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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극우 역사수정주의자는 '세계의 적'

아베의 '극우적 실체' 세계는 앞으로 그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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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사와 무네오
기사입력 2013/08/16 [10:51]

※ 이 글은 일본의 진보성향 시사주간지 '주간금요일'의 기획위원 나루사와 무네오 씨가 지난 1월 작성한 글입니다. 아베 신조의 실체에 대해 적나라하게 적혀 있는 글입니다. 본인의 허락을 받아 전문을 게재합니다.

일본군에 의한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지 75년을 맞은 2012년 12월, 이 끔찍한 사건을 역사의 기억 속에 각인해 전달해나감으로써 두 번 다시 일본이 타국과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교훈으로 삼으려 했던 적지 않은 일본인들에게는 너무도 큰 시련이 주어졌다.

같은 달 16일 실시된 중의원 총선거 결과, 지난 2009년 8월 총선거에서 패배해 야당으로 전락했던 자유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면서 정권을 되찾았다. 게다가, 수상의 자리 앉은 것은 다름이 아닌 극우역사수정주의자인 아베 신조였다. 더는 일본 국내만의 일이라고 할 수 없는 단계가 되었다.

왜냐하면, 자민당은 아직도 일본군에 의한 가해의 기억이 선명한 중국이나 한국, 북한과 같은 나라에 대해서 이 기억 자체가 마치 역사적 정확성이 부족하고, 일본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이웃 나라들의 목소리는 부당한 생트집이며,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자학적'이라 주장하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소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민당의 이러한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체질을 가장 확실하게 상징하는 것이 아베총리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51년 9월의 대일강화조약에 조인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게 있어서, 일본의 국제사회 복귀의 전제 조건은 일본이 대일본제국과 결별하고, 가해자로서 자신들의 행위를 이웃나라에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후 독일연방공화국의 출발점이 나치즘과의 결별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죄였던 것에 반해, 거의 계속해서 전후 일본의 여당으로 군림해온 자민당은 항상 역사수정주의자의 거점이었으며 지금도 그것은 전혀 변함이 없다.

아마 세계는 '홀로코스트는 없었다' 따위의 주장을 하는 정치가가 독일의 수상으로 취임하는 사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난징대학살로부터 75년이 지난 현재, 세계가 목격한 것은 일본의 총리가 난징대학살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역사수정주의의 편에 선 정치가라고 하는 놀랄만한 광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 당하고 그 목격자, 체험자도 아직 생존해 있는 아시아의 국민, 또한 북미를 비롯한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이 극우 역사수정주의자 총리에게 '난징대학살은 허구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일본이 이웃 나라를 침략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가?'라고 재추궁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

▲ 121218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 JPNews

 

특히 한국이나 북한, 그리고 세계의 코리안에게 있어서는 난징대학살에 필적하는 대일본제국이 저지른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범죄 중 하나인 '종군위안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라고 아베총리를 추궁하는 것이 급선무다. 왜냐하면, 총리는 지금도 공교육의 역사 수업에서 '종군위안부'의 기술을 삭제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이 총리인 이상, 일본의 국제사회 복귀로부터 61년이 지나려 하는 오늘날, 다시 한번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만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의 정당성이 근본적으로 추궁되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무엇보다도 먼저 일본인이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국민은 그것을 추궁할 정당한 권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1. 아베 신조라는 정치가

아베총리는 자민당 안에서도 특이한 존재다. 그는 외무대신 등 요직을 역임하고 자민당 총재후보자의 한 사람이기도 했던 부친 아베 타로의 힘으로 1993년에 첫 당선한 이후, 일관해서 당내 유수의 극우수정주의자로 행동함으로써 현재의 지위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이하 그 경력을 열거하겠다.

