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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임진왜란 기록영화' 만든 마에다 켄지 감독

[인터뷰] 왜, 누가 조선인의 코를 베어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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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근 기자
기사입력 2009/09/02 [10:09]

월하(月下)의 침략자 / 분로쿠, 게이초의 역(役)과 귀무덤(耳塚)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천년의 고도를 자랑하는 교토.
 
이 교토 한켠에는 '미미즈카(耳塚)'라고 하는 귀무덤이 있다. 많은 일본인들이 존재조차 잘 모르는 이 유적은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코가 묻힌 곳이다. 
 
귀무덤이라 불리는 조선 사람들의 <코무덤>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 교토의 귀무덤   © 월하의 침략자 팜플렛에서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가 1592년부터 16만의 대군을 보내 일으킨 전쟁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 합쳐 7년을 끌었고, 조선에 막대한 인적, 물적 희생을 낳았다. 일본어로는 분로쿠(文禄), 게이초(慶長)의 역(役)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에서, 충성경쟁을 벌이던 휘하 다이묘들은 전쟁의 증거로서 조선의 병사 및 백성들까지 살육한뒤 코를 베어서 히데요시에게 보냈다. 후에 코무덤이라는 명칭이 듣기 거북하다 하여 이름이 귀무덤으로 바뀌었다.  

한국인이 일본인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일 정도로 유명한 임진왜란. 그러나 침략의 당사자인 일본에서는 '왜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켰는지' '누가 희생당했는지'를 학교에서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 마에다 켄지 감독    ©이승열 / jpnews
이런 가운데 일본인으로서 귀무덤의 존재를 자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나아가 귀무덤이 교토에 생기게 된 원인이 되었던 임진왜란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기록영화로 남긴 감독이 있다. 일본의 전통 마츠리(축제)를 수백편 찍어온 마에다 켄지(73)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총 4년에 걸쳐 6,000만엔이라는 예산으로 일본, 한국, 북한, 중국까지 임진왜란의 격전지를  따라 현지 로케이션을 하면서 촬영한 장편 기록 영화 <월하(月下)의 침략자>를 올해 5월 완성했다. 그 상영회가 지난 8월 27일, 28일 이틀간 도쿄 신바시 야쿠르트홀에서 열렸다. 
 
영화는 2시간 48분으로 제1장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출생부터 전쟁의 경과, 한국・북한 역사학자의 견해, 의병장 후손 인터뷰 , 강화회담 등이 담긴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등 주요 다이묘들의 조선 침략시 루트를 시작으로 임진왜란의 분수령이 되었던 평양성 싸움, 막대한 피해를 낸 남원성 싸움 및 사명대사의 활약, 논개의 충절 등 단순히 일본측 시각 뿐 아니라 한국측 시각을 풍부하게 담았으며, 임진왜란이 침략전쟁이었음을 명확히 했다.
 
특히 곽재우, 고경명 등 의병장, 유학자 강항, 항왜 사야카(김충선), 명량해전때 전사한 왜군들의 무덤을 뜻하는 왜덕산까지 취재, 일본인들이 잘 모르는 임진왜란 전 과정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을 한 것이 특징이다. 물론 중국 자금성까지 가서 명나라의 입장까지 카메라에 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화는 수많은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7년간의 전쟁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당시 조선 침략후 살육한 조선백성들의 코 개수를 기록해 다이묘끼리 거래한 종이부터, 조선에서 납치해간 도공들의 후손(심수관 및 아리타야키-이훈평) 이야기까지 꼼꼼하게 영상에 남겼다. 납치문제로 민감한 북일간의 분위기를 뒤로하고 평양으로 건너가 북한이 바라보는 임진왜란에 대한 견해를 직접 물어보고, 사명대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묘향산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그야말로 임진왜란에 관한 한 남,북,중국,일본 동아시아 4개국의 모든 것을 담은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영화 팜플렛 /  팜플렛에는 거북선, 의병들의 활약이 담긴 부조 등 풍부한 영화속 영상이 사진으로 담겨 있다

▲  임진왜란시 일본군 침략 경로를 정리해놓은 그림 (팜플렛)

jpnews는 28일 오후 상영회장을 직접 찾아 영화를 본 뒤, 보고 난 사람들의 감상, 영화를 제작한 마에다 감독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 "이 정도까지 잔인한 줄 몰랐다"
 
상영회를 찾은 사람은 대부분 노년층이 많았으나 젊은 층, 학생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좌석은 1층 홀을 거의 꽉 메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다음은 영화를 보고 난 후 물어본 관객의 감상이다.

