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말에 3권이 나온 후 오랜만에 출간된 것이다. 청춘소설이며 범죄소설이기도 한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는 이케부쿠로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어머니를 도우면서 틈틈이 탐정 일도 하고, 컬럼도 쓰는 19살의 마코토에게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그린 중단편집이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는 원작도 베스트셀러였지만, 2000년 만들어진 드라마 <i.w.g.p.>로 젊은 세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시다 이라 원작의 생생함과 시나리오 작가 쿠도 칸쿠로의 재기와 통찰력이 어우러져 <i.w.g.p.>는 신세대의 교본이 되었다.
<i.w.g.p.>에 이어 <키사라즈 캣츠 아이> <타이거 & 드래곤> 등의 각본을 쓰면서 젊은 세대의 아이콘이 된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 쿠도 칸쿠로의 힘이 컸지만, 원작의 매력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케부쿠로는 도쿄의 번화가 중 하나이지만, 시부야보다는 약간 촌스럽고 지저분하고 신주쿠보다는 약간 경쾌하지만 투박한, 젊은 분위기의 유흥가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사회의 시스템에 쉽게 동조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제멋대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겐 나름의 규율이 있고, 나름의 도덕이 있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는 고정된 시스템의 사선(斜線)에서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좌충우돌을 그리고 있다. 있는 그대로, 약간 낭만적이지만 결코 현실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허무하다거나 공허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저건 모두 인간이 지닌 욕망의 빛이다. 욕망을 미워할 수는 없다. 다들 말없이 그대로 빛나기만 하면 된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이시다 이라는 일본의 인기 작가이지만, 국내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번역된 나온 책도 20권 가까이 되지만 초기에 나온, 나오키상 수상작인 <4teen>이 조금 관심을 끌었던 정도이고 베스트셀러라 할 것은 딱히 없다.
이유를 생각해 봤다. 이시다 이라는 특정한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순문학 작가도 아니다. 이시다 이라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일면을 그린 소설을 주로 쓴다. 작가의 예리한 안테나에 걸려드는 중요한 이야기를,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거쳐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는 무라카미 류와 비슷하다.
무라카미 류는 지금 이슈가 되는, 될 소재를 잡아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영역에 이르기까지 무라카미 류는 사방에 촉수를 뻗고 있다.
이시다 이라도 그렇다. 소년 범죄를 다룬 <아름다운 아이>, 증권시장을 무대로 자본주의라는 정글을 그려낸 <빅 머니>, 디지털 세대의 도래를 예언적으로 설파한 <아키하바라 딥> 등 굵직한 사건들을 그리는가 하면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남자간의 사랑을 그린 <잠들지 않는 진주>, 남창을 주인공으로 한 <렌트> 등 사회의 일상적인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도 있다. 하나의 소재와 주제에 천착하기보다는, 지금 필요한 이야기를 잡아내고 만들어내는 게 이시다 이라의 장기다.
무라카미 류와 이시다 이라가 다양한 소재를 찾아다니면서도 일류 작가로 인정받는 이유는, 하이에나처럼 선정주의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분야에 전문가 못지않게 천착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분야에 정통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예리한 분석까지 곁들여주기 때문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단지 세태소설에 머무르지 않는다.
항상 걸작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무라카미 류와 이시다 이라는 동세대의 독자들이 공감할 뿐 아니라 뭔가를 깨달을 수 있는 정도의 성찰까지 보여준다. 그것은 감수성을 뛰어넘는, 발로 뛰는 성실함 덕이다. 자료 조사와 인터뷰 등 반드시 필요한 작업에서 가장 성실하게 임하는 그들의 태도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시다 이라의 작품은 끈질기게 읽어가야만 ‘작가’에 대해 알 수 있다. 각 작품을 하나씩 보면 잘 조련된, 탁월한 이야기라는 정도의 느낌만을 받기 쉽다. 요시다 슈이치처럼 세련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와 인식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시다 이라는 거의 의도적으로 보일 정도로 이야기에만 집착한다.
<아키하바라 딥>을 읽다 보면, 각 인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에도 이시다 이라는 그냥 앞으로 죽 나아간다. 그렇다고 내면에 대해 무심한 것도 아니다. 한 캐릭터에 집중하는 단편에서는, 인물들의 내면이 정말 서늘하게 다가온다. 다만 이시다 이라는 절제할 뿐이다. 현실의 상황을 전달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데 더욱 주력할 뿐이다. 한국 독자는 그보다 감성을 더욱 소중히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시다 이라가 평가절하 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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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비상구는 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희망이라는 비상구는 보일 수 있다. 그 곳을 빠져나온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희망으로 가득차거나,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아니 애초에 자신에게 있었던 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섣부른 희망이나 행복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시다 이라는 리얼리스트다. 그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면서도 극단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냉정하게 관찰하면서, 그들의 상황을 예리하게 드러낼 뿐이다. 의외로 그런 차가움에서 희망이 새어나온다. 단지 감싸 안는 것만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니까.
이시다 이라는 젊은 세대를 볼 때에도 결코 두둔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이시다 이라는 단지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런 냉정함이 오히려, 지금 일본 젊은 세대의 ‘아우라’를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그것이 이시다 이라나는 작가의 장점이자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