● 아베는 당선 직후인 1993년 8월, 자민당의 '역사・검토위원회'의 위원이 된다. '위원회'에서는 우익 학자를 초빙해 20회 정도의 회합을 가지고, 그 검토내용을 정리해 1995년 8월15일(일본의 종전기념일), '대동아전쟁 총괄'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그 책에는 1) '대동아전쟁'(아시아태평양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자존·자위의 전쟁이며, 아시아 해방 전쟁이었다. 2) 난징대학살, '위안부' 등의 가해 사실은 꾸며내진 것이며, 일본은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가해 책임도 없다. 3) 교과서에는 침략이나 가해에 대한 있지도 않은 사실에 관한 기술이 있어, 새로운 '교과서 싸움'(교과서 기술이 편향되어 있다고 공격한다)이 필요하다고 기술되어 있다. 현재의 아베 총리도 같은 인식이다.

● 패전 후 50년이 되는 1995년 8월,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이 담긴 국회결의가 채택되려는 움직임에 반대해 '역사·검토위원회'의 멤버를 중심으로 한 우파의 '종전 50주년 국회의원 연맹'이 1994년 12월에 결성되었을 때, 아베는 사무국장대리로 발탁된다. '의원연맹'은 신도계를 중심으로한 극우 종교집단과 연계해 '종전 50주년 국민운동 실행위원회'를 운영해 '일본은 침략 국가 아니었다','전쟁에 대한 반성결의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담은 결의를 전국 26개현 광역지자체와 90개 중소 지자체 의회에서 가결시켰다.

● 당내의 이러한 우파의원은 1996년 6월 역사교과서에 대한 공격을 위해 '밝은 일본 국회의원 연맹'을 결성했고, 아베는 사무국장대리가 된다. 게다가 아베는 1997년 2월에 결성된, 역사 교과서에 대한 공격을 특화한 '일본의 전도(前途=장래)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2004년에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으로 개명)의 사무국장이 되었다.

● 아베는 항상 이러한 그룹의 선두에 서서, '종군위안부는 매춘부'라며 역사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나 난징대학살에 대한 기술을 삭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교과서를 검정하는 문부과학성의 관료뿐만 아니라, 교과서 회사의 사장이나 교과서 집필자에게도 침략전쟁이나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왜곡되었다'고 추궁하여 삭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 아베가 관방장관이었던 2001년 1월 30일, 일본 공영 방송인 NHK가 방영했던 프로그램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까 (2) - 추궁되는 전쟁 성폭력'의 제작에 사전 개입해 종군위안부를 다룬 부분에 대해 NHK 방송국장에게 '심한 내용이다','공평하고 객관적인 방송을 하도록', '그걸 못한다면 그만둬라'라고 공격했다.

그 결과, 프로그램의 내용이 크게 변경됐다. 변경된 내용에는 2000년 12월 도쿄에서 개최된 '여성 국제전범 법정' 석상에서 일본군에 의한 강간과 위안부제도가 '인도적인 범죄'를 구성한다고 인정되어 일본국과 쇼와천황에게 책임이 있다는 부분이 전면적으로 삭제되었다.

2. '고노 담화'에 대한 공격

미야자와 기이치가 총리였던 1993년 8월 4일,'위안부 관련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고노 담화)가 발표된다. 담화에서 관방장관인 고노 요헤이가 이하와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조사 결과,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되어,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위안소는 당시 군당국의 요청으로 설치 운영되었으며,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는 구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했다. 위안부 모집에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그 경우에도 달콤한 말로 꼬이거나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한 사례가 많았다. 또한, 관헌등이 직접 여기에 가담한 일도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아래서 처절한 것이었다'

이 고노 담화에 대해 같은 자민당이면서도 가장 격렬하게 공격한 것이 아베였다.

● 아베는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과 계획을 짜고, 회합에 고노를 불러, "확실한 증거도 없이 상대방이 요청한 대로 강제성을 인정했다"는 등 담화를 공격했지만, 고노는 굴하지 않았다.

또한 아베는 1997년 5월 27일에도 중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종군위안부는 강제라는 측면이 없다면 (교과서에)특별히 기술할 필요는 없다. 강제성에 대해서는 전혀 검증할 문서가 나오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 아베는 간사장 시절인 2004년 6월 14일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과서를 생각하는 의원 모임'이 주최한 심포지움 석상에서 고노담화를 무시하고, "종군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또한 "문부과학성에 교과서 개선(주=종군『위안부』기술 삭제)을 적극적으로 요청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3. 총리시절의 말 바꾸기

아베는 2006년 9월 26일 총리에 선출된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표로서 이전의 극우 역사수정주의자적 자세을 관철해 나가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 그러한 자세는 자민당이나 일본 국내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국제사회에서는 커다란 혐오감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은 뻔했다. 특히 아베가 추태를 보인 것은 종군위안부를 둘러싼 문제였다.