▲ 야쿠르트홀, 감상을 마치고 나온  관객들     ©이승열 / jpnews

최성규 재일동포 (게이오 중학교 보통부 2학년)
- 보고 난 감상은?
내용이 조금 어려웠지만, 일본의 악행을 알게 되었고, 조선인으로서 열심히 싸웠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병력수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었음에도 이순신 장군도 잘 싸웠다고 생각한다. 
- 이 상영회를 어떻게 알고 왔나
학교에서 분로쿠,게이초의 역(임진왜란)에 대해 레포트를 쓸 생각인데, 가정교사를 하시는 분이 추천해서 보러오게 되었다.

최성희(재일동포 3세. 한국근대사 전공 대학원생)
- 일본에서는 히데요시가 영웅이고, 한국에서는 임진왜란을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시점에서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이 충무공이라든가 등등. 그러나 임진왜란은 과거의 이야기인 것이 아니라 현재 한일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이 서로 어떻게 바라봐야하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기록영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2세의  남성 관람객
- 어떻게 이 상영회를 알고 왔나
친구 소개로 왔다.
- 보고 느낀 것은?
새삼스레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이 정도로 잔인한 줄은 몰랐다. 그 희생자수하며. 또 조선이 전쟁에 얼마나 무방비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 귀무덤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교토에 있는 미미즈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 외 지역에도 있는 줄 몰랐다.

 미츠바라 에이코(82, 가와사키 거주)
- 정말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미미즈카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구체적으로는 몰랐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에서는 타이코사마(太閤様)라 불리면서 칭송을 받고 있지만 이렇게 심한 줄은 몰랐습니다. .
감독님의 작업이 대단하고, 이런 영화를 보게해줘서 감사드립니다. 
  

<마에다 켄지 감독 인터뷰>

▲ 인터뷰에 응하는 마에다 켄지 감독     ©이승열 / jpnews

- 이번 영화를 만든 계기나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원래 시대 배경 즉 고대사나 중세사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다만, 도래인들이 세운 신사에 흥미가 많았습니다. 특히 마츠리, 민중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보니 예전부터 있었던 예능인들의 차별 문제도 다루고, 태평양전쟁시 강제연행당했던 한국인들도 다루게 되었습니다. 그 기록영화는 7년간 126명의 증언을 받아서 3년반에 걸쳐 2000년에 영화로 만들었습니다(백만명의 신세타령). 그리고 나서 이번 <월하의 침략자>를 만들게 되었는데, 계기는 임진왜란의 배경에 대해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전국시대 등  전기물(戦記物) 등을 좋아하지만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임진왜란을 일본의 시각이 아닌 한국, 중국의 시각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본 임진왜란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자 한국에 갔습니다.
 
그때 서울대 명예교수이신 이도형선생께서 '이것도 한번 봐라,' '저것도 한번 봐라' 하시면서 여러가지 자료를 많이 소개해주셨고, 그것을 바탕으로 번역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현지 로케도 했습니다.
 
-  귀무덤에 초점을 두고 다룬 이유가 있나요?
일본에서는 미미즈카에 대해 전혀 거의 교육하지 않습니다. 우선 그것을 먼저 알리고 싶었습니다. 일본은 과거의 잘못한 역사, 여기서 도망치면 안됩니다. 한국과 일본, 나아가서 아시아와 사이좋게 지내려면 일본의 부끄러운 부분도 알려야합니다.
 
