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에 사는 '한국인 엄마' 중 "비록 방사능의 위험이 있을지언정 그래도 아이를 키우기에는 한국보다 일본이 낫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
설문조사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은 대지진 등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었지만, 한국은 인재에 따른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선 아이를 낳으면 출산 비용이 지급되며, 중학교 졸업 전의 모든 아이들의 의료비 또한 무상으로 지급된다. 또한, 적어도 아이를 때리거나 상한 걸 먹이거나 하는 무지막지한 어린이집은 없다."
"엄마가 주관을 가지고 아이들 교육과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주변과 비교하거나 당하지 않는다."
"유학생 복지제도가 우수하고, 교육환경과 문화시설이 풍족하다."
▶관련기사 링크: 대지진 1년, 한국인이 일본에 남은 이유
한편, 일본에 사는 한국인 엄마들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살펴보면, 아이의 방사능 내부 피폭을 염려하는 엄마들의 가슴앓이가 상상을 초월한다.
모유 수유를 하는 도쿄 거주 여성이 모유 검사를 했다는 소식에 모두들 가슴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기준치 미만'의 결과가 나오자 정말 자신의 일처럼 축하해주고 안도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다.
아이를 가진 엄마라면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교육환경도 중요하지만, 평생 그런 가슴앓이를 하며 사는 것을 감수하겠단 말인가.
직접 엄마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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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일본 생활을 한 한국인 남편과 3년 전 결혼해 두 살배기 아이와 이제 갓 돌이 지난 아기의 엄마인 김 씨(38세, 아라카와 구)는 일본에 남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부부는 동일본대지진이 터지기 전부터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한 살배기 첫째 아이와 뱃속에 곧 태어날 둘째가 있었던 김 씨는 남편의 실직 생활이 6개월이 넘어서자 '한국으로 가서 생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부부가 그런 결단을 내렸을 때 동일본대지진이 터졌다. 뒤돌아 볼 것도 없었다.
그러나 부부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한 돌이 채 되지 않은 다운증후군의 첫째 아이였다.
첫째 아이를 낳고, 참 많이 힘겨워했다는 김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길을 걸어도 눈물이 나고, 전철을 타도 눈물이 나고, 무엇을 해도 눈물이 쏟아졌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 중에는 일본 구청의 복지 담당자도 있었다.
아라카와 구 구청의 담당자는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꼭 방문해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냐?"며 상담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화를 해 "잘 지내고 있냐? 아픈 데는 없느냐?"며 안부를 묻는다.
김 씨는 처음 그들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첫째 아이를) 초등학교까지만 키워주시면, 이후는 저희가 알아서 키워드리겠다. 교육과 취업까지 다 책임질 테니 염려하지 마라"
또한, 이후 그들이 보여준 지속적인 관심에 부부는 감동했다고 한다.
그랬던 터라 첫째 아이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
결국 부부는 일본에 남기로 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원전사고가 일어났지만, 첫째 아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믿었다.
대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먹거리 사수에 나섰다. 원전사고 후 도쿄 수돗물에서 유아 기준치를 넘는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었을 때는, 매주 지인들과 함께 승합차를 빌려 요코하마 가서 약수를 떠 날랐으며, 이후 한국산 식품과 물을 대량으로 사 먹고 있다. 원전 인근 지역에서 재배된 야채 등은 피하고 있다.
첫째 아이는 지금도 역시 구청에서 알아봐 준 특수 보육원에 다니며 밝게 잘 자라고 있다.
김 씨는 비단 장애인 복지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선 아이들의 의료비가 무료다. 한국에선 아이들이 아파야 병원에 가지 않는가. 그런데 여기선 아이에게 작은 이상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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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타 구에 사는 세 살배기 아이의 엄마인 최 씨(36)는 유독 한국 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다음 달부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된다는 최 씨는, 일본인 남편과 결혼을 하기 전 한국에서 유치원 보육 교사 실습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최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내 눈으로 아이를 때리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것이 아이들이 말을 잘 듣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이 하나 보기도 벅찬데, 여러 명의 아이에게 둘러싸여 돌봐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렇게 일이 힘든 반면, 월급은 쥐꼬리만하니... 마치 그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푸는 듯했다"고 밝혔다.
또한, "네다섯 살 아이들이, '있는 집 자식이냐, 없는 집 자식이냐'에 따라 차별을 받고 있었다. 유치원 보육비가 몇 달 밀렸다는 이유로 아이가 맞는 모습을 보고는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이 왜 맞는지도 모르지 않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비단 유치원만의 이야기겠는가. 그 작은 사회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물론 안 그런 유치원도 많겠지만, 내가 내 눈으로 본 이상, 그런 곳에 보낼 수 없다."
그녀의 의지는 단호해 보였다. 그러나...
"물론, 우리 아이가 나중에 행여 암에 걸린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단호했던 그녀가 잠시 울컥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에 간들 무얼해서 먹고 살까 생각하면 답답하다. 넉넉한 형편도 아닌데, 없는 형편에 아이가 더 많은 차별을 겪으며 힘겹게 살지 않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쉽게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최 씨와 한동네에 사는 한국인 엄마 이 씨(38)는 일본인과의 남편 사이에서 다섯 살, 세 살의 남자 아이 두 명을 낳아 키우고 있다.
두 엄마 모두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가 발생한 후에도, 일본에 그대로 사는 데는 남편이 일본인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런데 이 씨의 경우, "사실 내가 가고 싶었으면, 어떻게든 갔겠지"라고 이야기한다. 지금도 남편을 협박하는 가장 큰 무기가 "애 데리고 한국으로 도망가는 것"이라는 그녀는, 집에 사다 놓은 물이라도 떨어지는 날이면 여지없이 "나 한국 간다"고 협박한다고 한다.
"사실 남편도 남편이지만, 엄마에게 '아이'보다 소중한 게 어디 있겠는가? 지금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 엄마들의 속은 문드러질 것이다. 더군다나 국제 결혼을 한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한국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백 만 번도 더 생각했을 것이다."
이 씨는 솔직히 아직 고민 중이라 했다.
"솔직히 한국의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살면서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 환경은 좋으니까'라고 위안 삼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나는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정작 학교를 보내면 '남들 다 시키는데, 내 새끼만 안 시킬 수 없다'며 똑같이 된다고 하더라. 결국 나도 한국에 가서 똑같이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잠도 안 온다. 아이들이 가서 적응하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야할 텐데... "
한국말은 거의 할 줄 모른다는 둘째 아이가 엄마가 아빠를 협박할 때 쓴다는 "나 한국 간다~"를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었다.
"나 한국 간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그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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