▲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나선 아베     ©JPNews

 
 

● 아베는 2006년 10월 4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고노 담화에 대해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고노 담화를 계승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여기에 대해 아베를 지지해 온 우파세력으로부터 비판이 일었기 때문인지, 2007년 3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노 담화를 앞으로도 계승해 가겠다"라고 하면서도 "관헌이 집에 들어가 끌고가듯이 데려갔다는 강제성,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할 증언은 없었다"고 답변해 고노 담화의 '강제성'에 대해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 2007년 1월 31일, 美 하원의회에서 '위안부' 문제로 일본정부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민주당 마이크 혼다 의원에 의해 제출되었을 때, 아베는 "결의가 채택되더라도 사죄할 생각은 없다", "위안부를 일본군 병사가 납치·강제했다고 하는 '협의의 강제성'의 증거는 없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고노 담화 자체가 정부의 이름으로 '수많은 고통을 당하고, 심신에 가시지 않을 상처를 입은 종군위안부 여러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말씀드립니다'라고 사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다. 게다가 강제적인 게 아니라 그녀들이 마치 '자주적'으로 일본군 병사를 상대했다고 말하는 듯한 이 발언은 미국 '뉴욕타임즈'나 '로스엔젤레스 타임즈', '보스톤 글로브' 등 각지에서 비판받았다.

● 그때문이었을까. 결국 아베는 외국(특히 구미)의 눈을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영국 BBC는 2007년 4월 27일, 미국을 방문한 아베가 부시대통령과 캠프 데이빗에서 회담했을 당시 "강제적으로 위안부들이 심히 잔혹한 상황에 놓여진 것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I feel deeply sorry that they were forced to be placed in such extremely painful situations)"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미국 '뉴스위크' 4월30일 호는, 방미에 앞서 아베를 인터뷰한 기사를 게재했는데, 아베는 "우리들은 전시하의 환경에서 종군위안부로서 고난과 고통을 강요당한 분들에게 책임을 느끼고 있다.(We feel responsible for having forced these women to go through that hardship and pain as comfort women under the circumstances at the time.)"고 했다. 여기에서는 '강제성'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으니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비판을 받아도 어쩔수 없다.

4. 이빨을 드러낸 아베

아베는 2007년 9월 12일 국회에서 소신표명 연설을 한 직후, 각당의 대표질문을 받는 당일에 돌연 정권을 내던지고 사임하는 전대미문의 추태를 부렸다.

여론으로부터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당했지만 뭐든지 잘 잊어버리는 국민성의 도움을 받아 2012년 9월 26일 다시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었다. 그것을 전후로 해서 이전의 총리시절에 보수파나 우익을 실망시켰던 '실패한 역사수정주의'의 오명을 씻으려는 듯 또다시 우익적 언동의 강도를 높여간다.

● 나고야 시장인 가와무라 다카시 씨가 2월 20일 중국 공산당 난징시 위원회의 간부와 면담한 자리에서 '소위 난징사건이란 없지 않았느냐'라고 말해 큰 문제가 되었다. 여기에 대해 우익세력은 3월 6일, 도쿄도내에서 '가와무라 발언 지지· 난징학살의 허구를 찌르다'라는 제목으로 '긴급 국민집회'를 열었는데, 아베는 여기에 '가와무라 지지'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게다가 같은해 8월 3일과 9월 24일에는 우익세력의 기관지라고 할 수 있는 '산케이신문'에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시장의 난징 발언을 지지하는 광고를 게재했는데 아베는 그 주모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 2012년 8월28일자 '산케이신문'에서 아베는 총리시절에 자신이 '계승해 가겠다'라고 명언한 바 있는 '고노 담화'에 대해, 또 말을 바꾸어 "(자민당이 여당에 복귀하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정부로서 견해를 새로이 나타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 검토 대상에는, 1)1982년 8월26일, 미야자와 기이치 관방장관이 교과서 검정에 있어서는 '근린 아시아 제국가와의 근현대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경우에는 국제이해와 국제협력의 견지에서 필요한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정한 '미야자와 담화'='근린제국조항', 2) 패전으로부터 50년이 지난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가 포함되어 있다.