일본의 역사는 과거를 지우고 있습니다 특히 귀무덤은 너무나 사라져버린 역사입니다.
적은 사람이 보더라도 꼭 알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히데요시는 메이지유신 이후 지나치게 이용되고 있는 인물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권을 잡았던 에도시대에 히데요시를 언급한 것은 금기였다. 그러나 메이지 이후 히데요시는 신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영웅시화되면서 조선 병탄의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영웅시하는 흐름이 이어져 전후(戦後)에는 밑바닥에서 일본 권력의 정점까지 올라간 히데요시를 샐러리맨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 도쿄 상영회, 관련 팜플렛 책자     © jpnews
- 도쿄에서 왜 이틀만 상영하나요?
저는 큰 배급사가 배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손에 의해 상영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시민들의 자발적인 입소문으로, 스스로 보고 깨닫기를 바라는 거죠.
앞으로  나라,교토,히로시마 등 일본 각지에서 상영을 할 예정에 있고, 구체적으로 히로시마에서는 9월부터 10월까지 1개월 정도 상영 예정에 있습니다. 교토는 1월 16일부터 상영될 예정입니다.또한 지역별로 작가 등 문화인들을 중심으로 상영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니가타, 오사카, 미에현 등에서.
그렇게 배급사의 힘이 아니라 시민들의 힘으로 1년반 걸려서 느리지만 오래 상영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보고 난 분들이 '한번 더 보고 싶다.' 'dvd가 시판되면 사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시민들의 힘으로 상영 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 영화를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더 했으면 좋겠고, 현재 일본에서는 일방적으로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이야기만 하고 있지만,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죠. 임진왜란을 보면서 그런 납치에 대한 것도 이 영화를 보고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더욱 자발적인 움직임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 임진왜란이 일본에게 미친 영향은? 당시 조선은 전란으로 엄청나게 피폐해졌습니다만, 일본 본토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실감을 할 수 없을 수도 있을텐데요.
임진왜란은 기본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광기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토요토미가 침략을 명할 때 주요 다이묘였던 '마에다 도시이에'나 센노리큐 등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일본이라고 피해가 없는 건 아닙니다. 당시 서일본쪽 마을은 일반 백성들은 모조리 배에 노를 젓는 사람으로 전쟁에 끌려가서 아버지가 없는 모자가정이 태반이었습니다. 일본의 일반백성도 피해자입니다.  
그러나...한국을 보세요. 대장금을 보셔도 알겠지만, 대장금을 보면 거기에 나오는 음식문화만 하더라도 수십가지가 있고, 화려한 왕조문화가 꽃피고 있었습니다. 장금이를 볼 때마다 느끼는 데 대단한 거죠. 일본은 그런 춤의 나라의 빈틈을 노려서 16만이라는 대군을 보내서 공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하들, 다이묘들에게 충성경쟁을 시켜서 코를 베어오게 한 것입니다. 사람 코를 어떻게 베는 줄 알아요? 코만 싹 베는 게 아니에요. 윗 입술부터 긁듯이 베어냅니다. 산 사람도 아이들도 무자비하게 말이죠.
 
저는 그래서 그런 전쟁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가, 무의미한 것인지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두번 다시 그런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고요한 강물에 작은 돌을 던지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싶은 겁니다.
 
사실, 이런 영화는 상당히 용기가 필요합니다.

-네. 영화를 만드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습니까
신들의 이력서(神々の履歴書)를 찍을때였습니다. 1986년만 하더라도 서울에 가서 영화를 찍으려고 하면 '왜놈이 왜 한국에 왔냐'하면서 맥주병으로 맞기도 하고 힘들었습니다.  요즘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이번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죠.
 
아마 제가 대한민국정부로부터 문화훈장도 받고, 마에다라면 괜찮다, 봐줘라 하는 이미지가 한국측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본인들은 임진왜란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일본에는 일본인이 없습니다. 원래 일본에 있는 아이누, 코비토, 하야토 등 일본의 원시부족이 있었지만 660년 백제가 망하고 나서 도래인들이 와서 다 외곽으로 몰아내고,본격적으로 야마토(大和)가 세워집니다. 사실 백제가 망할 때 이미 백제는 껍데기 뿐이었습니다.
 
