가 보여준 출입증의 경우 '하기와라 부대(萩原部隊)'라고 적혀져 있는데, 이 부대는 마쓰바라 씨가 근무했던 시설부대 부대장 이름이 하기와라 간이치(萩原勘一) 대좌였기 때문에 하기와라 부대로 불렸다고 한다. (구 일본군 연대이하 편제는 일선 지휘관에의 충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식건제명이 아니라 연대장 이름을 부대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임 - 기자주)
 
또한 출입증 앞면 상단에는 발급번호를 나타내는 '갑제511호(甲第511號)'가 표시돼 있고 그 왼쪽 밑에는 해당 군속의 직급이 씌여져 있다.
 
뒷면에는 이 출입증을 사용할 때의 주의사항이 나열돼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위안소 출입증 뒷면에 기재된 주의사항     ©jpnews/야마모토히로키
 
1. 타인에게 융통하지 말 것.
1. 분실하거나 습득했을 때는 즉시 본부 서무주임에 제출할 것.
1. 분실했을 경우 재발행하지 않음.
1. 퇴직 및 그 외 다른 이유로 필요없어질 경우 즉시 반납할 것.
 
마쓰바라 씨는 "군인의 경우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출입증 자체가 필요없었다. 나같은 군무원은 사복도 입기 때문에 이런 출입증을 발급받았다"고 말했다. 
 
■ [인터뷰] 구 일본군 군속 "위안부들은 다 속아서 온 거야" (1부)
 
■ 이 기사의 무단전재, 무단인용은 엄금합니다. 링크를 이용해 주십시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사람 10/04/22 [10:58]
과거를 인정하고 그것을 계기로 더욱 발전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

지속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과거가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를 무시하는자가 어찌 미래를 내다볼수 있겠는가?
과거를 무시하는자가 또다시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것이다 단정짓는가?
일억옥쇄 전범국 10/04/22 [12:07]
박철현 기자... 올해의 기자상 수상유력~!
10/04/22 [13:49]
야스쿠니신사 확 다 불질러 버리고싶다..
10/04/22 [14:14]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일반인이나 검찰이나.. 예나 지금이나..성매매 성상납이 관례처럼 이뤄지는 나라가 종군위안부가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는 자체가 코메디다.대한민국검찰들 성상납관련과 시기를 같이하여 아주 좋은 기사를 써 내는군. 
akia 10/04/22 [17:40]
위안부와 예전 미군부대 근처에 있던 양공주와의 차이는 뭡니까? 순결한 조선의 처녀를 이국땅에 끌고간건 과연 누구입니까? 미군부대 양공주는 누가 만들었나요? 왜 미군부대 양공주에 대해서 미국에 문제제기하지않나요?
그럼 10/04/22 [18:11]
일본 종군 위안부는 강제로 마을 처녀를 공출해 간거야. 돈벌러 일하러 가는거라고 속이고 우리 할머니 말씀이 그래서 십대 중반만 되도 마을에선 다 시집가야 했다고 하셨었죠. 안그러면 강제 공출되니까. 어떤 위안부 할머니 증언도 일본군이 떠날때 은폐하기 위해 여자들을 다 죽였는데 근처 중국인의 도움으로 살아났다고 하던 분도 계셨다. 임신하면 마취도 안하고 배를 열어서 산모와 아이 둘다 죽인다던가. 몸이 아파 하라는 대로 말을 안들으면 입안에 먹을 뭍힌 못달린 나무를 돌려 입안에 증거가 남을 정도로 끔찍한 고문도 자행됬음도 증언됐고 그런건 무시한 채 그 분들 여자들의 인권 유린을 그쪽 성매매 직업여성과 비교하여 마치 당연하게 생각하는게 소름끼친다.

그 위안부로 끌려 가신분들 다 돌아가시면 일본이니까 왜곡 조작해서 그 피해자들 잘못으로 몰려는 심산이겠지.
역시 독일과는 과거에 대한 태도가 사뭇 달라. 
이기폽 10/04/22 [19:38]
과연 독일이- 유태인이나 기타 연합군 소속 국가들의 파워가 지금과 같지 않았더라면...그렇게 절실한 사과를 했을지 궁금합니다. 

이번 폴란드 대통령의 사망사고와 관련되어...러시아의 과거의 만행에 대한 사과는 그의 죽음으로나마 이루어졌으며...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식민지에 대한 유럽 국가의 사과는 참으로 인색한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의 경우에도 얼마 전에나 원주민에 대해 사과를 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베트남의 경제성장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야 사과를 했고요. (한편으로 국내의 극우단체들은 그 사과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었죠.)

역으로, 과연 우리나라가 같은 만행을 저지른 상황에서... 그 피해국이 약소국이었다면 사과를 했을까요? 내심 궁금해지며... 결론은 일본의 사과는 우리의 국력이 얼마나 강해지느냐에 따라 그 절실성이 판가름난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독일이 신사적이고 진심으로 죄책감을 느꼈다기보다는 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궁금한건?? 10/04/22 [21:06]
너무 무식하다...
이래도 10/04/22 [23:11]
아니라고 해라 이 기억상실증걸린 인간들아 -_-;; 
일본사랑 10/04/23 [06:08]
보통 萩原는 하기와라로 읽던데 "하기하라"가 아니라 "하기와라" 아닌가요? 
봉건일본 10/04/23 [08:31]
아니, 일본이라는 국가 /군부가 강제적으로 운영한 종군위안부를 ,매춘한 양공주나 게이샤와 왜 비교하는가????머리 제대로 들어 있는사람들인가??? 한심한 젊은이들...책 좀 읽으시게...
편집부 10/04/23 [09:45]
하기와라 부대가 맞습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 수정했습니다.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맨위로

Copyright ⓒ JP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