무라야마 담화에는 "우리나라는 먼 과거 한 때, 국책을 잘못하여 전쟁의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떨어뜨리고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나는 미래에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의심할 여지 없는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으로부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하는 바입니다"라고 적혀있다. 역시 이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도 아베는 수상시절 '정부의 인식'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 또한, 아베내각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해 12월 27일의 기자회견에서 '고노 담화'에 대해, "학자나 전문가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검토를 거듭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재검토할 의사를 내비쳤다. 전 총리시절에 한 번은 실질적으로 인정했던 종군위안부의 '강제성'을 또다시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다.

스가 관방장관은 이 기자회견에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역대 내각의 입장을 이어갈 생각이다"라고 말했지만, 그로부터 3일 후인 12월 30일, 아베는 산케이신문의 단독 인터뷰에 응해 "무라야마 담화는 사회당 총재인 무라야마 총리가 발표한 담화이다. 21세기에 맞는 미래지향적인 담화를 발표하고 싶다"고 했다.

아베는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된 당시, 담화를 비판했지만, 전 총리시절에는 "계승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총리를 그만둔 뒤에는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총리로 다시 돌아오더니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계승하겠다"와 "재검토하겠다"라는 모순된 메세지를 세상에 던지고 있다.

● 2012년 4월10일, 자민당 본부에서 당의 '문부과학부회'와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연맹'의 합동회의가 열렸다. 여기에는 문부과학성의 담당자가 불려와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에 대해 보고했는데, 아베는 종군위안부 관련 기술에 대해 "동원되었다", "끌려갔다"는 기술이 있다며 비난하고, "내가 총리였을 때 이른바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라고 국회에서 답변했는데, 도대체 언제 변경했느냐? 왜 (정부답변을) 무시하느냐?'라고 다그치며, 다시 강제성을 문제시 삼았다. 아베에 의하면, 종군위안부에 대해 기술하게 되면, "상식과는 거리가 먼 교과서"(2012년 5월 10일에 도쿄에서 열린 우익 집회에서의 발언)가 된다고 한다. 또한 같은 합동회의 석상에서 자민당 의원들은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삭제되었는데 왜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기재되어 있느냐"며 잇따라 비판했다.

더구나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라고 국회에서 답변했는데 도대체 언제 변경했느냐"는 아베의 주장은 이상하다. 아베가 말하고 있는 것은 전 총리시절, 츠지모토 기요미 중원의원의 질문서에 대해 2007년 3월 16일의 각의결정을 거친 답변서를 말하는 것이다. 그 답변서에서는 '고노 담화'에 대해 "정부의 기본입장은 관방장관 담화를 계승하는 것"라고 확실히 밝히고 있다.


 

'고노담화'에서는 "위안부 모집에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그 경우에도 달콤한 말로 꼬이거나 강압을 가하는 등 당사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집한 사례가 많으며, 더구나 관헌(관청) 등이 직접 거기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집과 이송 관리 등에 있어서도 감언과 강압을 가하는 등 전반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졌다"고, 강제성을 인정하고 있다.

아베총리 시절인 2007년 답변서에서는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어떤 기술도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특별히 '고노 담화'와 다른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고노 담화' 작성에 관여한 이시하라 노부오 부관방장관은,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들은 통달이나 지령이라고 하는 문서적인 증거, 즉 강제성을 입증할만한 물적 증거는 결국 발견하지 못했지만, 실제로 위안부였던 16명의 조사 결과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조사단의 보고를 기반으로 일본 정부는 강제성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던 겁니다"(아시아여성기금 오럴히스토리 프로젝트의 인터뷰 2006년 3월 7일)

따라서, 아베가 지금에 와서, 교과서에 "동원되었다", "끌려갔다"는 기술이 있는 사실에 발끈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료'가 아니라, 종군위안부가 된 여성들의 조사를 통해 그러한 기술이 입증된 것이므로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아베 자신을 포함한 역대내각이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변경할 것도 없었다. 아베는 겨우 5년 전 자신이 한 언행의 의미를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것인가?