일본의 막부시대 최고 권력자를 뜻하는 말 쇼군. 이 쇼군의 정식명칭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으로, 즉 오랑캐를 정벌하는 대장군이라는 뜻이다. 일본역사는 도래인들이 일본으로 건너와서 혼슈 내부의 영역를 확장해온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의 확장은 메이지 신정부 수립 후 더욱 확장되어, 사츠마번의 식민지였던 류큐왕국은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고 아이누가 살고 있던 홋카이도에는 본격적인 혼슈 거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된다. 
 
▲ 영화가 끝난 뒤 마에다 감독과 이야기 중인 최성규 학생     ©이승열 / jpnews

- 한국과 일본이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언제였습니까
일본은 여러나라의 문화가 고이는 곳입니다. 한국,중국,가야,오키나와,북방민족의 모든 것이요.

저는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250편 이상, 일본 전국의 마츠리(일본축제)를 비디오로 찍어왔습니다. 그런데, 아오모리에 가니까 신라 신사가 있었습니다. 왜 이곳에 신라 신사가 있을까. 카가와현을 가도 신라신사가 있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도쿄 기요세시 근처에는 코마신사(고려)가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 각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삼국문화가 있습니다. 

한국어로 '우리나라'에서 유래된 '나라(奈良)'를 가보면 아스카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은 거의 백제의 집적체입니다. 덴무 천황도 그렇고.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는 또 고구려 도래인들의 지역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저는 '일본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한반도와 관련된 기록영화를 찍고 싶었습니다만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신들의 이력서(神々の履歴書)를 찍고, tv에서 의뢰를 받아 오키나와전을 찍고, 여러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이 생겼습니다. 
 
이번 영화는 그런 저의 여러가지 작업이 큰 흐름을 타고 정리된 형태로 나온 것입니다.
 
- 한국에서도 임진왜란에 대한 관심, 특히 일본의 관점에서 바라본 측면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만, 한국에서도 상영 계획은 있으신지요
지금까지 제가 만든 기록영화는 kbs에서 전부 구매해주었습니다. 이번 영화는 아직 이야기가 없지만요. 
 
아울러,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한국의 한류 등 뛰어난 컨텐츠가 많지만,  <다큐멘터리>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보다 교육적인 다큐멘터리를 한국에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향후 작품 계획은 있으신지요
예정입니다만, 얼마전 강릉의 단오제를 보고 왔습니다. 거기에 무당인 '빈순애'씨가 있습니다.
무당은 사람이면서도 인간 이상의 정신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당이 동아시아 전체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물질 문명이 가지지 못한 그 무엇, 무당의 마음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받을 것인가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로케이션이 아니라 아예 그곳에 살면서, 지역과 밀착해서 동아시아가 하나가 되는 그럼 마음을 찍고 싶습니다.
 
- 손님맞이 등 바쁘신데 이렇게 인터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이런 한일간의 역사를 그대 같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고 보도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한국은 유교의 나라입니다. 유교로 안좋은 것도 있지만 유교의 장점도 아주 많습니다. 한국은 그런 풍요로운 부분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분들과 만나는 것은 제게도 즐거운 일입니다.
 
 <끝>

마에다 켄지(前田憲二)
1935년 출생. 영화감독.
1960년대부터 일본 각지나 중국, 한반도의 축제나 예능을 쫓아다니며 그 내용을 기록한 tv, 영화작품이 250편 이상. 대표작으로 <오키나와전의 그림, 생명이야말로 보물 おきなわ戦の図命どぅ宝(1984)> <신들의 이력서(1988)><토속의 난성 土俗の乱声(1991)><백만명의 신세타령 百万人の身世打鈴(2000)> 등 다수.
2001년 10월 한국정부로부터 왕관문화훈장 수상.
현재 가쿠슈인대학 동양문화연구 프로젝트 운영 프로젝트 운영위원, npo hanulhouse 대표이사.