● 아베는 2012년 12월 26일, 새 내각의 각료 명단을 발표했는데 19명의 각료 중, 일관되게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나 난징대학살 기술을 삭제시키는 책동을 계속해 온 '일본의 전도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의 멤버가 약 반 수인 9명이나 입각했다.

더구나 신도세력을 중핵으로하는 일본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와 연계되어 있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에 가입해 있는 각료는 아베를 포함해 실로 13명이나 있다. 이것은 아베 신내각의 극우적 셩격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아베가 임명한 내각에서 가장 경계할 필요가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시모무라 하쿠분(문부과학상)이다. 그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의 간사장이며,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로서 아베와 함께 일관해서 '교과서 공격'을 해왔다. 아베가 다시 자만당 총재로 선임된 직후에 신설된 '교육재생실행본부'의 본부장이며, 이번 총선거에 있어서 1) 자학역사에 근거한 편향적 교육의 중지, 2) '미야자와 담화'에 의한 교과서 검정의 '근린제국조항'의 폐지, 3) 애국교육의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교육에 관한 공약'을 작성했다.

시모무라는 일본의 침략역사를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일이 '자학사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의 역사 교과서 기술이 어떻게 개악될 것인지, 국내외의 주시가 필요하다.

5. 세계가 앞으로 일본을 경계해야만 하는 이유

아베는 다시 총리가 되어 또다시 일본국내에서는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로 행동하면서 미국에 가면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든지 "책임을 느낀다"라는 등 말바꾸기를 할 것인가. 일본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은 그것을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베는 2012년 8월 28일 텔레비전에 출연해 "고노 담화를 그대로 유지하면 한국과의 진정한 우호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아베와 같은 인물이 총리가 되어 유력정치가로 있을수 있고, 더구나 자민당과 같은 수치를 모르는 도당이 지배하는 한, 일본에 대해서 영원히 '진정한 우호관계'를 쌓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나아가서는 전 세계 국민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번 반복한다. 아베와 같은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들이 권력의 정점을 쥐고있는 일본이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느냐 없는냐다.

시모무라는 2012년 10월 3일 아파호텔 체인의 오너와의 회담에서 "지난 아베 정권이 내걸었던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은 도쿄재판 사관이나 가와무라 담화, 무라야마 담화등 일본의 근현대사 전부를 재검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쿄재판사관'이란, 아베나 시모무라 등 극우 수정주의자가 자주 입에 담는 말인데, 요컨대 일본을 침략국가로 심판했던 1946년 5월 3일에서 1948년 11월 12일까지 열렸던 극동군사재판은 승자에 의한 심판이며, 일본을 침략국가로 심판한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는 주장이 깔려 있다.

하지만, 대일강화조약은 제11조에서 '일본국은 극동 국제군사재판소 및 일본국내·국외의 타연합국 전쟁범죄 법정의 재판을 수락한다(Japan accepts the judgments of 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and of other Allied War Crimes Courts both within and outside Japan)'고 규정하고 있다. '전쟁범죄'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제국에 대한 침략을 말한다.

아베나 시모무라가 '도쿄재판 사관'을 재검토한다면,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정부의 입장에서 이 재판의 무효를 선언하고 동시에 일본과의 강화조약에 서명한 세계 48개국에 조약 파기에 대한 통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지, 아베로 상징되는 일본의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침략 사실을 완강히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존·자위(自存·自衛)의 전쟁'이라고 우기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고 비난한다. 게다가 교과서를 통해 종군위안부나 난징학살의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는 것은, 일본의 민주주의와 국제적인 신뢰에 있어서도 큰 위협이다. 동시에 이것은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이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들의 도전에 맞서, 세계는 반격해야 한다. 아베가 한걸음이라도 외국에 발을 내딪을 시에는 현지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기자회견장에서는 보도관계자들이 앞서 말한 사실들을 확인하는 질문을 해줄 것을 강력히 원하는 바이다. 이건 아베가 국제적 시야에서 볼 때, 자신이 얼마나 창피함을 모르는지, 그리고 얼마나 비열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기 위한 가장 유효한 방책일 것이다.