향후 <월하의 침략자> 상영정보는 아래 블로그 참조
http://blogs.yahoo.co.jp/hanulhouse5996
 

◆ 그 외 상영회 사진 


▲ 도쿄 신바시 야쿠르트 홀     ©이승열 / jpnews
▲ 상영회가 끝나고 야쿠르트 홀에서 마에다 감독   ©이승열 / jpnews
▲ 월하의 침략자 상영회장 입구  / 야쿠르트 홀   ©이승열 / jpnews
▲ 월하의 침략자 팜플렛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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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DAN 09/09/02 [09:38]
좋은 정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 내용이 상당히 재미있네요.
'임진왜란'은 도요토미가 승리한 후, 사무라이들이 자신들의 존재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타국을 침략하고자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인 친구들
도 그렇게 알고 있었구요. 위와 같은 같은 내용이 진실이라면 '도요토미의
광기'로 인한 전쟁으로 봐야 겠군요. 

꼭 이 영화(다큐)를 보고싶은데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KBS는 이번에도 꼭 저 영화 사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드 09/09/02 [10:35]
당그니님은 여러분야에 걸쳐서 취재를 하시니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ㅎㅎ
장군 09/09/02 [13:42]
좋은 정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일본에도 이런 분들이 아직 남아 있으니 그래도 희망을 가져 봅니다