아베로 상징되는 일본의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는 독일 네오나치와 마찬가지로 자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공통의 '적'인 것이다.

※ 일본어 원문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peacephilosophy.blogspot.jp/2013/01/muneo-narusawa-shinzo-abe-far-right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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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13/08/16 [14:33]
다음번엔 수소폭탄맛을 봐야 정신 차리지....
예전에 학실히 밟아 놨어야 되는데 안타깝네.
어쨋든 방사능하고 친하긴 친해 일본이 .. 위에 영택이도 세슘을 다량 섭취해서 맛이 간거 같고 이제 이런 돌연변이들이 계속 나오길 기대해본다!!
몰라 13/08/16 [23:12]
역시 살짝 약빤듯한 글솜씨와 친일질은 여전하구나 
아베, 네가 다음 스승 13/08/17 [18:18]
과연 이 세계는 하나 되는 편이 좋을까? 지난 세기를 휩쓴 참화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를 하나로 엮어주는 단일한 논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왔다. 만일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이 이곳과 저곳의 다름에 기인하고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갈라놓는 차별을 없앰으로써 역사상 최초로 다툼 없는 사회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제연합을 비롯한 범정부 차원의 실험이 진행돼 왔다. 하지만 21세기의 첫 십 년을 보낸 소감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것이다. 왜 그 논리를 발견할 수 없는가? 세계화건 자본주의건 어느 한순간, 강력한 논리에 따라 전체를 완벽히 재편할 수만 있으면 더 이상의 분쟁도 없을 게 아닌가? 정녕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이 이곳과 저곳의 다름에만 있다면 참인 논리다.

그런데 태초 아무런 구분도 없던 지구에 어떻게 다름이 생겼는지 고찰해 보자. 적어도 현생 인류는 다른 모든 종들에 대하여 단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 종의 우위를 자랑하는 인간은 자연계 앞에서 다투지 말아야지! 왜 싸우는 건데? 대지의 품에 껍데기를 만들어 파고 들어가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이 단순히 이곳과 저곳의 다름에만 있지 않다는 가정을 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르다고 인식하는 저곳은, 사실은 자연계라고 하는 단일한 어머니의 품 안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머니의 이름을 빌려 관찰했을 때 이곳과 저곳의 구분은 없는 편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물을 생육하는 어머니의 존재가 다름을 이끌어낸다.
분명 이곳은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막과 초원, 대륙과 섬의 구분까지 사라지는가? 대기권 밖에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땅에 붙어 사는 인간의 좁은 시야로선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래서 그 다름으로 인하여 스스로의 시야에 구분을 짓는다. 이곳과 저곳의 차별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고래로 많은 영웅들이 저곳의 구분을 지워 '하나의 이곳'을 만들어 왔다. 단일한 논리를 실처럼 꿰어 보다 넓은 시야로 확장하는 것이다. 차별이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법인데 이미 이곳과 저곳의 구분이 사라졌으니 분쟁이 일어날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국은 해방자란 찬사를 받으며 기세등등하게 뻗어갈 수 있었다. 아마도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이런 연유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풀고자 했던 문제의 모순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알렉산더가 그랬고, 칭기즈칸이 그랬으며, 가장 최근에는 히틀러가 그랬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의 수법에는 늘 문제가 따른다. 최초 자궁으로부터 어떤 껍질을 뒤집어 쓰고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만일 저곳이 이곳으로 인하여 사라진다면 그것만은 틀림없이 어머니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물을 생육하려는 자의 의지에는 차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어머니의 품에서 나와 대지에 못을 박아 자신을 구분지었으니, 장차 세계를 단일한 논리에 따라 하나의 껍질로 둘러치지 않고서 어찌 견딜 수 있으리오? 이것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것들이 언젠가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확증을 갖는 까닭이다. 존재라면 맞닥뜨려야 하는 숙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국은 이 숙명을 거부한다. 자신을 만들어준 논리가 이 자리에 남아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의 '이곳'이란, 한 때 '저곳'이었던 지점들이 한 데 합쳐진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언뜻 가장 위대한 논리에 따라 시야를 단일하게 통일시켜 준 것처럼 보여도 한편으론 늘 분열의 위기에 직면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초석을 든든하게 쌓아올렸다 하더라도 과거에 지워버린 저곳이 아직 어머니의 발 밑에 남아있는 한 울타리 밖에서 새로운 생명의 의지가 자라나는 일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때는 자신도 길러주었을 어머니의 의지가, 이제는 제국으로 변한 현실에 직면하여 위기를 가져오는 존재로 정의되어 버린다. 자연에 대한 배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어차피 태내에서 빚어질 저 모든 것들이 파괴되지 않고는 이 의지의 경주 또한 멈추지 않을 테니까. 그리하여 마침내 온세상이 단일한 논리에 따라 하나의 바늘로 꿰어지는 순간, 서로를 구분짓던 색깔은 사라지고 도달하고자 했던 '저곳 너머'의 실체가 드러나겠지. 그것이 본래 서구문명이 도달하고자 했던 자연계에 대한 압도적인 힘의 우위일지, 아니면 아메리카 사람들이 꿈꾸고 있는 인종차별 없는 세상일지, 아직은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확실한 건, 단 하나의 논리에라도 의지하여 실을 꿰는 순간 그러한 인식의 통일이 예언하게 될 미래는 영원히 팽창하던가, 아니면 수축하여 필멸한다는 사실이다. 못 박힌 이 자리를 최초 나의 어머니로부터 떼어준 의지가, 생명을 길러내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와 완전히 합이 되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그래서 난 이번 아베 총리의 도발을 매우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바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독일 애들하고 같은 소리 하고 넘어가면 우린 또 금새 잊어버릴 거야. 국민성도 유사한가 본데? 잘 잊어버리는 걸 보니. 그런데 차별이란 서로 달라서 일어나는 법인데 이곳과 저곳의 구분이 사라진 뒤엔 내면을 어떻게 관찰할래? 중국 애들이 그래서 고생하는 거 몰라? 일본 너희도 마찬가지. 만날 '섬이라서 외로워요~ 왜 일본만 당해야 해요?' 이러지. 그런데 전국시대 땐 왜 서로 그 말을 안 했어? 그렇다고 백제, 고구마, 신라가 지지고 볶던 한국도 썩 잘났다는 것은 아니다. 침략받은 이곳의 인연으로 저곳의 모순을 끊으려 한다면 그 또한 어머니의 품에 울타리를 두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전후 5천만의 식충이들을 길러낸 게 아니라면 뭐,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
일찍이 이 땅에서 독립운동 하던 선조들이 같은 고민을 하셨던 것이다. 어찌하여 이 좁은 세계의 경계가 이토록 광대무변하고 끝이 없단 말인가? 참으로 오늘에서야 생각하건대 이 답을 못하여 한반도가 갈라졌다는 주장도 옳고, 그 답을 내리기에 최적인지라 이 자리가 갈라졌다고 봐도 옳다. 일본 너희가 직면한 모순은 뭐니? 지금 동북아시아의 정치판만큼 제대로 굴러가는 곳도 없는 듯 하다. 오호라, 내가 세우고자 하는 나라는 땅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 콜록콜록! 아무튼 난 배꼽을 갖고 태어났지롱. ^^
망할놈 13/08/17 [21:34]
왠만하면 글 달지 말자,제발~~~
가만보면 13/08/18 [12:34]
하나는 긴 글쓰는 넘하고 영택 뭐시기라는 넘
이 두넘은 정신이 맛간 넘들이야
글이 진짜 정신병자의 솜씨라는 걸 
이 두 넘들은 몰라
그러니 진짜 미친거지
암세포 13/09/06 [14:38]
일본은 왜 저런사람이 총리로 뽑힌거지?? 국가에 따른 이중적태도. 식민주의에 찬동하는 사람인가?? 왜 과거의 악을 인정하려하지않는걸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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