감독님의 노력이 좀 더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도 꼭 상영되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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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 티는....아리타야키는 심수관이 아니고 이훈평
심수관은 가고시마지역의 사쯔마야키
편집부 09/09/02 [14:01]
옥에 티에 대해서, 위 영화에서 심수관과 아리타야키를 둘다 다뤘다는 이야기인데 전달력이 부족했나 봅니다.^^ 다시 보충했습니다.
애독자 09/09/02 [15:37]
기사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마에다 감독님의 전작들이 KBS를 통해 소개된 모양인데, 혹시 DVD 등을 구할 수 있을까요?
123 09/09/02 [20:10]
한국에서도 꼭 상영됬으면 좋겠어요 
오오 09/09/02 [21:46]
한국에서도 볼 수 있을까요???
어캐 좀
제발
Nicholas 09/09/02 [23:06]
이 시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협약에 의해 세계분할정책이 작동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수의 신부들이 종군기자로 참전하게 되고, 서구의 시각으로 세세한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그것을 집대성한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와도 친분이 있는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입니다. 그에 의하면, 전쟁으로 인해 왜군의 사망자 수는 대략 5만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기록이 그의 저서인 '일본사(Historia de Japam)'이다보니 조선인의 사망자와 포로된 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만 표현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포로교환시 남자와 달리, 여성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다시 고국으로 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 16세기 후반 조선의 인구와 7년 전쟁을 통한 조선군의 사망자 및 부상자 수 그리고 피로인 수에 대해 잘 아는 분이 있으세요? 
gillez 09/09/03 [01:04]
당그니님 덕분에 JPNews도 알게되고 좋은 기사도 읽게되고... 감사합니다.
-- 09/09/03 [13:49]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그런데 중간에 '그닥'은 '그다지'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아 09/09/04 [01:49]
KBS홈피에 실린 기사를 보고 일부러 시간 내어 야쿠르트 홀에 다녀왔습니다.
도쿄에서 이틀..하루에 두번 상영하더군요.동포사회 각 단체 개인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다큐라고 해서..첫날 가서 두번 따로따로 입장해서 보고 왔어요.
그날..초면이고 또 기자도 아닌 나의 질문에도 성심껏 친절하게 답변해 주신 마에다감독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는걸 깜빡했네요.(감독께서 워낙 바쁘셔서)
이 다큐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꼭 상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젊은이들이 좀 더 많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제피우스 09/09/04 [14:58]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겠죠.. 당연한 겁니다.. 당시 일본에서 바라보는 임진왜란은 침략전쟁이 아닌 정복전쟁이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전쟁을 심도있게 깊이 파고들면 나오는건 무엇이었을까요? 당연히 자국의 침략성과 만행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심도있게 다루지 않을수 밖에 없는 거고요.. 왜 역사를 깊이 가르치지 않느냐에서는 깊이있게 가르쳐보면 나오는건? 백제 신라 고구려가 나오겠죠 ㅋㅋ 거기서 백제의 영향이 제일 컷으니 자꾸 파헤치다면.. 일본의 본래 원주민들은 밀려나고 우리나라 백제인들과 신라인들이 일본의 중요한 곳은 다 점령한것이 나올것아닙니까.. 그래서 역사를 깊이 있게 가르치지 않는 겁니다.. 지금도 역사를 자신들의 잣대로 바꿔버릴려는 저런 일본이 왜 나오겠습니까? 제대로된 역사를 모르니까 저런 엄청난 짓을 해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지요.. 역사를 제대로 알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말하는 저런 허무맹랑한 짓거리는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저런 영화감독분이 계시다는 것만하더라도 일본은 아직 진실로 부터 구제가 될 수 있다는 기분이 드는군요.. 
와신난다 09/09/06 [23:20]
이런 일본인을 보면 존경 스럽습니다.
귀무덤 저는 MBC 조선왕조 오백년 에서 어렸을때 보고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죠. 귀무덤,,  무섭죠..   그거 코 잘라서 일본에 가져갈때 한 여름이라서, 썩기 때문에, 소금에 저려서 가져 갑니다..  한국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 없는거 같던데, 교과서에 집어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gureneko 09/09/14 [12:02]
일본에서는 물론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4대문명보다 옛부터 한반도에 문명이 있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한국만입니다. 
오랫동안, 중국의 지배하에 있던 것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1910년보다 전의 서울의 사진을 보았던 적이 있습니까? 
여성이 가슴을 낸 저고리를 알고 있습니까? 
유럽인이 한반도를 여행했을 때에 쓴 책을 읽은 적 있습니까? 
다른 나라의 역사 교과서를을 봐 주세요. 반드시 부끄러워지겠지요.
imperator 09/09/17 [02:18]
현재 한국의 국사 교과서에는 4대문명보다 오래된 문명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4대문명보다 오래된 문명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재야사학자들밖에 없습니다. 공식적으로 한국의 역사교육은 그런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가슴을 낸 저고리가 어떻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들을 낳은 여성이 자랑하기위해 가슴을 들어냈다는 것인데, 당시 조선사회에서 젖가슴을 들어내는 것은 서민 사이에서 큰 부끄러움이 아니었다는 것과 성애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에 불과합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교과서를 보았습니다. 크게 부끄러워지지 않았습니다. 
gureneko야.. 09/09/19 [00:41]
넌 한국어 배운 일본인인거 같다... 4대문명보다 전에 한반도에 문명이 있었다고 절대 안 가르친다. 단지, 일본이 없애버린 고조선이란 역사를 우리는 기정 사실로 받아 들이고 반만년 역사라고 칭할 뿐이지...삼국 이후 부터는 국사시간에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다는거 죠낸 외우거든? 사대주의 말이야.. 1910년 전 서울 사진? 본 적은 없다만, 못 살았던 건 사실이고, 여성이 가슴 낸 사진은 결혼한 여성이었던가, 아이가진 여성이었던가 가슴 내 놓은 사진 국사 책에서 본 것 같은 기억이 있다... 도대체, 넌 까이고 싶어서 작정 했냐?? ㅄ 나도 한국사람이라 우리나라 국사학자들이 조금이라도 우리나라를 위대하다고 교육시키려는거 모르는건 아니지만, 일본처럼 없는 역사 지어내서 역사를 왜곡 시키진 않아... 자신들이 잘못한 만행들 감추려 하지도 않고...
피리다 09/09/19 [11:46]
gureneko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은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당시 상황이 우리가 알고 있던것과는 많이 달랐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역사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내요을 모르겠네요.
osiris_isis 09/09/20 [10:56]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을 말한다 전에 원래 왜구의 몽고 군대와 그 몽고 일본 침공을 진언했다 충렬왕과 고려 군에 따른다 만행을 말하는 것이지 않은가? . 
124ㄱ 09/09/21 [14:59]
 일본이 고구려,백제.신라 특히 백제의 영향을 두드러지게 많이 받고 형성된 문화라고 우리는 알고 있고, 또 그게 진실이라도 그걸 '일본이 당시 상당히 미개한 나라였다.' '백제가 없었다면 아스카문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의 사생아들이다'라는 인식은 없었으면 하네요. 저도 나이가 어렸을 때는 무조건 일본의 고대문화는 보잘 것 없고, 백제가 멸망해서 그 후손들이 일본에 이주하지 않았다면, 일본의 문화는 꽃을 피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라고, 무작정 생각했었는데요. 문화란걸 그렇게 단정짓는것 자체가 바보라는 걸 알게된 후 부터는 그런 생각을 버렸답니다. 전 동북아시아 삼국 한국,중국,일본의 경우 인종적으로 서로를 무시하고 문화적으로 서로를 무시하는건 참 기가막힌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고대부터 서로 싸우고 교류했다면 혈연적으로 전 서로 많은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되고, 문화라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지역에 흘러들어가면, 고유의 생할방식과 결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게 되는 것인데, 이런 것의 원류를 따지며, 우리문화다! 우리문화가 없었으면, 그런 문화를 없었다!라는 몰지각한 시각이 없어졌으면 하네요. 하여간 이런 시점에서 보면, 그냥 문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또 어떠한 문화를 가졌던, 그 문화 자체가 독특한 또하나의 문화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되는데...사람이란게 원래 분류를 잘 하는 동물이라, 일단 어떤 분류의 집단에 서면, 무조건 그 분류 집단의 장점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상대방의 특정부분을 낮추는 경향이 있는거 같습니다. 한.중.일 서로 너무나도 가깝고 또 무수한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교류도 활발했지만...) 서로 독립된 국가를 유지했고, 어느정도 힘의 균형이 유지되어서 그러는지 민족적 자긍심에 대한 싸움은 끊임이 없군요.ㅡㅡ...그래도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는 참.ㅡㅡ... 저 일본감독분을 보니 마치 계속 숨기기만 하다 도리어 그 숨기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결국 그 비밀을 파헤치게 되는 부메랑효과 같다는 생각이드네요.
프린스턴s 09/12/19 [12:50]
만약 아직도 광주민주화 운동을 광주폭동, 광주사태라고 했으면 어떨까?  1592년 저들이 건너온 일본군대는 엄연한 외국 정규군이다. 외국 정규군 30만이 조총으로 무장한 군대인데, 어떻게 졸개같은 해적으로 묘사한 난으로 표현했나?  저들은 아예 우리나라와 명나라를 치기위해서 자체적으로 준비를 햇다. 조총에 4-6m 장창에, 각종 공성장비들을 준비를 햇고 2000여척의 함대를 준비햇다.. 이건 봐도 외국정규군이다. 그리고 수군도 제대로된 수군장군들만 모아
gureneko님아 10/06/03 [19:36]
본적이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다는건지?
세계4대문명보다 한국문명이 먼저라는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몇몇 재야사학자들은 있지만 그것을
교과서에 실어 가르치는 곳은 단 한곳도 없습니다. 무책임한 말씀은
그만두세요. 혐한 일본이신거 같은데 당신 같은 분들이 거짓을 만들어내죠
훌륭하십니다 10/06/05 [18:21]
많이 배우고 갑니다! 월하의 침략자는 꼭 구매하고 싶습니다. 
마운틴 10/10/10 [16:05]
좋은 내용 잘 보았습니다 양국의 발전을 위해서도 아주 좋은 작품과 주제 선정이었다 생각이드네요 그리고 건강하셔야  앞도 좋은 작품 많이 만드실수 있으니 ..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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